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63
제163화
깃을 정리하던 마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 희멀건 눈이 내 눈동자를 꿰뚫기라도 하려는 듯 노려보았다.
나는 그 하얀 눈을 응시하고, 그 너머에 있을 구준혁을 응시했다. 마수는 큼지막한 부리로 창문을 두어 번 두드리다가, 쩍 입을 벌렸다.
“열어 주십시오!”
“내가 왜?”
“열어 주십시오! 해치지 않습니다! 열어 주십시오! 해치지 않습니다!”
마수의 목소리는 간드러지는 것 같으면서도 걸걸했고, 새되면서 걸쭉했다. 결코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내가 창문을 열어주지 않자, 마수는 더욱 큰 목소리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열어 주십시오! 열어 주십시오! 열어 주십시오!”
“……목소리 낮춰.”
“해치지 못합니다! 열어 주십시오!”
똑똑.
그때, 현관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마수는 이제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대신 부리를 창문의 균열에 끼워 넣어, 억지로 창문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잠금 장치를 걸어 창문을 단단히 잠근 뒤, 현관으로 갔다.
“예. 누구시죠?”
– 저기, 사감 선생님인데. 혹시 안에 친구 데려왔어요? 데려오면 안 되는데~
“아니요, 친구가 아니라.”
– 자꾸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서요. 여자 친구 데려온 건 아니죠?
“아뇨……. 뭘 좀 보고 있어서요. 소리 줄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창틀에 걸터앉아 창문을 열려고 낑낑대는 마수를 흘깃 쳐다보았다.
저런 흉측한 것이 피렌체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내 방에 침입하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학교가 발칵 뒤집힐 것이 뻔했다.
사탄교도와 내가 유착 관계라는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다.
– ……이상한데. 잠깐 들어가 봐도 돼요? 아니면 문만 잠깐 열어줘요. 확인만 하게.
사감의 목소리에는 나를 의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문만 잠깐 열어주면, 은근슬쩍 방으로 들어올 셈인 것 같다.
창틀에 마수가 있다는 건 둘째 치고, 지금 내 방 안에는 미심쩍은 보라색 안개가 자욱하게 퍼져 있다. 방금까지 주술 연습을 하고 있던 탓이다.
나는 현관 잠금 장치를 걸어 닫으며 입을 열었다.
“문은…… 지금은 조금 곤란할 것 같은데요.”
– 왜요?
“방금 씻고 나와서 옷을 안 입고 있습니다. 진짜로.”
– 씻었다고? 아까 뭘 보고 있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게…… 물소리 때문에 안 들려서 소리를 키웠는데 그게 밖으로 샌 모양입니다.”
– ……알겠어요. 조금만 조심해줘요.
사감이 다소 탐탁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나는 현관문에 귀를 바짝 댔다. 사감이 복도를 지나,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비로소 안심하고, 마수가 있는 창가로 돌아왔다.
마수는 여전히 열리지도 않는 창문을 열려고 낑낑대고 있었다.
구준혁의 박제치고는 상당히 지능이 낮은 행동을 하는 셈이었다.
정말 들어올 생각이라면, 저렇게 아등바등 열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부리로 창문을 깨고 들어오는 게 낫다.
“열…… 열어 주십시오……. 해치지…… 못합니다…….”
게다가 저 마수는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열어 주십시오’와 ‘해치지 못합니다’라는 말 외에는 배우지 못한 것처럼. 게다가 ‘해치지 못합니다’라는 말은 어색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구준혁은 죽은 게 맞고, 저 마수는 그 잔해일지도 모른다.
구준혁의 조종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박제일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에 저토록 지능이 낮아 보이는 것이다.
“…….”
아니, 그건 섭리를 거스르는 짓이다. 거기서부턴 창조의 영역이다. 구준혁 같은 시정잡배가 창조의 영역에 손을 댈 수 있었을 리는 없다.
결론은 나왔다. 구준혁은 살아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 박제를 정밀하게 조종할 능력은 잃었다.
드르륵!
나는 창문을 열었다.
내 생각이 맞았다면 ‘해치지 못한다’라는 마수의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내 생각이 틀렸다면, 나는 아마 죽거나 크게 다칠 것이다. 그러나 아마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해치지 못합니다, 해치지 못합니다…….”
예상한 대로, 마수는 폭발하거나 나를 공격하지 않고 그저 날개를 파닥거리며 방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일 뿐이었다.
나는 마수가 들어오자마자 커튼을 쳤다. 그리고 재현 주술, ‘새벽의 검’을 꺼내 들었다. 혹시라도 마수가 허튼짓을 하면 곧바로 이마에 검을 꽂아버릴 생각이었다.
“해치지 못합, 우욱!”
“뭐야!”
그때, 마수가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검을 마수의 이마에 겨눴다. 보수의 권능이 없어도, 이 정도 거리에서 검을 던져 맞히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철퍽!
그때, 마수의 입에서 뭔가 토해져 나왔다. 입구가 묶인 검정색 봉투였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짐작할 수도 없다.
마수는 그 상태로 헛구역질을 몇 번 더 하더니, 위협하듯 날개를 쫙 펼쳐 보였다.
나를 공격하는 줄 알았으나, 마수는 열린 창문을 타고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날갯짓이 자아낸 바람에 커튼이 거세게 흔들렸다. 이윽고 침묵이 찾아왔다.
“…….”
마수가 토해낸 봉투를 보았다.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짐작할 수 없었다.
“오군. 안에 혹시 폭발물 같은 게 있는지 확인 한 번만 해줘요.”
[거절하지. 나는 금속 탐지기가 아니기 때문…….]“부탁합니다.”
[철로 된 것은 없지만, 폭발물이 없다는 보장도 없겠지.]오군은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철로 된 것이 없다면 적어도 기계식 폭탄 같은 것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고민할 것도 없는 문제다. 나는 봉투를 열었다.
“뭐야, 괜히 쫄았네.”
봉투 안에 든 것은 몇 번이나 접힌 종이 한 장과, 올리브나무 가지였다. 흑마법은 새겨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어찌 됐건 위험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조금은 무서워하는 게 맞다. 아니, 경계하는 것이 맞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군.]접혀 있던 종이를 펼치던 도중 렉바가 말했다. 그의 말투에서 못마땅한 기색이 느껴졌다.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마수가 토해낸 정체불명의 수상한 봉투를, 아무런 의심이나 경계 없이 열어버린 나를 질책하려는 것이리라.
“이런다고 죽기야 하겠어요?”
그러나 과한 걱정은 오히려 시간만 빼앗을 뿐이다. 렉바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믿지 않으니까 연 겁니다.”
구준혁이 아직 살아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는 교황청 지하 감옥이나, 어디 다른 감옥에 갇혀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순전히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 폭탄이나 흑마법 같은 것을 보냈을 리는 없다.
오히려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는 내가 부두교의 교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구준혁은 그 사실을 로마니카교에게 아직 알리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내 정체를 로마니카교에 알리겠다고 나를 협박할 수 있다.
동시에 나를 이용하여 탈옥할 계획을 짤 수도 있겠지.
이 종이에 적힌 내용도 아마 그러한 것이리라.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렉바가 물었다.
“저였다면 무조건 그렇게 할 겁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종이를 완전히 펼쳤다. 아니나 다를까 구준혁이 내게 보내온 편지였다 글씨는 몹시 삐뚤삐뚤했으나,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구겨진 부분을 잘 펴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나의 예쁜 박제 하나를 보내 편지를 전한다. 너라면 기꺼이 창문을 열어줄 거라고 생각해.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니까.편지를 길게 쓸 수는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박제를 통제하는 법을 잊고 있다. 전기가 내 뇌를 녹이고 있거든. 녹아버린 뇌는 곧 자라나지만, 사라진 기억은 자라나지 않는 모양인지.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중앙에 창부의 쥐가 숨어 있다. 곧 실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 그때를 노리지 않을까. 창부는 지금 원수를 갚으려 하고 있어. 나는 창부가 몹시 싫다. 나중에 같이 바다나 가자! 안녕, 안녕!]
“허.”
편지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문장 뒤에 잉크 자국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더 쓸 말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여건이 안 되어 쓰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박제를 통제하는 법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모양이다.
“창부의 쥐라…….”
편지를 두 번 정도 되풀이해 읽었다.
‘중앙에 창부의 쥐가 숨어 있다’, 그 뒤로 이어지는 경고의 문장들이 마음에 걸렸던 탓이다.
로마니카 상부에 첩자가 숨어 있다는 말인 것 같기는 한데, ‘중앙’이 정확히 어디를 뜻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중앙성기사단인지, 성전사단인지, 사제단인지. 무엇보다, ‘원수’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명확한 것이 없었다.
“일부러 좆같으라고 이러는 건가.”
[그런 것 같구나.]렉바가 내 말에 호응했다.
혹시라도 힌트가 있을까 싶어 편지를 몇 번 더 읽어 보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때려 맞히거나, 아니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전자는 너무 위험하니, 후자에 맞추어 행동하는 편이 낫겠지.
그러나 대비하는 것에만 그치면 안 된다. 실기고사에 문제가 생기면, 선교 여행도 취소되거나 일정이 뒤로 밀릴 게 뻔하다.
가능한 한 모든 위험을 ‘은밀히’ 처리하여, 차후 일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이상 선교 여행 일정이 밀리면 곤란하다.
“……예, 접니다. 바쁘십니까?”
그걸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 있었다.
* * *
식탁 위에 빵과 날음식, 그리고 갖은 서양식 요리들이 화려한 장식과 함께 놓여 있었다. 몇 병의 와인과 위스키가 가장자리에 쌓여 있었고, 그중 몇 개는 이미 비어 있었다.
자리에 앉은 다섯 중 유난히 얼굴이 불그죽죽한 남자가 별안간 고개를 들더니, 언성을 높여 말하기 시작했다.
“문요셉 이 자식 말이야. 시간 약속을 지킨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 빨라도 10분이고, 작정하고 늦으면 30분, 1시간도 늦지 않나.”
“그 친구가 시간 개념이 없기는 하지.”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야. 지금도 벌써 1시간 반이나 늦고 있지 않나!”
“일이 바쁜 모양이지. 듣기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새끼 뒤꽁무니나 쫓아다니고 있다는데.”
문요셉과 같은 시기에 중앙성기사단에 입단한 동기 간의 모임이었으나, 정작 모임을 주선했던 문요셉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에게는 기회였다. 덕분에 문요셉 앞에서는 차마 말할 수 없었던 불만들을 토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험담은 시작되니 끝날 줄을 몰랐다. 험담의 포문을 열었던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짓씹었다.
“성하께서는 그딴 놈이 뭐가 예뻐서……!”
“어허, 이 사람 이거 또 시작했네. 떠나간 자리에 미련 갖지 말도록 해. 그럴수록 추해지니까.”
“추한 짓으로 이단 심문관이 될 수만 있다면 내 얼마든지 추해질 수 있어. 될 수만 있다면…… 씨발, 개같은 자식!”
자리에 없는 문요셉을 향해 의미 없는 욕설을 내뱉는 그를 보며, 동기들은 하나같이 측은한 눈빛을 보냈다.
이단 심문관 자리를 놓고 일어났던 동기들 간의 불화를 모르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몇 년째 모일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자빠졌으니, 슬슬 측은하기보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는 하지만.
드르륵!
그때, 미닫이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맞장구를 치며 험담에 일조하던 동기들의 낯이 긴장으로 바짝 굳었다.
문요셉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방구석에 놓인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고는, 빈자리를 찾아 풀썩 앉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닐 곳이 있어서 늦었네. 전화받을 것도 있었고.”
문요셉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동기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방 한편에 쌓인 빈 병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미안하니 오늘 값은 내가 치르는 걸로 하지. 그래서 무슨 얘기 하고 있었나?”
“뭐……. 그냥 못 본 새 뭐 하고 지냈나, 그런 근황 이야기나 하고 있었지.”
다섯 중 가장 정신이 멀쩡한 남자가 문요셉의 말을 받았다.
문요셉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잔에 위스키를 따르고는,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러고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도수가 너무 높아. 혹시 와인 없나?”
“……어이, 문요셉이.”
그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서는 명백한 적개심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아까 전에 문요셉의 험담을 시작했던 그 남자였다.
남자의 얼굴은 지나치게 달아올라 있었고, 흰자에 돋은 핏줄은 징그러울 지경이었다. 남자가 말을 이었다.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몇 분도 아니고 2시간을 늦어놓고!”
“그래서 사과하지 않았나. 값도 내가 치를 것이고.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2시간이 아니라 1시간 34분일세.”
문요셉은 태연한 얼굴로 맞받아쳤다. 남자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가, 이내 하얗게 질렸다.
입술과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핏줄 돋은 눈동자는 문요셉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했다.
“……사과라. 그딴 식으로 하는 사과를 우리가 받아줘야 하나?”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 친구 많이 취했군. 요셉, 참아주게. 금방 집으로 돌려보낼 테니.”
“놔! 나만 이런 생각 하는 거 같아? 여기 있는 모두가 너를 아니꼽게 여기고 있어!”
“어허, 사람 참…….”
금방이라도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동기 하나가 얼른 분위기를 수습하려 들었으나,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분노 앞에서는 무력했다.
문요셉이 술을 따르다 말고 피식 웃었다.
“뭘 더 바라는 건지 모르겠군. 내가 고해성사라도 하길 바라나? 고작 이런 일로?”
“고작? 너 방금 고작이라고 했냐?”
“그래, 고작이지.”
문요셉은 미소를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 요즘 지방 성당에서 신부 노릇 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냥 자네에게 고해를 하면 되겠군!”
“…….”
“그래, 성호부터 그어야 하던가? 좀 알려주게.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기억이 안 나서 말이야.”
문요셉은 그렇게 말하고 낄낄대며 웃었다. 적막 속에서 문요셉의 기괴한 웃음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에게 멸시를 당한 남자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주먹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으나 눈동자는 미동 하나 없이 문요셉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그가 빈 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말릴 틈은 없었다.
쨍그랑!
병이 위협적으로 날아들었다. 문요셉은 가볍게 피했다. 취객이 홧김에 던지는 술병 따위를 피하는 것이야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병은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유리 조각이 바닥에 깔려 조명에 반짝였다. 문요셉은 태연히 술을 한 잔 더 따라 마시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독한 술을 먹으니 저렇게 취하는 거 아니겠나. 누가 저 친구 좀 집에 바래다주게. 저러다 일내겠군.”
“고맙네. 이놈이 오늘따라 왜 이러는지…….”
“놔, 이 자식아. 너이, 문요셉 이 개자식! 개같은 새끼!”
그는 동기들에게 질질 끌려 나가면서도 문요셉에게 삿대질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문요셉은 들은 체 만 체하며 술을 더 마셨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는 않고 혀에 쓴맛만 감돌 뿐이었다.
이미 분위기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니, 더 앉아 있어봐야 의미가 없을 것이었다.
문요셉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댕겼다.
“아까 참아줘서 고맙네, 정말로.”
문요셉을 따라 함께 담배를 피우던 남자가 말했다.
그는 아직 중앙성기사단 소속이며, ‘금욕주의’라는 것을 따르겠다며 술은 입에도 대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담배는 피우는 것이 참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문요셉은 굳이 그 부분을 짚지 않고 다만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 말고 할 게 어디 있나. 애초에 화도 안 났다네.”
“자네 성품은 정말…… 좋다기보다, 특이한 데가 있어.”
“그냥 좋다고 해주지 그래.”
문요셉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놈이 날 이렇게 싫어하는 줄은 몰랐군.”
“아니, 싫어하는 건 아닐 거야. 그냥…….”
“빈말할 거 없네. 싫어할 수도 있지. 내가 원체 미움을 사기 좋은 성격이라.”
문요셉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같이 있던 남자가 담배를 피우다 말고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심성은 착한 놈이야.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네.”
“아니야, 오히려 솔직한 면을 봐서 좋았어. 저런 거에 일일이 화내면 피곤하지. 오히려…….”
저렇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싫은 티를 내는 사람은 경계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술을 마시지 않고 가식적인 웃음을 실실 짓는 놈들이다.
술은 사람을 솔직하게 만들기에, 기어코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숨기려 하는 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유로 문요셉은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자신의 동기를 의심하고 있었다.
‘중앙성기사단에 수상한 자가 없는지 검토하여 주십시오.’
도선우가 자신에게 전한 말이었다.
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말을 전했을 리는 없고, 필시 짐작 가는 바가 있는 것이리라.
그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정보의 출처가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었다.
“요즘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고민이군.”
문요셉은 대수롭지 않은 척 미끼를 던졌다. 남자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의아하다는 듯, 혹은 흥미롭다는 듯.
“왜, 무슨 일 있나?”
“피렌체에서 실기고사를 하는데, 내게 자문을 구하지 뭔가. 듣자 하니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데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야.”
“흠.”
“자네도 알지 않나, 저번에 큰 사건 하나 있었던 거. 그때 일로 교사진들의 염려가 아주 큰 모양이야.”
일단은 용의선상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