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02
제102화
전라교단과 경상교단이 가장 먼저 산장을 떠났고, 뒤이어 충청교단이 산장을 떠났다.
굳이 따로따로 출발을 한 것은, 이곳 태백산자락 일대에는 아버지의 주술이 깃들어 있어서 한 번에 여러 사람이 산행을 하면 길을 잃을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교주님, 잠시 드릴 말씀이…….”
마지막으로 서울교단, 즉 우리만 남았을 때 윤창수가 나를 불렀다.
그는 나를 예배당 구석에 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해 주고는, 차를 타서 내게 건네주었다. 향이 무척 좋은 차였으나, 무슨 차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차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윤창수는 느릿한 몸짓으로 내 맞은편에 앉으며, 길게 난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이거 참, 말씀드리기 어려운 이야기인데…….”
“아닙니다, 편히 말씀해 주세요.”
윤창수는 염만근처럼 기회주의자도 아니었고, 하판석처럼 반골 기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까지 살아 있는 간부 중 유일하게 초대 교주를 보필했던 사람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원로 간부쯤 된다.
그런 윤창수를 마주할 때면 교주 대 교인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뜸을 들이며 주저하는 윤창수에게 편히 말씀해 달라고 청한 것도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재정난의 극복을 위해 서울교단의 남는 돈을 분배하여 주신다고 한 것 말입니다.”
“네.”
“정말 죄송스럽지만, 저는 그 돈을 받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돈을 더 달라는 이야기였다면 흔쾌히 더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돈을 받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다. 나는 무심결에 윤창수의 얼굴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인자하고 푸근한 미소 속에서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음…… 이유를 여쭤도 될까요?”
내가 묻자, 윤창수가 주저하듯 수염을 만지작거리다 입을 열었다.
“강원교단은 교인이 거의 없어서, 돈을 받아도 거의 제 사리사욕을 위해 쓰이게 될 겁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먹일 입이 많은 경상교단이나, 충청교단에 주시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다운 이유였다. 듣고 보니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허나 그렇다고 돈을 주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방교단에게 돈을 나누어 주는 것에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윤창수 간부께서는 예전에 교편에 서신 적이 있었죠?”
그러다 문득, 윤창수가 한때 교사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예, 맞습니다. 짧지만 아이들을 가르쳤던 적은 있지요.”
“그럼 야학(夜學)을 설립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내 제안에 윤창수가 놀란 기색을 보였다. 눈 주위 주름이 평소보다 조금 더 깊어진 것이 보였다.
“야학이라 하심은…….”
“부두교도 중에는 여러 사정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런 사람들을 위한 학교를 하나 만드는 겁니다.”
당장 강지아 누나만 해도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다. 사실 다니지 못하는 게 아니라 본인 의지로 다니지 않고 있을 뿐이지만, 아무튼 부두교도 중에는 학력이 몹시 낮은 사람들이 많았다.
경상교단의 육은형만 해도 중졸이었고, 염만근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고 장사를 시작한 터라 무학력이었다.
“윤창수 간부께서 교사를 하시고, 돈은 야학을 운영하는 데에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감히 남을 가르칠 그릇이 못 됩니다.”
“겸손이십니다. 부두교가 아니라 로마니카교의 누구를 대도 윤창수 간부님의 지식에는 못 미칠 겁니다.”
이는 빈말이 아니었다. 로마니카교에서 고위 성직자 노릇을 하고 있는, 좀 배웠다 하는 인간들을 데려와 윤창수 앞에 놓으면 죄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그는 박학다식했다.
“부두교도들의 지식 수준을 높이면, 그 자체로 로마니카교에 저항하는 셈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이점이 많을 듯합니다.”
“으음…….”
“이 거대한 예배당이 간부 회의에만 쓰이는 것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이런저런 말로 그를 설득했다. 윤창수는 한참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치다, 이윽고 결심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느은…… 교사도 몇 명이 더 필요할 것이고, 학생들도 받아야할 것인데…….”
“그 부분은 다른 간부들 통해서 도움을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간부들 연락처는 오늘 아침에 전부 받아 놨다. 교사 모집은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교단 운영에만 총력을 기울이느라 시간이 남아도는 하판석에게 도움을 구하면 될 것 같았다.
학생 모집은 육은형에게 연락을 돌리면 바로 해결될 일이었다. 육은형의 휘하에 있는 용병들은 전부 불우한 형편 탓에 학교에 다니지 못한, 이른바 교육 소외 계층이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염만근이나 강지아 등등, 야학을 설립하면 수업을 들을 사람은 차고 넘치게 많았다.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니, 감사하지만 또 죄송스럽습니다. 제가 다 알아서 해야 맞는 것인데…….”
“제가 제안한 일이니, 토대 정도는 제가 마련해 드리는 게 당연하죠. 죄송스러우실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으로 야학 설립에 대한 이야기는 맺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려고 했으나, 윤창수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복잡해서 다시 앉았다.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교주님, 역주술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윤창수가 난데없는 물음을 던졌다. 역(逆)주술. 들어본 적은 있었다. 말 그대로 주술을 역으로 행하는 기술이다.
먼 옛날 고대 부두교에, 주술에 의해 중독되었거나 혹은 정신이 망가진 사람들을 역주술로 치료한 교주가 있었다. 반면 복원 주술을 역(逆)으로 사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교주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기록은 없고 다만 렉바의 말을 전해 들은 것에 불과해서, 사실인지는 명확치 않다.
“알고는 있습니다.”
“교주님께서 최근 좀비화를 푸는 방법을 찾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말입니다.”
“아,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이진성 간부가 말해 주었습니다.”
삼촌은 알게 모르게 정윤아를 많이 걱정했다. 짐덩이다, 우리 잘못도 아닌데 왜 저걸 우리가 키우고 살아야 하냐, 모질게 하는 말과는 반대로 좀비화를 푸는 방법에 대해 이곳저곳 알아보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윤창수에게도 도움을 청했던 모양이었다.
윤창수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역주술을 통하면 손쉽게 좀비화를 풀 수 있을 겁니다.”
“네? 그렇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수롭지 않은 양 대답했다. 윤창수가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하나 싶었다. 역주술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문헌과 유적은 전부 사라졌기 때문이다. 역주술을 사용하면 좀비화를 풀 수 있지만, 사용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걸 윤창수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은…….
“혹시, 역주술을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내셨습니까?”
말고는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낼 이유가 없었다. 내 물음에 윤창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얼떨떨하면서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뭔가 부글부글 끓는 듯한 느낌이 올라왔다.
역주술을 사용할 수 있다면, 좀비가 되어버린 정윤아를 사람으로 되돌릴 수도 있었다. 그리하면 정인아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복잡한 감정도 사라질 것이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윤창수는 불길하게도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고대 부두교의 교주들은 지팡이를 썼다고 하지요.”
“네, 영혼나무의 가지로 깎아 만든 지팡이를 썼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중, 영혼나무의 세 번째 가지로 만든 지팡이의 이름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윤창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기울인 채 기억을 더듬었다. 첫 번째 가지가 생명, 두 번째 가지가 죽음. 그리고 세 번째 가지는…….
“저항.”
“맞습니다. 저항, 또는 역행이라고도 불립니다.”
뭔가를 ‘거스른다’라는 점에서 저항과 역행은 같았다. 그리하여 영혼나무의 세 번째 가지로 만든 지팡이의 이름은 ‘저항’이자 ‘역행’이었다.
역행의 지팡이에게 선택된 교주는 언제나 순리를 거슬렀고, 끝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거나, 혹은 그러한 운명마저 거슬러 순리를 개척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것도 전해지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중요한 건, 역행의 지팡이가 있으면 역주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윤창수는 주저하듯 느릿느릿 눈을 깜빡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역행의 지팡이가 있는 위치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 * *
“그래서 윤창수 간부랑은 무슨 얘기 한 거냐?”
돌아가는 길, 운전대를 잡은 삼촌이 물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고속도로는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삼촌의 운전 실력은 이러한 어둠 속에서도 건재했다. 그는 원래 밤눈이 밝은 사람이었다.
“그냥…… 역주술에 대한 정보만 조금 듣고 왔어.”
“역주술?”
“주술을 역으로 쓰는 건데, 좀비화를 푸는 방법이랑 연관이 좀 있는, 뭐…….”
대충 얼버무리며 설명했다. 주술을 모르는 삼촌에게 구구절절 설명해봐야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좀비화를 푸는 방법과 연관이 있다는 말에, 삼촌이 두 눈을 반짝이며 흥미를 보였다.
“자세히 좀 알려줘 봐. 쓰는 방법을 배운 거야? 아니면 따로 뭐 훈련이 필요한 건가?”
“말로 하면 긴데.”
“아, 새끼. 귀찮아도 좀 말해봐. 내가 운전해 주잖아.”
삼촌에게 윤창수와 나눴던 이야기를 간단하게 요약하여 설명해 주었다.
역주술이란 주술을 역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용하면 좀비를 사람으로 되돌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역주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역행의 지팡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요점만 말하면 이 정도였다.
“역할의 지팡이? 그게 어딨는데? 있기는 하냐?”
“역할이 아니고 역행. 그리고, 있기는 있어.”
“있어? 그럼 찾으러 가면 되겠네. 어딨는데?”
삼촌의 표정이 유난히 밝아졌다. 정윤아를 사람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사우디.”
“……아, 사우디.”
이어진 내 말에 삼촌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 뒤로 대화는 뚝 끊겼다. 삼촌은 운전을 했고, 나는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강지아는 고개를 꾸벅꾸벅 흔들며 졸고 있었다.
윤창수의 말에 따르면, 역행의 지팡이는 사우디의 국립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첫째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였고, 둘째는 하필이면 ‘사우디’의 ‘국립’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일단, 사우디는 우리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다. 우리나라의 국교는 로마니카교이고 사우디의 국교는 이슬람교였다. 로마니카교와 이슬람교가 몹시 사이가 안 좋다는 건 세 살배기 어린애도 아는 사실이었다. 입국을 하려고 해도 사우디 측에서 거부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내전이 끝나기 전까지는 갈 엄두도 못 내겠군.]렉바가 혀를 차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가 말한 대로, 사우디는 현재 종교적 이유로 내전 중에 있다.
시아파와 수니파, 그리고 사우디에 거주 중인 로마니카교 선교사들. 이렇게 세 단체를 주축으로, 총성이 끊이지 않는 치열하고도 잔혹한 내전이 이뤄지는 중이다. 거리마다 시체가 즐비해 있고, 민가는 폭격에 의해 황무지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사실 사우디만이 아니라, 중동의 거의 모든 지역이 시아파와 수니파의 내전으로 고초를 겪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태를 가리켜 아랍의 겨울이라고 부른다. 아랍의 봄 이후 연속된 내전으로 중동 전 지역에 퍼진 혼란과 사회 불안정 사태를 일컫는 말이다.
이런 와중에 사우디로 가서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역행의 지팡이를 훔쳐 온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바론 삼디…… 나한테 거짓말을 해……?”
조만간 정윤아를 사람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던 바론 삼디의 말이 떠오르자, 문득 화가 났다. 아니, 사실 거짓말은 아니긴 했다.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했지, 정윤아를 사람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한 적은 없으니.
“선우야.”
찬란한 달빛으로 하얗게 물든 산등성이를 바라보던 중, 삼촌이 대뜸 나를 불렀다.
“왜?”
“안전벨트…… 맸냐?”
삼촌이 전방을 응시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머리카락이 온통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급기야 흐른 땀이 턱 끝에 맺혀 뚝뚝 떨어지기까지 했다. 나는 차 뒤편에 비치된 휴지를 몇 장 뽑아 그에게 건넸다.
“왜 그래?”
“아니, 그, 뭐냐. 그그, 선우야. 나…….”
삼촌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 저승사자가 보인다, 지금…….”
“뭐?”
“너, 너…… 지금, 옆에. 옆자리에. 옆자리에 있다…….”
환각 주술에 걸린 것도 아니고, 갑자기 저승사자가 보인다니. 뜬금없는 삼촌의 말에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표정이나 말투를 보아하니 장난을 치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내 옆자리로 시선을 옮겨 붙였다.
실크해트를 눌러쓴 누군가가 붉은 눈으로 나를 지그시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귀가 간지러워서 와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내 욕을 하고 있더군.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내가 듣는다. 이런 말 들어본 적 없나?]“……바론 삼디? 왜 왔어요?”
너무 갑작스러운 등장이라 전혀 반갑지 않았다. 바론 삼디의 장난스러운 목소리는 귀를 통하는 대신, 머릿속을 공명하듯이 들려오고 있었다.
[‘왜 왔어요’라니? 반기는 척이라도 좀 해주지 그러냐?]“반길 수 있는 상황이어야 반기는 척이라도 하지…….”
[어허, 또 말대꾸를……. 이렇게 버르장머리 없는 선지자는 내 처음이군.]“처음은 아니잖아요? 솔직히.”
바론 삼디가 웃었다.
[그래, 사실 처음은 아니지. 버르장머리 없기로는 네 어미가 제일이었으니……. 아무튼, 해명을 좀 하려고 왔다.]“갑자기 해명이요?”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바론 삼디의 말투는 단호했다. 그는 왼손으로 실크해트의 각도를 조절하며, 오른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철제 힙 플라스크와 얼음이 든 유리잔이 나타났다. 힙 플라스크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유리잔에 럼주를 채웠다.
[럼주부터 한잔하고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지. 자, 우리 교주님은 미성년자라 안 되고. 그래, 운전을 하고 있는 우리 제사장님!]바론 삼디가 삼촌 곁으로 잔을 건넸다.
[어때, 한잔하겠나?]“…….”
삼촌은 대답하지 않고 운전에만 열중했다. 옷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바론 삼디가 얼른 받으라는 듯 잔을 흔들었으나, 삼촌은 입을 다문 채 운전대만을 잡고 있었다. 바론 삼디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잔을 거두었다.
[하긴, 음주 운전은 조금 그렇지? 아쉽구나. 돌아가기 전에 길벗이나 하나 만들어 가려고 했건만.]바론 삼디가 킬킬대며 웃더니, 단번에 럼주를 들이켜 잔을 비웠다. 삼촌이 룸미러로 바론 삼디의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러다가 조만간 사고가 날 것 같았다. 아무리 밤눈 좋고 운전 실력 뛰어난 삼촌이라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운전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나는 바론 삼디의 시선을 끌 요량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말투를 그리 사납게 하면 쓰나.]“하고 싶은 말이 뭐냐니까요?”
[그래, 그래. 고귀하신 선지자님 말씀인데 내가 멋모르고 무시를 했군.]바론 삼디가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재차 말하는 거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너는 실제로 방법을 찾아냈지. 역행의 지팡이를 통해 역주술을 쓸 수 있고, 역주술을 통해 좀비화를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않느냐?]“실현 가능성이 없는 방법이라는 게 문제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실현 가능성은 있다.]바론 삼디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아니, 정확한 표현을 쓰지. 내일 너는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다.]“내일은 학교 가는데요?”
[그럼 학교에서 깨닫게 될 거야. 믿는 게 좋다. 어찌 됐건 이건 전부 진실이니까.]‘어찌 됐건 이건 전부 진실이니까’? 어쩐지 익숙한 말이었다. 어디서 들은 말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단은 알겠어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바론 삼디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내일 판단하면 될 일이었다. 말투로 보았을 때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바론 삼디의 말은 끝까지 의심해보는 편이 좋다.
[그러고 보니, 오군이 내 이야기 안 하던가?]바론 삼디가 럼주를 두 잔째 마시며 물었다. 내가 어제 오군을 불러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한 말투였다. 바론 삼디의 정보력에 새삼 소름이 끼쳤다. 나는 닭살이 돋은 팔을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급도 안 하던데요.”
[그래? 어지간히 내가 싫은 모양이군. 한때는 둘도 없이 친했는데…….]바론 삼디가 쩝쩝 입맛을 다시며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내 불을 붙였다. 둘도 없이 친했다면서 지금은 왜 원수지간이 되었을까. 문득 의문이 솟았다.
“그분이랑은 왜 싸운 거예요?”
부아아아앙─!
바론 삼디가 말을 하던 도중, 갑자기 차가 미친 듯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삼촌이 다급하게 기어를 변속하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럼에도 차는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당장이라도 가드레일을 들이받을 기세로 맹렬히 질주하고 있었다.
“뭐야. 천천히 가지, 왜 그렇게 급하게…….”
“이게, 브레이크가……!”
삼촌이 당황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급하게 핸들을 돌려가며 가까스로 가드레일을 받지 않고 커브 길을 통과했으나, 코앞에 다시금 커브 길이 다가오고 있었다. 차가 급발진을 한 모양이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바데의 권능으로 바람을 일으켜서 차를 들어버리면…….
그러나, 대처할 틈은 없었다. 어느덧 가드레일이 코앞이었다. 기도를 읊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기도를 마쳤을 무렵에는 이미 차가 가드레일을 뚫고 그대로 절벽으로 추락해버린 뒤일 것이었다.
딱.
그때, 내 왼편으로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론 삼디가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였다.
“어, 어……?”
그러자, 차가 날아올랐다.
가드레일을 뚫고 절벽으로 추락하고 있었어야 할 차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쏟아지는 달빛이 눈부시게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다. 차창을 통해 내려다본 세상이 하염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바론 삼디가 시가를 한 모금 거하게 빨더니, 후 하고 연기를 뱉으며 입을 열었다.
[마저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그놈과 권능의 일부를 걸고 도박을 했다. 당연히 내가 이겼고, 나는 그놈의 권능을 조금이나마 쓸 수 있게 되었지.]“당연히?”
[그래, ‘당연히’ 내가 이겼지. 사기 도박이었거든. 그래서 그놈이 나를 싫어하는 거다.]나는 차창 너머로 펼쳐진 세상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달빛을 머금은 태백산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가 기도를 통해 만들어낸 협곡이 가장 먼저 눈에 들었다. 강원교단 예배당은 주술 때문인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달이 무섭다고 느껴질 만큼 가까웠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구름 한 점 없어서 더욱 신비롭고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그때 내가 도박에서 이긴 덕분에 너희는 목숨을 건진 셈이구나.]“……도대체 무슨 도박을 했던 거예요?”
[주사위 놀이.]딱.
바론 삼디가 다시금 손가락을 튕기자, 날아올랐던 차가 천천히 지면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바론 삼디가 창밖으로 거칠게 시가를 내던지며 말을 이었다.
[나는 주사위 놀이를 아주 좋아해. 비록 내가 신은 아니지만 말이야.]덜컹!
차가 무사히 도로 위에 착지했다. 그리고 출발했다.
운전대를 잡은 삼촌은 얼떨떨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운전을 재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험 삼아 브레이크를 밟아보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히 잘만 작동했다.
[내친김에 차도 고쳐줬다. 감사 인사는 안 해도 돼.]“…….”
[그럼 이만! 다음에 기회 되면 주사위 놀이나 한판 하지…….]바론 삼디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떠났다. 농밀한 침묵이 흘렀다. 삼촌은 휴지로 땀을 닦아내고 있었고, 강지아는 이 와중에도 여전히 자고 있었다. 모든 것이 꿈인 양 얼떨떨했지만, 결코 꿈은 아니었다. 어찌 됐건 이건 전부 현실이었다.
말없이 운전을 이어가던 삼촌이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선우야, 혹시 방금 다녀가신 분 이름이…….”
“바론 삼디.”
“너 어떻게 저런 분이랑 대화하면서 말 한번 안 더듬냐……?”
삼촌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삼촌 입장에서는 바론 삼디의 모습이 무척 공포스럽게 느껴질 만도 했다.
촌스러운 실크해트, 양복 차림. 눈은 시뻘겋고, 피부는 온통 새하얀 사람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면, 담력이 엄청난 사람이 아니고서야 놀라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나는 바론 삼디의 모습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다만 조금 불쾌했을 뿐이었다. 왠지 몰라도 나는 바론 삼디의 모습이 익숙했고, 어쩔 때는 친숙하기까지 했다.
“선지자니까?”
당장 떠오르는 답이 이것밖에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