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25
제125화
“계획?”
여민서가 고개를 갸웃댔다.
그녀는 체육관이 폭발한 직후, 마유현과 함께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상황을 파악하고 사건을 정리했다. 그리고 사건에 대한 해결책을 궁리했다. 교장실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그녀는 상황을 타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계획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이나 머리를 굴리던 여민서는 끝내 계획 세우기를 포기했다.
발생한 사건의 수가 너무 많았고, 사건 하나하나가 학생 수준에서는 해결하기가 어려운 것들이었다. 여민서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말해봐, 어디.”
그런데 방금 막 상황을 전해 들었을 뿐인 도선우가 벌써 계획을 다 세웠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저 따위 말을 지껄였다면 헛소리라 치부하고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도선우가 하는 말이라면 들어볼 가치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선우는 방금 막 끼워 맞춘 어깨를 어루만지며 이사장을 올려다보았다.
“일단, 이사장님은 교문에 진을 치고 있는 용병들을 몰아내 주셔야 합니다. 교감 선생님은 방송을 통해 학생들에게 대피령을 내려주세요.”
“……뭔 소리를 하나 했네. 야, 용병이 나가 주세요~ 하면 그냥 나가는 새끼들인 줄 알아? 지금 대피령을 내려도 의미가 없다니까?”
“닥치고 들어.”
여민서가 끼어들자, 도선우가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차갑고 딱딱한 말투였다.
여민서는 순간 기가 눌려 시선을 바닥에 내리깔았다가, 다시 들었다. 잠깐이지만 도선우에게 쫄아 눈을 내리깔았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끼며, 여민서가 입을 열었다.
“……아, 예. 어디 계속 말해보세요.”
“이사장님, 용병들을 내쫓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나요?”
도선우는 여민서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물었다. 김창원이 시선을 비스듬히 내리깔며 고민하듯 침음을 삼켰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전투가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30분은 걸리지 않을까 싶은데.”
“넉넉하게 1시간으로 잡을까요? 그럼 교감 선생님. 오후 수업 시작을 알리는 타종 음악을 대피 방송으로 교체해주실 수 있나요?”
“아마……가능할 겁니다.”
“네, 그럼 대략 1시간 뒤에 대피 방송이 교내에 울리겠네요. 그때까지 이사장님이 용병들을 내쫓아 대피로를 확보해 주시면 됩니다. 다음은…….”
“먼저 대피로부터 확보하고, 그때 가서 교감 쌤이 대피 방송하면 되는 거 아니야?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나?”
마유현이 물었다. 도선우가 고개를 저었다.
“방송실을 장악해서 대피 방송을 못 하게 할 수도 있으니까, 미리 해두는 편이 낫지.”
“사탄교도가 거기까지 생각할까?”
“사탄교도는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가장 먼저 외부와 연락을 차단하기 위해 전파부터 끊었어. 최악의 경우 방송실이 이미 장악됐을 수도 있고.”
“음…… 오케이!”
도선우의 말에 마유현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선우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유현이랑 여민서. 너희 둘은 아까처럼 같이 다니면서 실종자들을 찾아.”
“굳이 같이 다녀야 하나?”
여민서는 어차피 마유현이랑 같이 다닐 생각이었다. 그게 합리적이고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왠지 도선우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가 싫어서 괜히 반문했다.
도선우는 초점이 없이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마유현이랑 같이 다니면 누가 박제인지 바로 알 수 있으니까. 실종자라고 생각하고 구출했는데 알고 보니 박제면 낭패잖아.”
“……그건 그렇지.”
여민서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계획은 결코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최선이라고 할 수는 있었다.
그 사실에 여민서는 다시 한번 자존심이 상했다. 도선우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가 침묵하는 동안 교장실에 고요한 적막이 감돌았다.
“……너희, 체육관에서 나왔다고 했나?”
“어? 어, 그렇지.”
도선우가 묻자 여민서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어느덧 그녀는 도선우의 흐름에 휘말리고 있었다.
“체육관에서 정인아 본 적 있어?”
“그게 누군데?”
마유현이 아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는 듯 바보 같은 얼굴로 되물었다. 여민서는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도선우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갈색 머리에 키 좀 작고, 둥글둥글한 인상에…….”
“아! 알 것 같다. 좀 예쁘장하게 생겼지? 저번에 말 걸었는데 씹더라.”
“안 궁금해. 아무튼 어디 갔는지 봤어?”
“체육관 폭발할 때 제일 먼저 탈출하던데? 신발도 제대로 안 신고.”
“그건…… 박제야. 아마도.”
“그래? 그럼 나도 모르지.”
마유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도선우가 고개를 숙이며 착잡한 얼굴로 마른세수를 했다. 입술 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마침내 고개를 든 도선우의 얼굴은 어느덧 태연했다.
“그래……. 마지막으로, 사탄교도는 내가 알아서 찾아서 죽일게.”
“뭐? 처음에는 좀 그럴듯하더니 가면 갈수록 개소리만 늘어놓네. 어떻게 찾고, 어떻게 죽일 건데?”
여민서가 쏘아붙이듯 물었다. 도선우가 초점 풀린 눈으로 여민서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걸 내가 왜 말해줘? 네가 사탄교도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잖아.”
“이거 미친 새끼네. 그렇게 치면 너는? 이랬는데 네가 사탄교도면 어쩔래?”
“너는 그냥 입을 다무는 게 좋겠다. 자꾸 되도 않는 소리를 하네.”
도선우가 지극히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여민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이 개X끼가, 말을……. 야이 씨X아. 가장 중요한 마지막 계획을 설명해야지. 그걸 안 해주면 우리는 뭘 믿고 너를 따라야 하냐?”
“야, 야. 이사장님도 계신데 무슨 욕을 그렇게…….”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은 여민서를 마유현이 말리려 했지만, 여민서는 이미 이성을 잃은 뒤였다.
“‘알아서 찾아서 죽이겠다’, 이딴 말은 나도 할 수 있겠다. 계획이랍시고 한다는 말이─”
“이건 나만 알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계획이야.”
도선우가 여민서의 말허리를 잘랐다.
“오, 그래?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계획이시길래 너만 알아야 효과가 있을까? 존나게 궁금한데?”
“그럼 그냥 궁금한 채로 있어.”
도선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여민서가 헛웃음을 토했다. 도선우의 뻔뻔스러움에 욕지기가 목 끝까지 치밀었다. 그러나 도선우가 자신을 향해 위협적인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탓에, 여민서는 미처 욕을 뱉지 못하고 그만 입을 다물었다.
여민서는 자꾸만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막아내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런 그녀를 도선우가 차갑고 서늘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믿기 싫으면 안 믿어도 돼. 꼭 내 지시를 따라야 할 이유도 없고.”
“…….”
“그래도 그냥 믿고, 내가 말한 대로 해.”
도선우의 말투는 평소와 달리 완강하고 단호했다. 조금 고압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눈동자에는 확신이 차 있었고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은 차가웠다.
“그러면 사탄교도는 내가 찾아서 죽인다.”
포부인지, 다짐인지 모를 그 말에는 마땅한 근거가 없었다. 애당초 그는 자신이 어떻게 사탄교도를 찾을 것이며, 어떻게 죽일 것인지에 대한 설명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선우의 말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의 표정과 말투에는 강한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필시 무슨 계획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의 계획이 무엇인지는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도선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교장실에 있는 모두가 그것을 궁금해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묻지 못하고 있었다. 숨죽인 채 도선우를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로 짙은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 * *
소신 발언 하나 하겠다.
‘나만 알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계획’, 그딴 건 없다.
나는 사탄교도가 누구인지 아직 특정하지도 못했고, 심지어는 그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에 대한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
일단 사탄교도를 추적하고, 죽이기 위해서는 주술과 로아의 권능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허나 여민서와 마유현, 그리고 김창원과 교감이 곁에 있는 와중에는 주술과 로아의 권능을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나만 알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계획’이라는 모호한 말로 흩어질 명분을 만든 것이었다.
[거짓말이 많이 늘었구나.]렉바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거짓말을 매일같이 하는데 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대답할 여건이 안 됐다. 내 곁에는 여민서와 마유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장실이 어디지?”
“바로 위층.”
마유현이 물었고, 여민서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사장실에 방마 마스크가 하나 있어. 그걸로 담장을, 아니, 그건 안 되겠군. 흑마법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으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 참고하게.”
교장실을 나온 직후, 교문 쪽으로 향하려던 김창원이 우리에게 건넨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는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방마 마스크부터 챙기기로 했다.
흑마법에 면역이 아예 없는 것과, 일부뿐이더라도 흑마법에 대해 면역을 갖게 되는 것은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이윽고 이사장실에 도착했다. 들어가자마자 마유현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디 있다고 그랬지?”
“서랍 첫 번째 칸이라고 했으니까……. 여기네.”
드르륵!
여민서가 거칠게 서랍을 열어젖힌 뒤 내부를 살폈다. 그녀는 빠른 손놀림으로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끝내는 고개를 갸웃대며 눈썹을 찌푸렸다.
“뭐야, 없는데?”
“없어?”
마유현이 여민서 곁으로 다가갔다.
“봐, 없잖아.”
여민서가 서랍 안을 삿대질로 가리켰다. 마유현은 서랍을 마구 뒤적거리다 여민서와 마찬가지로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댔다.
“진짜 없네? 이사장님이 구라 깠나?”
“그러게. 이사장이 흑막인 거 아니냐?”
“사탄교도가 가져갔겠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추리들을 하는 마유현과 여민서를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서 한 소리 했다.
여민서와 마유현은 내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마저 서랍을 뒤지다가, 이내 단념하고 이사장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도선우 말이 맞네. 진짜 사탄교도가 훔쳐간 거 같은데? 생각보다 주도면밀한 놈이야.”
“입구 막기부터 하는 거 보면 손자병법 좀 읽은 놈인 거 같다. 박제로 교란시키는 것도 그렇고.”
“……손자병법이 뭔데?”
“아, 너희는 모르겠구나……? 별건 아니고, 그냥 그런 게 있어.”
마유현이 얼버무렸다. 여민서가 의문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마유현을 노려보았다. 나 역시 마유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안 그래도 가늘던 눈을 더욱 가늘게 좁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손자든, 손녀든 그게 뭐가 중요하냐. 하여튼, 나가서 바로 가브리엘이랑 교장 찾으러 돌아다니면 된다는 거지? 그럼 사탄교도는 네가 알아서 잡아 죽이는 거고.”
“그래.”
“어떻게 죽일 생각이야?”
마유현이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사탄교도를 죽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은 사탄교도를 찾는 데에만 주력을 다할 생각이고, 죽이는 방법을 생각하는 건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게다가 로아의 권능은 날씨나 지형지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 터라, 지금 계획을 세워 봐야 의미가 없었다.
무엇보다 오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툭.
입을 다문 채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 여민서가 내 어깨를 쳤다.
“야, 나도 하나만 물어볼 거 있는데.”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그녀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사탄교도를 네가 알아서 잘 찾아 죽인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누가 사탄교도인지는 아냐?”
“의심되는 사람이 몇 명 있어. 그 중에 하나를 추려야지.”
“그래? 누가 제일 유력하냐?”
“너.”
솔직하게 말하자 여민서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근거가 뭔데? 너 추리를 너무 사적 감정으로 하는 거 아니냐?”
“사적 감정 없어. 구준혁도 의심하고 있으니까.”
“구준혁? ……이 새끼 이거, 믿어도 되는 거 맞아?”
여민서가 한쪽 눈썹을 구기며 나를 노려보았다. 구준혁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의문을 느끼는 눈치였다.
“뭐가 문젠데?”
“구준혁 부모가 둘 다 고위 성직자잖아. 아, 엄마 쪽은 전직(前職)이구나.”
“…….”
잘 모른다. 구준혁의 어머니 쪽에게 마음의 병이 있다는 정도만 어렴풋이 알 뿐이다.
그러고 보니 구준혁의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나도 모르는 걸 여민서가 어떻게 알고 있지?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그녀가 말을 이었다.
“걔는 최근에 주소지 변경한 적도 없고, 뭐 딱히 의심할 건덕지가─”
“근데 너는 그걸 어떻게 아냐?”
내가 묻자, 여민서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당황을 감추려는 기색이 역력한 몸짓.
그녀는 구준혁의 가족력부터 주소지까지 전부 꿰차고 있었다. 구준혁과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여민서가 그 정보를 도대체 어디서 얻었을까?
만약 뒷조사를 통해 알아낸 것이라면, 그녀가 사탄교도일 가능성이 커진다. 평범한 학생이라면 남 뒷조사를 할 이유가 없고, 뒷조사를 할 방법도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변명을 생각하려는 듯 잠시 머뭇거리던 여민서가 입을 열었다.
“……공익을 위한 불가항력적 개인정보 열람……. 그런 거지…….”
“공익을 위한? 뭔 개같은 소리를─”
투웅, 투우웅…….
그 순간 총성이 울렸다. 총성은 꼬리를 길게 늘이며 불길한 느낌을 자아냈다. 일순간 걸음을 멈춘 우리 사이로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뭐야?”
여민서가 정색을 하며 창문 너머를 노려보았다. 나는 숨이 막혔다. 차갑고 서늘한 감촉이 등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목이 타는 듯이 말랐고, 지끈거리는 두통이 몰려왔다.
“성기사들 왔나 본데? 저 소리 되게 오랜만에 듣네.”
마유현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 태연함에 소름이 끼쳤다.
저건 실탄이 발사될 때의 총성이 아니었다. 고무탄이나 최루탄이 발사될 때의 묵직하고 투박한 총성이었다.
성전이 발발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성기사들은 부두교도들을 진압할 때 고무탄이나 최루탄을 썼다. 불필요한 살상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실탄보다 고무탄에 맞아 죽은 부두교도가 더 많았다. 총구가 부두교도들의 머리를 향했기 때문이다.
어렸던 나는 장롱 속에 웅크린 채, 창문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묵직한 총성과 부두교도들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으나 나가지 않았다. 문을 열면 성기사들의 총구가 나를 향하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장롱의 어둠에 스며들어 마침내 사라지기를 바랐다. 안개처럼.
“야, 얘 갑자기 왜 이래? 땀을 왜 그렇게 흘리냐?”
뒤엉킨 총성과 비명 속에서 나를 끄집어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유현이었다.
레위단을 이끌고 죄 없는 부두교도들을 죽인 장본인. 걱정하는 척하며 나를 바라보는 그 가느다란 시선에 나는 역겨움을 느꼈다. 그러나 내색해서는 안 된다.
“……좀 덥네.”
“더운 날씨가 아닌데?”
여민서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실제로 아직 더운 날씨는 아니었다. 나는 손등으로 땀을 털어내며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내가 더위를 좀 금방 타.”
“오! 야, 나도 그런데. 요즘 슬슬 더워지더라.”
마유현이 반색을 하며 동감을 표했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때 여민서가 자세를 확 낮추며, 난간 너머로 계단 아래를 확인했다.
“……야, 조용히 해봐.”
“왜? 뭐 있어?”
“조용히 하라고, 병신 같은 새끼야…….”
마유현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여민서 곁에 찰싹 붙었다. 여민서가 짜증을 표하며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마유현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불현듯 찾아온 침묵 속에서 여민서는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조용히, 난간 아래를 쳐다보고 있었다.
타각, 타각, 타각…….
“……올라오는데?”
마유현이 입가에 머금고 있던 미소를 지우며 말했다.
아래층에서부터 누가 봐도 수상한 걸음 소리가 천천히 우리를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