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21
제121화
도착한 화장실에서는 복도에서부터 피 냄새가 물씬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큼하고 독한 약품 냄새도 얼핏 났다.
여자 화장실 입구 쪽에서 한 여학생이 몸을 바닥에 납작 붙인 채,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앞으로 뻗으며 힘겹게 기어 오고 있었다.
“……서, 선생님…… 머리, 머리가……!”
“이런 씨……! 무슨 일이야!”
소도진이 다급한 걸음으로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여학생의 상태는 얼핏 보기에도 심각했다. 오른 발목이 물어뜯긴 것처럼 울퉁불퉁한 단면으로 잘려 있었고, 옆구리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마수의 잇자국이 곳곳에 나 있었다.
온몸이 피로 흥건했고, 특히 머리에서 피가 많이 나오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머리 외에 다른 급소 부위는 공격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옮기면 죽음은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도진은 검을 집어넣으며 여학생을 들어 업으려 했다.
“서, 선생님. 잠시만요. 머리가, 머리가……! 제 머리부터 좀 봐주세요…….”
그때, 여학생이 양팔로 머리카락을 걷어 정수리를 보이며 소도진에게 보여주었다. 소도진은 치유를 사용할 작정으로 신성력을 사출했다.
치유에는 자신이 없었지만, 당장의 출혈을 멎게 할 응급처치용 치유진 정도는 그릴 줄 알았다.
“머리가 왜! 조금만 침착하고, 정확하게 말해라. 그래야 치유가 가능하니까……. 얼른!”
“여, 여기가. 선생님, 머리가 하얘요, 어떡해요……. 머릿속이 완전…….”
“침착해. 살 수 있다. 바로 병원으로 가면 살 수 있어. 그러니까…….”
도대체 머리의 어디가 다쳤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럴 때 하예진이 있었다면. 그녀라면 아마 보지도 않고 학생의 상처 부위를 정확하게 짚어 치유를 해줬을 것이다.
망할, 왜 하필이면 이럴 때 하예진이 아니라 내가…….
“여기, 여기가…….”
“여기라고 말하면 몰라. 진정하고 일단 업혀서 병원부터─”
“여기, 윽. 서, 선생님, 머릿속이 완전…….”
찌지지지직…….
그때, 여학생의 머리가 갈라졌다. 말 그대로 갈라졌다. 여학생이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갈라, 그 속을 보여주었다. 가죽이 뜯어지고 갈라지며 새하얀 두개골이 드러났다.
아니, 두개골이 아니었다. 그것은 솜이었다. 여학생의 머릿속은 솜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완전…… 새하얗지 않나요? 와우!”
“……어?”
퍼어엉─!
박제가 폭발했다. 후두둑, 뼛조각과 살점이 날아와 몸에 박혔다. 검을 뽑아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뼛조각에 맞은 팔과 다리로부터 찌릿한 고통이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통 따위에 몸부림치며 시간을 버릴 때가 아니었다.
“아, 씨X…….”
당장 신성 훈련장 밖으로 나가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자신을 이곳으로 유인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발을 여기에 묶어놓고, 다른 곳에서 사건을 일으키려는 게 분명했다. 사탄교도의 입장에서 현직 성전사인 자신의 존재는 눈엣가시일 테니.
소도진은 입술을 짓씹으며 전신으로 번져가려는 고통을 애써 무시하고는, 재빨리 신성 훈련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송실로 가서 전교에 대피령을 송출할 작정이었다.
“…….”
그런데, 신성 훈련장을 나가니 다시 신성 훈련장이 있었다.
소도진은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뒷문으로 가도 다시 신성 훈련장이었다. 창문을 통해도, 벽을 부수고 나가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수를 써도 소도진의 몸은 신성 훈련장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무저갱(無底坑).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사탄교의 ‘오만’이 자주 사용하던 기술의 이름이다.
장소와 장소의 경계를 흐리게 하여 특정 장소를 나갈 수 없게 만드는 흑마법이었다.
퍽, 퍼걱, 퍼버벅…….
흑마법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개 마수와 박제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소도진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높은 신성 훈련장의 천장에 거대한 흑마법진이 5개 그려져 있었다. 그로부터 쏟아져 나온 마수와 박제가 지면에 부딪히며 끈적하고 질척한 소리를 냈다.
크르르르…….
철퍽, 철퍽, 철퍽…….
거대한 이빨을 드러낸 채 위협적인 소리를 내는 마수와, 시체와 가죽을 아무렇게나 봉합하여 만든 기괴한 형태의 박제들.
섬뜩한 소리와 함께 떨어진 그것들이 소도진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여기는 소도진. 아무나 응답 바랍니다.”
소도진은 주머니에서 떨기나무 가지를 꺼내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그러고는 불붙은 떨기나무에 입을 가까이 대어 다른 교사들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신성 훈련장에 ‘무저갱’, ‘소환’으로 추정되는 흑마법이 가동 중. 대피령 송출 및 구마(驅魔)사제 지원 요청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신성 훈련장에…….”
서걱!
소도진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달려들던 마수 한 마리의 몸이 반으로 잘렸다.
두 동강 난 사체가 지렁이처럼 마구 꿈틀대다 이내 축 늘어졌다. 그게 신호탄이라도 된 듯, 뒤이어 마수 세 마리가 떼 지어 그에게 달려들었다.
소도진은 축복의 빛을 전신에 퍼트린 뒤 자세를 잡았다. 그는 오른손으로 검을 쥐고 있었고, 왼손으로는 불타는 떨기나무 가지를 꼭 쥐고 있었다.
푹.
마수의 이마를 검으로 꿰뚫었다. 검을 뽑자 마수의 몸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뚫린 이마에서 뇌수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두 마리.
소도진은 축복의 빛을 다리에 모았다. 그리고 오른쪽에서 달려오던 마수의 머리통을 뒤꿈치로 내리찍었다.
우직!
두개(頭蓋)가 부서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마수의 두 눈알이 튀어나와 바닥을 굴렀다.
소도진은 멈추지 않고 축복의 빛을 왼손에 옮겼다. 왼손에 들고 있던 떨기나무 가지를 위로 던지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을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서걱.
왼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마수의 머리에 가로로 긴 선이 그어졌다. 선을 따라 마수의 몸뚱이가 반으로 토막 났다.
하늘로 솟구치던 떨기나무 가지가 지면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소도진은 떨어지는 떨기나무 가지를 낚아채듯 집어 입가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앞서 했던 말을 반복했다.
“……대피령 송출 및 구마사제 지원 요청 바랍니다. 반복, 신성 훈련장에 흑마법이 가동…….”
서걱, 푹, 촤르륵…….
“반복, 듣는 교사는 아무나, 아무나 응답 바람…….”
베고, 찌르고, 피가 튀기는 소리. 그리고 소도진이 떨기나무 가지에 도움을 청하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러나 천장에서 떨어지는 마수와 박제의 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고, 떨기나무 가지에서도 답신은 오지 않고 있었다.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소도진은 묵묵히 마수의 이마에 검을 찔러 넣었고, 박제의 가죽을 베었고, 떨기나무 가지에 도움을 청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수의 시체가 산을 이루고 박제의 살가죽에서 나는 약품 냄새가 온몸에 뱄을 무렵이었다.
– 아, 아.
답신은커녕 이렇다 할 잡음조차 잡히지 않던 떨기나무 가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각!
소도진은 다가오던 박제의 몸통에 박아 넣은 검을 위로 휘둘러 가죽을 찢어냈다.
솜과 톱밥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후두둑, 비처럼 쏟아졌다. 시큼한 냄새가 나는 약품으로 절여진 톱밥을 머리 위로 뒤집어쓴 소도진이 떨기나무 가지에 입을 댔다.
“소도진입니다……! 신성 훈련장에 흑마법이 가동. 학생들 대피 방송 송출, 구마사제 지원 요청 바랍니다. 알아들었으면 답신 바랍니다!”
– 알아들었다. 학생들에게 교실에 앉아 있으라고 지시 내리고 정상 수업 하겠다. 구마사제에게는 잘 지내냐고 안부 묻도록 하겠다. 이상.
“……너 이 새끼, 누구야. 내가 지금 장난하는 것처럼─”
– 그래, 뺑이 쳐라. 수고.
픽.
떨기나무에 붙은 불이 꺼졌다. 신성력을 불어넣었으나 한번 꺼진 불은 다시 붙지 않았다.
이는 연결된 다른 모든 떨기나무가 파손되었거나, 혹은 기능에 이상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소도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이 씨X 새끼가─!”
콰득!
그때, 배후에 있던 마수가 소도진의 오른손을 물어뜯었다.
떨기나무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의식을 집중하느라 미처 처치하지 못했던 마수였다. 마수의 아가리에 물려 있던 손을 뺐다. 후두둑, 피와 함께 마수의 입에 물려 있던 손가락이 바닥에 떨어졌다.
뜯겨 나간 것은 검지, 그리고 중지. 손바닥에 붙어 있는 것은 약지, 소지, 그리고 엄지뿐이었다.
달그락, 오른손에 들려 있던 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메마른 소리를 냈다. 남은 세 손가락으로 들기에는 너무 무거운 검이었다.
푹!
소도진은 이미 무용지물이나 다름없게 된 떨기나무 가지로 마수의 눈을 찔렀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진 검지와 중지를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눈을 찔린 고통과 함께 시야를 잃은 공포로 마수가 뒷걸음을 쳤다.
찌지직.
소도진은 소매를 이빨로 물어 찢었다. 약지와 소지, 엄지로 가까스로 검을 쥔 뒤, 찢어낸 천으로 손과 검을 둘둘 말아 고정했다.
서걱.
검을 휘둘러 자신의 손가락을 앗아간 마수의 목을 벴다. 손가락이 붙어 있을 때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전투에는 무리가 없을 듯했다.
“후.”
소도진은 숨을 고르며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박제와 마수들을 응시했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끝은 있을 것이다. 소도진에게는 신성 훈련장의 천장에 새겨진 흑마법진을 해체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검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휘두를 자신은 있었다.
그렇다면 박제도, 마수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전부 베어버리면 된다. 그리하면 흑마법진도 가동을 멈출 것이다. 탄환이 없는 총은 그럴싸한 모양의 쇳덩이에 불과하니까.
쿵!
그때, 하늘에서 거대한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마수는 아니었다. 기괴한 형태를 띤 박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의 형태를 완벽하게 재현한 박제였다.
사람과 사람을 따라한 박제를 구분하는 법을 소도진은 몰랐다. 그럼에도 그는 저것이 박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김복동.”
김복동이 소도진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육중한 몸집, 곳곳에 붙어 존재감을 드러내는 흉악한 근육. 그와 상반되는 순진한 얼굴.
어떻게 헷갈릴 수 있을까. 그것은 아무리 봐도 그의 오랜 친우인 김복동이었다.
“하하…….”
소도진이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검을 든 오른팔에 힘이 빠졌다. 날 끝이 바닥을 긁었다.
그래, 이 정도는 해야지. 고작 마수 몇 마리, 박제 몇 마리로 내 발을 묶을 수 있을 리가 없지. 꼴에 머리를 썼구나, X 같은 새끼가…….
혼잣말로 토해내고 싶은 말이었지만, 더는 말할 여력조차 남지 않아서 그 말은 생각으로만 남았다.
철퍽, 철퍽…….
그는 다가오는 박제들을 노려보며, 떨기나무 너머로 들렸던 목소리를 곱씹었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 그러나 누구의 목소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허나 반드시 기억해낼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찾아내리라. 찾아서 죽일 것이다……. 반드시.
소도진이 검을 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