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24
제124화
척, 척, 척.
시위 진압을 대비한 완전무장 태세를 갖춘 성기사 수십 명이 오와 열을 맞춰 거리를 걷고 있었다.
선두에 선 두 사람이 행렬을 이끌었다. 단장 한대호와 종교 박사 오희진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떠올라 있었다. 두려운 자들은 걸음을 재촉하였고, 호기심 많은 자들은 휴대폰을 들어 그들의 사진을 찍어 올렸다.
“……단장님, 괜찮은 거 맞습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무장한 오희진이 한대호를 보며 물었다. 그의 옆구리에는 언제나 들고 다니던 수첩이 끼워져 있었다.
한대호는 피렌체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었다.
“괜찮아.”
“이러다 막상 가봤는데 별일이 아니라면……. 파면을 면치 못하실 겁니다.”
“그래? 파면이라면 감수할 만하지. 화형 아닌 게 어디야.”
한대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며 킬킬 웃었다.
그러나 그 역시 불안하기는 오희진과 마찬가지였다. 완전무장 태세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일이었고, 교황청 입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불필요한 오해를 부르거나 로마니카교의 이미지를 과하게 훼손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만일 피렌체에 갔는데 완전무장 태세를 갖춰야 할 만큼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한대호는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었다. 정직 이상의 징계임은 말할 것도 없었고, 심하면 파면까지도 고려해볼 만했다.
“단장님,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경계 태세 정도로 무장을 완화하심이─”
“책임은 어차피 내가 진다. 확신이 있으니까 저지른 짓이야. 이 이상 걱정하지 말고, 참견하지 마라.”
“……참견이 과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오희진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성기사들은 걸었다.
한대호의 왼발이 앞으로 향할 때 성기사들의 왼발도 앞으로 향했다. 행렬의 걸음은 왼발과 오른발이 거의 완벽하게 통일되어 있었다.
투구에 가려 그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투구 너머 그들의 얼굴은 나름의 긍지와 열의로 가득 차 있었다.
이어진 사건의 여파로 한대호는 전투 성기사의 훈련에 특히 공을 들였고, 그 결과 성기사들의 정신은 완벽히 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척, 척, 척…….
그들의 통일된 걸음이 자아낸 절도 있는 소리가 멈춘 것은, 피렌체의 담장이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마기가…….”
담 주위로는 심상치 않은 마기가 흐르고 있었다. 시꺼먼 안개가 위협하듯 일렁거리고 있었으나, 결코 담을 넘어 성기사들에게 향하지는 않았다.
월담 방지 장치처럼, 마기는 그저 담 위에 붙박여 있었다.
“아무래도…… 담을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희진이 말했다.
“그래. 무슨 흑마법에서 나온 마기인지를 모르는 상황이니…….”
“예, ‘계약’이나 ‘침식’일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마기가 어디서부터 흘러나왔는지를 알 수 없으니, 섣불리 담을 넘어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계약’에 의해 한대호가 인간형 마수 혹은 악마종이 된다면 일이 아주 복잡해질 것이다. ‘침식’에 의해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때 방마(防魔) 마스크가 있어야 하는데.”
“재고가 있습니까?”
“없어. 그냥 해본 말이야. 어차피 ‘침식’은 마스크로도 못 막는다며? 그러려니 해야지.”
“예. ‘침식’은 마기의 입자가 다른 흑마법보다 작아서 마스크로도 못 막습니다.”
오희진이 주절주절 설명했다. 그는 사탄교의 흑마법에 대해서도 정통했다.
“고맙다. 아주 유용하고 희망적인 정보야.”
한대호가 비아냥거리듯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생각해보니 흑마법이 너무 사기 아니냐? 축복은 기껏해야 힘 세지고, 머리 맑아지고 그게 다잖아.”
“불경한 소리 하시면 안 되죠. 사탄교는 믿는 사람이 적으니까요. 소수 정예인 셈입니다. 더구나 ‘계약’과 ‘침식’은 정예 사탄교도들도 자주 쓰지는 못합니다.”
“그래……. 이것도 그냥 해본 말이다.”
한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담장에 마기가 흐르는 것으로 보아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한 것 같았다. 완전무장 태세를 갖추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교문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성기사들은 한대호를 따라 피렌체 교문에 다다랐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도 없었다. 경비도, 학생도, 선생도. 고요한 적막과 어쩐지 괴괴하고 음산한 분위기만이 교문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경비가 원래 없던가? 나 때는 있었던 것 같은데. 학생들도 안 보이고.”
“글쎄요……”
한대호가 의문을 토했고, 오희진이 미어캣처럼 교문을 기웃거렸다. 조금 섬뜩할 정도로 교문은 침묵에 싸여 있었다.
마기가 담장까지 번졌다는 것은 필시 학교 내부에서 사탄교도와 관련된 사건이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대피하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굳이 대피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지 않거나, 혹은 대피를 하지 못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뜻이었다.
전자라면 다행이지만, 만일 후자라면…….
한대호는 불길함을 느끼며 교문 안쪽을 향해 손짓했다. 돌입을 뜻하는 수신호였다.
“정찰조부터.”
행렬의 선두에 있던 5명의 성기사들이 한대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품에서 얼굴을 간신히 가릴 만한 방패를 꺼내 들더니, 걸음을 맞추어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일제히 돌입하는 것에 앞서 정찰조를 보낸 이유는 하나였다.
사탄교도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교문 봉쇄다.
교내에 있는 학생과 교사의 도주로를 막고, 성기사나 성전사가 구조를 하러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봉쇄되었어야 할 교문이 너무 대놓고 열려 있었다. 담장은 저 모양인데 정문만 멀쩡하다니.
한대호는 필시 교문에 함정이나 복병이 숨어 있을 것이라 예상했고, 먼저 정찰조를 보내 위험 요소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었다.
파캉! 콰직!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상반신을 바짝 굽힌 채 날랜 걸음으로 교문을 넘어간 정찰조 5명의 머리에 일제히 쇠공이 날아왔다.
운 좋게 방패로 막아낸 자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투구를 쓰고 있었다고는 하나 주먹만 한 쇠공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충격은 컸다.
정찰조 5명 중 2명이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순식간에 고꾸라져 바닥에 쓰러졌다.
“돌격조 장비 들고 정찰조 호위! 선두는 나다!”
한대호가 빠르게 수신호를 하며 쓰러진 정찰조를 향해 달려갔다. 각자의 무기와 성물을 든 돌격조가 뒤를 따랐다. 그들은 빠르고 절제된 움직임으로 쓰러진 정찰조들을 둘러쌌다.
한대호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적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나 적은 분명히 우리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적을 볼 수 없고, 적은 우리를 보고 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한대호는 대열의 후미에 있던 사격조에 대기 명령을 내렸다. 발포 허가를 내릴지 말지는 상황을 보고 결정할 생각이었다.
“동부성기사단이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한대호는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외쳤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대호는 배에 힘을 주어 목청껏 다시 목소리를 냈다.
“투항하지 않으면 공무 집행 방해로 강제 진압하는 수밖에 없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그리하면 죄는 묻지 않겠─!”
쿵.
한대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 그의 앞에 거구의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나타났다.
남자는 눈동자가 새하얬고 초점이 없었다. 반쯤 벌어진 입술은 습기 없이 메말라 있었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했다. 오른손에 쇠스랑을 들고 있었다.
“나가시오.”
남자는 한대호에게 경고하듯 한마디를 툭 뱉었다.
“누가 누구 보고 나가라는 거야……. 용병인가? 어디 소속이지?”
“말할 이유 없소. 나가시오.”
“……‘까마귀’.”
옆에 있던 오희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한대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까마귀’는 인천에서 활동하는 용병단의 이름이다. 갖은 불법적 행위로 돈을 쓸어 담는 것으로 유명하며, 성기사단은 그들과 적대 관계에 있었다.
“쇠스랑……. 까마귀의 맹인…….”
오희진이 남자의 손에 들린 쇠스랑을 보며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까마귀의 용병 대부분은 신원이 불분명했다. 항시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기 때문이다. 특히 단장에 대한 인적 사항은 아무것도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까마귀 용병단의 부단장만은 아주 유명했다. 첫째는 농기구를 활용한 독특한 전투 방식을 구사하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그가 맹인이기 때문이었다.
턱.
한대호가 오희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희진은 떨림이 멎는 것을 느꼈다.
한대호는 남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인천에 있던 놈들이 뭐 하러 여기까지……. 의뢰 내용이 뭐고, 의뢰인이 누구야.”
“교문을 통해 나가는 자와 들어오는 자가 아무도 없게 하라는 의뢰요. 의뢰인은 밝힐 수 없소. 나가시오. 셋 셀 동안 나가지 않으면…….”
남자가 초점 없이 흰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며, 바닥을 질질 끌던 쇠스랑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무력으로 내쫓도록 하겠소. 하나.”
한대호는 헛웃음을 흘리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용병 나부랭이가 감히 성기사를 겁박해?
이윽고 대기 명령을 내렸던 사격조에 발포 준비 명령을 내렸다.
철컥, 사격조의 총에서 무겁고 서늘한 소리가 났다. 장전된 것은 아쉽게도 실탄이 아닌 고무탄이었지만, 고작 용병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
“둘.”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그러지 않으면 폭도로 규정하고 무력 진압하겠다. 그리고, 만약 너희를 고용한 것이 사탄교도라면.”
한대호와 남자의 시선이 교차했다. 남자의 쇠스랑은 당장이라도 지면을 내리찍을 듯 날카롭게 반짝이고 있었다.
사격조는 총구를 남자에게 겨누었다. 총구의 어둠이 까마득히 깊었다. 남자와 한대호 사이에서 싸늘한 적막과 긴장이 흘렀다.
“나는 너희를 아도나이의 이름으로 심판하겠다.”
“……셋.”
콰아앙─!
남자가 셋을 외치는 동시에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한대호가 있는 쪽에서 들려온 것은 아니었다. 폭발음은 교내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퉁!
폭발음이 남긴 메아리 속에서 총성이 울렸다. 고무탄이 남자의 허벅지를 때렸다. 맞은 부위에 벌겋게 멍이 들었으나 남자는 아랑곳 않고 쇠스랑을 내리찍었다.
콰직!
그것을 신호로, 숨어 있던 ‘까마귀’의 용병들이 나타났다.
쇠공을 새총에 장전한 자, 몽둥이를 든 자, 낫을 든 자, 창을 든 자. 그들의 무기는 제각각이었다. 다들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몽둥이와 낫을 든 자들이 사격조의 배후를 취했다. 순식간이었다.
“나는 분명 경고했소. 자업자득이라 생각하시오.”
파캉! 파캉!
쇠공이 성기사들의 머리를 때렸다. 창을 든 자들이 팔을 머리 뒤로 내빼며 투창을 준비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아주 체계적이었다. 훈련이 잘된 것 같았다. 그러나 성기사들의 움직임 역시 까마귀 용병단에 뒤지지 않게 재빨랐다.
“사격조는 새총과 투창병! 정찰조는 사격조 호위! 돌격조는 대열!”
한대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쓰러져 있던 정찰조가 일제히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직후 사격조의 배후를 취한 용병들의 배후를 다시 정찰조가 취했다.
정찰조는 움직임이 날래고 전투 능력이 특출한 정예들로 구성된 조였다. 정찰조의 엄호 속에서 사격조가 총구를 들었다.
퉁! 퉁!
고무탄이 발사되었다. 나무 위에서 새총으로 성기사들을 겨누던 용병 몇몇이 머리에 고무탄을 맞고 지면에 추락했다.
그러나 고무탄이 그들 전부를 맞힐 수는 없었다. 제압되지 않은 투창병이 한대호를 향해 일제히 창을 내던졌다. 성기사들 중 한대호가 가장 위협적이고 강하다는 사실을, 용병들은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빠직!
그리고, 한대호는 자신을 향해 날아든 투창 세 자루를 전부 주먹으로 부수어 막아냈다. 그의 육중한 몸은 보기와 달리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그의 몸에서는 축복의 빛이 감돌고 있었다.
“……아도나이께 기도해라. 내가 널 죽이지 못하도록.”
“나는 신을 믿지 않소.”
부웅!
한대호의 주먹이 남자의 턱을 향해 날아들었다. 남자의 쇠스랑이 한대호의 정수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폭발의 연기와 원인 모를 마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하늘이 검게 탁해지고 있었다.
* * *
“엎드려!”
여민서의 날카로운 외침이 교장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교장의 몸이 울룩불룩 일그러지면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폭발의 전조였다.
박제가 폭발하면 살점과 뼛조각이 튀어 온몸에 박힌다고 한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특히 부상 위험이 높았다. 그나마 엎드리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카앙!
“아, 아악……!”
그러나 나는 엎드릴 수 없었다. 수갑 때문이었다.
괴력의 축복으로 힘을 오른팔에 집중시켰다. 그럼에도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축복진을 그려서 힘을 보태면 풀 수 있을까.
아니, 늦다. 애초에 나는 축복을 그리 잘 활용하지 못한다. 그깟 축복으로 더해진 힘으로는 이 수갑을 풀 수 없다.
“……보수.”
[오! 지금은 기둥을 뽑아도 되는 상황인가!]고개를 끄덕였다.
보수는 이상하게 기둥을 뽑는 것에 집착했다. 예로부터 초인은 기둥을 뽑아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을 기본 소양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은 기둥을 뽑든 말든 보수의 권능이 필요한 상황이다.
[조금 아플지도 모른다!]“알겠으니까, 빨리……!”
재촉하자, 보수의 권능이 비로소 몸에 돌기 시작했다.
순간 머리가 아찔해지면서 시야가 흐려지고,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과 숨소리가 또렷해지고 그 외의 소리는 희미해졌다.
팔이 보수의 괴력으로 가득 찼다. 괴력과 더불어 체중을 실어 오른팔을 힘껏 밀었다. 수갑을 당겨서 끊는 것보다는 밀어서 끊는 것이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보통 사람은 당기는 힘보다 미는 힘이 강하니까.
우직, 우지직…….
그러나, 수갑은 끊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벽이 뜯어지고 있었다. 벽이 뜯기고 수갑에 콘크리트 뭉치가 딸려 나왔다.
수갑을 부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일단 움직일 수는 있게 된 셈이었다. 나는 수갑을 끊어내려 팔을 밀어낸 힘을 그대로 발치에 실어 땅을 박찼다. 그리고 앞으로 돌진했다.
교장의 몸은 울룩불룩 솟아 거의 터지기 직전이었다.
나는 묵직한 오른팔을 그대로 앞으로 휘둘렀다. 수갑에 딸린 콘크리트 뭉치가 거대해진 교장의 몸을 강타했다. 철퇴를 휘두르는 듯한 감각이 오른팔에 공명했다.
꽈앙─!
콘크리트 뭉치에 맞은 교장의 몸이 저 멀리 구석으로 날아갔다. 거대한 교장의 몸이 벽에 부딪혀 터졌다.
살점과 뼛조각이 몇 점 날아들어 내 몸에 박혔으나 거리가 멀어서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상처에서 흐른 피가 옷을 적시고 있었다.
“카학……! 하아, 하…….”
직후 나는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상처가 깊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처는 상처였고, 무엇보다 보수의 권능을 과하게 사용한 탓에 온몸에 근육통이 일고 있었다.
모든 뼈마디와 근육 섬유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바닥에 늘어진 어깨가 덜렁거렸다. 관절이 빠진 것 같았다.
[조금 아플 수도 있다고 나는 말했다…….]고통으로 혼탁해진 정신을 꿰뚫고 보수의 시무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조금이 아니라 너무 많이 아팠다. 하지만 보수의 권능이 없었더라면 박제가 터지고 날아든 파편이 온몸에 박혀, 고슴도치가 되어 죽었을 것이다. 나는 오히려 보수에게 고마웠다.
“후, 읍……!”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통을 몰아냈다. 그리고 몸에 박힌 파편을 손가락으로 빼냈다. 파편이 박힌 깊이가 깊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손으로도 충분히 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쿵.
그러는 동안, 넋을 잃은 얼굴로 뒷걸음을 치던 김창원의 몸이 의자에 부딪혔다. 그의 다리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의자를 짚어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며, 실의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언제부터……. 놀아난 건 나였던 건가…….”
그러한 김창원을 뒤로한 채, 마유현과 여민서가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마유현은 신난 듯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얼굴이었고, 여민서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부러뜨린 대걸레를 바닥에 무신경하게 던졌다.
“와, 이거 시발. 뭐냐? 어떻게 한 거야? 이게 괴력의 축복인가? 배성현이 쓰던 거랑 수준이 다른데?”
“당연히 다르지. 얘는 원래부터 힘은 셌어. 마유현, 너 얘 치유 좀 해라.”
“엥? 나 치유 쓸 줄 모르는데?”
“뭐? 너 사제과 아니야? 사제가 어떻게 치유를 못 써? 너 병신이냐? 되도 않는 구라를 쳐, 이 상황에.”
“아니……. 진짜 모르는데?”
여민서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아, 씨X……. 나도 치유는 자신 없는데…….”
“……내가 하지.”
욕지거리를 내뱉는 여민서 뒤로 걸어온 것은 김창원이었다.
마유현이 쪼그려 앉은 채 눈을 깜빡거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김창원은 신성력을 사출하며 단숨에 축복진과 치유진을 여러 개 그려냈다.
나로서는 그 수준을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빠르고 정돈된 움직임이었다.
“미안하다. 설마 가브리엘과 교장이 전부 박제였을 줄은…….”
“괜찮습니다.”
“아니, 내가 괜찮지가 않아. 정말 미안하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교감 선생님, 수갑 열쇠를 주십시오.”
김창원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까지 숙여가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나를 의심했던 것, 그리고 내 손목에 수갑을 채웠던 것을 전부 사과하려는 듯했다.
김창원의 지시에 따라 교감이 수갑 열쇠를 가져왔고, 내 오른팔은 겨우 자유를 되찾았다. 수갑이 채워졌던 손목 부분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축복과 치유의 빛이 온몸을 휘감자 고통이 희미해지고 상처가 나았다. 그러나 보수의 권능으로 밀려온 근육통까지 없어지지는 않았다. 김창원은 탁한 얼굴빛으로 묵묵히 축복진과 치유진을 그리며 입을 열었다.
“너무 큰 죄를 지었어. 용서는 바라지도 않아…….”
“아니, 정말 괜찮습니다.”
“정말 미안하다…….”
김창원은 피렌체의 이사장이고, 이만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내게 죄책감을 가져준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으나……. 굳이 입 밖으로 꺼낼 말은 아니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때, 실의에 잠겨 기계적으로 신성력을 사출하는 김창원의 어깨를 여민서가 톡톡 건드렸다.
“이사장님, 이제 그만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아니, 조금 더 하는 편이…….”
“대충 상처만 아물게 하면 돼요. 쟤는 회복력도 좋으니까, 아무튼…….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여민서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김창원은 그제야 신성력 사출을 멈추었다. 여민서는 쪼그려 앉아 수를 헤아리듯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발견된 박제가 교장이랑 가브리엘까지 해서 6명. 우리가 발견한 것만 6명이고, 실제로는 더 많겠죠. 아무튼 박제들이 지금 학교를 떠돌면서 사람인 척을 하고 있어요.”
“그걸……. 그럼, 박제와 사람은 어떻게 구분하는 거지?”
“마유현이 구분을 잘합니다. 원리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지금까지는 정답률이 100%예요. 믿어도 될 것 같습니다.”
여민서가 힐끗 마유현을 보았다. 마유현이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민서가 얼굴을 구겼다가 이내 풀었다.
“그리고, 체육관이 폭발했어요. 저랑 마유현도 거기서 도망치다가 방송 듣고 여기로 온 거구요. 참, 이사장님. 2학년은 오늘 등교를 안 했나요?”
“파견 나간 학생은 근무지로 갔을 거고, 나머지는 등교했을 거야. 3학년은 전부 근무지에 있으니, 학교에는 없을 테고.”
“흑마법 중에 혹시 공간과 관련된 게 있나요?”
“……‘무저갱’이라는 흑마법이 있어.”
“그래요? 그럼 2학년 건물에 흑마법이 걸린 것 같네요. 돌아다니면서 봤을 때는 2학년 건물이 텅 비어 있었거든요.”
여민서가 상황을 읊을 때마다 김창원의 얼굴은 눈에 띄게 굳어가고 있었다.
옆에 있는 내가 듣기에도 상황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닌 것 같았다. 김창원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교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감 선생님, 지금 당장 방송실로 가서 대피령을─”
“대피령 내려도 의미 없을 텐데.”
김창원의 말을 끊어낸 것은 마유현이었다.
“교문에 떡대들이 쫙 깔렸던데요? 담장에 마기가 돌아서 월담도 못 하고. 아, 성하연은 넘을 수 있겠네.”
“너 언제 그걸 다 봤냐?”
여민서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마유현이 실없이 웃었다.
“아니,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길래 집 가서 자려고 했지. 근데 나갈 틈이 없더라고.”
“……그래. 아무튼, 이사장님. 지금 대피령을 내려도 별 의미가 없어요. 오히려 혼란만 가중될 것 같습니다.”
“담장에 마기가……. 그럼, 내가 지금 성유다 추기경님을…….”
“아, 참고로 전파도 끊겼어요. 전화가 안 돼요, 지금.”
“…….”
김창원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빛에 절망이 깃들었다. 반면 여민서의 눈은 집념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흡사 광기에 가까운 집념이었다.
“마유현이 있으니 박제들은 어떻게든 찾아서 없앨 수 있을 거예요. 문제는 사탄교도가 다음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거. 체육관 터트린 것처럼 다른 건물도 전부 터트려 버리면, 인명 피해가 아주 크게 발생할지도 모르죠. 아니면 뭐, 마수나 악마종 같은 걸 뿌려도 되고.”
“그럼, 방법이…….”
“지금 가장 큰 문제점은 세 가지입니다.”
여민서가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첫째. 교문에 이상한 떡대들이 있어서 대피가 안 됩니다. 눈깔 보니까 용병들인 것 같아요. 대피는커녕 교문에 얼씬도 못 하는 상황입니다.”
“대피를 못 하면 피해가 기하급수로 커질 텐데…….”
“네, 그래서 이게 첫째입니다. 다음 둘째. 이사장님도 보셨듯이 여기 있던 교장이랑 가브리엘이 박제였습니다. 그럼 진짜 교장이랑 가브리엘은 어디 갔을까요? 제가 볼 때는 사탄교도가 이 둘을 납치한 것 같습니다. 둘 외에 다른 사람들도 납치되었거나 실종되었을 가능성이 있죠. 빨리 못 찾으면 문제가 더 커질 지도 모릅니다.”
“에이, 장로 하나 없어진다고 큰일은 무슨.”
마유현이 딴지를 걸었다. 여민서가 흘깃 마유현을 째려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셋째. 사탄교도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지금 당장은 인명 피해가 없습니다. 체육관 터진 것도 하예진이, 아니 예진 쌤이 학생들을 잘 대피시킨 덕분에 아무도 안 죽었고, 안 다쳤어요. 근데 그건 지금까지 얘기고,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죠.”
속사포처럼 빠르게 말을 하던 여민서가 숨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이 세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입니다. 첫째, 교문을 막고 있는 용병들 몰아내기. 둘째, 실종된 사람들 찾기. 셋째…….”
“사탄교도를 찾아서, 죽인다.”
가까스로 대답했다. 여민서가 놀란 듯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래. 문제는 ‘어떻게’지. 어떻게 용병을 몰아내고, 실종된 사람을 찾고, 사탄교도를 찾을 것이냐. 사탄교도를 찾으면, 또 어떻게 죽일 것이냐.”
우둑.
여민서가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동안 나는 빠진 어깨를 이어 붙였다.
여민서에게 몸을 꿰뚫려 죽은 가브리엘 박제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 나오고 있었다. 박제가 누워 있던 소파에 새하얀 머리카락이 남았다.
“……계획이 있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