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48
제148화
부하가 반문했다.
“예?”
“도선우 말이야. 도청 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면, 우리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챘을 것 아닌가? 한데 도청 장치를 부술 필요가 있냐는 말이야. 그것도 저렇게 노골적으로.”
“뭔가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도청 장치를 얼른 부수려고…….”
“그랬다면 다른 방법을 쓰는 게 맞겠지. 며칠간 쥐 죽은 듯이 살면서 우리 동태를 살피다가, 실수를 가장하여 도청 장치를 부수는 편이 나아. 그게 훨씬 자연스럽지. 정석에 가까운 방법이기도 하고.”
의심을 피하려고 했다면 지금 도청 장치를 부수지 않았을 것이다.
기다렸다가 며칠 뒤에 고의로 성물을 부수거나 잃어버린 뒤, 실수로 둔갑하는 편이 낫다. 그렇게 하면 아주 자연스럽게 도청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일 도선우가 그렇게 했다면, 그를 향한 문요셉의 의심은 오히려 깊어졌을 것이다.
“근데 도선우는 도청 장치를 발견하자마자 부숴버렸지. 의심을 부추기려는 것처럼. 왜 그랬을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청 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차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런 짓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도선우가 그 정도로 감정 조절을 못하는 놈 같지는 않지만, 문제는 그가 학생이라는 점이었다.
학생들은 종종 어른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을 벌일 때가 있었다. 문요셉도 어릴 적에 자주 그랬다.
강화 유리와 일반 유리가 깨지는 모양의 차이가 궁금해서 학교 창문을 전부 깨본 적도 있었고, 잠을 자지 않으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엿새간 밤을 새워본 적도 있었다.
허나 과연 이것을 소년기의 기행이라 치부하고 넘겨도 되는 일이 맞는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이 도선우의 계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아주 치밀하고도 교묘한 계산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
“악……!”
그때, 문요셉의 휴대폰에서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부하가 비명을 지르며 귀를 틀어막았다. 문요셉이 피식 조소를 흘렸다.
“사람 참, 전화 온 거 가지고 무슨 그리 호들갑을 떠나.”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던 굉음은 ‘건강에 좋은 주파수 음악’이라는 것으로, 문요셉의 휴대폰 벨 소리였다.
문요셉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휴대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도선우였다. 문요셉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래, 도선우 학생. 무슨 일인가?”
– 예, 다름이 아니라 보내주신 추천서와 용돈, 시계랑…… 그리고 수소수인지 뭔지, 아무튼 잘 받았다는 말씀 드리려고 연락했습니다.
“잘 받았다고 하니 다행이군. 한데 용돈치고는 좀 많지 않았나? 그거 사실 용돈이 아니고 뇌물인데.”
– 아, 뇌물이었군요. 아무튼 잘 받았습니다.
“시계는 마음에 드나?”
– 마음에 듭니다. 아주 딱 맞던데, 제 손목 사이즈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손목 사이즈 같은 건 굳이 재볼 것도 없어. 몇 번 보면 대충 사이즈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된다네.”
– 시계 선물을 얼마나 자주 하셨길래…….
“하하하…… 이 친구가 참 농담을 잘하네. 아주 재밌어.”
문요셉은 도선우가 기 싸움을 하려 든다는 것을 곧바로 눈치챘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되도 않는 말장난을 하려 드는 꼴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조소가 흘렀다.
도선우는 추천서, 돈, 수소수에 대한 것만 언급했을 뿐 성물에 대한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문요셉 쪽에서 먼저 성물에 대해 언급할 수밖에 없도록 대화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요셉이 섬뜩하리만치 기괴한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좋아, 도선우 학생! 성물은 잘 받았나? 성물만 주기 섭섭해서, 거기 도청 장치도 심어놨네!”
“서, 선배님, 무슨……?”
부하가 당황한 듯 물었으나, 문요셉은 부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한데 오늘 그 도청 장치가 부서졌어. 우리는 자네가 고의로 이것을 부쉈다고 보고 있네. 왜 부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돼. 도청당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 이단 심문관님, 저는…….
“내가 궁금한 건, 그 도청 장치를 어떻게 발견했는가, 그것이네. 혹시 금속 탐지기를 들고 다니나? 오, 지금 생각해보니 자석 같은 걸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겠군.”
문요셉은 한층 깊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발견한 건가? 정말 궁금하군.”
– …….
수화기 너머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 감으로 찾았습니다.
“감이라!”
도선우의 태연하고도 뻔뻔한 변명에, 문요셉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차라리 아도나이께 기도를 해서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군.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나?”
– 제가 만일 금속 탐지기로 찾았다고 하면, 다음에는 플라스틱제 도청 장치를 보내실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 다음 도청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도청 장치를 발견해낸 방법은 알려드리지 않겠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무례라니, 무례로 치면 도청을 시도한 우리가 최고 아닌가? 자네, 지금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고 있군.”
– 알고 계시다니 다행입니다.
부하는 문요셉 곁에서 그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얼핏 듣기에도 두 사람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문요셉은 그 대화가 몹시 즐겁다는 듯, 책상을 탕탕 쳐가며 호탕하게 웃었다. 듣기 좋은 말만 할 줄 아는 샌님인 줄 알았는데,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친놈인 것 같았다.
오히려 좋다. 문요셉은 웃음을 멈추고 수화기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래서, 전화한 진짜 이유가 뭔가?”
– 저를 도청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말은 바로 하게. 도청을 하기도 전에 자네가 도청 장치를 부숴버리지 않았나? 뭐 어쨌든, 이유야 얼마든지 말해줄 수 있지.”
문요셉은 그렇게 말하며, 잠깐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고민했다.
거짓말을 할까, 아니면 사실대로 말할까. 아니, 지금 거짓말을 해봐야 의미가 없다. 아무래도 사실대로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좋아, 말하겠네. 부제(副祭)는 일반인과 별반 다를 바가 없지. 그렇기에 우리는 자네를 감시할 수밖에 없는 거야. 여기까지는 이해했나?”
– 사탄교도에 대한 정보 누설 때문입니까?
“그래, 잘 이해하고 있군. 자네를 제외한 피렌체의 학생들은 사탄교도가 길거리를 떠돌던 부랑자인 것으로 알고 있지. 사탄교도가 피렌체 학생이었던 구준혁이라는 사실을 아는 건 자네밖에 없네.”
– 예.
“한데 자네가 갑자기 계몽주의에 눈을 떠서, 피렌체의 학생인 구준혁이 사실 사탄교도였고, 교황청은 이를 은폐하고 있다! 그렇게 떠벌리고 다니면 우리 처지가 아주 곤란해질 거야. 이해했나?”
– 이해는 했습니다. 근데 제가 그걸 떠벌리고 다닐 거라 생각하시는 이유가 뭐죠? 저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믿고 있지. 하지만 도청 장치는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해준다는 말일세. 자네와 도청 장치가 함께 있는 한, 우리는 자네를 전적으로 믿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야. 믿음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자네는 나를 믿고 있나?”
– 도청 장치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단 심문관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문요셉이 웃었다. 곁에 있던 부하가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이 친구야, 말에 모순이 있군. 자네가 도청 장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자네가 우리를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 아닌가? 자네가 말한 ‘직감’이라는 건, 의심이 선행되어야 발휘될 수 있는 것인데.”
– 그렇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피차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이거 잘됐네. 앞으로 천천히 신뢰를 쌓아보도록 하는 건 어떤가? 따지고 보면 우리는 한배를 탄 셈인데, 서로를 믿어야 하지 않겠나?”
– 예, 알겠습니다.
“도청을 시도한 것은 미안하네. 성물은 도청 장치가 없는 새것으로 다시 보내주도록 하지. 정 의심되면 직접 만나서, 즉석에서 새것으로 바로 사줄 수도 있네. 어떻게 하고 싶나?”
– 편하신 대로 해주시면 됩니다. 사실 안 보내주시는 게 제일 좋기는 합니다.
“하하, 솔직해서 아주 좋군. 알겠네! 이만 끊지.”
전화가 끊긴 뒤, 문요셉은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흥분한 탓인지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문요셉이 동태 눈깔처럼 차갑게 식은 눈으로 부하를 쳐다보았다.
“도선우에게 보냈던 성물, 새로 구매해서 다시 보내주도록 하게. 피렌체로.”
“도청 장치를 다시 심을까요?”
“아니.”
문요셉이 고개를 저었다. 어느덧 그의 입가에 머물던 미소는 사라져 있었다.
“앞으로 굳이 도청할 필요는 없어. 도선우 이놈, 이제 보니 나랑 비슷한 성격이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하는 다소 어이가 없다는 투로 물었다. 두 사람의 성격은 어떻게 봐도 닮은 구석이 없었다.
문요셉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을 이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타입은 아니야. 입이 가벼운 것 같지도 않고. 일단 정보 누설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일세. 알아들었나?”
“아, 예!”
“……그래. 그러고 보니 자네, 파리지옥이랑 닮았군.”
“예? 뭐가 말입니까?”
“파리지옥도 밥을 일일이 떠먹여 줘야 하거든. 이름만 파리지옥이지, 실상 혼자서 파리를 잡는 일은 거의 없다네.”
부하는 문요셉의 말을 차마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요셉이 그런 부하를 쳐다보며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고는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문 상태로 말을 이었다.
“무능하다는 말일세. 거참, 이런 것까지 말해줘야 하나? 정말이지 파리지옥이 따로 없군.”
문요셉은 그렇게 말하며 불을 당겼다. 담배가 타들어 가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연기가 목구멍을 타고 폐부를 적셨다. 짜릿한 쾌감을 느끼며 문요셉은 도선우와의 대화를 회상했다.
일단 구준혁에 대한 정보를 이리저리 뿌리고 다닐 만큼 멍청하고 철없는 놈은 아니다.
도청이나 미행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동업자로서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며 소소하게 감시 정도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말하는 거나 하는 짓거리를 보면 꺼림칙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긴 하다. 허나 그럼에도 도선우는 딱히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꺼림칙하고 자시고, 일단 성격이 마음에 든다.
호쾌하고, 남자답고, 좀 무대뽀 기질도 있고. 단지 꺼림칙하다는 이유만으로 척을 지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상당히 재밌는 놈이었다.
“참, 여민서 그 학생도 의식을 되찾았다고 하던데. 자네가 한번 찾아가 보게.”
문요셉은 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뒤, 두 번째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선배님은 안 가십니까?”
“그래, 나는 안 갈 생각이야. 무릎이 아프기도 하고, 무엇보다 귀찮군.”
문요셉이 담배를 피우며 파리지옥을 보았다. 벌레를 먹기 위해 슬금슬금 아가리를 닫는 파리지옥의 모습이 퍽 귀여웠다.
* * *
[무모한 놈!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지?]렉바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몰려오는 졸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사감의 수다를 들어주느라 기진맥진하던 차에 문요셉과 통화까지 하느라 체력이 동나 버렸다. 졸려서 의식이 흐릿한 와중에도 렉바의 잔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밤새 잔소리를 할 것 같아서, 하는 수없이 입을 열었다.
“별문제 안 생겼으면 된 거 아닐까요?”
[안일하군. 말실수를 한 번만 더 했으면 지금쯤 여기에 교황군이 들이닥쳤을 거다.]“그렇겠죠. 근데 나는 말실수를 안 해요.”
렉바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걸 감안해도 너무 위험한 도박이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신중하도록 해.]“문요셉 같은 놈들 상대할 때는 신중하면 안 돼요.”
나는 눈을 감고 어둠과 졸음에 몸을 맡기며 말을 이었다.
“편지…… 편지만 봐도 알아요. 저런 놈들은 정석적으로 대하면 휘말려서…….”
편지를 보자마자 문요셉이 별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놈들은 진지하게 상대하면 손해다. 차라리 맞불을 놓는 편이 낫다. 미친놈을 이길 수 있는 건 결국 미친놈밖에 없으니까.
직감에 의존한 전략이었던 만큼 확신은 없었지만, 직감에 의존한 전략이었던 것에 비해 결과는 몹시 좋았다.
[……그래, 내 참견이 과했던 것 같군.]잠결에 들려온 렉바의 목소리는 조금 침울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