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28
제128화
카각, 카가각…….
홀로 남은 김진서가 칼끝을 바닥에 질질 끌며 정처 없이 걸었다. 진작 교실로 올라갔어야 맞지만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선우가 들어간 건물을 기웃거리기도 하다가, 한 번도 들러본 적 없는 건물을 괜스레 들어가 구경을 하기도 했다.
학교는 넓었다.
옛날에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와 함께 학교 곳곳을 탐방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는데, 어쩐지 그때보다 더 넓어진 것 같았다.
몸이 크면서 학교도 같이 커졌나?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실없이 웃었다.
학교가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것은 비단 지금이 수업 중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학교는 넓은 만큼 비어 있었고, 학생들의 재잘거림은 그 빈자리를 메우지 못했다. 그러니 학교는 넓어서 조용했다. 그 넓고 조용한 공간에서 그녀는 혼자였다.
“…….”
공기가 차갑고 하늘이 낮았다. 쓸쓸하고 무서웠다. 칼자루를 세게 쥐는 것으로 손끝의 떨림을 억눌렀다.
그녀는 걸었으나 걸음에는 목적지가 없었고, 결국에는 돌고 돌아 원점이었다. 걷다 지친 그녀는 쪼그려 앉아 바닥을 응시했다. 개미 5마리가 옹기종기 줄을 서서 걷고 있었다.
바삭.
“아.”
그녀에게 다가온 누군가의 발이 개미들을 밟았다. 5마리 중 4마리가 죽었다. 남은 개미 하나가 죽은 개미들의 시체를 맴돌았다.
김진서가 고개를 벌떡 들었다. 그가 지그시 웃으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하고 있었어?”
“……개미 보고 있었는데.”
“개미?”
“방금 네가 죽였어.”
그 말에 도선우가 팔짝 뛰며 발을 들었다.
“아, 미안. 진짜 모르고…….”
“나한테 미안할 게 아니잖아.”
김진서가 웃으며 말했다.
허둥대는 그의 모습이 우습고 귀여웠다.
그녀는 무릎을 짚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도선우를 보았다. 그는 자신이 밟아 죽인 개미에게 아직도 미안하다는 듯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교장실에서는 뭐래?”
김진서가 머리로 도선우의 어깨를 은근히 밀치며 물었다. 신발과 땅을 번갈아 살피던 도선우가 밀려나듯 걷기 시작했다. 김진서는 그 곁으로 나란히 걸었다. 도선우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별 얘기 안 하던데.”
“그러니까, 무슨 얘기.”
“이것저것. 뭐…… 조금 오해가 있었던 것 같더라고. 사탄교도 관련해서.”
도선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김진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탄교도와 관련된 사안이라는 사실은 그녀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불응 시 로마니카교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한다’라는 말 때문이었다. 유난히 걱정이 되어 건물 주위를 맴돌았던 것도 그러한 까닭이었다.
어쨌거나 도선우의 말을 들어보니 오해는 잘 풀린 듯했다. 그 말은 즉 도선우가 사탄교도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애초에 의심 한번 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새삼스럽게 안심이 됐다. 도선우가 그런 김진서를 귀엽다는 듯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기다렸어?”
“……안 기다렸어.”
“진짜?”
“안…… 기다렸어.”
김진서가 가늘게 뜬 눈으로 도선우를 쏘아보며 말했다. 도선우가 빙긋 웃었다.
얼마간 말없이 걸었다. 문득 김진서는 칼자루를 쥔 손의 힘이 느슨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몸이 떨리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도선우의 목 언저리를 보았다. 아직 다 아물지 못한 상처가 딱지가 되어 남아 있었다.
“거의 나았네.”
김진서가 손끝으로 상처를 어루만졌다. 도선우가 조심스럽게 그 손을 치웠다.
“애초에 상처가 얕았으니까.”
“손은?”
“음……. 그쪽 상처는 좀 깊게 나서.”
도선우가 주먹을 쥐어 상처를 가리며 말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보여줘도 괜찮은데.
그러나 도선우의 마음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어서, 김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의 주머니에서 뭔가 삐죽 튀어나온 채 걸음에 맞춰 흔들리고 있었다.
“그건 뭐야?”
“아, 이거.”
도선우는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내 보여주었다. 방마 마스크였다. 그녀는 전에 아버지에게서 방마 마스크가 어디 있는지를 전해 들은 적 있었다.
김진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사장실에 있어야 할 그것이 왜 도선우의 주머니에 있을까. 의아했지만 미심쩍지는 않았다. 그것을 보여주는 도선우의 태도가 너무 당당했기 때문이었다. 도선우는 마스크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이사장님이 나보고 가지고 있어달라고 하셨어. 이사장실에 있으면 사탄교도가 가져갈 수도 있으니까.”
“아하.”
김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개미 몇 마리를 밟아 죽인 것으로도 호들갑을 떠는 도선우가 이사장실에 있는 마스크를 훔쳐 왔을 리는 없었다.
애초에 이사장실에 방마 마스크가 있다는 사실을 도선우가 알고 있었을 리도 없으니, 아버지가 직접 준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침묵을 걸었다. 걷다 보니 학교 한 바퀴를 다 돌 기세였다. 그와 함께 걷는 학교는 좁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돌아다녔던 학교처럼.
“……근데, 어디 가는 거야?”
정신없이 도선우를 따라 걷기만 하던 김진서가 입을 연 것은, 그의 걸음이 차츰 담장 쪽으로 향하고 있었을 때였다. 도선우는 말없이 마스크를 착용한 뒤, 작은 눈구멍으로 김진서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도망갈 거야.”
“도망?”
도선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보았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둠에 덮여가는 하늘은 불길하고 스산했다.
“교장실에서 듣기로는…… 학교가 많이 위험한 상태인 것 같아. 그러니까 도망가야지.”
“……다른 애들은?”
“나라도 살아야 할 거 아니야.”
도선우는 그렇게 말하며 김진서를 기다려 주지도 않고 담장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그를 간신히 쫓았다. 도선우는 걸음이 빨랐다. 김진서는 평소에 그가 남들에게 걸음을 맞춰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만, 그럼 마스크는 뭐 하러─”
“담장에 마기가 돌아서, 마스크가 없으면 담을 못 넘거든.”
“……진짜 도망갈 거야?”
“그럼? 너는 여기 있을 거야?”
담장 앞에 선 도선우가 물었다. 담장은 높았지만, 그렇다고 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도선우라면 저 정도 담은 가볍게 넘고도 남을 것이었다.
주저하는 김진서를 향해 도선우가 재촉하듯 말을 걸었다.
“어떡할래?”
“……나는.”
“같이 도망가자, 그냥.”
“…….”
“내가 넘어가서, 담 너머로 마스크를 넘겨줄게. 그럼 너도 도망갈 수 있어.”
도선우가 김진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진서는 고개를 숙인 채 그 손을 잡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학교가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도망가자는 도선우의 말에서는 이상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는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서도 도망을 택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차라리 모두를 구하고 홀로 죽기를 택하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희생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김진서는 도선우가 조금은 이기적이기를 바랐고, 남의 목숨을 구하기보다 제 목숨 건사하는 걸 더 중요시하기를 바랐다.
허나 그걸 감안하고서도, 눈앞의 도선우에게서는 불쾌하고 낯선 감각이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진짜 도선우가 아닌 것 같았다.
“어떡할 거야. 빨리.”
재촉하듯 묻는 도선우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당장이라도 떠나버릴 것처럼 반쯤 몸을 돌린 그를 보자 초조함이 앞섰다. 그의 손을 덜컥 잡고, 이대로 함께 도망을 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오늘 오전 도선우에게 달려와 안겼던 정인아 박제가 떠올랐다. 박제의 몸에서는 피 대신 톱밥과 솜, 약품이 흘렀다.
김진서가 검을 들었다.
“……미안.”
“응? 뭐가 미안하다는─”
도선우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한 걸음 물러났다. 김진서는 그런 도선우를 향해 두 걸음 다가갔다.
푹.
입술을 깨문 김진서의 검이 도선우의 손바닥을 꿰뚫었다.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도선우 앞에서, 김진서는 거친 숨을 토했다. 심장이 당장이라도 몸 밖으로 뛰쳐나갈 것처럼 맹렬하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도선우를 박제라고 생각했다. 별다른 근거는 없었다. 언행과 성격이 평소와 조금 다르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김진서는 주저 없이 도선우의 손바닥에 칼을 꽂아 넣었다.
자신만은 도선우와 박제를 구분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너, 지금 뭐 하는……! 아아아악!”
“…….”
김진서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고통에 못 이겨 몸부림을 치는 도선우의 손바닥에서는 피 대신 톱밥이 흘렀다.
역시 박제였다. 진짜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잠깐이나마 저것을 진짜 도선우라 생각했던 자신이 초라하고 비참했다.
서걱!
꽂아 넣었던 검을 그대로 뽑아 도선우의 손바닥을 반으로 갈랐다.
후두둑, 톱밥이 바닥에 쏟아졌다. 그녀는 싸늘하고 차가운 눈으로 톱밥을 내려다보았고, 고개를 들어 박제의 눈을 응시했다. 박제의 눈빛에 떠오른 공포가 그녀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 공포 또한 거짓이었다. 김진서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칼자루를 쥐었다. 휘두른 칼날이 박제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서걱, 칼날을 막으려 들었던 박제의 왼쪽 손목이 잘렸다. 김진서는 힘을 더해 단칼에 박제의 목을 자르려 들었다.
“…….”
그러나, 칼날은 박제의 목 앞에서 멈추었다. 붉어진 눈시울로 박제를 응시하는 김진서의 어깨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아, 흑. 아파. 아파…… 제발, 왜. 왜 이러는 거야……!”
마스크의 작은 눈구멍 사이로 눈물을 흘리는 도선우의 얼굴이 보였다. 김진서는 저것이 박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 눈물이 거짓이라는 사실도. 김진서는 입술을 짓씹어 결의를 다지며 검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서걱…….
김진서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로 검을 몇 차례 더 휘둘렀다. 도끼질을 하듯. 마침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도선우의 목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검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너울너울 솟았다. 박제가 죽은 자리에 도선우의 옷과 방마 마스크가 남아 있었다.
김진서는 방마 마스크를 챙겨 품에 집어넣으며 비척비척 걷기 시작했다. 그녀의 걸음은 목적지가 없었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가 죽인 것은 도선우의 외모를 모방한 박제에 불과했지만, 하필이면 모방한 외모가 도선우라는 사실이 그녀를 괴롭게 만들었다.
눈물을 흘리며 처연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도선우의 모습이 환각처럼 눈앞에 떠돌고 있었다.
“……뭐…… 도망…….”
“……살려…… 무슨…….”
정처 없이 학교를 떠돌던 김진서 앞으로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공포에 질려 일그러진 얼굴로 뭐라 뭐라 외치고 있었다. 학교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소리는 귓가를 맴돌다 이내 흩어져 사라졌다.
툭.
도망치던 학생들과 어깨가 부딪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비틀비틀 걷는 그녀는 차라리 풀썩 주저앉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아까 도선우 박제를 만나, 검으로 목을 썰어 죽였다. 그렇다면 진짜 도선우는 어디 있는 걸까.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도선우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사탄교도가 납치를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실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교장실로 오라는 방송 자체가 함정이었고, 도선우는 그에 휘말려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도선우 박제는 이사장실에 있던 방마 마스크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도 살해당했을지 모른다.
“아…….”
머리가 아팠다. 걸음이 자꾸만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길을 잃은 것 같았다. 학교가 너무 넓었다.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의 비명으로도 메울 수 없을 만큼 빈 공간이 컸다.
쏴아아아…….
정신을 차리니 비가 오고 있었다. 교복과 머리카락이 비에 젖어 있었다. 살갗에 차갑고 서늘한 감촉이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납덩이를 매단 듯 걸음이 무거웠다. 의식이 몽롱했다.
키에에에엑─!!
그때,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거대한 마수가 운동장에 나타났다. 인간의 것도 아니고 동물의 것도 아닌, 난생처음 들어보는 기괴한 울음소리가 그녀의 의식을 깨웠다.
마수는 여섯의 다리로 도망치는 학생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도망쳤다. 그 탓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도망치는 학생들 중 도선우가 있을지 모르는데, 마수 탓에 찾을 수가 없었다.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갑작스레 닥친 생명의 위협이 그녀의 몸에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걸음은 마수에게로 향하는 중이었다.
“제발 좀, 꺼져…….”
김진서가 중얼거리며 마수를 향해 나아갔다. 마수가 여섯 개의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더럽고 거친 이빨을 드러냈다.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갈 것처럼 맹렬하게 뛰었다. 걸음마다 운동장 바닥이 푹푹 내려앉았다. 몸이 지면 아래로 침몰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수가 달려왔다. 그녀는 검을 들었다. 마수는 머리가 세 개였다. 단칼에 세 개의 머리를 베어버릴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녀가 노린 것은 가운데에 달린 머리였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가장 베기 편해 보이는 머리를 골랐을 뿐이었다.
키에에에에엑─!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마수를 향해, 김진서는 검을 휘둘렀다.
꽈앙─!
그 순간, 내리친 빛이 그녀의 눈을 잠깐 멀게 만들었다. 시야는 하얗게 밝아졌다가 이내 정상으로 돌아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녀의 앞에, 마수는 쓰러져 있었다.
낙뢰에 의해 가운데 머리가 완전히 박살이 난 채로.
키엑, 키에엑…….
마수가 고통에 신음했다.
파직, 마수의 몸이 벌떡거리며 스파크가 꿈틀거리듯 튀겼다. 그 위로 다시 낙뢰가 떨어졌다. 마수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었다. 재가 되어버린 마수의 몸이 비에 녹아 바닥을 검게 적셨다.
쩌엉─!
끝이 아니었다. 또다시 낙뢰가 떨어졌다. 빛이 마수의 배를 갈랐다.
어쩐지 아이덴 동산에서 새 마수에게 포위되었을 때와 상황이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도선우가 있었고 지금은 도선우가 없다는 것이었다. 김진서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가 어딘가에서 몰래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딨는 거야…….”
그러나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자신을 보고 있으리라는 생각도 착각에 불과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그저 도선우가 자신을 보고 있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뒤통수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톡, 토독.
머리카락을 타고 빗방울이 흘러내렸다.
키에엑, 키엑…….
그때, 마수가 힘없는 괴성을 내질렀다.
터진 배에서 흘러나온 내장이 연기가 되었다. 연기는 하늘로 솟구치는가 싶더니, 기세를 바꿔 바닥에 내려앉았다. 검은 연기가 학생들의 몸을 휘감았다.
그 모습을 본 김진서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검을 고쳐 들었다. 미약하나마 남아 있는 마수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릴 생각이었다.
키에엑…… 켁!
그러나 마수의 숨은 끝내 완전히 멎었다. 단말마와 함께 마수의 아가리에서 뭔가가 쏟아져 나왔다. 위액과 침으로 범벅이 된 그것은 검과 금이었다.
“그, 금이다. 금이다……!”
“진짜 금이야? 진짜?”
“진짜 금일 거야! 보스 처치 보상 같은 거잖아! 마수한테 나온 금이잖아!”
마수의 내장에서 나온 연기를 들이마신 학생들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연기를 마시지 않은 학생들도 금이라는 말에 관심을 보이고는 마수의 사체를 향해 주춤주춤 다가왔다. 금을 경계하고, 금으로부터 멀어지려 하는 것은 김진서 하나였다.
“봐, 진짜 금이잖아! 이거 팔면…….”
“야! 그건 내 거잖아!”
“이게 왜 네 거야? 병신 같은 새끼가, 금 보더니 눈깔도 돌아버렸나…….”
마수의 내장은 끊임없이 검은 연기를 토하고 있었다. 연기를 들이마신 학생들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