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09
제109화
성하연은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 눈의 초점이 옅어졌다. 그녀는 이윽고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트리더니 비가 흥건한 노면에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에 힘이 빠져버린 모양이었다.
“야, 바닥 다 젖었는데 거길─”
터걱.
성하연을 일으키려 걸음을 옮기던 그 순간, 무릎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찌릿한 통증과 함께 몸이 내려앉았다.
무릎에서 낯선 통증이 일고 있었다. 화끈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바늘로 마구 찔리는 것 같기도 했다. 바지를 걷어 올리자, 무릎 연골 부위가 퉁퉁 부어 있었다.
바데의 권능을 무리해서 사용한 부작용이 뒤늦게 몰려온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란브와나 보수의 권능을 사용했을 때만큼 부작용이 과하지는 않았다. 잠깐 앉아서 쉬면 금방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성하연은 갑자기 주저앉은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비도, 바람도 불지 않았다. 빛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두워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만큼, 그녀를 마주할 때의 거북함도 덜했다.
“저기, 그. 미…….”
성하연이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어, 음…….”
그녀가 당황한 듯 몸을 움츠리며 대답을 주저했다. 뭔가 중얼거리는 것 같긴 한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았다.
“뭐라는 거야. 똑바로 좀 말해.”
“미……! 미천한 당신을 구하려고 쓰, 쓸데없이 피를 흘렸네요. 정말 짜증 나네요…….”
네, 그러세요.
사과라도 하려는 줄 알았는데 역시 아니었다.
성하연의 손바닥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상처가 깊지는 않아서, 복원 주술까지 써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하급 치유로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신성력을 사출하고 배운 대로 치유진을 그렸다.
치유의 빛이 성하연의 손바닥을 감쌌다. 잠깐 드러난 그녀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선연했다.
“됐어?”
치유의 빛이 닿은 부위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고 문지르던 성하연이 휙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가느스름한 눈으로 나를 은근히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흉터 난 것 같은데요.”
“어, 그래? 미안.”
사실 별로 미안하지도 않다.
“…….”
성하연이 입술을 깨물며 손바닥을 쳐다보았다. 흉터가 나봤자 얼마나 크게 났다고 저리 유난을 떠나 싶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가 주먹을 쥐어 상처를 감추며 몸을 뒤로 뺐다.
“괜찮아요.”
“뭐야, 아까는─”
“아니, 진짜 괜찮아요. 진짜로…….”
성하연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그냥 내가 접근하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언제는 오지 말라고 해도 졸졸 따라오더니, 지금은 또 오지 말라고 하는 게 완전히 제멋대로다.
하지만 그녀를 사건에 끌어들인 것은 나였고, 그녀가 없었더라면 흑마법을 해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조금 짜증 나긴 해도 성하연에게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고, 나도 그녀와 오래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으, 으으으……!”
침묵을 깬 것은 나도, 성하연도 아닌 기절해 있던 성기사들이었다. 그들은 짜기라도 한 듯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관자놀이를 짚으며 신음을 흘렸다. 하나같이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그들의 눈동자를 보았다.
다행히 그들의 눈빛에 서려 있던 증오와 분노는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두통을 호소하며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은, 성기사는 성기사끼리, 사제는 사제끼리 뭉쳐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저기, 갑자기 우리를 왜 때린 겁니까?”
“뭐, 뭔 개소리를……! 우리는 맞기만 하고, 때린 건 그쪽이─!”
성기사와 사제 간에 짧은 언쟁이 오갔다. 성기사는 자기네들이 사제에게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생각했다. 사제는 자기네들이 성기사에게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서로를 때리고 서로에게 맞았지만, 때린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오직 맞은 것만 기억했다.
[끔찍한 광경이구나.]렉바가 나지막이 한탄을 흘렸다.
성직자들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쏟아냈던 증오는 까맣게 잊어버렸지만, 상대방이 자신에게 쏟아낸 증오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거나, 혹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아니, 팀장님. 아까 제 멱살은 왜 잡으신 거예요!?”
“뭐? 내가 언제 멱살을 잡아? 너야말로 상사한테 할 말 못 할 말 다 해놓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러나, 사탄교도의 흑마법은 그들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남겨두었다. 흑마법은 사라졌지만 서로를 향한 그들의 증오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사탄교도가 성직자들에게 주입하려고 한 것은 일시적 증오가 아니라 영구적 불신이었다.
“너, 방금 우리한테 바퀴벌레라고 하지 않았나?”
“하, 냅다 주먹부터 갈긴 건 기억도 안 나는 모양이시네요?”
사탄교도의 영악함에 새삼 두려움을 느끼는 한편, 언성을 높이며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는 성직자들에게 분노가 솟구쳤다.
그들이 느끼는 증오는 흑마법에 의해 주입된 것이었다. 사탄교도의 의도대로 생각하고 움직여주는 그들의 우둔함이 역겨웠다.
────!
하늘이 노하기라도 한 듯 강렬한 천둥이 지천에 울려 퍼졌다. 언쟁을 벌이던 성직자들이 그 소리에 하나같이 놀라 숨을 집어삼켰다. 가까스로 찾아온 침묵이었다.
“이 사람 좀 병원에 데려가 주세요, 빨리.”
기회를 틈타, 바닥에 널브러진 채 부글부글 거품을 토하는 여인을 가리켰다. 그제야 성기사와 사제들은 싸움을 멈췄다.
정적 속에서, 팀장이라 불리던 남자 성기사가 황급히 달려들어 여인의 맥을 쟀다. 그러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부하들을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야, 뭐 해! 빨리 구조 팀한테 지원 요청 때려! 그리고, 그그, 들것. 들것 가져오고!”
“네, 넵!”
“어, 제가 뭐 도와드릴 일은─”
“환자 상태 보고, 응급 처치 할 수 있는 거는 다 해! 빨리!”
그제야 성기사와 사제는 싸움을 멈추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 * *
흑마법을 각인당했던 여인은 사제단의 치료를 받으며 병원으로 호송되었다고 한다.
나와 성하연은 동부성기사단으로 가서 간단한 조사를 받았다. 도중에 성유다가 찾아와 성하연을 데리고 나갔다. 전 이단 심문관인 성유다를 대하는 성기사들의 태도는 한없이 깍듯했다.
“후, 정신이 없군. 정신이 없어…….”
성유다를 배웅하러 나섰던 한대호가 돌아오며 나지막이 읊조린 말이었다. 이마에 고인 식은땀을 옷깃으로 대충 털어낸 한대호가 깍지를 끼며 맞은편에 앉은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요즘 되게 자주 보는 것 같은데.”
“그러네요.”
“아무튼,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미안하다. 지금 내가,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흑마법이 발동되었고, 그로 하여금 사제와 성기사들이 싸우기 시작했다는 부분까지 말했다. 나는 그 이후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차에 학교 친구인 성하연을 만났고, 내가 시간을 끄는 동안 그녀의 도움을 받아 흑마법을 제거했다고.
이야기를 들은 한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블랙박스로 상황을 보긴 했는데, 화질이 구려서 흑마법이 발동된 줄은 몰랐구나. 성기사와 사제들이 싸움질을 한 것도 흑마법 때문인 건가?”
“네.”
“그렇군. 하여튼 이 새끼들은, 대처 매뉴얼을 알려줘도……. 아무튼, 덕분에 일이 크게 번지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네가 뒤에 있는 얼빵한 놈들보다 백배는 낫다, 아주.”
한대호가 흘깃 뒤를 돌아보며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한대호의 거대한 어깨 너머로, 벽에 붙어 도열한 성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숙인 채, 한대호의 시선을 피하려 움찔움찔 고개를 돌렸다.
이를 본 한대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새끼들이, 지들이 잘못한 줄은 아나 보다? 눈을 막 피하네?”
“죄, 죄송합니다!”
“됐다, 됐어.”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쉰 한대호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까끌까끌하게 난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뭐, 들을 건 다 들은 것 같다. 근데, 마지막으로 물을 게 하나 있는데. 잠시만.”
한대호가 모니터를 돌려 내게 보여주었다. 당시의 상황을 담은 성기사단 차량의 블랙박스 녹화본이 틀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기적을 재현하고 있었다. 아니, 기적 재현을 가장하여 바데의 권능을 부리고 있었다. 한대호가 내 표정을 살피려는 듯 눈을 가느스름하게 좁히며 입을 열었다.
“기적 재현이지? 네가 한 거야?”
“네.”
“그래, 네가 했단 말이지…….”
의심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한대호는 자꾸만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건 진짜 기적 재현이 아니라, 기적을 가장한 로아의 권능이었다. 한대호처럼 감이 뛰어난 자는 그 차이를 구분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입을 다문 채 블랙박스 영상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한대호가 피식, 헛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는 거냐?”
“네?”
당황해서 되물었다. 한대호가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 나이 먹고도 기적 재현을 써본 적이 없다. 쓸 줄을 모르거든.”
“아…….”
“성전에서 전투 사제들이 썼던 것도 이 정도 규모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대단하네. 이게 진짜 천재인가 싶기도 하고.”
감탄하는 한대호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묻어 나왔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의심을 받고 있는 건 아닌 듯했다. 기적 재현을 다루지 못하는 성직자들이 기적 재현을 다룰 줄 아는 성직자를 보며 감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대호가 미소를 머금은 채 영상을 보며 말을 이었다.
“흑마법에 안 걸린 이유도 성유다 님한테 들었고……. 그래, 이제 진짜 끝이야. 참, 너 성기사과 지원했다고 그랬지?”
“네? 네.”
“의뢰 실습이랑 파견 실습, 기대하고 있겠다. 무슨 말인지 알지?”
곧 있을 의뢰 실습에서 서울동부성기사단에 지원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성기사단을 나왔다. 한대호의 부담스러운 눈빛이 등 뒤에서도 선연히 느껴지고 있었다.
* * *
새까만 어둠으로 가득한 하늘에 몇 개의 별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나는 곧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고, 성기사단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한대호는 이번 일로 내가 표창장을 또 받게 될 거라고 말했다. 표창장이 아니라도 단장 자격으로 해줄 수 있는 건 뭐든 해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그는 이번 일에 대해 내게 지나친 감사를 표해 주었는데, 진짜로 내게 고마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동부성기사단에 나를 영입하고 싶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일은 전부 잘 풀린 셈이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착잡했다.
탁, 탁, 탁…….
그때,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근처를 돌며 운동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걸음을 틀어 큰길로 나갔다. 예배당으로 가는 길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선회한 셈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내게는 생각할 시간이 조금 많이 필요했다.
타다다다다…….
그러나, 달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아니, 오히려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쫓아오는 것 같은데.]렉바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분명히 나를 쫓아오는 소리였다.
누구지? 한대호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일단 한대호가 나를 쫓아올 이유가 없고, 무엇보다 나를 따라오는 남자의 체구는 한대호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작았다.
굳이 따지자면……. 일전에 추격전을 벌였던 사탄교도. 그자와 체구가 몹시 흡사했다.
“…….”
나는 자세를 낮춘 채, 다가오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여차하면 보수의 권능이나 소보의 권능으로 숨통을 끊어버릴 생각이었다.
탁, 타다닥, 탁…….
그러나 예상과 달리, 남자는 내 앞에서 달리기를 멈췄다.
숨을 고르며 성큼성큼 내게 다가오는 그는, 구준혁이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넘기며 내게 다가온 구준혁이 실소를 토하며 입을 열었다.
“야, 너 걸음이 왜 그렇게 빠르냐? 한참 전부터 쫓아왔는데.”
“쫓아와? ……왜?”
“그거, 너 그거 뭐야, 오늘 저녁에 이상한 여자 하나 봤지?”
구준혁이 당당하게 물었다. 이걸 구준혁이 어떻게 알았을까. 성기사단에서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은 없고, 역시 구준혁이…….
“그거 우리 엄마야. 미안하다.”
이어진 구준혁의 말에 나는 놀란 기색을 미처 감추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구준혁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병원을 또 탈출하셨다고. 그러다 사건에 연루됐다고 성기사단에서 연락 받고, 조사받고……. 그러다, 사건에 너도 있었다고 성기사들이 그러더라고. 그래서 쫓아왔다.”
“…….”
“야이, 대답을 좀 해라. 대답을.”
머릿속이 복잡해서 대답을 하기가 벅찼다. 마침내 숨을 다 골라낸 구준혁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마 죽을 뻔했다고 그러던데. 그걸 네가 어떻게든 살렸고. 뭐 어떻게 살렸는지는 말을 안 해줘서 모르겠지만.”
“……흑마법이 걸려 있었어. 뒷목에.”
“그래? 그건 몰랐네. 아무튼, 너랑 성하연 아니었으면 우리 엄마 죽었을 거래. 성기사들이. ……그래서 뭐, 고맙다. 그런 이야기지.”
구준혁이 머쓱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고맙다고 말하는 구준혁이 어딘가 낯설었고, 또 고맙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기도 했고, 구준혁의 어머니에게 주술을 걸었던 것이 새삼스레 미안했고, 어머니를 부양하고 사는 구준혁이 조금 불쌍했다.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머릿속에서 얽히고설키는 중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감정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
나는, 구준혁이 사탄교도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