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07
제107화
그녀의 병실에는 한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암막 커튼이 바람결에 살랑거리며 들어오는 햇빛을 몰아내는 까닭이다. 깨진 형광등에서 이따금 흐물흐물한 빛이 흘러나오기는 했지만, 그 역시 병실을 완전히 비추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전혜수 씨? 주무시고 계세요~?”
빛이 들어오는 순간은 오직 간호사가 의례적인 안부를 묻거나, 식사나 물을 들이기 위해 문이 열릴 때다.
복도의 새하얀 빛이 반쯤 열린 문을 타고 어둠을 살며시 몰아냈으나, 병상에 앉은 환자는 미동조차 않았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눌러 덮은 채 모질도록 긴 잠을 연속해서, 기계적으로 이어갈 뿐이다.
“혜수 씨?”
간호사가 아침 식사가 놓인 쟁반을 들고 병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그럼에도 병상 위 환자는 미동조차 않았다.
불안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가다듬었다. 식탁을 펴서 그 위에 쟁반을 올려놓고, 침대를 살며시 눌러보았다.
환자는 병상에 잘 있었다. 어느 정도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자고 있는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단순히 간호사와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번처럼 탈출을 한 것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놀랐잖아요. 자다가도 저만 들어오면 벌떡벌떡 일어나셨던 분이……. 듣고는 계시죠?”
간호사는 대답 없는 환자를 향해 연거푸 말을 건넸다.
“참, 형광등은 오늘 점심 중에 고친다고 하는데, 그래도 크게 불편하신 건 없죠? 원래 빛을 싫어하셨으니까…….”
환자는 일전에 형광등을 뽑아 튀어나온 전선줄로 자살 소동을 벌였다. 형광등은 그 과정에서 부서진 것이었다.
간호사의 말이 끝나자 부서진 형광등이 천장에서 대롱대롱 흔들렸다. 늦봄의 따스한 바람이 창문을 넘어 몰려오고 있었다.
간호사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간만에 맡는 청량한 공기. 몸 구석구석에 쌓인 노폐물들이 내뱉은 한숨으로 전부 빠져나가는 듯 상쾌했다. 뒤이어 꺼림칙하고 불쾌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혜수 씨?”
간호사가 재차 호명했으나 대답은 없었다.
펄럭, 펄럭…….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아래로 얼핏 하늘이 보였다. 지평선으로부터 솟아오른 붉은 노을이 푸른 하늘에 스며드는 중이었다.
촤악!
간호사가 거칠게 이불을 걷어 올렸다.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전혜수 환자가 없었다. 그 대신 동물 가죽을 이어 붙여 인간의 형상을 어설프게 따라한 인형이 있었다.
인형은 이따금 꿈틀거렸다. 마치 자신이 살아 있다고 주장하려는 듯이.
그럼에도 그것은 삶을 어설프게 가장한 죽음에 불과했다.
“꺄아아아악─!”
뒤늦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바람이 거셌다. 걷힌 커튼 너머로 하늘이 엿보였다. 어둠이 드리우고 있었다. 노을빛을 머금은 옅은 하늘을 어둠이 뒤덮었다.
밤하늘이 선명해졌다.
* * *
날이 갈수록 해가 쨍쨍해지는 와중이라, 낮에는 기숙사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일광 화상을 입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밤마다 산책을 나오는 것은 낮에 외출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그녀에게 습관처럼 굳어진 일이었다.
오늘도 해가 지자마자 기숙사를 나온 성하연은 목적지도 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과거에 자신이 도선우에게 저지른 만행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대신 기획안을 작성해줬던 것도 죄책감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리하면 도선우가 자신의 만행을 조금이나마 잊어줄 것이란 얕은 생각이었다,
“하아…….”
성하연은 회의 시간에 보았던 도선우의 표정을 떠올리며 한숨지었다. 여민서에게 기획안을 건네주었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눈빛에는 의문과 의심이 서려 있었다.
자신의 만행을 잊기는커녕, 오히려 상기시킨 것만 같아 괴로웠다.
그렇다고 사과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사과를 하려고 하면, 미안하다의 ‘미’에서 늘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툭, 투둑.
땅을 보고 걸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하늘에서 비가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조심스럽게 바닥을 두드리던 비는 어느 순간 폭포처럼 매섭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예보에 없던 갑작스러운 소낙비라 성하연은 우산을 들고 있지 않았다.
“아니, 뭐, 우풉……!”
습관적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성하연이 급히 말을 맺고 입 안으로 들어온 비를 뱉어냈다. 그러고는 일단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산을 살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골목길 쪽에서 희미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저쪽으로 성기사들이 출동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성유다라는 사실을 밝히면 성기사들은 기꺼이 우산을 빌려주거나 차를 태워주거나 했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성기사 쪽에서 먼저 알아보고 호의를 베푼 적도 있었다.
사제로서 성기사의 도움을 받는 건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급한 불부터 끄자는 생각으로 골목길을 향해 냅다 달려 들어갔다.
찰박, 찰박.
걸음마다 물이 튀어서 발목에 부딪혔다. 젖은 옷이 살갗에 차갑게 달라붙은 감각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성하연은 계속 달렸다.
성기사에게 도움을 청해 비를 피할 수도 있었고, 설령 성기사와 만나지 못했더라도 골목길을 통하면 다른 길보다 피렌체 기숙사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희미하던 사이렌의 붉은빛이 선명해졌다. 멀찍이 차량 두 대가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성하연은 비에 젖어 불쾌한 마음과 성기사를 마주하여 반가운 마음을 교차로 느끼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하여 마주친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야 이 새끼야, 수단 좀 입었다고 지가 무슨 추기경이라도 된 줄 아나 본데─!”
“이 새끼야? 너 나이가 몇 살이야. 누구더러 새끼, 새끼─”
“먹을 만큼 먹었지, 새끼야. 아무한테나 대고 반말 지껄이는 너보다야─”
그들은 싸우고 있었다. 말로만 싸우는 게 아니었다. 서로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욕지거리를 하는 건 예사였다. 떨어지는 빗물을 손에 묻혀서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기는가 하면, 욕 한마디 없이 고요한 주먹 다툼으로 번진 곳도 있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장대비에도 아랑곳 않는 그들의 눈빛에서는 번들거리는 살의가 엿보이고 있었다. 따귀 하나, 주먹질 하나에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의지가 명백하게 깃들어 있었다.
“…….”
성하연은 말없이 몸을 돌려 골목을 나오려고 했다. 몸이 미친 듯이 떨리고 이가 딱딱 부딪쳤다. 추위 탓은 아니었다. 공포로 몸이 제멋대로 떨리는 것이었다.
빗속에서 물을 차고 물을 뒹굴며 싸우는 저 성직자들의 눈은, 아주 어린 날 그녀의 팔을 잘라 가려 했던 ‘모르는 아저씨’들의 눈빛과 너무나 비슷했다.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자신의 팔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톱을 가져다 대던 아저씨들의 눈빛과 서늘한 톱의 감촉을 떠올리며 성하연은 공포에 젖었다.
텁.
그때,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철퍽!
“아, 하아악! 오, 오지 마……! 나 아니야. 나 아니에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성하연이 두 팔로 얼굴을 감싸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세차게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공포는 선연했다.
“뭐가 아니라는 거야……. 야, 일어나봐.”
남자가 성하연의 팔을 잡아 일으키려 했다. 패닉에 빠진 성하연이 결단코 일어나지 않으려 무게 중심을 아래로 낮추고, 몸부림을 쳤다.
그럼에도 남자는 성하연의 팔을 놓지 않았다. 그의 손은 끈질기게 자신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콰악!
끝내 성하연은 남자의 손목을 깨물었다. 깨물어서 잘근잘근 씹었다. 한 번으로 안 되니 두 번, 세 번을 계속 그렇게 물었다. 그래도 놓지 않자 아예 물어서 뜯어보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턱에 힘이 풀려버린 뒤였다.
“야, 좀……. 야!”
고통을 참다못한 남자가 고함을 내질렀다. 화들짝 놀란 성하연이 어깨를 파르르 떨며 고개를 들었다.
공포로 시야가 흐려진 탓에, 그리고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탓에 남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성하연은 그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어?”
“갑자기 깨물고 지……. 아니다, 일단 좀 일어나봐.”
남자는 팔을 거칠게 흔들며 물린 손목의 고통을 털어내더니, 다시금 성하연에게 손을 건넸다. 그녀는 얼떨결에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눈가에 묻은 빗방울과 눈물 몇 방울을 털어냈다.
비에 젖어 축 내려앉은 머리칼을 투박한 손놀림으로 정리하는 그는, 도선우였다. 물려서 뜯어진 살에서 흘러나온 피를 쏟아지는 빗줄기로 대충 닦아낸 그는, 조금 처연한 눈으로 성하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도 할 수 있어? 너희 아……버님이 하는 거.”
“네?”
당황한 성하연이 고개를 갸웃대며 되물었다. 도선우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빗발이 너무 거세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탓도 있었다.
도선우가 얼굴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더니, 발음을 또렷하게 하여 다시 입을 열었다.
“마기 정화하고, 흑마법진 해체하는 그거 있잖아.”
“……아.”
성하연이 짧은 탄성을 흘렸다. 아버지는 정화의 일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축복을 통해 사탄교의 흑마법진을 해체하고, 마기를 몰아내고는 했다.
반드시 피를 봐야 하는 축복이라 사용하는 게 영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일단 그 축복을 사용할 줄은 알았다.
“쓸 줄은 알아요.”
“그래?”
도선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성직자들의 피 튀기는 싸움 한복판에 엎어지듯 널브러진 여인을 가리켰다.
여인은 검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입에서는 검은 거품이 부글부글 솟고 있었다. 눈물과 거품에서는 마찬가지로 검은 안개가 너울너울 솟구치고 있었다.
“저 사람 뒷목에 흑마법진이 그려져 있어. 성기사랑 사제들이 싸우는 이유도 저거고.”
“…….”
“할 수 있어?”
도선우가 성하연의 눈을 또렷이 응시하며 물었다.
성하연은 그 시선을 조심스럽게 피하며, 여인의 뒷목에 그려진 흑마법진을 보았다. 다행히 크기가 작았다. 저 정도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성하연이 그 말을 하자마자 도선우는 성하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성기사와 사제들이 벌인 작은 전쟁 통을 헤쳐, 쓰러진 여인의 앞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잡힌 손목이 얼얼하게 아팠지만 그렇다고 막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사방으로 경계의 시선을 보내는 도선우를 뒤로하고, 성하연은 아버지에게 배운 축복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른 축복진과 달리, 정화의 축복진은 한 획 한 획 신중을 기해야 했다. 하나의 획이라도 표준과 다르게 그리면, 정화의 축복이 아니라 아예 다른 종류의 축복이 되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선우의 엄호를 받으며 축복진을 반쯤 그려낸 성하연이 대뜸 손을 멈췄다. 동공이 쉴 새 없이 떨렸다.
“…….”
이다음을 어떻게 그리는지 까먹었다.
그녀는 정화의 축복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사용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떡하지?
* * *
까마귀의 눈을 부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단 웨도를 통해 비를 불러내는 일이었다. 흑마법진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비가 오면 바닥에 내려앉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마기가 공기를 타고 이곳저곳에 퍼지면 근방이 전부 싸움터로 바뀌어 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마주친 것이 성하연이었다.
나로서는 성하연에게 도움을 청한 것만 해도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흑마법진을 해체할 수 있는 건 정화의 일족뿐.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때, 축복진을 그리던 성하연이 대뜸 손을 멈추고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야! 뭐 해!”
화가 나서 일단 소리부터 질렀다. 성하연이 당황한 듯 겁먹은 강아지처럼 몸을 움츠리더니, 은근히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정화의 축복 쓰려면 피를 내야 하는데요.”
“근데?”
“아플 것 같은데요…….”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분노로 이성이 마비될 뻔했다. 욕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나는 대답 없이 손목에 난 잇자국을 보여주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아직도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단순히 깨문 게 아니라 물어뜯은 수준이었다.
“아, 알겠어요. 그럼…….”
이를 본 성하연이 마지못한 듯 대답하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뭔가를 찾는 기색이었다.
“왜?”
“과도 같은 거 있어요?”
성하연이 눈동자를 굴리며 다급하게 물었다.
정화의 축복을 쓰려면 피를 내야 하니, 피를 낼 날붙이 같은 것을 찾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근처에는 당장 쓸 만한 날카로운 물건이 없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그때, 녹색 소주병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챙그랑─!
나는 소주병의 머리 부분을 잡아, 바닥에 내려쳐 깼다. 본래 둔기였던 소주병은 깨고 나면 그럴듯한 흉기가 됐다.
이만하면 상처를 내는 데에도 무리가 없을 듯했다. 성하연은 정화의 일족이므로 감염 문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일단은 이걸로─”
“너.”
성하연에게 깨진 병을 건네려는 찰나,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죽일 기세로 서로에게 주먹질을 하던 성직자들의 시선이 온통 나에게 꽂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내게 검지를 겨눈 채 느릿느릿 다가왔다.
“너, 방금 뭐 한 거야?”
폭우 속에서 남자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싸움을 멈춘 성직자들이 짜기라도 한 듯 일제히 나를 감싸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 전부가 내게 검지로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정신이 확 들잖아.”
“그래, 정신이 들어 버렸잖아.”
“뭐 한 거야?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잖아.”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어.”
“유리가 깨졌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둘은 진실이고, 하나는 거짓이다 이건가…….]렉바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처음 겪어보는 생경한 공포였다. 뒷걸음질 쳤다. 성하연과 나를 성직자들이 둘러싸듯 옥죄며 다가왔다. 그들의 눈빛에 광기와 분노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서로를 향하던 그들의 분노는, 지금 우리를 향해 일제히 모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