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22
제122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가브리엘 장로님.”
이사장실에 들어온 가브리엘을 향해, 김창원이 고개를 깍듯이 숙이며 인사했다. 가브리엘은 고개를 가볍게 까딱하는 것으로 인사를 받았다.
둘은 이사장실 중앙에 놓인 탁자를 중심으로 마주 앉았다. 가브리엘은 형식적인 인사치레도 없이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소도진 교사의 징계 처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왔네.”
“…….”
“장로들 사이에서, 징계 수위가 너무 과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왔어. 따라서 징계의 수위를 낮추는 것을, 고려해볼까 하는데.”
“……장로님들 사이에서 말입니까?”
김창원이 되물었다. 융통성 없고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장로들이 교사에 대한 징계 처분을 번복한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그들이 징계 수위를 낮추는 것을 고려해 보겠다는 말을 하다니, 김창원은 그야말로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장로님들이 갑자기 그런 결정을 하시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물론 아무런 조건도 없이, 징계 수위를 낮출 수는 없겠지. 징계를 정직에서 감봉으로 낮추고, 그 대신…….”
가브리엘이 말을 이었다. 소도진의 징계 수위를 정직에서 감봉으로 낮추는 대신, 사탄교 색출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소도진이 장로들의 호위를 맡게 하자는 이야기였다.
김창원은 그제야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어금니를 맞물었다. 웬일로 바른 소리를 하나 했더니, 그러면 그렇지. 장로들의 이기심에 치가 떨렸다.
“……그건 제안입니까, 아니면 명령입니까.”
“당연히, 제안이지. 명령은, 아닐세.”
가브리엘이 그렇게 말하고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비서는 어디 있나?”
“글쎄요. 집에 일이 생겨서 잠깐 다녀온다고 그러더니, 이후로 연락이 없군요. 상당히 급한 일인 것 같던데…….”
“저런. 별일이 아니었으면. 좋겠구만. 요즘 세상이, 하도 뒤숭숭하니…….”
가브리엘이 혀를 찼다.
“아무튼 제안에 대해서는, 천천히 고민해 보도록 하게. 나는 화장실을 좀, 다녀올 테니.”
가브리엘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 화장실로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화장실에 도착한 가브리엘은 손을 씻고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애당초 그는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온 것이 아니었다. 김창원에게 홀로 고민할 시간을 주고자 자리를 피하려,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댔을 뿐이었다.
끼이이이이…….
그러던 중, 화장실 제일 구석 칸의 문이 스스로 열렸다. 가브리엘은 머리를 만지던 것을 그만두고 숨을 죽였다.
이곳 교직원 화장실은 늘 창문이 닫혀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닫혀 있었다. 바람에 의해 문이 열렸을 가능성은 없었다.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가브리엘은 천천히 구석 칸으로 걸음을 옮겼다.
“……누구, 계시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기어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구석 칸까지 부지런히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구석 칸에 있는 것을 보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는 구석 칸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말았다.
그것은 이사장실의 비서였다. 비서의 배는 반으로 갈라져 있었고, 속은 텅 비어 있었다. 비서의 목은 창자로 휘감겨 있었고, 그의 몸은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밧줄로 목을 매달아 자살한 사람처럼.
툭.
가브리엘의 손에 들려 있던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화장실 타일 바닥에 부딪혀 액정에 금이 갔다.
가브리엘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깨진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액정 조각이 손끝에 박혀 피가 나는 와중에도 그는 일말의 주저 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 서울동부성기사단입니다. 무엇을…….
“피렌체에, 사탄교도가. 사탄교도가, 우웁……!”
– 예? 그게 무슨…….
“우욱, 쿠헤에엑……! 커어억……!”
치미는 구역질을 차마 누르지 못한 장로가 기어코 화장실 바닥에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수화기 너머로 성기사의 당황한 목소리가 연신 들려오고 있었다.
* * *
“또 검술 수업? 저번부터 이게 몇 명째야……. 그래, 수고했고 얼른 올라가서 쉬렴.”
의식을 잃고 기절해 있던 두 학생을 보건실로 옮긴 뒤, 보건 선생님의 불만 섞인 혼잣말을 들으며 보건실을 나왔다. 그리고 곧장 신성 훈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명을 경계하라는 바론 삼디의 예언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고, 비명에 현혹되었던 소도진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서 비롯된 걸음이었다.
아니, 사실 소도진을 걱정한 건 아니었다. 바론 삼디의 예언을 내가 옳게 해석했는가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너는 보건실 안 가도 돼?”
그런 나를 쫓아오던 김진서가 물었다.
“나? 내가 왜?”
“안 아파?”
그녀가 내리깐 시선을 들어 흘깃 내 표정을 살폈다.
늘 솟아 있던 눈매는 축 처져 있었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조심스러웠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명치가 찌릿찌릿 아프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보건실에 갈 정도는 아니었다.
“괜찮아.”
“맨날 괜찮다고 하면서.”
“그럼 안 괜찮다고 할까?”
“……그 말이 아니잖아!”
김진서가 벌떡 고개를 들며 내지르듯 말했다. 그녀의 눈매가 잠깐 날카롭게 솟았다가, 자기 목소리에 놀란 듯 움찔하곤 이내 다시 아래로 처졌다. 나는 그녀에게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갑자기 화를 내네. 무섭다, 무서워.”
“화낸 거 아니야.”
김진서가 고개를 숙인 채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검이 내 눈에 띄었다. 신성 훈련장에서 사용했던 대련용 검이었다.
“검은 왜 들고 온 거야?”
“검……? 어? 이거…….”
그녀가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바라보며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급박한 상황 탓에 미처 놓고 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고 나온 모양이었다. 대련을 위해 끼웠던 스펀지는 이미 벗겨진 뒤였다.
그럼에도 날이 너무 무뎌서,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장난감 칼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이걸 왜 들고 왔지?”
“또 찔리면 이번에는 기절로 안 끝나겠네. 스펀지도 없어서.”
“……안 찔러.”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야지.”
“안 찌를 거라니까. 조심 안 해도 된다구…….”
원래 같으면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역으로 나를 몰아붙였을 그녀가 이번만큼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댔다.
대련 도중 나를 기절시킨 게 어지간히 미안한 모양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근데 너 어디가?”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녀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물었다.
“신성 훈련장. 너는?”
“나는 너 따라가고 있었는데.”
“나를 왜?”
“따라가면 안 돼?”
“안 될 건 없는데…….”
“같이 가, 그럼.”
뜻하지 않은 동행이었다. 그녀가 흘러내린 머리칼을 머리 위로 쓸어 넘기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신성 훈련장은 왜?”
“……무슨 일 일어났나 보게.”
“교실에 있으랬잖아. 쌤이.”
“언제부터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고.”
장난치듯 말하자 김진서가 기분이 상한 듯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잘 듣거든……?”
“그래, 너는 말 잘 들으니까 교실로 가.”
“너 진짜……!”
그녀가 배신감에 찬 눈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그러고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너랑 말 안 해.”
“진짜?”
“……아니.”
그녀가 나를 노려보던 시선을 땅에 떨어트렸다. 그러고는 힘없이 비틀비틀 내 옆으로 걸었다.
이따금 그녀의 머리가 툭, 툭 내 어깨를 건드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입을 열었다.
“너 진짜 나빴다…….”
“뭐가?”
“…….”
능청을 떨며 그녀를 놀리는 동안 어느덧 신성 훈련장 앞에 도착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스산했고, 주변 공기가 탁했다. 긴장한 듯 굳은 표정으로 검을 쥔 김진서와 함께 신성 훈련장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철컥.
“……잠겨 있네.”
그러나 들어갈 수 없었다. 문이 안에서부터 굳게 잠겨 있었다.
창문 너머로 흘깃 내부를 확인했다. 불이 전부 꺼져 있었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대련용 검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완벽히 뒷정리가 되어 있었다. 애초에 검술 수업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말하려는 것처럼.
“왜? 뭐 있어?”
김진서가 내 옆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창문 너머를 보려고 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오길래 당황해서 고개를 뒤로 뺐다.
“아무것도 없어.”
“그러네. 근데 왜 나 피해?”
“……올라가자.”
나는 김진서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교실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비명에 이끌려 화장실로 향했던 소도진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전투의 흔적조차 없이 깔끔하게 정돈된 신성 훈련장을 보니, 알아서 잘 해결한 것 같았다.
비명을 지르던 것이 진짜 피렌체 학생이었다면 소도진은 그 학생을 병원으로 데려갔을 것이다.
설령 함정이었다고 해도 소도진이라면 어련히 잘 해결하고 나왔을 것이다. 일단 지금은 그렇게 믿는 게 편할 듯했다.
“그래서 아까는 왜 피한 거야? 부끄러워서?”
교실로 돌아가는 나를 뒤쫓던 김진서가 집요하게 물었다. 작게 미소를 지으며 묻는 그녀의 말투에는 장난기가 역력하게 서려 있었다.
“글쎄……. 근데 너 그 검은 계속 들고 있을 거야?”
“지금은 마땅히 둘 데가 없으니까, 일단……. 근데 너 왜 말 돌려, 또.”
“…….”
그녀가 가느스름하게 뜬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괜히 대답했다가 그대로 그녀의 페이스에 말려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교묘하게 말을 돌리려고 해도 김진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뒤이어 찾아온 정적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녀가 또다시 머리를 어깨에 툭툭 부딪히며 말문을 열었다.
“대답 안 해줄 거야?”
“알아서 생각해.”
“그래도 돼?”
“뭔 생각을 하려고 허락까지 받아?”
“……그러게.”
그녀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푸드드드득─!
아이덴 동산으로부터 새가 날아올랐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 새들이 부채꼴로 대열을 갖춰 지평선 너머로 달아나고 있었다. 지면이 떨리는 듯한 느낌이 발바닥에 살며시 느껴졌다.
학교가 무거운 정적에 둘러싸여 있었다.
김진서의 얼굴에 은은하게 서려 있던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예리하게 다듬어진 눈빛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노려보았다.
쿠구구구궁…….
그때, 폭발음과 함께 뭔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곳곳을 떠돌았다. 뒤이어 새가 우는 듯 기괴한 소리도 들려왔다.
까악, 끼아악…….
소리가 가까워지자, 나는 그것이 새가 우는 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수십의 비명이 엉키고 뭉치면서 생긴 비명의 실타래였다.
또다시 비명이었다. 거짓된 고통의 메아리.
“…….”
신성 훈련장에서 울려 퍼진 비명에 이어, 폭발음, 그리고 다시 비명.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유기적이고 연쇄적인 징후였다. 뭔가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침착하고 이성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이었지만, 상황은 내게 틈을 주지 않았다.
탁, 탁, 탁, 탁…….
멀찍이 누군가가 갈색 머리를 요란하게 찰랑이며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인상이 선명해졌다.
눈살을 찌푸린 채 울음을 참으려 애쓰지만, 그럼에도 종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내며 필사적으로 내게 달려오는 그녀.
정인아였다.
“무슨─”
폭.
내가 미처 말을 꺼낼 틈도 없이, 그녀가 한달음에 달려와 내 품에 쏙 안겼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내 옷에 비비적대던 그녀가 훌쩍 고개를 들었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에 별처럼 박힌 갈색 눈동자가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우, 우야…….”
나를 부르는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함께 다니며 익숙해진 그녀의 체취가 낯설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향기는 잠깐 정신이 아찔할 만큼 강했다. 심장이 요동치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 뺨 위에 그녀의 차디찬 손이 얹어졌다.
“체육관에서 수업하는데, 갑자기 건물이 무너져서. 흑, 흐윽…….”
“…….”
“히끅, 애들이. 애들이 기둥에 깔려서, 흑. 도, 도와줘, 선우야…….”
사제과 학생들의 수업 장소는 체육관이었다. 그러고 보니 폭발음이 체육관 쪽에서부터 들려왔던 것 같다.
정인아의 말을 종합해봤을 때, 체육관이 무너져서 기둥에 학생들이 깔렸고, 그걸 들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녀가 여기저기 도움을 청하던 중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정인아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뭐 하는 거야, 얼른 체육관으로─”
서걱.
그때, 그녀의 말이 끊겼다. 동시에 그녀의 목도 끊겼다. 정인아의 잘린 머리통이 몸에서 분리되어 바닥을 굴렀다.
털썩, 그녀의 몸이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목의 잘린 단면에서 핏물 대신 톱밥과 솜이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어딜…….”
그 너머로 검을 든 김진서가 정인아의 시체, 아니 박제의 사체를 싸늘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치이이이익…….
뭉툭한 대련용 검에 의해 양단된 사체에서 시꺼멓고 지독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체는 탄력을 잃고 액체처럼 흐물흐물해지더니, 마침내 모조리 연기로 변해 하늘로 흩어져 사라졌다.
사체가 널브러져 있던 자리에는 정인아가 늘 입고 다니던 교복과 맨투맨, 그리고 길고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남았다.
“머리카락……?”
그것은 머리카락이었다. 그것도 아주 길고 가느다란 갈색 머리카락.
왜애애애앵─!
상황을 파악할 틈은커녕 당황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학교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치직, 음향을 다듬는 소리와 함께 교사의 목소리가 학교 전역에 흐르기 시작했다.
– 아, 아. 도…… 학생, 지금 즉시 ……장실로 옵니다. 불응 시 로마니카교에 대한 반……으로 간주하겠습니다. ……합니다. ……우 학생, 지금 즉시, 교……실로 옵니다.
교사의 목소리는 잡음이 섞여 있어 알아듣기 어려웠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치직, 치지직…….
끊임없이 들려오던 잡음이 희미해지다 이윽고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금 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도선우 학생, 지금 즉시 교장실로 옵니다. 불응 시 로마니카교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반복합니다. 도선우 학생…….
그 목소리는 나를 부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