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62
제162화
내 대답을 들은 김진서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너무 매몰차게 거절해버린 탓인 것 같았다.
사실 그녀와 대련을 하기 싫은 건 아니었다.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그녀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아서 거절한 것뿐이었다. 문요셉과의 대련으로 체력이 다 빠졌기도 하고.
“하긴. 나로는 성에 안 차겠네.”
김진서가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투에 은근히 비아냥대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뭐가 성에 안 차?”
“……아니야.”
그녀는 나를 힐끔 흘겨보더니 고개를 젓고는, 터덜터덜 걸어가 훈련장 벽면에 등을 기대고 섰다. 늘어뜨린 어깨에서 무력감이 느껴졌다. 표정도 별로 좋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옆에 서서, 똑같이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침묵이 흘렀다. 신성 훈련장은 무척 커서, 유난히 침묵이 짙게 느껴졌다.
김진서는 고개를 비스듬히 숙인 채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입은 굳게 닫혀 있다.
나는 그녀의 옆얼굴을 보다가, 습관적으로 그녀를 관찰했다. 그녀의 손목에 채워진 묵주가 눈에 띄었다. 내가 예전에 주었던 것이다.
“그건 맨날 차고 다녀?”
나는 그녀의 손목을 가리키며 물었다. 김진서는 손목을 기울여 묵주를 보았다가, 고개를 돌려 내 손목을 흘깃 쳐다보았다.
“습관이 돼서……. 근데 너는 왜 안 차고 다녀?”
“나는 손목에 뭐가 있으면 불편해.”
“왜. 수갑 같아서?”
“약간.”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목시계나 팔찌 같은 것을 손목에 차고 있으면, 답답해서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손목에 차는 액세서리는 나은 편이다. 목걸이나 목도리처럼 목에 두르는 것들은 하고 있으면 정말로 숨이 막혔다.
“수갑 차본 적이 있나 보네?”
김진서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적 없어.”
사실 있다. 구준혁에 의해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던 그때, 잠깐 차보았다. 하지만 경위를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 거짓말을 했다. 김진서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없겠지. 안 그럼…….”
그녀는 말끝을 흐리고는, 내 손에 시선을 둔 채로 말을 이었다.
“……전부터 느낀 건데, 너 손이 되게 작아.”
“내가?”
나는 손바닥을 펴 보았다. 그렇게 작은 것 같지는 않은데. 어디 가서 작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고.
“응, 내가 더 클 것 같은데?”
“그건 아니지.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럼 재보든가.”
김진서가 활짝 편 손바닥을 내밀며 도발적으로 말했다. 손을 맞댔다. 그녀는 손가락이 가늘고 길어서, 내 예상보다는 손이 컸다. 그래도 역시 나보다는 작았다.
“내가 더 커.”
“그러네. 네가 이겼어.”
김진서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았다. 이렇다 할 느낌은 없었지만, 따뜻하다는 것만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내 손을 자신 쪽으로 끌어와 깍지를 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표정은 이상할 정도로 태연했다.
“내가 이긴 거 맞아?”
“당연하지. 네 손이 더 컸잖아.”
“좀 이상한데.”
슬그머니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그녀가 손아귀에 힘을 주어 내 손을 꽉 잡아버리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냥 체념하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두기로 했다. 김진서가 발뒤꿈치로 바닥을 의미 없이 툭툭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손이 되게 차갑네. 시체 같아.”
“그럼 놓든가.”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시원해서 좋아. 뭔가…… 아이스 팩 같기도 하고.”
“그 정도로 차갑진 않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김진서는 미소를 지었다. 미소는 흐릿하고 힘이 없었다. 눈동자에 체념과 공허감이 어려 있었다. 약간의 두려움도.
오늘 그녀는 평소와 달랐으나, 정작 본인은 평소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오늘따라 왜 그래?”
“…….”
내가 묻자 김진서는 말없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침묵이 새삼스레 느껴질 즈음에 그녀는 입을 열었다.
“피곤해서 그래. 요즘 잠을 잘 못 자서.”
“잠은 왜.”
“그게…….”
그녀가 흘러내린 머리칼을 넘겨 올리며 말을 이었다.
“시험도 생각보다 못 봤고. 아버…… 아빠, 때문도 있고. 너도 그렇고.”
“나?”
“그것도 있다는 거야. 말고도 그냥, 여러 가지로…….”
그녀는 중얼거리듯 하소연했다. 그녀의 아버지인 김창원이 아직 퇴원을 못 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처음보다는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교적 그렇다는 이야기일 뿐. 언제 또 쓰러질지 모를 일이니 그녀 입장에서는 마음이 쓰일 법도 하다.
지금 그녀는 많이 피곤한 모양이었다. 말 한 마디 내뱉는 것조차 힘에 부칠 만큼.
“말하기 싫었는데.”
김진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요즘 너한테 자꾸 투정만 부리는 것 같아서.”
“알긴 아네?”
“……그래, 알아. 그래서 말하기 싫었다고.”
김진서가 나를 째려보았다. 나는 그저 빙긋 웃었다. 그녀가 체념한 듯 한숨을 쉬었다.
“잠을 못 자니까, 깨 있어도 자는 것 같아. 자고 있어도 깬 것 같고.”
“힘들겠네.”
“그래서 이런 짓도 하는 거야. 잠결이니까.”
그녀가 맞잡은 손을 앞뒤로 가볍게 흔들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러고 다시금 침묵이 흘렀다.
담배를 도대체 몇 개나 피우려는 건지, 문요셉과 소도진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까, 그…… 이단 심문관님은 왜 오신 거야?”
침묵을 깬 것은 김진서였다.
나는 잠시 대답을 주저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뭐…… 별일은 아니고─”
덜컹!
대충 아무 말로 얼버무리고 있던 도중, 신성 훈련장 문이 벌컥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아까 나갔던 문요셉과 소도진이었다. 김진서는 그제서야 황급히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딴청을 피웠다.
“도선우, 자네 혹시 여기서 아이덴 동산으로 가는 길 아나? 미안하지만 안내가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네.”
문요셉이 성큼성큼 다가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압니다.”
“다행이군. 그럼 나가지. 아, 참.”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던 문요셉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소도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소도진 선생, 내 추후에 연락할 테니 그리 알게!”
“예, 알겠습니다. 그럼…….”
소도진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그길로 나와 문요셉은 신성 훈련장을 나왔다.
아이덴 동산의 입구가 보일 때까지만 길을 안내하던 도중, 문요셉이 입을 열었다.
“둘이 뭐 했나? 아무것도 안 했다면 오히려 실망인데.”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그래? 원래 학교와 성당에서 하는 밀회가 가장 짜릿하고 즐거운 법인데. 나도 아내와 자주 즐겼지. 미사가 끝난 직후, 성당에서 할 때가 가장 짜릿하더군.”
그렇게 말하는 문요셉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저렇게 진지한 얼굴로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문요셉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시선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굴러다니던 조약돌을 심술궂게 툭 차며 말을 이었다.
“아내는 죄를 짓는 것 같다며 싫어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네.”
“천벌 받을 짓을 하셨군요.”
“아내와는 사별했다네.”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문요셉이 말을 이었다.
“자네가 말한 대로, 천벌을 받은 꼴이지.”
“…….”
“뭐, 다 지난 일이지.”
문요셉은 그렇게 말하며 걸었다. 그의 눈은 먼 과거를 쫓듯 허망하게 흐려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곧 실기고사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예, 맞습니다.”
“관련해서 정보나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게. 본의 아니게 자네가 볼 실기고사의 관계자를 맡게 되어서 말이야.”
“아, 그럼…….”
“아, 당연히 무료는 아니라네. 상응하는 정보를 내게 제공한다는 조건하에 도움을 주도록 하지.”
안타깝게도 지금 내 수중에는 그에게 제공해줄 만한 정보가 없었다. 이윽고 아이덴 동산에 도착했다.
문요셉은 감사를 표하며, ‘접근 금지’라고 써 있는 테이프를 넘어 동산으로 들어갔다.
“연락 기다리고 있겠네!”
아직 마기가 완전히 걷히지 않은 탓인지, 동산은 어둡고 스산했다. 문요셉은 내게 손을 흔들며 동산의 스산한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 * *
지난 며칠간은 운동을 하고, 이따금 신성 훈련장에서 무기를 휘두르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 기회가 나면 주술을 연습했다. 주술진을 그리지 않고, 언제든 티가 나지 않게 주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이번 실기고사에서는 기회를 봐서 주술도 사용해볼 생각이었다.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작년까지는 실기고사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려 주었으나, 올해는 이례적이게도 고사에 대한 정보를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공정을 기하고 학생들의 역량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대고 있긴 했지만, 글쎄. 내가 보기에는 그냥 학생들 엿 먹이려고 이러는 것 같다.
[학생 중 내통자가 있을 것을 고려한 거겠지.]여느 때처럼 주술을 연습하기 위해 재현 주술인 ‘새벽의 검’을 꺼내 들었을 때, 렉바가 낮고 걸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내통자요?”
[실기고사를 치르면 크든 작든 혼란은 필연적이다. 학생 중 내통자가 있다면, 사탄교도는 내통자의 정보를 가지고 실기고사의 혼란을 이용하여 소동을 일으킬 것이다.]“구준혁은 죽었는데요?”
[그의 추종자까지 모두 죽은 것은 아니며, 또 다른 사탄교도가 있을지도 모르니까.]확실히 그렇기는 하다. 구준혁의 추종자들이 복수를 한답시고 습격을 할지도 모를 일이고, 구준혁이 아닌 다른 사탄교도가 습격을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렉바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로마니카교의 적은 사탄교만이 아니다. 저들은 그것까지 고려한 거야.]“…….”
[어찌 됐건 저들이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는 사실만은 명확하다. 너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구나.]확실히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이는 교직원을 포함한 여러 ‘윗사람’들은 아직 학생들을 의심하고 있다는 뜻이며, 곧 나의 정체가 탄로 날 가능성이 전보다 높아졌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문요셉이 내게 붙은 것도 크나큰 위협인데, 분위기까지 흉흉하다. 이쯤 되니 불안한 것을 넘어 미칠 지경이다.
물론, 어지간히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내 정체가 드러날 일은 없겠지만…….
“……오히려 좋네요. 짜릿하고.”
[좋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짜릿한 것 같은데.]“원래 이럴 때일수록…… 더 긍정적으로 말해야 돼요.”
상황이 부정적이면 생각도 부정적으로 흐른다. 그러나 상황이 아무리 부정적이라 해도 말은 긍정적으로 할 수 있다.
구태여 나의 모든 것을 부정적인 것에 맞출 필요는 없다. 그럴수록 더 깊은 수렁에 발을 들이게 될 뿐이다.
렉바는 내 말을 듣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젠 자기 자신까지 속이려 드는구나.]“속일 수 있어야 말이죠.”
[하긴, 너는 의심이 많아서 속이기 힘들 거다. 오죽하면 스스로를 의심할까.]“……머리 아프네. 화분에 물이나 줘야겠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컵에 물을 담고, 방구석에 놓아둔 화분에 졸졸 물을 주었다. 얼마나 줘야 하는지 잘 몰라서, 대충 이만하면 되겠다 싶을 만큼만 물을 주었다.
그때 그란브와가 큼, 목을 풀며 내게 눈치를 줬다.
[조금 더 줘야 해요. 흙이 흠뻑 젖을 때까지.]“그래요?”
그란브와가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했다.
흠뻑이라.
나는 화장실에서 물을 떠 와서, 냅다 화분에 부었다. 그러자 그란브와가 질겁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뭐, 뭐 하는 거예요! 너무 많아요!]“다다익선 아니에요?”
[그래도 그렇게 많이 주면 안 돼요!]“귀찮네.”
[선지자는 중간이라는 걸 몰라요?]그란브와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화분을 바닥에 내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물을 다 준 뒤에는, 꽃집에서 화분과 함께 산 볏짚으로 화분 위를 덮어두었다. 그란브와의 말에 따르면, 물망초는 암발아 종자(暗發芽 種子)라서 발아 전에는 가급적 빛이 닿지 않게 하는 편이 좋다고 한다.
암발아 종자가 어쩌고, 그런 건 나는 잘 모른다. 일단 그란브와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나는 아직 싹이 나지 않은 화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그렇게 시간 감각이 희미해질 때까지 멍을 때리고 있을 무렵, 전화가 왔다. 강지아였다.
– 교주님, 뭐 하고 계셨나요?
“꽃에 물 주고, 그냥…… 멍이나 때리고 있었어요. 왜요?”
– 요청하셨던 문요셉 이단 심문관에 대해, 몇 가지 알아낸 게 있습니다.
“……잠시만요.”
나는 화분에서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누군가 대화를 엿듣는 사람이 있나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습관처럼 굳어진 경계였다.
다행히 야밤에 남의 기숙사를 훔쳐보는 미친 사람은 없었다. 나는 커튼을 치고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으며 입을 열었다.
“네, 이제 말해도 돼요.”
– 아직 조사를 마친 것은 아니라 유용한 정보는 몇 없습니다. 다만,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잠깐만요,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 네.
나는 잠시 강지아의 말을 끊었다. 문요셉에 대해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 사람 가족 관계에 대한 건데, 혹시 아내랑 사별했어요?”
– 아…… 네, 맞습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직접 들었어요. 거짓말은 아니었네.”
교활한 사람들은 때로 거짓으로 사연을 만들기도 한다. 사연을 공유하여 친밀감과 신뢰를 얻고, 덤으로 동정심까지 얻는 술수.
어쨌거나 문요셉이 내게 그런 비열한 술수를 쓰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는 나를 의심하고 있으나, 그 의심의 정도가 과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계속 말해줘요.”
– 네, 제가 말씀드리려 했던 건 그자의 아내가 죽은 이유입니다. 죽은 건 12년 전이고, 악마종에 의한 살해……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톡.
뭔가 창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비라도 오는 모양이었다.
– 아내와 사별한 후 1년 뒤에 이단 심문관이 되었고, 그 뒤로 지금까지 사탄교에 대한 사건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복수심이군요.”
– 그런 것 같습니다. 슬하에 딸이 하나 있는데, 동거 중은 아닌 것으로 보아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아 보입니다.
“협박에 쓸 수 있겠는데. 딸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 네? 협박이요……?
“아니, 내 말은……. 농담이었어요. 아무튼, 딸에 대한 정보도 있어요?”
톡, 톡, 톡.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로 보아 빗방울이 제법 굵은 것 같았다.
– 그 부분은 아직 조사 중이지만…… 전과가 몇 개 있습니다.
“전과? 죄목은요?”
– 불법 도박, 마약 등입니다. 문요셉의 입김으로 중형을 면한 것 같습니다.
톡, 톡, 톡, 톡, 톡.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식 농사를 못했네. 이단 심문관들은 다 그런가?”
– 마지막으로, 8년 전 있었던…….
콰직!
그때, 강지아의 말을 끊고 들어온 굉음. 소리는 창문 쪽에서 들려왔다.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커튼 사이로 유리 조각 몇 개가 떨어졌다. 창문이 깨진 것 같았다.
– 무슨 일이십니까?
“잠깐만요. 전화 끊지 말고 있어요.”
나는 커튼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창문이 깨진 균열 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와 커튼이 흐늘거렸다. 그러나 창문 너머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부두 마력을 사출할 준비를 하며,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촤아악!
커튼을 걷었다. 예상대로 창문에 균열이 가 있었다. 그러나 균열은 크지 않았다. 창문 너머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사람보다 더 큰 새가 있었다.
깃털색이 무척이나 화려했다. 앵무새인 것 같았다. 눈은 새하얬다.
새 마수.
“……구준혁.”
구준혁이 부리던 것과 같은 마수였다.
– 교주님?
“잠깐만요, 이따가 내가 다시 걸게요. 지금은 끊어야 할 것 같아요. 미안해요.”
– 아,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전화를 끊고, 창문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새 마수의 눈동자를 보았다.
어둠 속에서 마수의 눈은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마수가 날갯죽지에 고개를 박고 부리로 깃털을 정리했다. 거대한 깃털과 함께 톱밥과 솜이 흘렀다.
새 마수가 아닌, 새 마수 박제라는 뜻이었다. 모든 박제는 박제사인 구준혁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즉, 구준혁이 죽은 상태에서는 박제가 있을 수 없으며, 하물며 움직일 수도 없다.
한데 박제가 저렇게 멀쩡하게 존재하고,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 새끼가?”
왜 아직까지 살아 있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