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29
제129화
꺄아악, 아, 아악……!
복도로부터 비명이 들렸다. 비명은 끊어지고 바스러지며 신음이 되었다. 쨍그랑, 쾅, 쿵…… 유리가 부서지고 뭔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도 났다. 짓이겨진 비명이 복도를 계속 울리고 있었다.
교내에 송출된 대피령을 듣고 교실을 나섰다가, 오보라는 말을 듣고 다시 교실로 돌아가던 김라희와 성하연의 얼굴이 굳었다.
“이거 뭐, 무슨, 뭐, 뭔 소리냐.”
김라희가 말을 더듬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성하연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박제가 출현했다는 게 사실인 거 아닐까요……?”
“에이, 야. 뭐 그런 불길한 소리를…….”
성하연이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1학년 학생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건물을 우르르 빠져나오고 있었다. 일전에 도시 하나를 공포에 떨게 한 박제가 출현했다는 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한 것 같았다.
“대피를…… 해야 되나? 아니, 근데 아까 뭐, 박제 출현은 오보라고 그러지 않았어?”
“그게 역으로 거짓말일 수도 있지 않나요? 두 번째 방송은 분위기가 좀 이상했으니까…….”
“그럼 뭘 믿어야 돼? 도대체 뭐가 뭔지…….”
“일단은…… 처음 방송을 믿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이럴 때는 일단 대피를 하고 보는 게 상책이었다. 대피를 안 했다가 사건에 휘말리면 피해를 보는 것은 본인이었다. 대피를 해놓고 보니 막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었다면, 그래도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성하연은 빠른 판단하에 김라희를 이끌고 건물을 나가려 했다.
걸음을 서두르던 둘은 층계에 다다라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성하연은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눈동자가 떨리는 것까지 숨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한 여자가 두 사람을 번갈아 응시하며 인사했다. 머리가 아주 짧고, 전체적으로 시원시원한 인상의 여자였다. 말투는 쾌활했고 표정도 그러했다. 미소와 함께 드러난 이가 하얗고 정갈했다. 여자는 바닥을 기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아니, ‘굴러서’ 다가왔다.
여자는 목 아래로 몸이 없었고 머리만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그리로 굴러갑니다!”
“아, 우. 야, 뭐…….”
“어? 아니, 어, 안 와도 돼요. 아니, 오지 마세요……!”
다가오는 머리를 피해 김라희와 성하연이 주춤주춤 뒷걸음을 쳤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뒤돌아 도망을 치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쭙잖게 도망을 치려다가 그대로 무릎이 접혀 주저앉게 될 것 같았다.
“도망가지 마세요! 나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개, 개소리.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김라희가 외쳤다. 머리가 얼굴을 찡그리듯 과장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니라니까요! 곧 친구들도 옵니다!”
“친구들……?”
타다다다다다.
성하연의 의문을 토하던 도중, 계단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거대한 벌레가 수십 개의 다리로 빠르게 기어오는 듯한 소리였다.
머리의 ‘친구’들은 순식간에 계단을 타고 올라와 성하연과 김라희 앞에 섰다.
“상반신입니다!”
“하반신입니다!”
머리의 친구는 둘이었다. 각각 상반신과 하반신이었다. 상반신의 입은 명치에 달려 있었고 하반신의 입은 사타구니에 달려 있었다. 상반신은 팔로 바닥을 짚으며 이동했고, 하반신은 다리로 걸었다.
머리, 상반신, 하반신. 셋이 성하연과 김라희를 쳐다보았다.
상반신과 하반신은 눈이 없었지만, 성하연은 그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고 느꼈다. 공포로 몸이 떨렸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조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너무 떨지 마세요!”
그때, 머리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입을 열었다.
“퀴즈만 통과하면 전부 보내드릴 거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퀴즈!”
“퀴즈! 퀴즈!”
하반신이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며 폴짝폴짝 뛰었다. 상반신이 팔로 땅을 짚고 공중에서 팔 굽혀 펴기를 했다. 머리가 데굴데굴 굴렀다.
그쯤에서 성하연은 생각을 그만두었다. 이 이상 의식을 붙잡고 있으면 그대로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머리가 구르기를 멈추고 입을 열었다.
“처음은 제 기준, 오른쪽에 계신 분!”
“나, 나요?”
김라희가 당황하여 주춤 뒷걸음을 쳤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관절을 굽혔다 폈다 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머리가 미소를 지으며 김라희에게 다가오더니, 그녀의 발치를 빙글빙글 돌며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네! 너요! 문제 들어갑니다! 다음 중,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요?”
“소돔으로부터 도망쳐 나오던 롯의 딸 중 하나는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
상반신이 말했다.
“소돔으로부터 무사히 도망쳐 나온 롯의 두 딸은 대를 잇기 위해 아버지의 씨를 받았다!”
하반신이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김라희의 표정이 굳었다.
“아니, 아직 거기는 공부 안 했는데……!”
“빨리 답하세요! 생각할 시간 10초 드립니다! 10!”
머리가 김라희의 발치를 데굴데굴 구르며 재촉했다. 김라희가 입을 가린 채 고민하듯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힐끗 성하연을 쳐다보았다. 성하연은 여전히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9!”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김라희가 머리를 굴렸다. 일단 상반신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롯의 가족 중 하나가 도망치던 도중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났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8!”
다음은 하반신의 말을 곱씹었다.
롯의 두 딸이 대를 잇기 위해 아버지의 씨를 받았다……. 롯은 나름 의인 아니었나? 근데 그따위 짓을 했다고? 말이 되나?
“7!”
“…….”
둘 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김라희는 평소 성서 공부를 소홀히 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 와중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그냥 찍을까? 어차피 확률은 50%니까. 아니, 그랬다가 만약 틀리면? 틀렸다가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고?
“하연아.”
고민하던 김라희는 손바닥으로 입을 가린 채, 성하연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성하연의 눈에 비로소 초점이 돌아왔다.
김라희가 눈빛으로 성하연에게 신호를 보냈다. 김라희의 눈빛에 담긴 저의를 알아챈 성하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답은 상반신이에요. 소금이 된 건 딸이 아니라 아내니까.”
“아니, 그거 말고.”
김라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성하연에게 답을 알려 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설령 정답을 맞힌다고 해도, 저것들이 순순히 보내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차라리 성하연에게 축복을 받아 머리, 상반신, 하반신을 전부 제압하고 건물을 탈출하는 편이 나았다.
성하연은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고 힘이 없어서 축복을 받아도 큰 의미가 없었다. 김라희도 몸이 약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성하연보다는 나았다. 성하연에게 축복을 받아 싸우면 어찌어찌 이길 수는 있을 것이었다.
저 박제들은 셋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몸을 세 조각으로 분할한 것에 불과했다. 1:3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1이나 다름없었다.
“……나한테 축복을 써. 전투에 쓸 만한 건 뭐든 좋으─”
빠각!
그러한 생각으로 성하연에게 작전을 하달하던 김라희의 턱에 발차기가 날아왔다. 하반신이 날린 발차기였다.
“정답만 맞히면 되는데, 왜 자꾸 딴 얘기를 하세요! 하여튼 항상 보면 그 입이 문제야!”
퍽.
머리가 쓰러진 김라희의 입에 박치기를 했다.
“입이 문제야! 입이!”
빠각.
이어서 상반신이 그녀의 입에 주먹을 마구 꽂아 넣었다.
“입!”
콰직.
하반신이 발로 그녀의 입을 밟았다. 이빨 몇 개가 부러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터진 입술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김라희의 얼굴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벽에 몸을 기댄 채 입을 뻐끔거리는 그녀를 향해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3초!”
“아, 카학, 하…….”
“아쉽게도 ‘하’는 정답이 아니네요! 다시 한번 기회 드립니다! 상반신과 하반신 중 하나를 골라주세요!”
“…….”
“모르면 찍으세요! 어차피 50% 아닙니까! 2초!”
박제에게 얻어맞아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김라희는 끝끝내 정신줄을 붙잡았다.
성하연의 말에 따르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상반신이었다. 상반신이라고 말하면 된다. 상반신이라고 말하면, 되는데…….
“하, 아……. 하, 아악……!”
이가 부러지고 입술은 터졌다. 말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발음이 새서 상반신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눈물이 흘렀다. 답을 아는데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억울했고, 답을 맞히지 못해서 찾아올 후폭풍이 두려웠다.
“저런…… 결국 정답을 맞히지 못하셨네요…….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어요!”
“…….”
“하얀 머리 학생이 정답을 맞히면 두 분 다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기회 흔치 않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김라희를 뒤로한 채, 머리가 성하연을 향해 다가왔다. 성하연은 더 이상 뒷걸음을 칠 힘조차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인 김라희가 맞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박제들의 움직임은 민첩하고 강했다. 내가 나섰더라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무기력을 정당화했다.
그러는 동안 머리는 성하연의 발치에 다가와, 그녀를 중심으로 데굴데굴 원을 그리고 있었다.
“자, 바로 문제 들어갑니다! 상반신과 하반신 중에 거짓말을 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구요!”
“하반신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
상반신이 말했다.
“상반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하반신이 말했다. 머리가 신이 난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바닥을 굴렀다.
“똑같이 10초 드리겠습니다! 아, 이번 문제는 조금 어려우니 15초로 할까요? 어때요?”
“……뭔 상관이야.”
“네?”
머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김라희가 벽에 몸을 기댄 채 피에 젖은 눈동자로 성하연을 응시하고 있었다. 벌어지지 않는 입으로 그녀는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
‘맞혀’…… ‘그냥 맞혀’……. 김라희의 입 모양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성하연은 고개를 숙인 채 손톱을 깨물어 눈물을 억눌렀다. 공포와 더불어 문제를 맞혀야 한다는 중압감이 더해지고 있었다.
손톱을 깨물다 사라지면 손가락을 씹었다. 손끝에서 피가 났다. 입에 피비린내가 감돌 무렵, 성하연은 손가락 씹기를 그만두고 입을 열었다.
“10초든, 15초든, 상관없는 문제잖아요…….”
“네? 왜 똑같나요? 무려 5초나 더 드리는 건데요?”
머리가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머리를 발로 뻥 차서 터트려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조차 없었다.
성하연은 땅에 머리를 박을 기세로 고개를 계속해서 숙이며 입을 열었다.
“둘 다, 거짓말이…… 아니니까요.”
“네? 그럼 둘 다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건가요?”
“아니,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니고…….”
“그래서 정답이 뭔가요? 저는 그것만 들으면 됩니다!”
“답은, ‘없다’……예요. 이유는……하나를 부정하면, 다른 하나도 부정이 되고…….”
“저는 양비론자를 싫어합니다! 하나만 골라서 말하세요!”
“무, 무슨. 둘 다 정답이 아닌데, 어떻게…….”
그때, 성하연의 발치를 구르던 머리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머리가 싸늘한 무표정으로 성하연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머리의 눈썹과 눈과 코와 입이 꿈틀꿈틀 움직였다. 사람의 얼굴 근육으로 가능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머리는 화가 잔뜩 난 듯 얼굴을 붉히며 고함을 질렀다.
“하나만 골라! 하나만 고르라고!”
“그런 억지가……!”
“너희도 똑같잖아! 너희도 하나만 고르게 했잖아!”
머리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성하연에게 폴짝폴짝 뛰어왔다.
그러고는 머리와 함께 성하연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불타는 마녀 주위를 돌며 춤추는 이단 심문관처럼, 그들은 춤을 추며 절규했다.
“마녀냐고 묻고 마녀가 아니냐고 묻고 마녀라고 하면 죽이고 마녀가 아니라고 해도 죽였으니 둘 모두 정답이었고 둘 모두 정답이 아니었어. 나는 그중 하나를 골라야 했어.”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어. 너희는 그냥 불을 지르는 게 좋았잖아. 마녀라고 해도 죽일 거고 마녀가 아니라고 해도 죽일 거잖아.”
“나는 원래 머리가 길었는데, 너희가 그걸 자르고 토막 내서 불태웠어. 나는 원래 머리가 길었는데…….”
다그닥, 구르르르, 다그닥.
상반신과 하반신이 땅을 두드렸다. 머리가 데굴데굴 굴렀다. 이빨이 바닥에 부딪히며 빠직, 빠직 소리를 냈다.
성하연이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그녀를 중심으로 박제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았다. 그러면서 마녀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마녀사냥은 까마득히 옛날에 있던 일이다. 성하연은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다. 부두교와의 성전이 발발했을 때도 그녀는 너무 어렸다.
아무것도 아는 게 없던 시절, 폭풍처럼 스쳐 간 성전은 이제 더 이상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은 옛날 얘기에 불과했다.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요! 그, 그건 내 탓이…….”
성하연이 악을 쓰며 외쳤다. 눈앞이 흐릿했다. 자신을 돌며 춤추는 세 덩이 박제들이 눈앞에 교차로 나타나고 있었다. 박제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일제히 입을 열었다.
“나도 잘못한 게 없었어!”
“나도, 나도……!”
그들의 소리는 사방에서 들렸다. 소리가 빙글빙글 귓가를 돌았다.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식은땀이 마구 흘렀다. 나중에는 박제가 자신 주변을 도는 건지, 아니면 그저 자신이 돌고 있는 것인지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쿠르릉─!
천둥이 울었다. 창문 너머로 섬광이 번쩍거렸다.
왈칵 코피가 쏟아져 나왔다. 성하연은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머리와 상반신과 하반신의 목소리는 귀를 막은 손바닥을 뚫고 들려왔다. 그들의 목소리는 귀가 아니라 머리를 통해 들리는 것처럼 여전히 선명하고 또렷했다. 코피가 계속 나왔다. 바닥에 핏방울이 떨어졌다.
“대답해! 거짓말을 하는 건 누구─”
쨍그랑!
그때, 유리가 깨졌다. 깨진 유리창을 타고 칼바람이 몰아쳤다. 바람은 강했으나, 결코 과하지는 않았다.
바람이 살갗을 파고들어 성하연의 몸 곳곳에 밴 식은땀을 말려주었다. 어쩐지 친절한 바람이었다. 박제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성하연이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는 바람과 함께 나타났다. 드세고 날카롭던 바람이 도선우 주위에서 부드럽고 산뜻하게 잦아들고 있었다.
“머리.”
콰직!
도선우가 말했다. 그러고는 성하연 주위를 돌던 머리를 발로 찼다. 머리가 벽에 부딪혀 터졌다. 도선우는 그 모습을 지극히 차가운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성하연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차갑고 멍한 눈은, 어릴 적 자신의 팔을 자르려 했던 사냥꾼들과 닮아 있었다.
머리가 터지자, 상반신과 하반신은 덩달아 힘을 잃고 그 자리에 축 늘어졌다. 도선우는 비에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와중에도 아랑곳 않고 성하연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을 거칠게 잡아 들었다. 손바닥에 보기 흉한 흉터가 남아 있었다. 주먹을 쥐어 가리려고 했지만 그는 그렇게 두지 않았다.
도선우는 성하연의 손바닥을 억지로 펼쳤다. 성하연의 흉터와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이거 누구한테 보여줬어.”
“뭐, 뭘 누구한테 보여줘요……?”
성하연이 몸을 뒤로 빼며 되물었다. 도선우가 성하연의 눈을 또렷이 응시하며 재차 물었다.
“이거, 흉터. 나 말고 누구한테 보여줬냐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강한 집착이 담겨 있었다. 무섭지만 묘한 눈빛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