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96
제 96 화
클레이즈의 축제는 11월 중순에 있었다.
기간은 일주일. 마지막 날에 열리는 댄스파티와 화려한 폭죽 축제로 막을 내린다.
클레이즈는 축제 기간이 되면 모든 수업을 휴강하고 학생들이 오직 축제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학생들이 구성한 행사도 많고 참여할 수 있는 것도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전교생이 거의 다 참여하는 거대한 행사 ‘동아리제’, ‘형별 토너먼트’, ‘클레이즈 최강자전’이 있어, 각기 1등을 한 사람에겐 특별히 이사장이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었다.
이 때문에 파산하거나, 외출을 노리거나, 혹은 낙제한 학생들은 이 행사를 목숨을 걸고 준비했다. 아니, 그들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클레이즈의 축제는 1년에 단 한 번만 즐길 수 있는, 거대한 행사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한유림 또한 이 축제에 몸과 마음을 바쳐 열정을 불사르는 중이었다.
“좋아. 우선 뭘 할지부터 정하자고~”
유림이 손을 비비며 입맛을 다셨다.
유난히도 들뜬 그녀의 모습에 조금 당황한 하민과 디하르가 서로를 바라봤다.
분명 ‘안 해’, ‘귀찮아’ ‘축제는 무슨, 그거 다 돼지 똥 싸는 소리다-’라는 등의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그 누구보다 생기 넘치는 얼굴로 계획을 짜고 있었다.
“림, 괜찮아?”
“응? 뭐가?”
“아니, 너 사람 많고 복잡한 거 싫어하잖아. 축제는 괜찮나 해서.”
“물론 내가 그런 걸 싫어하긴 한데, 축제 같은 건 좋아.”
“왜?”
왜냐니?
유림이 그걸 질문이라고 하냔 얼굴로 하민을 바라봤다.
“대목이잖아.”
그리고 힘을 줘 말했다.
“잘 들어봐. 축제는 사람들의 마음을 붕붕 뜨게 만들지? 붕붕 뜨면 어떻게 돼?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이것저것 막 사게 된다고. 즉, 쓸모없는 물건과 안 먹어도 될 음식이 대량으로 팔리게 되는 거지! 그런데 내가, 설마 장사꾼들의 낭만이라 불리는 대목을 놓칠 리 없잖아.”
그 말에 하민과 디하르가 깔끔하게 납득했다. 역시 유림은 유림이었다. 한편으론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먹는 게 제일 좋겠지?”
“힘든 게 흠이지만 그게 제일 좋지.”
“근데 그럼 뭘 팔아?”
하민의 질문에 은하와 유림이 시선을 교환하며 음흉하게 웃었다.
“축제의 꽃이라 하면, 역시 주점 아니겠어~?”
“그럼 그럼! 술이 짱이지!”
이미 거하게 한잔 걸친 사람처럼 키득거리는 둘의 모습에 하민이 동그란 눈을 깜빡였다.
설마, 얘네가 술까지 좋아할 줄이야.
실로 유림과 은하는 꽤 술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술자리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했다.
보통 대부분의 국가들은 열아홉 살을 기점으로 성인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사혈의 경우는 성년을 열여덟 살부터 쳤고, 그게 아니더라도 유독 자체적인 풍류와 약주의 개념이 많아 열여섯 살만 넘어도 입에 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유림과 은하가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그들이 주점에 대한 꿈으로 부풀어 있을 때, 갑자기 진유가 쓰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유림 양, 은하 양. 아마 주점은 힘들 거예요.”
“네?!”
“주점 같은 사행성 행사의 경우 허용되는 개수가 한정되어 있거든요. 아마 이미 다 찼을 거예요.”
이런, 망할.
“아씨, 뭘 해야 하지…….”
삽시간에 시무룩해진 유림이 턱을 괴며 작게 중얼거렸다. 순간 은하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림림! 그럼 우리 그거 하자.”
“그거?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거’?”
“응응!”
유림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은하의 말대로 ‘그거’라면 주점보다 더 많이 벌 수 있었다.
“괜찮은데.”
디하르와 하민은 유림과 은하가 도통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거라니.
“그게 뭔데?”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한 하민이 물었다.
“우리가 달에서 하던 거야.”
“달?”
“우리 마을 옆에 있는 작은 도시 이름이야. 거기서 열흘에 한 번씩 큰 장이 열리는데, 종종 가서 장사했었어.”
소난은 인구도 적고 사람들의 유입률도 높지 않아 장사를 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유림과 은하는 늘 달에 가서 목공예품과 음식을 팔았다. 그러다 장이 익숙해지면서 하게 된 것이 바로 ‘그거’였다.
“‘30분 안에 다 먹으면 공짜~’랄까?”
“뭐?”
“그니까 1인분에 어마어마한 양을 주고 30분 안에 다 먹으면 공짜, 못 먹으면 돈 세 배- 이런 내기야.”
“응?”
“자주 한 건 아니었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행사처럼 했었지.”
“그, 그게 돈이 돼?”
“꽤 많이 벌었어. 오기로 덤비는 사람도 많거든. 근데 거의 다 못 먹어. 가끔 한 명 먹는데 벌어둔 게 있어서 별 손해도 없고. 근데 이거 좀 식상한데, 이미 하는 곳이 있지 않을까?”
그 말에 그들의 대화를 경청하던 진유가 말했다.
“아직 그런 행사를 하는 동아리는 보지 못했어요. 많이 먹기 대회나 오래 참기 대회 같은 건 있지만요.”
“오!”
“그럼 그냥 이걸로 할까?”
갑자기 네 사람의 표정이 확 펴졌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구체적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일단 평범한 식당을 기본에 두고. 요리는 누가 해?”
“내가 할게! 나 요리 잘해.”
“맞아. 은하 요리 잘해. 그럼 우리 중 한 명이 주방 보조로 돌아가고, 두 명은 밖에서 접객하자.”
“그럼 보조는 내가 할게. 아무래도 남자가 한 명은 주방에 있는 게 좋을 거 같으니까.”
“분위기는 어떤 식으로 할까? 가게 분위기도 꽤 중요할 텐데.”
“정확한 일정 같은 것을 알면 좋은데.”
“학생회에서 예산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아, 그럼 뭐 할지 신청부터 해야겠다.”
축제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유난히도 들뜬 네 사람.
진유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봤다. 뭉게구름이 푸른 하늘 위를 헤엄치고 있었다.
기분 좋은 날씨네-
저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그가 시선을 돌려 열심히 회의하고 있는 네 사람을 바라봤다. 의미심장한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과연 이 좋은 날씨가 계속될 수 있을까?
***
얼굴 위에 책을 덮은 데몽이 소파에 축 늘어져 있었다.
“데몽, 살아 있어?”
륜의 질문에 데몽이 손을 가볍게 휘적거렸다. 흡사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움직임이었다.
“아직까진…….”
그 말에 륜이 작게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일하러 나갔어.”
“학생회 바쁘네.”
“죽을 맛이다.”
데몽은 책을 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앓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학생회실까지 불러서 미안. 내 주변에 제일 잉여로운 사람들이 너희밖에 없어서 말이지.”
“잉여…….”
“난 나름 바쁜 몸인데…….”
두 사람이 쓰게 웃으며 그의 맞은편 소파에 앉자, 그게 마치 신호라도 되는 듯 데몽이 상자에서 서류 더미를 꺼내 두 사람에게 나눠줬다. 제법 많은 것이 적어도 1백 장은 되
어 보였다.
“이게 다 뭐야?”
“이것저것. 행사 관련 서류야.”
“어마어마하잖아.”
클레이즈의 축제에 지나칠 정도로 행사가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거 반도 안 돼.”
“정말?”
“아직 신청 안 한 동아리도 많으니까……. 거기다 동아리별로 이것저것 다 찔러 넣고 있어서 한 동아리당 서너 장씩은 들어온다고 봐야 해.”
그 말에 루아가 질린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우리가 뭘 도와주면 되는 데?”
“일단 예산 부분부터 잘라내면 돼.”
예산?
데몽이 그들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곳엔 동아리 등급과 인원수에 따른 적정 예산이 적혀 있었다.
“이게 이번에 정해진 동아리별 축제 예산안이야. 일단 신청 예산이 이 숫자보다 높은 건 다 찢어버려.”
“가차 없네.”
“내버려 뒀다가 섞이면 더 골치 아파. 그리고 그다음엔 같은 동아리에서 나온 신청서별로 묶는 거야.”
“그리고?”
“가장 참신하거나, 예산안이 적은 걸로 선택해서 뽑고 나머진 다 찢어.”
“……진짜 가차 없네.”
“이게 제일 빠르다니까.”
“알았어.”
루아와 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데몽의 말에 따라 동아리 예산안을 보며 서류를 분류해 내기 시작했다.
그때 데몽이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이걸 말 안 했네. 참고로 예산안과 상관없이 대표 동아리는 따로 빼놔. 걔들은 예산대로 안 해줘도 지들이 다 충당한대.”
“대표 동아리?”
루아의 질문에 데몽이 쓰게 웃었다. 얼굴에 피곤이 가득했다.
“왜, 클레이즈 대표 동아리 네 개 있잖아.”
“아~ 그거?”
클레이즈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네 개의 동아리. 저번에 유림이 겪었던 한유림 쟁탈전으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학생회, 봉사 동아리, 도박장…… 그리고 하나가 뭐였죠?”
루아가 저를 바라보며 묻자 륜이 머쓱하니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그러게요…… 저도 남은 하나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리고 데몽을 슬쩍 바라봤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 그가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어쩐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정보 동아리.”
“정보 동아리?”
루아는 저도 모르게 데몽의 말을 따라했다.
정보 동아리라고?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 게 있었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는 동아리야. 가끔 정보도 사고팔고, 이곳저곳에 도움을 주기도 해.”
“와……. 지금 처음 들어. 륜도 알고 있었어요?”
“아뇨, 저도 처음 들어요.”
두 사람이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별의별 동아리가 다 있다.
“놀랍냐?”
“놀랍지.”
“놀랄 것도 없어. 더 놀랄 테니까.”
더 놀랄 거라니? 루아는 데몽이 지금 뭘 말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보면 알아.”
의미심장한 말에 루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학생회실의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끼익.
나무의 마찰음과 함께 세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레 입구로 향했다.
루아와 륜의 눈이 호두알만큼 커졌다. 그곳엔 모두가 아는 두 사람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생회장님?”
클레이즈의 학생회장이자 3클래스인 미야와,
“……요한?”
루아의 소꿉친구 요한이.
루아는 두 눈을 깜빡이며 요한을 바라봤다. 그때 그녀의 귀로 데몽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이지 양반은 못 된다니까…….”
양반은 못 된다고? 잠깐.
“서, 설마…….”
루아가 경악에 질린 얼굴로 요한을 가리켰다.
데몽이 다시금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갤 돌렸다. 그리고 그건 루아의 설마가 단순한 설마가 아님을 증명해 주기에 충분했다.
“정보부 동아리장이라는 게…… 너였어?”
하하하하하하하…….
샨, 요한…… 대체 우리가 입학하기 전까지 무슨 짓을 한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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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