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70
제 70 화
륜과 테오, 그리고 데몽의 모친들은 ‘랑’의 도시에서 함께 자란 친한 친구 사이였다. 그러다 각각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을 맺게 되었고, 둘이 루만과 펠리탄으로 가면서 흩어져 살게 되었다.
이에 세 사람은 한 달에 한 번은 꼭 만나기로 약속했고, 그 덕에 데몽과 테오, 그리고 륜은 갓난아이 때부터 함께할 수 있었다.
세 아이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도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륜은 몸이 가볍고 날렵했으며, 테오는 강인한 힘과 추진력을. 그리고 데몽은 판단력과 뛰어난 분석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세 사람 다 방대한 늄을 타고났고 마법을 사용하는 게 능숙했다.
이들의 재능을 빨리 알아본 그들의 모친들은 당시 랑에 거주하던 유능한 마법사에게 아이들을 부탁했고, 이 덕에 그들은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훌륭한 스승을 모시게 되었다.
그들의 스승은 세 아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늄의 사용법, 무기의 이용법, 세계 각국의 문화, 전략 전술까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교육은 그들의 생각과 실력을 바꿔놓았고, 그들에게 있어 스승은 유일한 하늘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의 열 살이 되던 해, 스승이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종적을 감춰 버렸다.
어떠한 것도 알지 못했다. 어디로 갔는지, 언제 오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어떤 것도. 다만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갔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계속 스승을 기다렸다, 언젠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며.
하지만 그들은 두 번 다시 스승을 만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만날 수 있었다. 다만,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 기괴한 모습의 시체로.
모든 피가 단숨에 빠져나간 것만 같은 몸뚱이. 얼굴은 그들이 알고 있는 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흉포했으며 앙상하게 드러난 뼈대와 온몸에 자리한 시퍼런 멍들은 보는 이의 심장을 후벼 팠다.
그 이후 그들은 스승님이 어떠한 단체와 연관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연구를 위해 억지로 끌려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스승이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였고, 당시의 그들에겐 범인을 잡거나, 그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은 뇌에 문신을 새기듯 두 가지 사실을 크게 각인시켰다.
자신들의 하늘이 살해당했다는 것과 꼭 복수해야 한다는 것.
이에 세 사람은 힘을 기르기로 마음먹었다.
하나는 힘과 배경을 만들었고, 또 하나는 기술과 정보력을 높였으며 또 하나는 남들보
다 배는 뛰어난 지식과 지략을 가지려고 힘썼다.
그 결과 그들은 그만큼의 실력과 지위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4년간의 피나는 노력으로 작은 단서를 하나 찾을 수 있었다.
클레이즈.
자신의 스승을 살해한 이. 혹은 이들이 클레이즈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부터 그들의 목적은 클레이즈의 입학으로 바뀌었다.
적게는 2년, 많게는 수년을 버리게 되겠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의 목적은 복수였고, 그것을 위해선 꼭 클레이즈에 입학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이후 그들은 클레이즈에 당당히 입학했고, 스승의 죽음을 차근차근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에 가짜 초대장을 받은 이들이 나타났다.
“우선 정리를 좀 하자. 유림은 작년과 올해 가짜 초대장을 받았고 그 샨이란 선배도 작년에 가짜 초대장을 받았어.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란 거지?”
륜의 질문에 데몽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답할 순 없어. 하지만 레이먼과의 대화를 들어보면 서로 아는 사이 같아. 요한인지 뭔지 하는 사람도.”
데몽은 안경을 고쳐 쓴 후 말을 이었다.
“너희도 알다시피 클레이즈의 가짜 초대장은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만든다 해도 들키지 않긴 힘들어. 근데 한유림은 물론 그 샨이라는 사람도 입학했어. 가짜 초대장을 보낸 인물이 만만한 인물은 아니란 소리겠지.”
“……‘녀석’들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륜의 질문에 데몽은 아주 잠깐 대답을 망설였다. 추측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불확실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 애당초 한유림도 누가 가짜 초대장을 보낸 건지 모르는 것 같았거든.”
데몽은 륜에게 입학시험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제야 흐름을 알게 된 륜이 조금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림이 모르는 척할 경우는? 그러니까 누가 보냈는지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 연극할 가능성도 있잖아.”
“그럼 샨이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올해가 아니라 작년에 들어왔겠지. 굳이 1년을 버릴 이유가 뭐 있어. 거기다 한유림이 입학하기로 마음먹은 건 은하가 연금 이야기를 해서 아니야?”
“만약 은하가 녀석들과 관련이 있어서 유림을 일부러 부추겼다면?”
테오의 의견에 데몽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도 아닐 거야. 그럴 거면 작년에 부추겼겠지. 거기다 그게 사실이라면 쓸데없이 눈치 빠른 한유림이 모르진 않겠지.”
“아씨…… 결국, 한유림도 큰 도움은 안 된다는 거잖아.”
테오가 짧게 쳐진 머리를 박박 헤집자 데몽이 그건 아니라며 정정해주었다.
“멍청아,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지. 생각해 보라고. 가짜 초대장이란 걸 무려 2년간 보냈어. 설마 그냥 학교 구경시켜 주려고 불렀겠냐? 분명 어떤 식으로든 접촉할 거라고. 초대장을 보낸 이유도 드러날 수밖에 없고. 한유림은 좋은 미끼야. 리스크가 있긴 하지만.”
미끼. 사람을 상대로 쓰기엔 참으로 적절하지 않은 말이었지만, 적어도 지금 그들에게 유림이 좋은 미끼임은 틀림없었다.
테오는 긴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머리를 박박 헤집었다.
“결국, 그 초대장을 보낸 인물이 움직일 때까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는 거네.”
“그렇지.”
“초대장을 보낸 인물이 녀석들과 관련이 있을까?”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말에 데몽이 안경을 고쳤고, 륜이 쓰게 웃었다.
사실 그들에게 유림이 가짜 초대장을 받았다는 것도, 또 그걸 보낸 인물이 누구냐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 초대장을 보낸 인물이 그들과 연관이 있는지가 중요했다.
“글쎄. 하지만 이왕이면 녀석들과 관련이 있었으면 좋겠어.”
“어째서?”
“그래야 꼬리를 잡을 수 있잖아. 관련이 없는 거면 그건 그거대로 골치 아파져. 그땐 정말 맨땅을 들이박는 거니까.”
“젠장, 더럽게 복잡하네.”
사실이었다. 의심 가는 상황이 나타났으나 그것을 분석할 만한 여건과 자료가 충분치 않았다.
테오는 코끝을 가볍게 긁적였다.
“그럼 일단 ‘녀석들이다’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해 보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사람을 좀 추려보자. 가짜 초대장을 보낼 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지?”
데몽의 질문에 테오가 그걸 질문이라고 하냔 얼굴로 바라봤다.
“이 학교에 능력자가 몇인데.”
“그니까 그 능력자들한테도 들키지 않을 능력자를 생각해 보라고.”
“전임 교수들은 다 해당되겠지. 근데 솔직히 의심 가는 사람은 없다. 아니, 그냥 모두가 다 이상해. 워낙 괴짜가 많다 보니까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데몽의 말에 동의하듯 테오와 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클레이즈의 교수들은 너무나 특이했고 개성이 넘쳐 뭐라고 추측하기가 어려웠다. 오죽하면 멀쩡한 교수들이 더 의심이 갈 정도니 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유림이한테 물어보는 건데, 의심 가는 사람 없냐고.”
푸념에 가까운 테오의 말에 데몽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걸 누가 몰라서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림에게 대놓고 묻는 게 가장 편한 일이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초대장을 보낸 이가 누구인지 알기 전에 말이다. 하지만 그건 위험성이 너무 컸다.
가짜 초대장을 보낸 이가 유림이 주변을 감시할 확률도 높았고, 애당초 그녀 자체가 백 퍼센트 안전한 인물이란 보장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데몽과 테오가 곰곰이 생각할 때, 가만있던 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왜일까?”
주어가 없는 말에 테오와 데몽이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뭐가?”
“아니, 왜 유림이를 클레이즈에 불렀나 해서. 솔직히 유림이 8형이라는 것 외에 특출난 게 있긴 하나?”
아주 근본적인 질문에 데몽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
“그 반대지. 8형이란 것만으로도 큰 이유가 된다고. 본질을 바꾼다는 건 가치를 바꾼다는 소리기도 해. 그것만큼 파격적인 힘이 어딨어.”
“그럼 더 이상하잖아. 네 말대로라면 8형이기 때문에 유림을 불렀다는 건데, 클레이즈에 8형이 유림이만 있는 건 아니잖아. 아슈팔 선배. 그분, 현 이사장님 다음으로 인정받는 천재라며. 차라리 유림을 부를 시간에 그분을 영입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입학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애한테 초대장을 보내는 것보단, 아예 학교에 있는 사람을 꼬시는 게 더 편하지.”
일리 있는 말이었다.
유림을 클레이즈로 불렀다는 건 적어도 2년 전부터 학교 안에 자리하고 있단 소리니, 아슈팔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유림을 불렀다. 어째서지?
데몽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낸 륜의 지적에 감탄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유림의 능력은 특이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능력자가 있는 상황에서 꼭 그녀를 부를 필요가 있었을까?
“만약 그 아슈팔 선배가 녀석들과 한패라면?”
“그럼 더더욱이지. 그런 능력자가 있는데 유림이를 뭐하러 불러.”
“어쩌면 그런 거 아닐까? 샨이란 사람이 유림이네를 알고 있다며. 그럼 8형이어서가 아니라 걔네들이어야만 했던 거 아닐까? 그니까 소꿉친구라는 애들 말이야.”
테오의 말에 데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또한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유림이 혼자만이라면 모를까, 샨까지 가짜 초대장을 받은 것을 보면 ‘그들’이어야만 하는 걸 수도 있었다.
“그럼 왜 유림이네 일행 중에서 샨이랑 유림이만 불렀는데?”
“엄청난 마법 구현 속도?”
“그건 루아가 더 빠르다고 생각하는데.”
“방대한 늄?”
“그건 레이먼이 더 뛰어나잖아.”
“현명한 대처 능력과 전투 센스?”
“그건 디하르가 더 좋지.”
“…….”
조금 다른 의미의 침묵이 세 사람 주변에 내려앉았다.
유림이에겐 미안한 소리지만 정말 뭐 하나 나은 게 없어 보였다.
“백번 양보해서 8형이라 불렀다 치자. 근데 그것도 조금 이상하지 않아? 형의 개념은 클레이즈에만 존재해. 솔직히 밖에선 늄을 구분 안 하잖아. 해도 헤르탄의 구분법으로 나누지. 거기다 유림이의 능력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자는 이 밖에도 어마어마해. 근데 왜 하필 유림이를 클레이즈로 부른 거지?”
“……생각해 보니 그러네.”
테오가 동의하자 륜이 그것 보라며 말을 이었다.
“그치? 멀리 말고 우리가 아는 넷만 두고 비교해도 능력으로나 성격으로나 유림이가 가장 성가셔. 그런데 대체 왜 유림이를 부른 걸까.”
세 사람은 서로를 빤히 바라봤다.
생각해 보지 않은 가장 본질적인 문제. 그리고 거기에 의문 하나를 더 얹는 륜이었다.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무언가가 유림이한테 있는 걸까? 그럼 그게 뭐지?”
“…….”
누군가가 한유림을 클레이즈로 초대했다, 그것도 샨이란 사람과 함께. 그렇다는 것은 클레이즈에 그들이 왔으면 한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나이가 되지도 않은 아이를 성급하게 부른 것이겠지.
그렇다면 왜일까? 꼭 그들이, 그것도 그렇게 빨리 클레이즈에 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걸까?
한유림과 샨. 그 두 사람의 공통점이 뭐지?
데몽은 안경을 닦으며 고민했다. 그때 건너편에 앉아 있던 테오가 입을 열었다.
“전에 들은 이야긴데 한유림 고아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다 열한 살인가? 그쯤에 사혈로 건너갔다고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렇다면 걔네들 다 유림이 사혈에 가기 전에 알던 사이란 거네. 혹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유림이 그 먼 사혈로 가게 된 거고.”
가장 앞뒤가 맞는 추측에 데몽이 턱을 짚었다.
“음…… 레이먼을 슬쩍 떠볼까?”
“글쎄,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게 아닐까? 차라리 유림이를 미행하는 게 더 빠르겠다.”
륜의 말에 데몽이 그를 빤히 바라봤다. 확실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레이먼을 자극하는 것보단 유림이를 미행하는 쪽이 더 안전할지 모른다. 거기다 운이 좋으면 그녈 미끼 삼아 가짜 초대장을 보낸 이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한유림 어디 있냐? 밥 먹을 때도 안 보이던데.”
“나도 못 봤어.”
“아, 그러고 보니 나 좀 전에 루아 씨랑 연락했는데.”
륜의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해졌다. 데몽은 ‘대체 어느 틈에?’라는 의미였고 테오는 ‘왜 너만?’이란 뜻이었다.
“유림이 어딨는지 아냐고 묻더라.”
“어?”
데몽이 미간을 팍 구겼다. 그러자 그 표정에서 의문을 파악한 륜이 말을 이었다.
“어젯밤부터 갑자기 사라져서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던데?”
그리고 그 말에 미묘한 의심이 그들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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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