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30
제130화
성하연에게 가는 길은 험난했다. 바데의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나뭇잎에 몇 번이나 베였고, 잔가지에 눈을 찔리기도 했다. 상처가 깊지는 않았지만 아팠다. 아침에 강지아가 준 약 때문인지 쓸데없이 많이 아팠다.
게다가 마땅히 들어갈 통로가 없었고, 상황이 급박해서 그냥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다. 몸을 웅크리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유리 조각이 몸 곳곳에 박혔다. 이것도 쓸데없이 많이 아팠다.
옷에 묻은 유리 조각을 털어내며 고통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무렵, 이상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 으…….”
첫째로 피투성이가 되어 벽에 몸을 기댄 채 쓰러진…… 여학생. 성하연이 늘 옆에 끼고 다니는 아이인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났다. 그 옆에 성하연이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었다. 그녀 주위로 박제들이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뛰놀았다.
박제는 세 구였다. 상반신과 하반신, 그리고.
“머리.”
[머리의 말을 믿지 마라.]머리를 보자마자 바론 삼디의 예언이 떠올랐다. 성하연을 중심으로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저 머리가, 바론 삼디가 말한 머리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바론 삼디의 예언을 되새겼다.
오늘 그는 비명과 울부짖음을 경계하라고 말했다. 신성 훈련장에서 비명이 울려 퍼지자, 소도진이 사라졌고 박제가 나타났다.
이어서 머리의 말을 믿지 말라고 말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머리가 말을 하게 두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콰직!
그래서 일단 발로 차서 터트렸다. 머리가 터지자 상반신과 하반신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머리부터 노린 것이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일이 더 복잡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성하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아 들어 펼쳤다. 흉터는 그 자리에 있었다.
“이거 누구한테 보여줬어.”
“뭐, 뭘 누구한테 보여줘요……?”
성하연이 멍청하게 되물었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박제에게 무슨 짓을 당한 건지는 몰라도 충격을 크게 받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의 사정을 봐줄 때가 아니었다.
“이거, 흉터. 나 말고 누구한테 보여줬냐고.”
재차 물었다. 성하연은 고민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멍을 때리는 건지 모를 얼굴로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답답해서 한번 물으려고 하자, 그제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 없어요.”
“없어? 그럴 리가 없는데?”
“라희는 아는데, 다른 애들은…….”
아, 쓰러진 애 이름이 김라희구나. 깨달음과 함께 흘깃 김라희를 보았다.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입으로 겨우겨우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상태가 아주 위독한 것 같지는 않지만, 출혈이 컸다. 성하연에게 정보를 좀 캔 다음, 복원을 해주든 치유를 해주든 해야 할 것 같았다.
“오늘 계속 쟤랑 같이 있었어?”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김라희를 뒤로하고 물었다.
“아마도…….”
“확실하게 말해.”
“아, 네. 네, 계속 같이 있었어요…….”
성하연이 어깨를 바들바들 떨며 뒷걸음을 쳤다. 그녀는 내가 입을 열 때마다 지레 겁을 먹은 듯 자꾸만 내게서 멀어지려 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붙잡아 끌며 입을 열었다.
“네가 어제 결석했나?”
“네? 네. 어? 어떻게…….”
왠지 그럴 것 같아서 떠봤는데, 역시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틀 전, 손에 흉터가 생긴 다음 날 그녀는 병원을 다녀온다는 구실로 결석했다.
그녀의 손바닥에 난 흉터는 불과 이틀 전에 생긴 것이다. 성하연의 말에 따르면, 흉터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나를 제외하면 김라희가 전부. 어제 결석까지 했으니, 다른 사람이 우연히 그녀의 손에 흉터가 생겼다는 사실을 보았을 가능성도 적다.
그러나 김라희는 정인아와 접점이 없다.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김라희가 사탄교도일 가능성은 없다.
“…….”
그럼 도대체 누구지?
오늘 아침 정인아를 만났고, 그러나 최근 김진서를 만난 적은 없으며, 성하연에 손바닥에 흉터가 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다. 충분히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하는 것 같았다.
“……아, 하나 더 있어요.”
그때, 성하연이 입을 열었다.
“누구.”
“남잔데…… 괜찮아요?”
“뭔 상관이야?”
나는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윽박을 지르고 싶었지만 또 겁을 먹고 뒷걸음을 칠 것 같아서 참았다. 그리고 그녀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성하연은 한참 뜸을 들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어제 집에 사람이 하나 찾아와서…….”
성하연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우물쭈물 말을 이었다. 이야기는 어제, 그녀의 손에 흉터가 생긴 다음 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 * *
피렌체의 정문은 꽃으로 가득하다. 졸업생들이 학교를 떠나면서 관례적으로 심었던 꽃들은 신입생들이 들어오는 봄에 만개한다.
꽃들이 봄바람에 흔들리며 신입생들을 반기면 교사들은 비로소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머물고 떠나 각자의 길을 걷는 졸업생들을 보며 느꼈던 시원섭섭한 감정을 곱씹고는 했다.
그랬던 꽃들이 전부 피로 물들었다. 형형색색의 빛깔을 뽐내던 꽃들이 전부 붉게 물들었다. 피는 진득해서 비로 씻어지지 않았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고개를 기웃기웃 흔드는 꽃들의 모습이 섬뜩했다.
그토록 성기사와 용병의 싸움은 치열했다.
“……무기를 다룰 줄 모르시오?”
남자가 한대호를 향해 쇠스랑을 겨누며 물었다. 한대호는 남자와의 전투 도중 날아온 쇠공에 맞아 늑골이 부러졌고, 허벅다리에는 투창에 뚫린 관통상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진작 죽었을 부상에도 한대호는 서 있었다. 성기사는 용병 앞에서 자세를 굽히지 않는다는 고집이었다. 한대호는 스스로 그것을 긍지라 칭했지만, 남자가 보기에는 그저 비합리적인 고집에 불과했다.
“용병 새끼들 쫓아내는 데 무기까지 들 필요가 있냐?”
한대호가 남자를 응시했다. 눈동자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개개인의 무능함을 훈련과 장비로 무마하려 했던 모양인데……. 뜻대로 되지 않아서 아쉽겠소.”
“닥쳐. 그 이상 말하면 입을 찢어 버리겠다.”
“차라리 부하가 들고 있던 장비를 그쪽이 들었다면 승패가 바뀌었을 거요.”
남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부하 성기사들은 일찍이 의식을 잃었거나, 부상으로 전투 불능 상태였다. 용병 중에서도 크게 부상을 입은 자들이 몇몇 있었지만, 성기사들에 비하면 그 수가 현저히 적었다.
그간 동부성기사단은 훈련을 통해 전투력을 높였다. 훈련은 제법 성과가 있었고, 흩어지면 죽고 뭉쳐도 죽었던 오합지졸들을 그나마 뭉치면 살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동부성기사단은 까마귀 용병단에게 참패를 당했다. 까마귀 용병단이 떠도는 소문과 악명보다 강했던 탓이었다. 그들은 축복 대신 이상한 약물을 전투 도중 제 팔이나 허벅지에 꽂으며 싸웠다.
“죽이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할 것 없소.”
남자가 쇠스랑을 들며 말했다. ‘어느 누구도 교문을 통해 나가거나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라는 의뢰를 받은 까마귀 용병단은 성기사들을 죽이지 않았다. 그들은 의뢰를 받은 그대로를 행할 뿐, 필요 이상의 살인은 결코 저지르지 않았다.
그것이 한대호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한낱 용병단과의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것도 모자라, 그들의 관용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셈이 되었으니 성기사로서는 이보다 더한 치욕이 없었던 것이다.
“안 죽인다는 새끼가 그건 왜 들고 있어?”
“그쪽은 지금 틈을 노려 나를 기습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소?”
“어떻게 알았냐?”
“직감이오.”
“맹인들은 다 직감이 좋나?”
“그렇지 않은 맹인들은 전부 죽었소.”
남자가 웃었다. 미소에 체념이 담겨 있었다.
한대호는 구부정한 채로 펴지지 않는 무릎을 억지로 펴서 일어났다. 무릎에서 덜걱, 이상한 소리가 나며 통증이 전신으로 퍼졌다.
전부터 안 좋아지기 시작한 무릎이 또 말썽이었다. 고통에 못 이겨 주저앉고 있을 때가 아니었으므로 한대호는 애써 고통을 무시했다.
“그대로 쓰러져 계시는 편이 나을 것이오.”
“좆 까.”
“무리하면 불구가 될 수도 있소.”
“용병님이 걱정을 다 해주시니 성은이 망극하네.”
한대호가 비아냥거리며 눈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피로 반쯤 가려진 시선으로 남자를 노려보며 주먹을 들었다.
혼신을 다해 뻗은 주먹은 느릿하게 남자를 향해 나아가다가, 이내 내려앉았다. 더 이상 남자를 공격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는 몸을 바닥을 짚어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콰직!
“크, 아악……!”
그 찰나의 순간, 남자는 한대호의 손등 위로 쇠스랑을 내리찍었다. 한대호의 손이 지면에 박혔다.
남자는 쇠스랑을 잘근잘근 즈려밟으며 한대호의 손을 땅에 단단히 고정했다. 쇠스랑이 움직일 때마다 한대호가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이거 뽑아. 이 씨, X 새끼야…….”
“뽑으면 내가 죽으니, 그럴 수는 없소.”
한대호는 손을 뽑아내려 했지만 손은 지면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악을 쓰는 한대호를 희멀건 눈동자로 응시하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상태도 한대호 못지않게 심각했다. 외적으로는 눈에 띄는 부상은 없었지만, 한대호에게 얻어맞은 복부에서부터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통증이 일고 있었다. 장기가 파손된 것 같았다. 한대호는 그러는 와중에도 지면에 박힌 손을 뽑아내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단념하시오.”
그런 노력을 비웃듯 남자가 말했다.
“닥쳐.”
한대호는 핏발이 성성한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덜컥, 덜컥, 덜컥…….
그리고 다시 쇠스랑에 박힌 손을 빼내려 했다.
설령 쇠스랑에 박힌 손을 뽑아낸다 한들 할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다. 한대호의 몸 상태는 이미 처참했다. 전투를 하기에는 부상이 너무 과했다. 그럼에도 한대호는 어떻게든 쇠스랑에 박힌 손을 빼내려 했고, 다시 일어나 싸우려고 했다.
죽거나 어디 하나 불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끝까지 싸울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긍지를 지키겠다는 일념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한대호를 지켜보던 남자가 가는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 이상 움직이면 앞으로 평생 손을─”
쑤욱!
걱정하듯 비아냥거리던 남자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한대호가 기어코 지면에 박힌 손을 뽑아낸 것이었다. 덜그럭, 쇠스랑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와 함께 한대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육중한 몸에서 축복과 치유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한대호만이 아니었다.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거나 쓰러졌던 성기사들 모두에게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신성력으로 그려진 거대한 원이 하늘에 수십 개 떠올라 있었다. 빛이 그들을 휘감으며 성기사들의 몸 곳곳에 나 있던 상처는 치유되었다. 팔과 다리에 새로운 힘이 차올랐다. 혼탁하고 흐렸던 정신이 맑아지고 있었다.
성기사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숭고한 빛이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힘을 부여했다. 기적이라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을 그 광경에, 용병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서렸고 성기사들의 눈빛에는 광기가 서렸다.
“……아도나이께서 우리를 보고 계신다.”
한대호는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중얼거렸다.
“아도나이께서 우리를 보고 계신다! 일어나라! 아도나이의 이름으로!”
중얼거림은 외침이 되었다. 한대호의 외침마다 성기사들의 얼굴에 맺힌 비와 피가 떨렸다.
성기사들은 놓쳤던 무기를 들고 흐트러진 대열을 정비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숭고한 빛을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눈물을 흘리며 그들은 외쳤다.
“아도나이의 왕국을 위하여!”
“아도나이의 이름으로!”
“아도나이의 왕국을 위하여!”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용병들에게 다가가는 그들의 얼굴은 신앙에 젖어 있었다.
파죽지세로 성기사들을 물리치던 용병들이 두려움에 찬 시선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뒷걸음을 쳤다. 성기사들의 눈에 담긴 것은 신념이자 신앙이었으나, 용병들이 보기에는 그저 집단적 광기에 취한 광견들이었다.
“……완전히 미친놈들이군.”
남자가 중얼거렸다. 한대호가 성큼성큼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남자가 희멀건 눈동자로 한대호를 올려다보았다. 한대호가 주먹을 쥐고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빛에 휘감긴 그의 주먹은 크고 묵직해 보였다.
“걱정 마라. 죽이지는 않을 거야.”
빠각!
한대호의 주먹이 남자의 턱을 후려쳤다. 남자가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발 빠른 정찰조가 나무 위에 포진해 있던 투창병과 새총사를 제압했다. 축복의 빛을 몸에 감은 정찰조에 의해 투창병과 새총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사격조는 고무탄이 장전되지 않은 총을 그대로 휘둘러 용병들의 머리를 가격했다. 용병들의 손에 들려 있던 낫과 몽둥이가 바닥을 굴렀다.
불현듯 쏟아진 빛으로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정찰조가 쓰러진 용병들에게 수갑을 채웠고 사격조는 고무탄을 장전한 뒤 아직 포박되지 않은 용병들을 겨눴다.
“오희진! 구조대에 지원 요청했나?”
“예, 곧 올 겁니다!”
왜애애애앵─!
타이밍 좋게 성기사단 차량이 도착했다. 차량에서 구조대가 물밀듯 쏟아져 나왔다. 돌격조는 제압된 용병들을 차에 실었고, 구조대는 하늘에서 쏟아진 빛으로도 미처 치유되지 못한 부상자들을 차에 실었다.
성기사들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했다. 전투에서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한대호의 훈련이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단장님! 여기……!”
병자들을 실어 나르던 구조대원 하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한대호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구조대원에게 다가갔다.
중년에 접어든 남자가 무릎을 꿇어앉은 채 피를 토하고 있었다. 코피가 났고 피눈물이 흘렀다. 남자의 이목구비 중에서 피가 흐르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남자의 눈, 코, 입, 귀에서 전부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사장님!”
중년의 남자는 김창원이었다. 그는 대주교급 사제로서 중앙사제단의 단장직을 맡기도 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김창원의 손끝에서 미처 사용되지 못한 신성력이 빛을 토하며 사그라지고 있었다.
전투 도중 하늘에서 쏟아졌던 빛이 김창원이 그려낸 축복진과 치유진이었다는 사실을 한대호는 뒤늦게 깨달았다.
“쿨럭, 커흐으…….”
“구조대! 응급처치 가능한 인원 집결하라! 상태가 위독한 환자가 있다!”
“아, 니야. 괜찮네, 나는 괜찮아. 학생들, 병원. 병원부터……!”
“예, 알겠습니다! 괜찮으니 뒤는 맡기십시오!”
김창원이 피를 쏟으며 말했다. 한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보다 학생과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우선적으로 챙기라는 말이었다. 구조대원 두 명이 달려와 김창원을 차에 실었고, 차는 곧장 병원으로 출발했다.
김창원은 신성력을 과다 사용하였을 때의 부작용이 남들보다 훨씬 큰 체질이었다. 중앙사제단의 단장직을 내려놓게 된 것도 이 빌어먹을 체질 때문이었다. 차에 실려 병원으로 떠나는 김창원은 끝까지 학교를 지키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자기혐오에 젖었다.
용병 체포와 부상자 수습을 얼추 끝낸 뒤, 한대호는 피렌체를 보았다. 본관의 높게 솟은 첨탑 위로 시꺼먼 먹구름이 떠다녔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 번개가 산발했다. 피렌체는 빛 아래에서 찬란했으나 어둠 아래에서 스산했다.
“구조대는 병원으로 가라. 정찰조는 담장을 수색하며 발견한 부상자를 교문으로 이송해라. 담장에 도는 마기에 중독된 인원이 있을 수 있다. 사격조는 구조대를 엄호하고, 돌격조는 나와 함께 간다.”
한대호의 지시에 성기사들이 대열을 갖추었다. 그들의 눈동자에 서린 두려움 사이로 엿보이는 자그마한 빛은 결의였다. 모든 성기사의 결의가 한대호를 향할 때, 한대호는 입을 열었다.
“앞으로.”
* * *
“소도진.”
김복동이 말했다. 아니, 김복동의 모양을 한 박제가 말했다. 쓰러진 박제를 내려다보며 검을 치켜든 소도진의 입가에는 피와 미소가 맺혀 있었다. 체념과 비통에 잠긴 미소는 핏방울과 함께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소도진. 내가 잘못했다. 살려줘.”
“‘살려줘’라……. 하하…….”
애절하게 말하는 박제의 목소리는 김복동의 목소리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았다. 음의 높낮이나 톤, 말투에 이르기까지 전부. 그러나 그 말의 내용이 달랐다.
소도진은 검을 들어, 쓰러진 박제의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콰직!
박제의 머리통에 구멍이 뚫렸다.
솟구친 톱밥이 소도진의 얼굴에 뿌려지고, 균열 틈으로 솜이 비죽 튀어나와 흘렀다. 오랜 친우와 똑 닮은 박제를 죽인 소도진의 표정은 태연했다.
박제의 머리통을 찌르고 쑤시는 동안, 소도진은 불쾌하기보다 분노를 느꼈다.
“따라 할 거면 제대로 하든가, 병신 같은 새끼가…….”
김복동은 바보 같을 정도로 자비심이 많지만, 적에게 목숨을 구걸하진 않는다. 그는 아마 죽는 순간까지 아도나이의 이름을 외치며 저항을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박제는 적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패배가 정해진 순간 저항을 포기했다.
소도진은 박제와 김복동을 동일시하지 않았다. 적에게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한낱 모조품에 불과한 박제와 김복동을 동일시할 수는 없었다. 김복동의 탈을 쓴 박제였기에, 소도진은 오히려 더 망설임 없이 검을 내리찍어 박제를 죽였다.
“보라, 형제자매들아…….”
푸각!
소도진은 박제의 머리에 박힌 검을 거칠게 뽑아내며 중얼거렸다. 김복동이 즐겨 부르던 성가였다. 소도진은 음정도 모르고 가사도 제대로 몰랐지만, 생각나는 대로 가사를 뱉으며 성가를 읊었다. 그러지 않으면 곧장 의식을 잃고 쓰러져 버릴 것 같았다.
“천상의 왕, 영광의 왕.”
올려다본 천장에는 흑마법진이 사라져 있었다. 쏟아져 나온 모든 마수와 악마종을 베어버린 덕이었다. 사방에 박제와 악마종의 시체가 가득했다.
소도진의 손가락은 여전히 잘려 있었고, 검을 쥐기 위해 맸던 붕대는 피로 흥건했다. 걸음은 절룩거렸다. 왼쪽, 오른쪽 발목이 모두 박살 난 것 같았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에 찌릿한 통증이 일었다. 늑골이 부서졌는지도 모른다.
“후, 후…….”
숨을 가다듬으며 신성 훈련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프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죽을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검을 쥘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다면, 사탄교도를 죽이는 것도 가능했다.
– 그래, 뺑이 쳐라. 수고.
까득.
소도진은 떨기나무 가지 너머로 들려오던 사탄교도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어금니를 맞물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누구의 목소리였지? 처음에는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마수와 악마종과 박제를 써는 동안, 소도진은 비로소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떠올렸다.
“마수는 216…… 아니, 200마리 정도인 것 같아요.”
축사에서 마수가 발생했던 그날, 가장 먼저 보고를 하러 왔던 그놈이었다.
“죽음에서 부활했네…….”
소도진이 웃었다. 피와 톱밥이 덕지덕지 엉겨 붙은 추레한 얼굴이었지만, 그 미소는 뚜렷했다. 신성 훈련장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소도진은 비를 맞으며 비척비척 걸었다. 검에 묻은 피가 비에 씻겨 내려갔다.
* * *
“네가 전학 왔던 게 이제 딱 2년 됐나? 맞지?”
“응? 뭐……. 그치, 재작년 봄에 왔으니까.”
그는 재작년 봄, 2년 전에 이곳으로 왔다.
“나 인천 살 때 별명이 ‘외로운 늑대’였─”
“예전에는 코앞이 바다라서 맨날 갔는데……”
“걔는 최근에 주소지 변경한 적도 없고.”
2년 전까지 그가 살던 곳은 인천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주변에 알리지는 않았다.
[2년 전 인천에서 발생한 ‘시체의 탑’ 사건을 일으킨 뒤 종적을 감췄다].알리고 싶지 않았으며, 알려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사탄교도는 2년 전 인천에서 시체의 탑 사건을 일으키고 종적을 감추었고, 그 무렵에 그는 이곳으로 왔다. 그는 그것을 숨기고 싶었겠지만, 나는 그의 말실수를 잊지 않았다.
“나도 주식이나 코인. 아, 로또도 해야겠다.”
“그 온통 하얀 애 있잖아. 성, 성…… 성명준?”
과거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겠냐는 물음에, 너는 뻔한 대답을 내놓았다. 너는 다른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나도 그랬다.
“같은 입장이기에, 언행이나 버릇에서 공통점이 나타날 수밖에 없지.”
그것은 우리가 같은 이방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선민(選民) 사이에 끼어든 이방인. 우리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뻔한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이방인이기에 선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빠각.
나뭇가지가 건조한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소리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며 곳곳으로 뻗어 나갔다.
동산에는 마기가 퍼져 있었다. 들이마실 때마다 목이 까끌까끌하게 아팠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아이덴 동산을 헤매고 있었다.
“그 상자는, 사탄교도의 목적이자, 또한 장로들의 목적이다.”
아이덴 동산에서 그란브와의 권능을 썼을 때. 나는 동산 깊숙한 곳에 파묻힌 상자를 보았다.
바론 삼디는 그것을 사탄교도의 목적이며 장로들의 목적이라 말했다. 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상자가 있는 곳에 네가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신성 훈련장에서 울려 퍼진 비명과 무너진 체육관. 그리고 병원을 폭파하겠다는 방송. 교문을 막고 선 용병들.
신성 훈련장과 체육관, 병원은 아이덴 동산과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건물이었다. 너는 나를 유인하고 있었다. 내가 널 방해하지 못하도록.
나는 기억을 되짚어 상자가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종종 나무에 박제가 못 박혀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와 엄마의 모습이나, 갓난아이가 탄생하는 모습을 조악하고 기괴하게 표현한 것도 있었고, 자살을 암시하듯 밧줄에 목을 매단 박제도 있었다. 박제 덕분에 오히려 길 찾기가 편했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나는 성하연의 말을 떠올렸다.
“집에 그 사람이 직접 왔어요. 이틀 전에 그 일 때문에 고맙다는 말 하러 왔다고 그러던데요. 밤에.”
“……몇 시였는데?”
“8시쯤……이었을 거예요.”
어제 저녁, 너는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성하연의 자택으로 향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집으로 찾아온 탓에, 성하연은 당황해서 미처 흉터를 숨기지 못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때 네가 자신의 흉터를 봤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봤을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확실하게 보았을 것이다.
너는 정인아가 평소 무슨 옷을 입고 다니는지 알고 있었다. 당연하다. 2년 지기 친구에, 같은 반이었으니.
김진서는 마주친 적이 없었기에, 그녀가 손목에 내가 준 묵주를 차고 다닌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체육관이 불에 타 사라진 이후로는 둘이 스파링을 할 일도 없었을 테니.
“…….”
검고 탁한 마기 속에서 서로를 마주한 우리는, 제법 먼 거리에서도 서로를 확실하게 인식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평소와 달리 탁하고 흐렸다. 대충 걸치듯 입은 교복은 본래의 색을 잃고 시꺼멓게 변해 있었다. 마기로 물을 들인 것처럼.
“아…….”
구준혁.
그가 탄식을 내질렀다. 검은 눈물을 흘리며, 그는 손가락을 들었다. 뾰족하고 길쭉한, 사람 같지 않은 검지가 나를 비스듬히 겨누었다.
천둥과 번개가 산발했고 비바람이 몰아쳤다. 나무에 목을 매달고 있던 박제들이 이빨로 밧줄을 잘근잘근 씹어 끊어냈다.
철퍽, 철퍽…….
비에 젖은 산을 밟는 박제의 걸음소리는 익숙했다. 그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내게 다가왔다. 그들 전부 목이 꺾이고 부러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박제들을 지휘하는 구준혁의 얼굴은 싸늘했다.
나만 보면 바보같이 웃으며 능글맞게 인사를 건네던 지금까지의 모습은 전부 거짓이었다.
새카만 마기에 둘러싸인 채, 그보다 더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차갑게 응시하는 저 모습이 진실이었다. 그는 피렌체의 학생이 아니라 사탄교도였다. 시기와 오만, 두 개의 죄명(罪名)을 짊어진.
[부두교의 교주인가, 피렌체의 학생인가.]부르지도 않은 오군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돌았다. 박제는 내게 다가왔고, 나는 구준혁에게 다가갔다.
“오군, 철과 전쟁의 로아시여. 그대의 권능이 나의 몸에 깃들기를.”
오군, 그의 이름을 부르자 사방에 진동이 일었다. 아이덴 동산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스피커나 널브러져 있던 쇠붙이가 오군의 등장에 지레 겁을 먹은 듯 일제히 떨고 있었다.
카각, 카가각!
쇠붙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섬광과 함께 하늘이 울부짖었으나 지천에 깔린 쇠붙이의 울음에는 못 미쳤다.
비가 오는 것에 감사하며, 나는 떼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오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부두교의 교주이자 선지자로서, 청한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서로의 정직한 모습을 마주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