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81
제 81 화
“으아아악!!”
“제기랄!!”
욕설과 비명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유림과 데몽은 꽁꽁 언 땅을 박차며 죽을힘을 다해 뛰어갔다. 어찌나 빨리, 또 열심히 움직이는지 두꺼운 망토가 파도처럼 펄럭였다.
서슬 퍼런 검을 들며 쫓아오는 사내. 그 살벌함에 온몸이 후들거릴 정도였다.
자신들을 고서 도둑으로 오해한 사내는 뭐라 해명하기도 전에 검을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공격은 그의 인상만큼이나 날카로웠다. 그리고 가차 없었다.
“으아~ 죽을 거 같아.”
계속된 뜀박질에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유림은 뼈마디가 도드라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쥐며 젖 먹던 힘을 짜냈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더는 못 뛰겠어!”
“닥치고 뛰어!”
“숨 막힌다고!”
“말할 힘으로 뛰어!!”
진짜 죽을 거 같다니까!
결국, 유림이 뜀박질을 멈추고, 머리에 꽂고 있던 비녀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늄을 부여해 강력하고도 단단한 검으로 변형시켰다.
채앵!
금속이 마주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울렸다.
아슬아슬하게 사내의 공격을 막은 유림이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이라도 변형이 늦었다면 그대로 베였을 것이다.
그 살 떨리는 상황에 헛웃음이 지어졌다.
유림은 상체에 힘을 실어 사내의 검을 밀어낸 후, 몸을 낮춰 틈을 파고들었다. 날카로운 검날이 사내의 턱을 노렸다.
“……!”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공격. 그러나 사내는 매끄럽게 몸을 뒤로 물려 유림의 공격을 피했다.
스윽.
안전거리를 확보한 그가 의외라는 눈으로 유림을 바라봤다. 어설프긴 하나 한때 검을 배운 자세였다.
가볍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꼴을 보니 아무래도 쉽게 끝나지는 않을 듯싶었다. 특히 비녀를 검으로 바꾼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들은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기라도 하듯 아무런 미동 없이 서로만 살피고 있었다.
한편, 유림의 뒤에 있던 데몽은 또 다른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1클래스의 체력 수업은 공통 수업이었다. 때문에 데몽은 그 누구보다 유림의 체력과 기술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체력이 좋지 않아 활처럼 원거리에서 다룰 수 있는 무기를 선호했다. 때문에 검을 익혔을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검술을 할 줄이야…….”
데몽의 감탄 섞인 목소리에 유림이 쓰게 웃었다.
“이런 걸로 일일이 놀라지 말아줘.”
“설마 뭐가 또 있는 건 아니겠지?”
“하하하, 글쎄다…….”
유림은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몸을 낮춘 후, 바닥에 손을 짚었다. 손끝에서 차가운 늄의 기운이 느껴졌다.
히야스와의 수업 이후로 가능한 늄을 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타 물질의 늄을 끌어다 쓰는 것이 아직 익숙지 않았기에, 혹여 실수로 제 수명을 쓸까 싶어 그런 거였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괜한 고집을 부리다 이대로 명을 다하게 생겼는데 조금 갉아먹는 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젠장, 이렇게 죽을 순 없다고.’
그녀는 바닥에 늄을 부여했다. 그리고 마치 얼음을 잡아 들 듯 손을 움직였다.
쿠아앙!!
순간 거대한 울림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얼음 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쾅! 콰과과광! 콰앙!
연신 솟구치는 네 개의 얼음 기둥. 거대한 얼음 기둥은 마치 그물처럼 엇갈려 눈앞에 거대한 벽을 이루었다.
뭐, 급하게 만든 거라 많이 튼튼하진 않지만, 그래도 도망칠 시간은 벌어줄 것이다.
유림은 검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재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데몽, 뛰어!”
“……젠장, 정말 할 말이 없군.”
“닥치고 뛰어.”
데몽은 짜증 난다는 듯 인상을 팍 쓰며 유림을 따라 달렸다.
정말이지 놀랄 실력이다. 솔직히 말해 여태 이 실력을 왜 몰랐나 싶을 정도였다.
“너 진짜 정체가 뭐냐?”
“음……. 정의의 사도? 혹은 비밀 결사단?”
“……패서 얻는 게 더 빠르겠군.”
“으아아,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고. 하여튼 정체고 뭐고 없어. 난 그냥 나고, 평범한 학생일 뿐이야.”
“평범한 학생이 고어를 읽고, 가짜 초대장을 받진 않지.”
“어…… 그럼 조금 특이한 학생이라 치자.”
유림의 말에 데몽이 허탈하게 웃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봤는데, 지금은 저 정체불명의 사내 때문에 그 분위기가 다 깨져 버렸다. 아니, 깨지다 못해 너무나 가벼워져 허무할 정도였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결론이 무엇이든 도망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재빨리.
“으아, 나 진짜 뜀박질이 제일 싫은데~”
“죽어라 뛰어. 아니면 뭐 없냐? 단박에 이길 수 있는 비장의 무기 같은 거. 공개한 김에 그냥 다 공개해. 특별히 모른 척해줄게.”
“헐.”
유림이 어이없단 얼굴로 데몽을 바라봤다. 하다 하다 별 돼지 똥 싸는 소릴 다 듣고 있
었다.
“어이, 내가 무슨 마술 주머니냐. 꺼내는 족족 다 나오게. 그런 거 여기 있지도 않았어.”
“진짜 없어?”
“진짜 없어.”
“쳇, 쓸모없군.”
데몽이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유림은 정말 기가 막혔다.
“뭐야, 그 태도! 시비 거냐?!”
유림이 그리 말하며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럼 너나 해보든지.”
갈림길을 돌자마자 튀어나온 유림의 도발적인 말에 데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너도 숨기지 말고 다 까라 이거야. 륜 실력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 설마 륜만 월등한 건 아니겠지?”
“진짜 해보자 이거냐?”
“뭐 어때. 이렇게 된 거 다 까보자고. 안 그래? 히넨 휴?”
“……큭큭큭. 좋아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
데몽은 뜀박질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그리고 손끝을 가볍게 튕겼다.
쿠우우웅.
사방에서 얼음 송곳들이 튀어나왔다. 마치 유림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드는 것처럼 좀 전의 그녀가 했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크기가 더 다양했고 견고했으며 그 수가 비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작게는 1m에서 크게는 3m나 되는 거대한 송곳이 땅을 울리며 솟아나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콰아앙!!
사방에서 솟아나는 얼음 송곳들은 마치 가시나무 숲처럼 모든 길을 막아버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요란한 소리, 그리고 점점 늘어나는 거대한 얼음 송곳. 우스운 점은 그 무지막지한 공격 속에서도 책장과 책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로 엇갈려 거대한 숲을 만든 얼음 송곳의 웅장한 모습에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콰앙!
데몽은 마지막으로 손끝을 가볍게 털었다.
슈우우우.
공기가 일렁이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고, 마치 폭풍 뒤에 찾아온 침묵마냥 진한 고요함이 그들 주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위로 유림의 허무한 웃음소리가 번졌다.
아마 저 정도 양과 공격이라면 사내도 쉽게 쫓아오지 못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 안에 갇혀 버렸을지도 모른다.
“허허허.”
아무리 빙계 속성이라지만 이건 너무했다. 대체 늄이 얼마나 많아야 이런 기술을 보일 수 있는지……. 가장 짜증 나는 건,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안경을 고쳐 쓰는 그의 모습이었다.
‘아 젠장……. 나중에 귀찮아지면 눈치 봐서 때려눕히려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밀릴 거 같아.’
유림이 끄응 하고 작게 앓았다.
데몽은 제 결과물이 마음에 드는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편으론 참으로 개운해 보였다.
“뭐, 가볍게 이 정도?”
“하. 이게 가볍게야? 진짜 웃음밖에 안 나오네…….”
정말이지 짜증이 날 정도로 유능한 녀석이었다.
솔직히 이 정도면 정체는 내가 아니라 네가 까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그래. 너 짱 먹어라.”
“그건 당연한 거고.”
“……아, 진짜 이거 잘난 놈이라 뭐라 할 수도 없고. 하여간 잘났다니까.”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정말로 당연하다는 듯한 그 표정에 유림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피식거리며 웃었다. 데몽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랬다는 사실이 우스울 정도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큭큭큭.”
“푸후흡.”
“아 진짜. 큭큭, 내가 미쳐.”
“야, 웃지 마. 풉- 나도 자꾸 웃음이…… 큭큭 나오려 하잖아.”
뭐가 그리 웃긴 건진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이 상황이 꽤나 즐겁고 유쾌해 자꾸 웃음이 나왔다.
“하아-”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유림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앞을 바라봤다. 눈앞에 자리한 얼음 송곳 숲. 어찌나 견고한지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은 느긋하게 도망칠 수 있겠네.’
유림이 이제 가보잔 의미로 턱짓한 뒤,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파직.
날카로운 균열음이 두 사람의 귀를 두드렸다.
“……어?”
“……응?”
파지직.
“…….”
“…….”
파직.
두 사람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견고했던 얼음 위로 그려진 가는 선. 그 균열은 마치 나무가 가지를 뻗듯 서서히 뻗어 나갔다. 그리고 그에 따라 얼음이 점점 희뿌옇게 변했다.
데몽과 유림이 눈을 홉뜨며 숨을 삼켰다.
파직, 파지직, 챙.
얼음이 갈라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온몸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어마어마한 소리와 함께 얼음 송곳이 산산조각 나 버렸다.
콰아아아아앙!
파편이 바람과 함께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희뿌연 연기와 짙은 한기가 피부를 에워쌌다.
마른침이 넘어갔다. 다리는 못이라도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고, 사고가 얼어버린 것처럼 서서히 굳어갔다. 그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단 한곳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슈우우우…….
서서히 흩어지는 얼음안개. 그 사이로 흐릿한 인영이 비쳤다.
유림이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 지금 꿈꾸는 거 아니지?”
그리고 그 말에 데몽이 숨을 토해내듯 답했다.
“어…… 같은 꿈을 꾸는 게 아니라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이한 모습으로 나타난 사내. 그는 한 손에 검을 든 채 유림과 데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낮은 목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그렇군. 확실히 귀찮은 상대긴 해.”
“…….”
“…….”
사내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차분하게 쓸어 넘기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지독한 무표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건 절체절명의 순간을 알리는 표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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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