Clay A.C RAW novel - Chapter 59
제 59 화
5번 의자의 주인이자 5형 간부 교수인 이즈네는 3번 의자의 주인인 다단과 함께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수업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셨네요.”
여유로움이 가득 느껴지는 이즈네의 목소리에 다단이 옅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매력적인 저음이 그녀의 귓가를 두드렸다.
“너야말로. 수업 시간은 꽉꽉 채우자 주의가 아니었던가?”
“오늘은 날이 좋잖아요. 이런 날에 학생들을 교실에만 잡아둘 순 없죠.”
“그런가.”
“네.”
두 사람은 은은하게 퍼지는 알싸한 향을 즐기며 담소를 이어나갔다.
“그러고 보니, 이즈네.”
“네?”
“전부터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 한유림이라는 아이.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거지?”
다단의 입에서 튀어나온 유림의 이름에 이즈네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한 톤 낮고 차분해진 목소리로 답했다.
“8형에 히야스의 제자잖아요. 거슬리는 게 당연하죠.”
“확실히 넌 히야스를 싫어하지. 하지만 그 이유로 한유림을 싫어한다는 건 말이 안 돼. 우선적으로 아슈팔에겐 관대하잖아.”
핵심을 정확히 찌르는 다단의 질문에 이즈네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아슈팔 군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예요. 물론 그의 여유로운 정신 상태가 썩 좋다 할 순 없지만, 능력이 대단한 건 사실이죠. 아마 그가 이대로만 발전한다면 보스를 뛰어넘는 강력한 사람이 될 거예요.”
그 말은 다단도 공감하는 바였다. 아슈팔은 수재들만 모인다는 클레이즈에서도 손꼽히는 천재였다. 케이의 영역에 가장 근접했으며 그만큼의 그릇을 타고났다. 만약 아슈팔이 좀 더 의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진작에 덴 케이를 뛰어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유림은?
다단은 올해 입학시험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가 참관한 것은 어디까지나 면접뿐이었고 그마저도 뒤에서 보는 게 전부였다. 그랬기에 유림의 정확한 실력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달라붙은 어마어마한 소문을 생각한다면 그저 가볍게 넘길 실력이 아니란 건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 코니룸을 이겼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는 건 실력뿐 아니라 재치와 순발력도 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단순히 타고난 재능 때문에 한유림과 아슈팔을 가른다고?
다단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전부인가?”
다단이 다시금 이즈네를 향해 물었다. 대화의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계속 굳어 있는 표정. 결국, 그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다단도 아시잖아요. 면접 때 저와 함께 있었으니까요.”
그 말에 다단은 유림의 입학시험 5차인 면접을 생각했다.
어떤 이유에선지 반응하지 않은 의자와 평소의 덴 케이라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고도 파격적인 제안. 그러나 그것이 이유라 하기엔 무언가가 미묘했다. 자신도 그 부분이 신경 쓰이긴 했으나 저렇게까지 경계하고 ‘불쾌’해하지는 않았다.
“…이해는 하지만 그런 것치곤 너무 싫어하는군. 그것도 노골적으로 말이야.”
“다단, 전 그 누구보다 클레이즈를 사랑해요. 이 학교가 지금보다 더 위대해지길 바라고요. 그러기 위해선 훌륭한 학생들이 필요해요.”
“불순물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아니요. 오물이라 말하고 싶은 거예요.”
“…….”
그녀의 확고한 말에 다단이 놀랍다는 듯 눈을 홉떴다.
이즈네는 정말로 그리 생각하는지 구겨진 표정과 불쾌하다는 듯한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손에 들린 홍차의 짙은 적색이 마치 그녀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흠… 그래서 나한테 부탁했던 건가? 한유림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죄송해요. 하지만 당신밖에 없었어요.”
“어째서?”
“나머진 믿을 수 없으니까요.”
“왜?”
“내부의 적.”
그 말에 다단의 손이 가볍게 움찔거렸다. 내부의 적, 덴 케이가 5년이 넘도록 찾고 있는 그의 절대적인 숙적.
“교수들 사이에 있다-가 케이의 지론이었지.”
“네, 저도 그 이야기엔 동감해요. 사실이기도 하니까요.”
“그게 한유림과 무슨 상관이라는 거지?”
“엄밀하게 말하면 한유림과 직접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요. 다만, 제가 그녀를 단순하게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죠.”
과연…… 그런 건가.
“이해했어. 하지만 날 믿을 수 있어? 내가 만약 네 적이라면?”
다단은 소파에 등을 파묻으며 거만하게 물었다. 그 말에 이즈네가 옅게 웃었다.
“후훗, 그럴 리 없잖아요.”
“어떻게 확신하지?”
“그 이유는 다단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즈네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차를 마셨다. 입안에서 감도는 알싸한 맛이 유난히도 맘에 들었다.
“내가 괜한 걸 물어봤군.”
다단은 그리 말하며 작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한유림이란 아이, 요즘 꽤나 시끄럽더군.”
“동아리 쟁탈전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하지만 그뿐만이 아닌 것 같아.”
“네?”
“세룬에게 연락받지 못한 건가?”
다단의 말에 이즈네가 미간을 찌푸렸다.
세룬, 4번 의자의 주인으로 앙증맞은 외모와 달리 간부 교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교수였다.
세룬은 다단과 그의 동기들이 학생일 때 의자를 계승 받기 위해 조교수로 클레이즈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당시 4형 담당 교수는 몸이 좋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계승자인 세룬이 일부 학생의 담당 교수를 맡게 되었고 그중 한 명이 바로 다단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은 유독 친했다. 외관은 정반대였지만, 세룬에게 있어 다단은 첫 제자이자 귀여운 후배였고, 다단에게 있어 세룬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찾아가 조언을 구할 만큼 듬직한 선배이자 훌륭한 스승이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이 자주 연락하는 건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단의 어투는 그것이 아니었다. 세룬이 전한 내용이 다단에게만 국한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담고 있었다. 쉽게 말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연락했단 소리였다.
그런데 왜 자신에겐 연락하지 않았을까?
“무슨 내용인데요?”
정말로 듣지 못했는지 두 눈을 깜빡이며 묻는 이즈네의 태도에 다단이 아차 하며 혀를 찼다.
그는 낭패감이 섞인 얼굴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동아리 담당 교수 쟁탈전을 한다고 참가할 사람은 모이라더군.”
“무슨……?”
“한유림 쟁탈배 교수 최강자 전…… 이랄까.”
“……네?”
툭!
이즈네가 들고 있던 찻잔이 허무하게 땅으로 떨어졌다.
* * *
안녕, 아버지. 잘 지내고 계셨어요?
아버지 딸내미는 나름 잘 지내고 있어요.
음…… 뭐, 아버지 말대로 ‘돈이 세상의 전부다~’란 지론을 믿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답니다.
최근엔 클레이즈에 입학했어요. 그딴 귀찮은 곳에 왜 입학했냐고요? 물론, 귀찮은 거 저도 잘 알죠. 근데 입학했어요.
그게 글쎄 2년 안에 졸업하면 연금을 준다지 뭐예요? 그것도 세금 없이!
하하하하, 참 돼지 똥 싸는 소리죠? 근데 사실이래요. 그래서 은하랑 함께 클레이즈에 입학해서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학교 생활은 어떠냐고요?
음……. 일단 친구들은 다 좋아요. 잊고 있던 소꿉친구들도 만나고 돈 많은 새로운 친구들도 만났어요. 또 아직은 정확하게 판단할 순 없지만 나름 뜯어먹을 거 많은 선배들도 만났어요.
교수님들요?
하하하하하. 그냥 웃는 걸로 대신할게요.
왜 웃냐구요? 닥치고 빨리 말하라고요? 하하하하. 우리 아버지 참 터프하셔라.
교수님들은 말이죠……. 음…… 그냥 미친놈 집단이에요.
세상에 정상인 사람이 저렇게 거대한 운석을 땅으로 떨어트릴 리 없잖아요?
하하하하하하. 거기다 더 웃긴 건 그 운석을 검으로 베고 있어요. 이상한 흐물흐물한
놈도 잔뜩 나오고 고철이 불을 뿜고. 하하하하…….
……
……
……
아버지, 이 학교는 미쳤어요. 농담이 아닙니다. 정말 미쳤어요.
그러니 제발 절 좀 살려주세요.
-방년 19세. 유림의 마음속 편지.
제14교사는 클레이즈 학생들이 사용하는 거대한 원형 연무장이었다.
그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거대한 숲이 하나 나오는데, 겉보기엔 평범한 숲이지만 실은 교수들과 4클래스 학생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별도의 연무장으로, 강력한 보호막이 처져 있어 일반 학생들은 쉽게 들어갈 수도 없을뿐더러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유림과 은하, 디하르, 하민, 그리고 어쩌다 보니 함께 오게 된 아슈팔은 그곳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 푸른빛의 잔상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나타나더니,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얼음 바위가 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의 공기를 얼게 할 만큼 시린 얼음 운석이 나무 위에 서 있던 하진의 손짓에 따라 엄청난 속도로 떨어졌다.
우우우우우웅-!
콰앙-!
쾅-!!
소름 끼치는 굉음이 땅을 울렸다. 그 위력을 자랑하듯 크게 뻗은 나무를 꺾고, 땅을 패며 깊숙이 처박힌 운석에 유림 일행은 딱딱한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콰왕- 쾅- 계속되는 굉음 속에서 리리아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자세를 살짝 가다듬은 후 하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는 무려 7㎝나 되는 굽이 무색할 정도로 재빠르게 움직이며 운석들을 피하더니 이어 정면으로 떨어지는 운석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 버렸다.
카앙!
쇠가 부딪치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후우-”
리리아가 흘러내린 머리칼을 여유롭게 쓸어 넘겼다. 마치 이 정도는 준비운동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에 기분이 나빠진 하진은 좀 더 큰 잔상을 그리며 그 개체의 수를 늘렸다.
아까의 배는 될 법한 거대한 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헐, 저게 뭐야.
이번엔 리리아도 난감했는지 미간을 팍 구겼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브로치를 꺼내 들었다.
지잉 소리와 함께 브로치가 거대한 대검으로 변했다. 리리아는 그 검을 방패 삼아 하진의 공격을 막았다. 그때였다.
쿠아아아아!!
하늘을 울리는 괴성. 공격하던 하진도, 또 방어하던 리리아도 하늘을 올려다봤다. 순간 그들의 얼굴 위로 큰 그늘이 그려졌다.
구름 고래에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몸집이 하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심각할 정도로 날카로운 눈매와 길고도 두터운 깃털, 그리고 육중한 날개. 새와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붉은 몸통 아래에 자리한 네 개의 다리는 단순한 새가 아니란 것을 증명하고 있었으며, 매서운 부리 안에 드러난 날카로운 이빨은 흡사 맹수의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투명해지는 몸체는 그가 누구의 손에 의해 이곳에 온 것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이중인격자가 미쳤군.”
“미친…… 테브람을 소환하다니…….”
테브람. 9년 전에 있었던 ‘4일의 밤’ 혁명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고대의 성물로 용에 맞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녀석이었다. 덧붙여 흉포하고도 사람을 돌보다 하찮게 여기는 위험한 녀석이라 계약하기가 힘들 뿐 아니라, 설령 한다 해도 어지간해선 소환하지 않는 성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녀석을 다른 곳도 아닌 학교에서 소환하다니.
하진과 리리아는 그 사실에 혀를 내둘렀다.
개자식. 여태 단 한 번밖에 소환한 적 없는 테브람을 여기서 불러내?
두 사람의 표정에서 낭패감과 경악을 읽은 해우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미안. 길어지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불렀어.”
“고작 재미에…….”
“……이건 좀 심하지 않아? 이걸 어떻게 잡으라고.”
리리아와 하진이 이를 갈며 해우를 노려봤다. 테브람을 불러낸 이상 1:1은 무리였다.
제길, 이렇게 되면 연합해야 하나?
두 사람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결국 연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뒤 고개를 틀어 해우와 테브람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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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