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71
제 71 화
“으갸갸갸갹!”
자신이 내뱉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괴기스러운 비명이 입을 뚫고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작살이 바람을 가르는 살벌한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날카롭고도 뾰족한 끝이 조명에 반짝였다.
유림은 잽싸게 몸을 틀어 벽의 작살을 피한 뒤, 앞의 작살을 잡고 가볍게 뛰어올랐다.
“으히이익?!”
몸이 붕 하고 떠오르기 무섭게 또 하나가 튀어나왔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그대로 꼬치가 됐을지도 모를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늄을 부여한 신발을 신고 움직이는 유림의 움직임은 유연하고도 매끄러웠다. 다만 그에 따라 뼈가 비명을 지른다는 단점만 빼면 말이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작살이 나오는 함정을 빠져나왔다.
정말이지 힘들어 죽을 것만 같았다.
유림은 반쯤 풀린 다리를 두드리며 뒤를 돌아봤다. 벽과 바닥에 뻥뻥 뚫려 있는 구멍과 그 틈에서 튀어나와 있는 날카로운 작살들.
“…….”
내가 저런 곳에서 나왔다고? 아나, 나 능력 쩌네.
유림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그런 그녀의 두 눈에 아주 여유롭게 그 장소를 빠져나오는 아슈팔이 보였다.
개고생하며 도망쳐 나온 유림과 달리 너무나 자연스럽고도 여유롭게 걷는 아슈팔. 평평한 들판 위에 있는 것만 같은 평온함에 할 말이 없어졌다.
정말 존경스럽다니까.
유림은 허탈하게 웃으며 아슈팔을 바라봤다. 그때 갑자기 벽에서 거대한 목각 인형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아슈팔을 향해 그 묵직한 팔을 어마무시한 속도로 휘둘렀다.
“선배!”
휘익-
공기를 가르는 살벌한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엄청난 폭음이 귀를 때렸다.
“끄아아악?!”
유림은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거대한 폭발에 뿌연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다.
저 끔찍한 목각 인형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온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등장할 줄은 몰랐다. 거기다 저렇게 어마어마한 속도와 힘으로 공격하다니!
“선배!!”
아무리 아슈팔이라 해도 저런 공격은 위험했다.
긴장감과 걱정스러운 마음에 마른침이 계속 목을 타고 넘어갔다.
괜찮을까? 만일 선배가 크게 다쳤다면 어떻게 하지?
“…….”
유림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꽉 쥐었다.
모래 연기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유림은 쿵쿵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앞을 바라봤다. 그러자 거대한 방패를 든 채,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아슈팔이 보였다.
“…….”
“아, 이런 부서트렸군.”
유림의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평온했다.
그녀는 두 눈을 깜빡이며 앞을 바라봤다. 산산조각 난 목각 인형과 그 앞에 있는 견고한 방패. 작살 한 개가 부러져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 짧은 순간에 작살을 부러트려 방패로 변형시킨 거 같았다.
아슈팔은 옷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었다. 그리고 평화주의를 외치는 그의 신념을 지키듯 너무나도 평온한 표정으로 유림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아, 난 비폭력 주의자니까.”
어디가?
자신을 공격한 나무를 처참하게 부숴놓은 사람이라 치기엔 지나치게도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었지만, 그 표정만큼은 정말 ‘비폭력’과 ‘평화’를 주장하는 것만 같아 더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유림은 떨떠름함에 뒷머리를 긁적이다 아슈팔의 손에 있는 팔찌를 바라봤다.
늄을 몇 번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벌써 주황색에 가까워지고 있는 유림과 달리 아슈팔의 팔찌는 아직도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그녀보다 배는 되는 늄을 사용했음에도 말이다.
함정이 넘쳐나는 미로 안에서 늄을 사용하지 않고 탈출하라는 것은 차라리 죽으란 말에 가까웠다. 유림 또한 딱 한 번밖에 통과 못 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굉장히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아슈팔은 아니었다.
자신과 같은 팔찌를 차고 초반부터 늄을 펑펑 사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무런 계획 없이 말이다. 그럼에도 아슈팔의 팔찌는 늘 붉은색이었다. 처음에야 늄의 양에 비례해서 색이 변하는 건가 싶었지만 이쯤 되니 다른 게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들었다.
“선배, 혹시 제 거랑 선배 거랑 다른 거예요?”
“뭐가?”
“팔찌요. 늘 붉은색이잖아요.”
그 말에 아슈팔이 제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만지작거리더니 아니란 의미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같은 거야. 히야스 교수님은 이런 걸 다양하게 만들 만큼 성실하지 않거든.”
“그럼 어떻게 해야 그렇게 유지할 수 있어요?”
“음…….”
그는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유림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더니 움직임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약간의 힌트 정도는 괜찮겠지.”
“네?”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유림이 두 눈을 깜빡이며 아슈팔을 바라봤다. 그런 그녀의 눈짓에 반응하듯 그가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의 손끝에 닿은 것은 다름 아닌 머리를 고정하고 있는 비녀였다.
“에?”
유림은 저도 모르게 비녀를 만지작거렸다.
비녀가 왜?
“잘 만들었군.”
“그거야 엄청 신경 써서 깎은 거니까요.”
아슈팔의 말에 유림은 머리에 꽂아놓았던 비녀를 잡아 뺐다. 자줏빛의 긴 머리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비녀의 고정으로 인해 구불구불해진 긴 머릿결이 뒷목과 등을 덮었다.
유림은 답답함과 어색함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아슈팔과 비녀를 번갈아 봤다.
“직접 깎은 건가?”
“네? 네.”
“비상용으로 만든 거겠지.”
유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뭐. 그보다 힌트는요?”
“그게 힌트야.”
“네?”
뭐지? 이 돼지 똥 싸는 소리는? 내 비녀가 힌트라니?
유림은 비녀를 만지작거렸다. 딱딱하고도 매끄러운 감촉이 손에 감겼다.
아무리 해도 아슈팔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것과 팔찌의 색이 변하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러는 것일까.
“한유림.”
“네?”
“넌 이미 방법을 알고 있어.”
“…….”
“실로 사용하기도 했고.”
유림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뭐지? 새로운 방식의 수수께끼인가?
“제가요?”
“그래.”
아슈팔이 단호하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림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더니 고개를 돌려 앞으로 걸어나갔다.
유림은 아슈팔의 정갈한 소리를 들으며 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비녀를 연신 만지작거리며 말이다.
8형의 수업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어려웠고, 극도의 피곤함을 정신력으로 버텨야만 했다.
“후…….”
깊은 한숨이 밑바닥에서부터 타고 올라왔다.
유림과 아슈팔의 수업이 진행되는 미로는 꽤 넓었다. 그리고 그만큼 깔린 함정 또한 많았다. 앞서 겪었던 무수히 많은 작살과 나무 인형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보다 유림을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은 바로,
쿠루루루루룽!!
“니미랄! 으이익!!”
등 뒤에서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며 쫓아오는 쇠구슬. 바로 이거였다.
까딱하다간 그대로 깔아뭉개질 것만 같은 육중한 구슬이 엄청난 속도와 위력으로 유림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아니, 보통 저런 건 고대 유물이나 유적에나 있는 함정 아니야?! 그걸 떠나서 여기 평
지잖아! 어떻게 저런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거지? 중력도 무시하는 거냐?!
유림은 이를 악물며 달렸다. 아슈팔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젠장! 이 인간은 어딜 가서 날 이렇게 슬프게 하는 거냐고!!
그녀는 눈앞에 등장한 갈림길에서 온 힘을 다해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미 방향감을 잃은 지 오래였다.
유림의 움직임에 쇠구슬 또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역시 늄이 부여된 구슬답게 자신을 겁나 잘 따라왔다.
이 무슨 돼지 똥 싸는 상황이란 말인가.
미로도 늄, 구슬도 늄, 작살도 늄, 늪도 늄, 목각 인형도 늄이냐?! 히야스란 교수 대체 늄이 얼마나 넘쳐 나기에 이런 걸 팡팡 쓰는 거야?!
유림은 입술을 짓씹었다. 아슈팔도 그렇고 히야스도 그렇고 늄을 구연하는 범위와 양이 장난 아니게 많았다. 그들의 늄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리 많은 것 같진 않았는데도 말이다.
8형은 대상의 본질을 바꾸는 형이었다. 그리고 잘 못 사용할 경우 그릇과 마나의 본질을 흩뜨려 제 생명을 깎아 먹을 수 있기에 조심하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왜 이렇게 팡팡 쓰는 거지? 말과 행동이 너무 모순되잖아!
바쁜 몸을 따라가듯 머릿속도 복잡해지고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순적인 행동에 의문이 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슈팔의 팔찌는 멀쩡해서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유림도 그렇게 늄을 팡팡 쓰고 싶었다. 그러나 아슈팔처럼 팔찌의 색이 멀쩡하지가 않기에 쉽게 할 수가 없었다.
구구구구구.
땅을 울리는 쇠구슬. 구슬은 유림을 꼭 깔아뭉개겠다는 의지라도 가진 것처럼 끊임없이 따라왔다. 결국, 참다못한 유림이 이를 갈았다.
아 몰라. 이렇게 했다간 내가 죽겠는데 뭘 따져!!
“으잇!”
유림은 신발에 늄을 부여한 후 그대로 도약해 벽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비녀를 잡아 뽑아 주걱 모양의 거대한 채로 변형시켰다.
가볍게 흩날리는 긴 머릿결과 눈앞에 놓인 거대한 채.
그녀는 벽에 붙어 자신의 눈앞에 드러난 거대한 쇠구슬을 바라왔다. 그리고 그게 시야의 중앙에 들어왔을 때, 마치 공을 치듯 있는 힘껏 팔을 움직였다.
정확히 쇠구슬의 정중앙을 친 유림. 이를 증명하듯 경쾌한 소리가 귀를 울렸다.
카앙!
손가락 끝부터 어깨까지 찌르르하고 전기가 올랐다.
유림의 공격에 포물선을 그리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간 구슬은 앞에 있는 벽을 겹겹이 허물며 굴러갔다.
콰아아아앙!!
미로의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쇠구슬이 움직임을 멈췄는지 그 소리가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하아…….”
흩날리는 흙먼지와 감각이 무뎌진 두 팔. 유림은 어깨를 주무르며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바라봤다.
“대박…….”
쇠구슬이 지나간 자리가 마치 길을 튼 것처럼 뻥 뚫렸고, 갑갑했던 시야가 확 트였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깃발의 머리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오오! 깃발이다!!
두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그뿐만 아니라 이 지독한 수업을 끝낼 수 있단 생각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유림은 허리를 짚으며 자신이 펼쳐 놓은 장관을 바라봤다. 좋아 좋아. 앞으로도 이렇게 벽을 뚫어버리자고. 그럼 이 지겨운 미로를 직접 안 뛰어다녀도 되겠지.
음흉한 미소를 입에 건 채, 유림이 벽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가볍게 키득거리며 자신이 뚫어놓은 길을 향해 걸었다.
그때 묵직한 무언가가 그녀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왔다.
===============
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