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12
제112화
“흐음…….”
성유다는 ‘마녀의 피’라 불리는 차의 독한 향을 음미하듯 들이마시며 침음을 흘렸다.
그는 동부성기사단으로부터 받은 당시 상황을 녹화한 블랙박스 촬영본을 보는 중이었다. 영상이 너무 어둡고 화질도 안 좋아서 사람 형체를 분간하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대략적인 상황은 파악이 가능했다.
흑마법에 취해 서로의 뺨을 때리는 두 남녀. 방마(防魔) 마스크도 없이 현장에 다가갔다가, 덩달아 흑마법에 걸린 멍청하기 짝이 없는 성기사와 사제들. 시간이 지날수록 싸움은 거칠어진다. 흑마법진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짙어지면, 성직자들의 서로를 향한 증오도 짙어진다.
그 중심에는 도선우라는 아이가 서있다.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흑마법의 매개가 된 여인의 의식을 확인한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는다. 방법이 없다. 그때 성하연이 나타난다. 도선우는 성하연에게 작전을 하달하고, 유리병을 깬다.
성직자들의 분노는 도선우와 성하연, 두 사람에게 집중된다. 지금껏 나이에 비해 지나친 태연함을 보였던 도선우가 당황한다. 이윽고 침착을 되찾은 그가 성호를 긋기 시작한다.
────!
기적 재현.
불어온 바람이 파도를 몰고, 파도가 모여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연이어 몰아치는 바람이 자아낸 용오름이 성직자들의 몸을 집어삼킨다. 끝내 도선우까지 폭풍에 휩쓸린다.
주저하던 성하연이 그 모습을 보고 결심한 듯 손바닥에 상처를 낸다. 완성된 정화의 축복진이 흑마법진을 해체, 그것으로 상황은 종료.
몇 번이나 촬영본을 돌려보던 성유다가 화면을 끄더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해.”
“……네?”
맞은편에 앉은 성하연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엉겁결에 대답했다.
뭐가 훌륭하다는 거지? 도선우의 기적 재현이 훌륭했다는 걸까, 아니면 내가 그린 정화의 축복진이……. 그녀의 마음속에 작은 기대가 피어났다.
“남자아이 이름이…… 도선우?”
“……네.”
“나이에 맞지 않는 실력을 가졌구나. 대단한 재능이야.”
성하연이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역시 나를 칭찬해줄 생각은 없구나……. 그녀는 주먹을 쥐어 손바닥에 난 흉터를 가렸다.
그러는 동안, 성유다는 도선우가 재현한 기적을 되새기고 있었다. 비록 최후에는 제어하지 못하고 본인마저 폭풍에 휘말리고 말았지만, 그토록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적을 재현해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재능이었다.
입만 산 현역 성직자들에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는. 아니, 실력만 따지면 이미 현역을 압도하는 수준.
“신학회에 들어오라는 제안은 어떻게 됐니.”
그렇게 묻는 성유다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멍을 때리던 성하연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들었다.
“거절, 당했어요…….”
“이유는?”
성유다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성하연은 사실 어느 정도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짓 때문일 것이다. 친구에게 듣기로, 그녀는 심심할 때마다 도선우에게 폭언을 가했다고 한다. 눈빛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그러나 성하연은 그것을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대뜸 나타나 신학회에 들어오라고 제안을 했다.
거절당하는 게 당연하다. 도선우 입장에서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가증스럽게 보였을까. 상상만 해도 성하연은 속이 메스꺼웠다.
“이유는 말을 안 해서, 저도 잘은…….”
그녀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성유다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종종 그런 아이들이 있다.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 입증하는 것에 미쳐, 타인의 도움을 한사코 거절하는.
신학회와 같은 단체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직 단신의 능력으로 성직자가 되고자 하는 이상한 신념을 가진 아이들.
신념을 가진 자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한때 성유다도 누구보다 강한 신념을 가진 자의 뒤를 따랐던 적이 있었다. 그들은 결코 남을 따르지 않으며, 오히려 남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끝이 좋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 단 한 번도.
고개를 저어 회상을 털어낸 성유다가 찻잔을 식탁 위에 그대로 둔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만간 직접 만나볼 일을 만드는 편이 낫겠구나. 그리고…….”
성유다가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눈빛으로 자신의 딸아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밤에 나갈 때는 늘 주의하도록 해.”
“……네.”
“그때와 같은 일이 언제 벌어질지 모르니까.”
성유다가 씁쓸하게 말하며 함께 서재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성하연의 머릿속에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사람이 아닌 동물을 보듯 건조하고 무신경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들. 절규하듯 비명을 지르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되는 대로 잘라내고, 다음으로 팔을 잘라내려던 그들은 사냥꾼이었다.
부두교 주술 의식을 위해 백색증을 가진 사람들의 신체를 수집하는, 일명 ‘알비노 사냥꾼’.
성하연은 알비노 사냥의 피해자다.
* * *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성하연의 기획안을 고쳤다. 실제로 추가할 부분은 얼마 없었고, 나머지는 성하연이 써놓은 헛소리를 덜어내기만 하면 됐다. 렉바가 서적에 적힌 언어를 모두 우리말로 번역해준 덕분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작업을 전부 마친 직후, ‘국내에서 활동/수감 중인 사탄교 목록과 정보’라는 제목의 책을 펼쳤다. 이건 별도로 렉바가 번역을 해줄 필요가 없었다. 전문이 우리말로 적힌 책이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사탄교의 핵심적인 세력은 두 곳이다. ‘분노’와 ‘시기’라는 칠죄종의 이름을 표방한 자들인데, 이 중 ‘분노’는 19□□년에 생포되어 교황청 지하 감옥에 수감 중에 있다.]정확히 언제 잡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연도 부분만 교묘하게 찢어져 있던 탓이다. 자연적으로 찢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 고의로 찢어 간 흔적이었다.
누구일까. 학생이라면 7인의 성호 중 하나일 것이고, 교사라면……. 그러고 보니, 사탄교도가 교사일 가능성은 없나?
별 의미 없는 생각이다. 넘어가자.
[분노의 특징은 재생이다. 제압 과정에서 그의 팔다리를 잘랐으나, 몇 초가 채 지나지 않아 금방 재생되었다. 목을 자르거나, 몸체를 가로로 자르거나 세로로 잘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일정 주기로 자해를 하는데, 자신이 섬기는 악마에게 피와 살점을 바치는 의식의 일부로 추정되고 있다.]계속 읽어 보았지만, 성전사와 성기사들이 어떤 활약을 하여 그를 포획했는가에 대한 무용담만 주구장창 이어질 뿐 박제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페이지를 빠르게 넘겼다.
[시기, *군단장]책의 중반 무렵에 이르러 시기 파트가 시작되었다. 군단장 옆에 각주 표시가 달려 있었다. 글 아래에 작은 글씨로 ‘군단장’이라는 단어에 대한 부연 설명이 들어가 있었다.
[군단장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활동하던 사탄교 오만지부를 흡수한 뒤, 쪽지를 남겼다. 다음은 그 쪽지의 내용이다.‘나를 군단장이라고 불러줘…. 이유는… 나도 멋진 별명이 갖고 싶어….’
군단장이라는 호칭은 자칭이지만, 다수의 지부를 거느리고 있다는 이유로 공식 호칭이 되었다.]
미친놈이 분명하다. 이어서 읽었다.
[군단장은 시체를 모아 박제를 만들고 조종한다. 자신이 만든 박제를 매개로 흑마법을 부리며, 완벽한 박제에 대해 광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착각하는 것이라 사료된다.7년 전 성전의 혼란을 틈타 한국에 잠입했고, 2년 전 인천에서 발생한 ‘시체의 탑’ 사건을 일으킨 뒤 종적을 감췄다. 사건 직후 주민들을 대상으로 색출 작업을 실시하였으나, 특정에 실패하였다.] [이놈이군.]
렉바가 말했다. 대답하지 않고 페이지를 넘겼다.
[시기라 이름 붙여진 이유는 군단장의 어린 시절과 관련이 있다. 몇 안 되는 정보에 의하면 군단장은 친모를 사랑했다. 친부를 질투한 군단장은 악마와 거래하여 친부의 가죽을 벗겨 살해하였고, 슬퍼하는 친모를 위해 친부의 가죽에 솜과 톱밥을 채워 선물했다.동성애자라는 설이 있는데, 근거는 없다. 성별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이해하기 어려웠다. 친모를 사랑했다는 것, 그리고 친부를 질투하여 살해했다는 것.
아니,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슬퍼하는 친모를 위해 친부를 박제로 만들어 선물했다는 건…….
[괜히 사탄교가 아닐 테지. 일반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을 거다.]렉바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글을 읽었다. 단서가 될 만한 정보는 없었다. 같은 내용을 다른 표현으로 늘여 써서 분량을 늘리려 했던 저자의 의도가 엿보였다.
열람했던 책들을 반납 책장에 꽂아 넣은 뒤 중앙 도서관을 나왔다. 그리고 흑마법의 매개가 되었던 미치광이 여인, 즉 구준혁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사탄교도는 자신의 친모를 사랑했고, 그래서 친부를 죽였다.
구준혁이 사탄교도라면,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를 흑마법의 매개로 사용했다는 뜻이 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사탄교도를 상식으로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인지도 모른다.
[복잡하구나. 조금 더 간단하게 생각해보는 것은 어떠냐?]“이것보다 더 간단하게 생각할 수가 있나요?”
[글쎄,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렉바의 애매모호한 말이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는 사탄교도를 추리하는 일에 한해서는 내게 뚜렷한 결론을 제시해주지 않았다.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바론 삼디한테 병이 옮으셨나…….
한숨을 쉬며 교실로 돌아갔다.
* * *
수정한 기획안은 오전 쉬는 시간에 조금씩 다듬어서, 점심시간 직전에 여민서에게 메일로 보냈다. 식사를 마친 뒤 정인아, 구준혁과 함께 산책로를 돌았다.
“그런 식으로 가정하면 끝이 없지. 주어진 정보만으로 얘기를 해야 할 거 아니야.”
“야, 주제만 따지면 최후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맞는 거 아니야?”
“하……. 말이 안 통하네.”
구준혁이 한숨을 쉬었다. 정인아와 구준혁은 밥을 먹기 전부터 지금까지 첨예한 논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주제는 ‘좀비 사태가 발생하면 어떤 무기를 챙겨야 하는가.’ 정인아는 야구 배트를, 구준혁은 죽창을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실용적이고 생산적이며, 수준 높은 주제였다.
“야, 만약 좀비 사태가 끝났다고 쳐봐. 야구 배트가 있으면 야구를 할 수 있잖아.”
“아니, 끝난다는 가정 자체가 말이 안 된다니까?”
“뭐가 말이 안 되는데?”
정인아가 따지자 구준혁이 한숨을 쉬었다.
“됐고, 만약 좀비 사태가 왔다 치면 식량은? 야구 배트로 식량을 구할 수가 있냐?”
“그럼 죽창은? 죽창은 식량 구할 수 있냐?”
“죽창은 배고프면 조금씩 뜯어서 먹으면 되잖아. 너는 야구 배트 먹어라, 그럼.”
“네가 판다냐? 뭐 그딴 소리를─”
논쟁은 끊이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나는 하는 수없이 그들과 거리를 두고 걷기로 했다. 저 유치한 대화에 함께하고 있다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거리를 두었다고는 하지만, 구준혁과 정인아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는 꼼꼼하게 듣고 있었다. 관찰 겸 감시의 일환이었다. 구준혁이 사탄교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아직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창은 사거리가 길잖아.”
“그거 뭐, 한번 꽂으면 어떻게 뽑을 건데? 뽑다가 좀비한테 물려서 좀비 된다, 너.”
“안 뽑고 그대로 다음 좀비 찌르면 되지. 꼬치 끼우듯─”
“─야! 너 학교 와도 되는 거였냐!?”
정인아와 구준혁의 유치한 대화를 끊어낸 것은, 운동장 쪽에서 들려온 고함이었다. 한 남학생이 반색을 표하며, 변성기가 온 건지 만 건지 모를 짜증나는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뭐야?”
정인아가 의문을 표했고, 구준혁은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둘은 홀린 듯 운동장을 가로질러 소란의 중심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도 그들을 따랐다. 가까이서 보니, 소란을 자아낸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반 전(前) 배성현 패거리들이었다.
“와, 너 되게 오랜만인 것 같다. 연락도 없고, 그동안 뭐 한 거야?”
“새끼, 피부가 더 하얘진 것 같네. 밥은 잘 먹고 다닌 거 같은데?”
패거리들이 누군가를 둘러싼 채 안부를 묻거나, 장난처럼 욕을 하거나 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반가움은 모두 같았다.
패거리의 중심에 선 남학생은 머쓱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인아가 남학생의 얼굴을 쳐다보며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배성현?”
퇴학을 당했던 배성현이, 교복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채 뻔뻔스럽게도 피렌체에 와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