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19
제119화
“드시고 가세요, 교주님.”
학교로 가려는 나를 강지아가 붙잡았다. 그녀가 내게 건넨 것은 새까만 물이었다. 씁쓰름한 냄새가 났지만 커피는 아니었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히 검은 물 위로 갈색과 보라색이 조금 섞인 빛이 떠올라 있었다.
“이게 뭔데요? 사약?”
아무리 봐도 먹어도 되는 물 같지가 않았다. 강지아는 잔을 흔들어 바닥에 깔린 침전물을 띄우더니, 내게 재차 잔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제물로 바치고 남은 약초로 달인 물입니다. 부두교 약술을 참고했습니다.”
“아하. 암살 시도는 아니었네요.”
“네? 그게 무슨.”
“어? 당황하네. 어쩐지, 처음부터 느낌이 싸하더라.”
강지아가 충격을 먹은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반응이 너무 진지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는 황급히 웃음을 지어 보이며, 강지아가 건넨 잔을 받아 들었다.
“농담이고, 잘 마실게요. 근데 요즘 약술도 공부해요?”
“자료가 많이 없어서 공부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일단 배워보는 중입니다.”
“오……. 대단하네요.”
영혼 없이 말하며 강지아가 달여준 물을 단번에 들이켜 마셨다.
처음에는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 달콤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물이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넘어가려는 때에 갑작스럽게 쓴맛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냥 쓴맛이 아니었다. 정말 지독할 정도로 썼다. 혓바닥에 떨떠름한 맛이 남았고, 목구멍을 타고 괴상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 코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찌푸린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켁, 켁……! 사약 맞잖아요!”
“좀 맛이 없을 겁니다. 원래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쓴 법이니까요. 조금만 참으시면…….”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역시 날 암살하려고…….”
그러는 동안에도 쓴맛은 계속 혀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말을 하면서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던 괴상한 냄새가 차츰 빠지고, 처음 느껴졌던 단맛과 향이 은은하게 감돌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 피가 도는 듯 찌릿찌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보수의 권능을 사용할 때와 비슷한 느낌.
“오.”
“약효가 좀 도시나요?”
“그런 것 같은데요. 약 효능이 뭐예요?”
“‘혈액 순환이 빨라지고 눈이 맑아진다’, 라고 되어 있네요. 부가적으로 신체 능력이 조금 향상되고, 촉각이 곤두선다고도 합니다.”
[바론 삼디가 좋아하는 약이지.]렉바가 대뜸 끼어들어 말했다.
바론 삼디가 좋아하는 약이라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바론 삼디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로아인 그의 몸에는 피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혈액 순환에 대한 효능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눈이 맑아지는 효능도 그에게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그는 눈이 없어도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므로.
“바론 삼디가 이걸 마실 필요가 있어요?”
[글쎄, 본인이 마시는 것 같지는 않던데? 난 잘 모르겠구나.]렉바의 말투에는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바론 삼디는 도대체 평소에 뭔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걸까……. 그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 아니 로아였다.
* * *
“오늘부터 과별 수업이 좀 빡빡하게 돌아가네요. 이전까지 성적이 조금 부진했더라도 오늘부터 열심히 하면 다 따라잡을 수 있으니까 열심히 해봐요. 그럼!”
명랑한 당부의 말과 함께 하예진이 교실을 나갔다. 그와 동시에 학생들 사이로 북적북적한 소음이 일기 시작했다.
긴장한 빛이 역력한 얼굴로 서둘러 교실을 나가는 아이들도 있는 반면, 한껏 여유를 부리며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아이들도 있었다.
“너 다음 수업 뭐야?”
어느새 다가온 정인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오늘은 과별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었다. 전에는 반별로 진행되었던 수업이 이제는 과별로 진행되기 때문에, 같은 반이어도 과가 다르면 듣는 수업이 다른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부전공 수업이었는데. 검술 기초였나? 신성 훈련장에서 한댔는데.”
“부전공이면…… 성전사? 그럼 구준혁이랑 수업 같이 듣나?”
“뭐야, 나 왜?”
아침 자습 시간부터 조회 시간까지 내내 자고 있던 구준혁은 자기 이름이 불리자 귀신같이 일어났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의 눈에 새겨진 붉은 실핏줄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그 아래로 눈 그늘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평소보다 몹시 초췌한 인상이었다.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구준혁, 너 성전사과 맞지?”
“아니? 아, 아니다, 맞구나! 졸려서 정신이 없네, 아.”
정인아의 물음에 구준혁이 정신없이 대답했다. 정인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구준혁을 멀거니 바라보더니, 이내 헛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졸려도 그렇지 무슨……. 아무튼, 너 다음 수업 뭐야?”
“다음? 뭐였더라, 이론 수업이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다목적실에서 한다고 그러는 거만 기억남.”
“엥? 뭐야, 자선우는 검술 기초라는데?”
“야,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을─”
“둘이 같은 과인데 수업이 다르네? 뭐야?”
정인아가 의아하다는 듯 찌푸린 눈으로 나와 구준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왜 그런지 물어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시간표 편성은 내가 아니라 교사들이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겹치거나 시간표가 꼬이는 일이 없도록, 교사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짰겠지.
“잠깐만, 너 다음 수업 검술이라고?”
그때, 구준혁이 놀란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왜 호들갑이냐?”
“신성 훈련장에서 하는 거 말하는 거 아님? 인내반 성전사과 애들도 다음 시간 검술이라는데?”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하네.”
“진짠데? 수고해라~ 대련 상대로 김진서 걸릴 듯.”
구준혁이 비실비실 웃으며 놀리듯 말했다.
소도진의 검술 수업은 ‘대련을 중심으로 실전 감각을 쌓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그는 이론을 익히는 것보다 직접 대련을 하면서 칼끝을 맞대어 보는 것이 가장 빠르게 실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야기 했다.
“설마 첫날부터 대련을 하지는 않겠지.”
“첫날부터 한다는데? 다른 애들 말 들어보니까 수업 내내 쉬지도 않고 대련을 한다고…….”
구준혁이 말을 이었다.
앞서 소도진의 검술 기초 수업을 들은 아이들 말에 따르면, 다른 수업에 비해 대련의 비중과 강도가 현저히 높다.
오죽하면 대련을 하다 기절해서 보건실에 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반별 수업일 때는 대련 도중 부상자가 발생하면 수업을 중단했지만, 과별 수업은 그런 것도 없다.
이유는 몰라도 소도진의 눈에 독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더라, 그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보통 급 맞는 애들끼리 붙인다는데. 너는 아마 김진서랑 하지 않겠냐? 걔는 인내의 성호고, 너는 자선의 성호니까.”
“아닐 거야…….”
애써 부정했다. 김진서와 대련으로 맞붙어 본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녀를 이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비관에 젖어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뚱한 얼굴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정인아가 불쑥 끼어들었다.
“야! 네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닐 놈이냐. 이래 놓고 어차피 이길 거잖아. 괜히 걱정하지 마.”
“걔는…… 상식이 통하는 애가 아니야. 체육관 다닐 때 3분 내내 처맞았던 거 생각하면…… 으윽, 머리가…….”
구준혁이 과장된 몸짓으로 이마를 짚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정인아가 애써 웃으며 내게 다가오더니, 대충 쥔 주먹으로 격려하듯 어깨를 툭 쳤다.
“저놈 말은 듣지 말구. 혹시라도 맞고 오면 내가 혼내주면 되지.”
“누가 누굴 혼내? 네가 김진서를? 너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
내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구준혁이 끼어들었다. 설마하니 죽이지는 않겠지만, 크게 다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걔가 그 정도야?”
“아, 그렇다니까.”
구준혁이 답답하다는 듯 언성을 높여 말했고, 나는 옆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조회에서 하예진의 건넨 격려의 말이 떠올랐다.
“이전까지 성적이 조금 부진했더라도 오늘부터 열심히 하면 다 따라잡을 수 있으니까 열심히 해봐요.”
바꿔 말하면, 이전까지 성적이 좋았더라도 오늘부터 열심히 하지 않으면 따라잡힐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첫날부터 주전공도 아닌 부전공 수업이고, 대련 중심 수업인 데다가, 심지어 대련 상대가 김진서일 수도 있다니. 절망적이었다.
[학생들을 겁먹게 하기 위한 헛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이는데. 너무 신경 쓰지 마라.]렉바가 그런 나를 위로해 주었다. 하긴, 생각해보니 첫날부터 대련을 시킬 리는 없다. 학생들의 입을 타면서 과장된 헛소문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했다.
* * *
“다들 들어서 알겠지만, 오늘은 대련을 할 거다.”
소도진은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검 한 자루를 들어 우리에게 보이며 말을 이었다.
“대련에서 너희가 쓸 검은 이거. 통상 성전사들이 쓰는 은제 검이 아닌, 구식 철제 검이지. 자, 그럼 여기서 의문이 들 거야. 왜 실전에서 사용되는 은제 검이 아니라, 요즘은 잘 쓰이지도 않는 구식 철제 검을 쓸까? 대답해볼 사람?”
“……돈인가?”
“정답. 은제 검은 비싸서 훈련용으로 보급하기 어렵다. 나중에 성전사가 되면 돈 많이 벌어서 너네 돈으로 사.”
아주 현실적인 이유였다. 직후 소도진이 손가락을 칼날에 가져다 대며, 톱질을 하듯 검을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소도진의 손가락에서는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 검은 날이 아주 무디다. 거기에 더해서, 대련 직전에 날 부분에 스펀지까지 씌울 거야. 그럼 어지간해서는 다칠 일이 없지. 뭐…… 그래도 세게 맞으면 아프기는 해. 내가 맞아보니까 그렇더라.”
대강 설명을 마친 소도진이 입을 꾹 다문 채, 자신의 손에 들린 대련용 검을 내려다보았다.
진지한 얼굴로 한참이나 검을 노려보던 그가 마침내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지그시 응시했다.
부웅─!
그리고 휘둘렀다.
아니, 휘두른 게 아니라 찌른 건가? 알 수 없었다. 소도진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서 눈으로 좇기가 벅찼다.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한차례 공격을 내지른 소도진이 가볍게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다들 알다시피 악마종과 마수는 은제 무기에 의한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에, 되도록 축성받은 은으로 되어 있는 부분으로 공격하는 편이 좋아.”
달그락.
소도진이 검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훗날 견습 성전사가 되었을 때, 너희는 날의 끝 부분만 은으로 코팅이 되어 있는 철제 검을 받게 될 거다. 그 조악한 검으로 악마종이나 마수에게 유효한 피해를 줄 수 있는 기술은 오직 찌르기밖에 없지.”
철제 검은 무겁고 조잡하지만, 은제 검에 비해 저렴했다. 그래서 갓 부임한 견습 성전사들에게 보급되는 무기는 보통 철제 검이었다.
“따라서, 오늘의 대련은 상대를 한 번에 제압할 수 있는 찌르기를 연마하는 것이 목표다. 따라서 대련의 승리 조건은 대련 상대에게 찌르기 공격을 2회 적중시키는 것. 축복 사용은 자유. 이상, 질문받는다.”
질문을 받겠다는 소도진의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지금까지 소도진은 늘 피곤하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질문을 받는 것을 기피하곤 했기 때문이다. 소도진이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안 피곤하니까 편하게 질문해라. 어제 좀 푹 잤거든.”
“질문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김진서였다.
“만약 공격을 2회 성공하기 전에 상대가 의식을 잃으면 판정이 어떻게 되나요.”
“그때는 의식을 잃은 쪽을 판정패로 처리하겠다. 앞서 말한 승리 조건을 충족하기도 전에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능력이지.”
김진서의 질문에서는 어딘가 서늘한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마치 승리 조건을 충족하기 전에 상대를 제압할 자신이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녀라면 실제로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몇몇 학생들의 표정이 굳어진 것을 본 소도진이 피식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다. 보다시피, 이건 상대를 제압하고 말고 할 수 있는 검이 아니니까. 어지간히 세게 찌르는 게 아니면 의식을 잃을 일은 없을 거야.”
“휴…….”
어디선가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애초에 날이 무디기도 하고, 스펀지까지 씌운다면 어지간해서는 의식을 잃을 일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대놓고 한숨을 쉬지는 않았지만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
소도진은 바닥에 널브러진 검 두 자루를 들더니, 날 부분에 스펀지를 씌우며 입을 열었다.
“처음 대련은 본보기로 가장 실력이 좋은 두 사람을 붙이도록 하자. 호명한 두 학생은 검을 들고 대련장 위로 올라가라.”
그러나, 안도할 틈은 없었다.
“도선우, 김진서.”
* * *
대련장 위로 올라간 나는 일단 검부터 쥐어 들어보았다. 괴력의 축복을 통해 전체적인 근력이 향상된 뒤였음에도 상당히 묵직했다. 찌르기는커녕 휘두를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한 걱정이 무안하게도, 김진서는 그 묵직한 검을 장난감 다루듯 가볍게 든 채 몸을 풀고 있었다.
“후.”
긴장을 몰아내려 한숨을 쉬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고개를 들자, 맞은편에 선 김진서가 졸린 듯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살며시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작게 미소 지었다. 나와 달리 그녀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침묵 속에서, 소도진이 목에 걸린 호루라기를 들었다.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시작하겠다.”
삐이익─!
호루라기가 울리고, 대련이 시작되었다.
김진서가 자세를 잡았다. 나도 엉거주춤하나마 자세를 잡고 섰다.
서로의 검 끝이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스펀지를 씌운 날이 무딘 철제 검에 불과했지만, 김진서의 손에 들린 검은 마치 진검처럼 위협적으로 보였다.
반대로 내 손에 들린 검은 그야말로 장난감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긴장하지 말자. 시작도 전에 쫄면 이길 싸움도 지게 될 것이다. 침착을 유지하고, 김진서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움찔, 그녀의 어깨가 작게 떨렸다.
투웅!
그리고 눈 깜짝할 새, 그녀는 내 코앞에 와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휘두른 검격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서로의 검이 맞닿은 너머로 날카로운 김진서의 눈빛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괴력의 축복 덕분인지 힘은 호각이었고, 다만 속도와 검을 다루는 숙련도에서 밀리고 있었다.
“……물어볼 게 있는데.”
검과 검을 맞댄 채 아슬아슬하게 대치하고 있던 중, 김진서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와중에도 내게 말을 걸 여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왠지 나를 봐주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김진서는 검으로 나를 거칠게 몰아붙이며 말을 이었다.
“서하린이라는 애랑, 친해?”
그녀의 입에서 나온 뜬금없는 물음에 맥이 빠졌다.
나는 괴력의 축복으로 다리에 힘을 모아 무게 중심을 낮춘 뒤, 직후 상반신으로 힘을 이동시켰다. 이동하는 힘의 흐름을 그대로 이용하여 검을 휘둘러, 김진서의 검을 튕겨냈다.
빠득!
스펀지와 스펀지가 마찰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일단 거리를 벌리는 데 성공했으니 첫 번째 고비는 넘긴 셈이었다.
나는 빙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김진서의 얼굴을 응시했다.
“글쎄?”
검과 검을 맞댄 채 대치하던 순간, 김진서가 내게 했던 뜬금없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당장 대답할 여유가 없었기도 했지만, 그녀를 도발하여 평정심을 잃게 한 다음 대련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생각이었다.
“……‘글쎄’?”
그때, 김진서의 얼굴에 여유가 사라졌다. 직후 그녀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칼을 들었다.
두 번째 공격을 시도할 셈인 것 같았다. 아까에 비해 움직임이 크고 단조로웠다. 도발이 먹힌 모양이었다.
“…….”
나는 방어를 준비하는 한편, 동시에 공격을 준비했다. 속도와 숙련도로 그녀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나마 호각인 것, 즉 힘으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보수의 권능을 사용한 뒤, 방금처럼 검이 맞닿은 채 대치하는 구도를 만들어 힘으로 그녀를 찍어 누르면 될 것 같았다.
어쩌면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보─”
푹.
“커헉……!”
미처 보수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길쭉한 뭔가가 내 명치를 관통했다. 격심한 통증과 함께 의식이 끊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