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67
제167화
“뭔 시계가 팔찌처럼 생겼네. 클럽인 줄 알겠어.”
마유현은 전자시계를 차면서 비웃듯이 중얼거렸다. 같이 있던 조원들이 꺼림칙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조원 중에서 원래부터 마유현을 알고 있던 아이들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리고 그 기류 속에서 ‘사제-A’ 조는 두 부류로 분열되고 있었다.
마유현을 알기에, 아무런 의심이나 경계 없이 그를 믿고 따르려는 아이들. 그리고 마유현을 모르기에 의심하고 경계하며 두려워하는 아이들.
“자, 뭐 아무튼 잘해 보자고. 다들 시험 잘 보면 좋잖아?”
그렇기에 그들 모두는 마유현을 무의식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원래 공경이라는 것은 두려움과 같은 감정이나 다름이 없어서, 그 두 개의 감정이 묶이면 경외가 되었다.
마유현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공경하게 하거나, 두려워하게 하는 방법을 알았다.
“유현아, 작전이나…… 뭐 그런 거는 어떻게 할 거야?”
조원 중 마유현을 아는 아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마유현을 나름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지만, 과연 마유현도 자신을 친한 사이라고 생각할지는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마유현은 특유의 찢어진 눈매로 아이의 얼굴을 훑듯이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작전…… 작전? 생각 안 해봤는데, 흠…….”
딱!
고민하던 마유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도저히 손가락으로 낸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소리가 났다. 조원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조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유현의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생각났다. 일단은 다른 사제과 애들이랑 만나야 돼. 특히 성하연.”
“걔네가 어디 있는 줄 알고?”
“대충 같은 라인이야. 돌아다니다 보면 만나.”
마유현이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조원들은 군말 없이 따랐다. 마유현이 왜 저런 작전을 세운 건지, 심지어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조차 모르는 채로.
멍청한 얼굴로 자신을 따르는 조원들을 보며, 마유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시험의 의도가 삼파전인 건 알겠지? 평가 기준에 과별 평가도 있으니까.”
“…….”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럼 대충 같은 과 애들끼리 모이도록 시작점을 설정했겠지. 알아서 붙어먹으면서 과끼리 뭉치고, 다른 과랑 경쟁하라고.”
“아하…….”
“그냥 조용히 하고 나만 따라와. 알아서 할 테니까.”
마유현은 그렇게 말하며 대열의 선두에 서서 걸었다. 걸음이 무척 빨라서 조원들은 그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벅찼다.
마유현은 그러는 동안 막연했던 작전에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는 중이었다. 시험을 제작한 교사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곧 대적하게 될 다른 과의 중요 인물들을 떠올리며, 타개책을 구상하고 변수를 상정했다.
단순히 개개인의 역량으로만 따지면 김진서, 여민서, 한수련이 속한 성전사과가 가장 위협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전사는 다소 호전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짙은 까닭에 뭉치지 못하므로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다. 이용할 수 있는 여지도 있고.
그러나 성기사는 집단적이며 뭉칠 가능성이 높기에, 지금으로서는 도선우와 강대만이 속한 성기사과가 가장 위협적인 상대일 것이다.
마유현이 거기까지 생각을 마쳤을 때, 저 멀리 사제과의 다른 조가 보였다.
“오~ 반갑다!”
마유현은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반가운 시늉을 했다.
반대편 조는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마유현의 웃는 낯을 보자 차츰 경계를 풀고 다가왔다.
같은 사제과라는 사실이 입증된 뒤로는 처음부터 같은 조였던 것처럼 완전히 경계를 허물었다.
새롭게 합류한 조는 ‘사제-F’ 조였다. 마유현은 대충 사제과라는 것만 파악하고 조 이름을 머리에서 지웠다. 이 시험에서 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조’가 아니라 ‘과’였다.
“혹시 너희 성하연 봤냐? 특이하게 생겨서 멀리서도 잘 보일 텐데.”
마유현은 새롭게 가세하기로 한 조에서, 가장 조장처럼 생긴 사람을 붙잡아 물었다.
“성하연? 음…….”
“못 봤으면 말고. 이 새끼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마유현은 대답조차 기다리지 않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따르던 조원 하나가 의아한 얼굴로 마유현을 붙잡았다.
“어디 가? 이렇게 둘이 합세하는 거 아니었어?”
“두 개로 안 돼.”
마유현은 조원의 손을 뿌리치며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그러고는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최대한 많이…… 적어도 4개 조 이상. 그렇게는 모여야 버텨.”
“4개나?”
“다른 과에서 우리 쪽으로 무조건 올 거거든.”
사제과는 다른 과에 비해 전투가 약하다. 대신 대체로 성적이 높은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전투와 관련된 조건을 제외한 다른 조건을 충족하여 토큰을 얻어내는 것은 비교적 쉬울 것이다.
문제는 다른 과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성전사와 성기사과에서 반드시 사제과를 견제하러 올 것이라는 점.
그렇기에 뭉쳐야 한다. 초식 동물이 뭉치는 것으로 포식자들을 속이듯, 누가 봐도 압도될 정도로 많은 양의 인구가 뭉쳐야만 하이에나와 같은 성전사와 성기사과 놈들을 이길 수 있다.
“뭐…… 수틀리면 내가 싹 다 상대해도 되고!”
마유현은 걱정하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조원을 향해 뻔뻔스럽게 말했다.
조원들은 장난으로 한 말로 받아들였지만, 마유현은 진심이었다. 강대만과 김진서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상대가 가능했다. 오히려 여유롭게 이길 자신까지 있었다.
아니, 아니다. 도선우 그놈은…….
“……일단 최대한 모아야 돼. 너희도 흩어져서 다른 애들 좀 찾아. 4개 조 이상 모이면 그때 불러.”
마유현은 자신의 조원들에게 그렇게 당부한 뒤, 다른 조를 찾아 다시 걸었다.
한 걸음마다 하늘이 검게 칠해지고, 지면에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무겁고 짙은 먹구름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빗줄기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쏴아아아…….
그리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쳤다. 그야말로 폭풍우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마유현은 변덕을 부리는 하늘을 보며 피식 웃었다.
“어떤 새끼가 또 기우제를 지냈나…….”
* * *
“일단은 사제 쪽 진영으로 가. 어디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북쪽이 아닐까 싶은데.”
강대만은 자신의 조원들을 데리고 이동하면서 도선우가 말해주었던 작전을 끊임없이 상기하고 있었다. 도선우는 시험 초반에 인질을 잡아두는 편이 가장 좋다고 말하며, 인질 중 가장 몸값이 높은 것은 아마 사제일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북쪽이…… 여기서 어디지?”
작전을 들은 강대만은 하늘을 쳐다보며 물었다. 먹구름 탓에 해가 보이지 않았고, 밤이 아니라 별도 보이지 않으니 방향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도선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모르겠으면 그냥 저쪽으로 쭉 가. 꼭 북쪽으로 갈 필요는 없으니까.”
도선우는 그렇게 말하며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성기사과에 속한 조는 수갑을 3벌 더 받았으니, ‘인질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만 한다. 가는 길에 성직자들을 만나면 토큰을 얻으려 노력은 하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으면 포기해라.
비가 오면, 부근에서 가장 멀쩡한 건물을 하나 골라 5분 정도 대기해라. 예상외의 대어가 낚일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하고 도선우는 떠났다.
그가 무엇을 하러 가는 것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비가 정말 올 줄은 몰랐는데…….”
강대만은 하늘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도선우가 말한 것처럼 정말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이 우중충하기는 했어도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는 아니었는데, 마치 그의 말로 하여금 비가 내리게 된 것만 같았다.
어쨌거나 비가 오고 있으니, 도선우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강대만은 거친 손길로 얼굴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조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다들 저기 보이는 성당으로 들어가자!”
그는 부근에 있는 건물 하나를 골라 가리키며 외쳤다. ‘분노’와의 전투 이전에는 성당으로 쓰였던 건물인 것 같았는데, 그래서인지 무척 크고 상태가 양호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차피 폐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잠깐 비를 피하기에는 충분한 건물이었다.
도선우도 ‘비교적 멀쩡한 건물’을 고를 때 반드시 비를 피하기에 충분한 건물을 택하라는 말을 강조했었다.
“여기서 잠깐 대기한다.”
교회 안으로 들어온 강대만은 옷을 벗어 물기를 짜내며 말했다. 조원 중에 여학생들이 있기는 했지만, 어느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강대만은 원래 어디서나 옷을 훌렁훌렁 벗고 다니는 성격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그는 오늘 옷을 무척 얇게 입고 와서, 입으나 벗으나 별 차이가 없었다.
강대만은 그 상태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다들 비에 맞아 녹초가 되어 있었다. 아주 빠른 걸음으로 이동한 탓인지 벌써부터 지친 얼굴들이었다.
“흠.”
비가 오면 조원들이 역량을 오롯이 발휘하기 어려우니, 적당한 건물을 골라 쉬라고 이런 지시를 내린 것 같았다. 강대만은 날씨와 조원들의 역량을 고려한 도선우의 지시에 내심 감탄을 표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온 인원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인원 체크는 수시로 해.”
이 또한 도선우가 당부하였기 때문에 하는 것이었다. 시험 시간이 길고 편성된 인원이 많은 만큼, 예기치 못한 이탈자가 생기면 다시 합류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였다.
‘성기사-D’ 팀의 총원은 10명이다. 그러니 이 건물 안에도 10명이 있어야 맞다. 강대만은 손가락을 들어 조원들의 수를 헤아렸다. 하나, 둘, 셋…….
“……아홉, 열.”
정확히 맞았다. 다행히 이탈한 인원은 없는 것 같았다.
그때 강대만의 머리로 한 가닥 의문이 스쳤다. 도선우는 아까 단독 행동을 하기로 하여 대열에서 이탈했으니, 총원은 10명이지만 지금 이 곳에 있어야 하는 인원은 9명이어야 맞았다. 그런데 왜 10명인가?
잘못 셌을지도 모른다. 강대만은 조원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응시하며 다시 수를 셌다.
“…….”
낯선 얼굴이 강대만의 눈에 띄었다. 얼굴만 낯선 게 아니라 체형부터 피부색까지 모든 게 낯설었다. 성기사를 하기에는 지나치게 가녀린 체구. 한겨울의 때 묻지 않은 눈처럼 새하얀 피부와 머리칼.
그녀는 비에 맞아 홀딱 젖은 채로, 성당 구석에 있는 고해실 옆에 쪼그리고 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사제과의 성하연이다. 강대만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곧이어 그녀도 강대만의 존재를 인식했다.
그녀의 입이 반쯤 벌어지고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
그녀가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슬금슬금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번번이 몸을 일으키는 데에 실패하고 있었다.
그쯤 되니 ‘성기사-D’의 다른 조원들도 성하연의 존재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독보적인 외모였던 것이다.
홀로 있는 성하연과 9명의 ‘성기사-D’ 조가 대치했다.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뭐 해, 빨리 저거 잡아!”
누군가의 외침이 정적을 깼다.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던 성하연이 아예 몸을 돌리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망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대만과 성하연, 둘 중 누가 더 달리기가 빠를지는 굳이 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찰칵!
성하연이 몇 걸음 발을 떼지도 않았을 때, 강대만은 이미 그녀의 등 뒤에 있었다. 성하연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이 수갑은 주로 부패했거나 배교한 성직자들을 체포할 때 쓰이는 것으로, 체내 신성력의 흐름을 통제하여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성물이었다.
털썩.
그녀는 고해실에서 얼마 멀어지지도 못하고 수갑에 힘을 빼앗겨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애초에 강대만을 보고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리긴 했지만, 수갑까지 채워지니 발가락 하나도 꼼짝하지 못할 만큼 몸이 축 늘어지고 있었다.
뭐라 말을 하며 발악이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입도 잘 떼어지지 않았다.
강대만은 그런 그녀를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비가 오면 근처에 있는 가장 멀쩡한 건물로 가서 대기해. 예상외의 대어가 낚일 수도 있으니까.”
도선우가 했던 말이 강대만의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그의 말은 마치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의 말처럼 정확히 들어맞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