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45
제145화
“……네? 무슨, 하. 뭐, 뭐라고요?”
성하연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뚝, 하고 머리에서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도선우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성하연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너 공부 나보다 못하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다른 건 몰라도 공부는 내가 그쪽보다 훨씬 잘해요. 지금 무슨 착각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는데─”
“너 진단평가 몇 등이냐?”
“2등……인데 뭐 어쩌라고요? 언제적 이야기를 꺼내요?”
“나는 1등이었는데.”
“하! 저기요, 나는 신성역학이랑 물질학을 더 잘해요. 성서 이해를 제일 못하고. 애초에 진단평가 과목이 하나라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죠. 완전 불공정한…….”
“핑계.”
“핑계가 아니라!”
성하연은 언성을 높이며 도선우 쪽으로 고개를 훌쩍 들었다. 고개를 돌리고 보니 생각보다 거리가 많이 가까워서, 다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리고 숨을 가다듬으며 격앙된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른 이야기를 할 때는 괜찮은데, 성적 얘기만 하면 이상하게 감정의 동요가 커졌다.
몇 초간 심호흡을 하던 성하연이 주춤주춤 거리를 벌려 앉으며 입을 열었다.
“……핑계가 아니라 사실인데요. 진단평가는 과목 하나에 특화된 애들한테 너무 유리했어요. 이번 필기가 진짜 공정한 시험이 되겠죠.”
“공정하게 평가하면 이길 수 있는 것처럼 말하네.”
“당연한 거 아닌가요? 전 과목 평가로는 그쪽은 날 못 이겨요, 절대로. 진단평가에서 1등 했다고 뭘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오만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죠.”
‘오만’이라는 말을 들은 도선우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는 아까보다 더 살벌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누가 이기나 내기할까? 이 개자식아.”
“뭐, 뭔 자식이요?”
도선우의 입에서 갑자기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에게 빌빌 기어도 모자랄 판에 감히 욕설을 하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성하연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 그래요. 내기해요. 뭐 걸까요?”
“글쎄? 이긴 사람이 진 사람 싸대기라도 한 대 때릴까?”
“한 대로 되겠어요? 저는 그쪽 뺨 열 대는 후릴 수 있어요.”
“그래? 그럼 나는 백 대.”
“저는 하루 종일도 때릴 수 있어요.”
한창 의미 없는 실랑이를 벌이던 도중, 도선우가 회의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하자. 유치하다.”
“왜요? 쫄려요?”
성하연이 비웃듯 입가를 비틀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보자. 나는 어차피 안 진다는 마인드야.”
“네, 저도 그래요.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로 할까요?”
“지고 나서 후회하지 마라.”
“그쪽이나 후회하지 마세요. 울어도 안 봐줄 거니까.”
“그러든가.”
도선우가 태연하게 되받아쳤다. 그 여유로운 표정을 보고 있으니, 지금껏 그의 말재간에 놀아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열이 받았다.
“……전화!”
한창 씩씩거리던 성하연이 뒤늦게 떠오른 듯이 버럭 소리를 쳤다.
“내가 전화하라고 했는데 왜 안 했어요?”
“그거 너였냐? 보이스 피싱인 줄 알았는데.”
“보이스 피싱……? 번호 저장을 아직도 안 했어요?”
“내가 네 번호를 어떻게 알고 저장해?”
“재선출될 때 임원들 연락처 문자로 다 알려 주잖아요? 여태까지 저장 안 하고 뭐 했어요?”
성하연은 진심으로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도선우는 기억을 더듬듯 눈썹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 문자를 받은 기억이 없는데.”
“무슨, 못 본 거겠죠. 안 본 거거나.”
“애초에 전화는 왜 하라고 한 거야? 나랑 할 얘기가 뭐가 있다고.”
도선우의 물음에 성하연은 잠시 입을 다문 채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니 전화로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더라.
아마 몸은 괜찮냐는 식으로 안부를 묻거나, 구해줬던 것에 대해 고맙다고 하거나, 지난 일에 대한 사과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들이었다. 아니,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조금 양심에 찔리기는 해도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억 안 나요. 너무 오래돼서.”
“기껏해야 몇 달 전인데 그것도 기억을 못 해?”
도선우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성하연이 허, 하고 웃음을 토했다. 당연히 웃겨서 웃은 게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나온 헛웃음이었다.
“당신보다는 기억력 좋아요.”
“응, 그래.”
도선우는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이며 성하연의 말을 흘려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얄미운 행동만 골라서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 뒤로 얼마간 내기에 대한 유치한 신경전이 오갔다. 그러다 도선우가 못내 지쳤다는 듯 벤치에서 일어나더니, 공부나 해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성하연은 여전히 벤치에 남았다. 지금 교실로 돌아가 봐야 공부가 될 것 같지가 않았다. 이대로 벤치에 앉은 채 마음을 조금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후.”
심호흡을 통해 격앙된 마음을 진정시킨 뒤, 도선우와의 대화를 천천히 곱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사람이 내게 호감을 가진 건 맞는 것 같다. 그때 나를 구해준 것도, 오늘 갑자기 말을 건 것도 도선우가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앞뒤가 맞았다.
다만 의아한 점이 하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물심양면으로 잘해주려 노력한다. 선물을 주거나, 달달한 말로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경우가 대다수.
그러나 도선우는 오히려 욕을 하거나 도발을 하는 등, 환심이 아니라 비호감을 사는 짓만 하고 있지 않은가.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던 성하연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연막인가.”
자신의 마음을 들키는 게 싫어서, 일부러 거친 언행으로 마음을 숨길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부끄러움 많은 남자애들이 그러곤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제법 귀여운 면도 있는 것 같았다.
* * *
우연히 마주한 성하연에게 선뜻 다가가 말을 걸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성하연에게, 정확히는 성유다와 성하연에게 묻고 싶었던 게 있었기 때문이다.
자선의 성호 재선출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건 사고에서, 성유다는 ‘국제신학회’라는 이름을 빌려 알게 모르게 나를 도와주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비단 나를 신학회에 영입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하다. 필시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성유다는 내가 부두교의 교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거나, 또는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맞는다. 성유다는 국제신학회의 이름을 빌려 나를 도와주고, 나의 반응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후…….”
그래서 성하연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분위기가 괜찮았다.
근데 대화를 하다 보니, 이 새끼가 갑자기 내 말을 끊더니 불쑥 선을 넘어버리는 게 아닌가? 성유다에 대한 정보를 캐기 위해 조금 잘해줬더니 나를 병신으로 본 모양이다.
결국 처음 물어보려고 했던 건 물어보지도 못하고 말싸움이나 하다가, 이기지도 못할 시험 점수 내기까지 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절대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성하연 앞에서는 그게 잘 안됐다.
“…….”
한데 생각해보니, 성하연이 내 말을 끊은 타이밍이 참 기묘하다. 내가 성유다에 대해 물으려고 하자마자 성하연은 내 말을 끊고 화제를 돌렸다.
우연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성하연도 뭔가 아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주시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화가 많이 나셨군.]그러한 생각을 하며 걷던 도중,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샌가 바론 삼디가 내 옆에서 나란히 함께 걷고 있었다. 여기가 학교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건지, 입에 시가를 물고 있었다.
나는 놀란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걱정하지 마라. 죽음과 가깝지 않은 자는 내 모습을 볼 수도, 내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거든.]바론 삼디가 안심하라는 듯 말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대답을 아꼈다.
남들에게 바론 삼디의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누군가 이 대화를 본다면 의심을 받을 염려가 있었다.
운이 좋다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고, 운이 나쁘면 부두교의 교주라는 사실을 들키거나 사탄교도라는 누명을 쓸 수도 있다.
민감한 시기인 만큼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바론 삼디는 시가 연기를 뻑뻑 내뱉으며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듣는 자도, 보는 자도 없다. 앞으로 한 12분 정도는 계속 없을 예정이야. 편하게 대답해도 돼.]“…….”
[거, 그렇게 조심할 필요 없다니까……. 그래, 마음 편해지면 그때 대답하든가 해라. 기다려줄 테니.]바론 삼디가 입을 다문 채 시가를 피우는 동안,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따금 여름의 더운 바람에 풀잎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적어도 근처에 사람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산책로 구석에 놓인 벤치로 걸음을 옮겼다.
그간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탓에 벤치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적당히 먼지를 털어낸 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그제야 바론 삼디의 말에 대답했다.
“교내 금연입니다.”
안 그래도 담배 냄새가 무척 거슬리던 참이었다. 바론 삼디는 들은 체도 않고 묵묵히 시가를 피우며 입을 열었다.
[죽음에 가깝지 않은 자는 내가 피우는 시가 냄새도 맡을 수 없지. 연기도 보이지 않고. 한데 굳이 끌 필요가 있나?]“어쩌라고요? 내가 거슬려요.”
[하여튼,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알겠다.]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담배를 벤치 바닥에 비벼 껐다. 벤치에 잠깐 그을린 자국이 남았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시가도 어느 순간 보니 사라져 있었다.
바론 삼디는 내 옆에 앉아 다리를 꼬며 입을 열었다.
“잘되면 지금 이러고 있겠어요?”
[이번 시험은 다른 시험보다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손 놓고 있어도 되는 거냐? 내 알 바는 아니지만.]“안 되긴 하는데……. 그간 쌓은 공덕이 많으니 봉디예 님이 알아서 정답을 골라주지 않을까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지. 내가 하늘이라면 넌 도와주지 않을 거다.]“인정합니다.”
근래 들어 학업에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다. 인정할 건 깔끔하게 인정하며 말을 이었다.
“근데 솔직히 어쩔 수 없었잖아요.”
[어쩔 수 없어? 뭐가?]“핑계는 아닌데, 이래저래 신경 쓸 게 너무 많았기도 하고……. 시험 일정이 바뀐 것도 몰랐고.”
[그걸 우리는 ‘핑계’라고 부르기로 했다.]“흠.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신경 쓸 게 많았다고 한들 공부할 시간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시험 일정이 바뀐 것도, 시험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 홈페이지를 찾아볼 수도 있었고, 기숙사 신청을 위해 교무실에 방문했을 때 물어볼 수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다 내 탓이다. 이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근데 괜히 화가 났다.
“갑자기 여긴 왜 왔어요? 내 기분 더럽게 하려고?”
[그것도 있긴 하지. 그것만 있지는 않지만.]바론 삼디가 킬킬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근심하는 너를 위해, 시험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하나 준비했다.]바론 삼디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주사위를 건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