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74
제174화
악마종과 뱀은 싸웠다. 아니, 그건 싸움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일방적이었다.
뱀은 악마종의 하반신을 물고, 팔을 물어 잘근잘근 씹었다. 악마종의 상처에서는 검은 피가 줄줄 흘렀다.
하반신과 한쪽 팔을 잃은 악마종은 더 이상 싸우지 못했다.
뱀은 기세를 몰아 악마종의 몸을 휘감아 조였다. 우득, 악마종의 몸이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악마종은 희멀건 눈동자로 뱀을 응시하며 수없이 눈을 깜빡였지만, 뱀은 까딱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악마종의 몸을 휘감으며 그 몸뚱이를 부술 뿐이었다.
“하아, 하……!”
김진서는 숨을 고르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현실감이 들지 않는 풍경이었다.
어머니를 죽였던 악마종이 실기고사장에 버젓이 나타났다. 그것도 모자라, 상식을 벗어난 거대한 뱀이 나타나 그 악마종을 집어삼키고 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발목과 폐부와 손바닥의 통증이 너무도 또렷했다.
– 아아.
그 순간, 뱀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뱀은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보며 탄식을 흘렸다.
날름거리는 혀끝이 태양을 핥듯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촉촉한 습기를 머금고 햇살에 반짝이던 찬란한 비늘이 차츰 색을 잃더니, 이내 뱀의 몸도 자그마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 계약의 효력이 다했구나.
콰드득!
뱀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그대로 땅속으로 되돌아갔다.
뱀이 나왔던 자리와 들어왔던 자리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렸고, 일대도 쑥대밭이 되었다. 일찍이 전투 능력을 상실한 악마종은 검은 피를 쿨럭쿨럭 흘려대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놈이 말한 방해꾼이…… 이거였군.”
희멀건 눈동자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콰직.
악마종의 가슴을 뒤덮고 있던 단단한 갑피에 균열이 갔다. 그곳에서 검푸른 심장 같은 것이 꿈틀대며 기어 나왔다.
심장에서 4개의 촉수가 돋아 나왔다. 심장은 촉수를 다리처럼 사용하여 흙바닥을 기어,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졌다.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심장을 잃은 악마종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사라지고 있었다. 그조차 김진서가 보기에는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뱀, 악마종, 계약, 방해꾼.
그들과 그들이 뱉은 말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악마종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악마종의 본체는 심장이었다. 심장을 도려내어 완전히 파괴하지 않는 한 악마종은 죽은 게 아니었다.
눈앞에서 악마종을 놓친 것도 모자라, 농락당했다.
김진서는 그토록 나약한 스스로를 가슴 깊이 미워하고 증오했다.
“…….”
그러나 생각할 틈은 없었다. 눈과 입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고, 손발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출혈을 막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먼저였다.
김진서는 급한 대로 옷을 찢어 붕대를 만들었다. 손으로는 잘 찢어지지 않아서 이까지 사용해야 했다.
얼굴에 묻은 피는 손으로 대충 닦아내고, 간이붕대로 발목을 감았다. 일어나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번번이 넘어져 흙바닥을 구르기 일쑤였다.
“저, 저기예요!”
일어나다가 넘어지기를 다섯 번쯤 반복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먼저 도망가도록 시켰던 아이가 하예진과 김복동을 데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하, 하…….”
김진서는 그 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실없이 웃었다. 김복동 위에는 하예진이 목말을 타고 있었고, 하예진 위에는 아이가 업혀 있었다.
브레멘 음악대인 줄 알았다.
“김진서, 괜찮……. 세상에, 하나도 안 괜찮잖아!”
김복동은 김진서의 상태를 확인하다가 깜짝 놀라 말했다. 그는 맞은편에 놓인 악마종의 사체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사체가 기화하여 검은 연기가 솟구치는 모습을 보며 이내 안심했다.
“이게 무슨……. 정확히 어디 다친 거예요? 봐요.”
하예진이 신성력을 사출하며 말했다. 신성력의 빛은 그녀의 손끝을 따라 순식간에 치유진으로 변했다.
사제단에 있을 때와 비교해도 여전히 녹슬지 않은 실력이었다. 치유의 빛이 김진서의 몸을 휘감았다.
급하게 그려낸 치유진이라 효과는 미미했지만, 통증은 많이 낫고 있었다.
“…….”
아이는 말없이 김진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시울과 콧잔등이 붉었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 걸 보니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는 모양이었다.
김진서는 아이를 향해 ‘잘했어’라고 말했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뜻은 전해졌다.
아이는 그제야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보니까 치유가 잘 받는 타입인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여기서 다 낫지는 않을 거예요. 한 며칠 누워 있어야 해요.”
하예진이 말했다. 김진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악마종은 네가 처치한 건가?”
김복동은 김진서의 손에 들린 부러진 채찍자루와,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악마종의 사체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김진서는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를 통해 좀 더 제대로 된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목이 쉰 건지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를 않았다.
“그럼, 저 악마종은 어디서─”
“애한테 말 시키지 마요. 외상이 아니라 내상이 더 심각한 것 같아요.”
하예진이 치유진을 연신 그리며 김복동을 다그쳤다. 김복동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다.
그는 악마종이 어떤 경로를 통해 시험장에 들어온 것인지 묻고 싶었다.
길이 하나라도 뚫려 있다면, 다른 곳에서도 악마종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일단 시험부터 중지시키도록 하지. 다른 교사들에게 연락을 돌리겠다.”
“아니, 내가 돌릴 테니까 얘부터 얼른 병원으로 데려가요.”
“그게 낫겠군.”
김진서의 상처는 하예진의 치유 덕에 많이 호전되어 있었다. 곧바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후유증은 남지 않을 것이었다.
김복동은 김진서를 업어 들 요량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예진은 높은 수준의 치유진을 여러 개 그리느라 흐른 코피를 손으로 대충 닦아내며, 전자시계로 교사들에게 연락을 돌리려 했다.
데구루루…….
그때, 무언가 그들을 향해 굴러왔다. 그러자 네 사람의 행동이 일제히 멈추었다.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굴러온 눈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는 하얬고 동공의 생김새는 기묘했다.
김진서는 저것이 뭔지 알고 있었기에 애써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녀의 시선은 이미 희멀건 눈동자에 붙어 떼어지지 않고 있었다.
눈동자는 눈꺼풀 없이 깜빡였다.
끼이이이이익─!
김진서의 귓가에 굉음이 울렸다.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 목 쉰 여인의 절규, 죽기 직전의 닭이 내뱉는 단말마.
어떤 표현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기괴한 소리였다.
시선이 소용돌이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세상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돌고, 구겨지고, 압축되면서 마침내 사라졌다.
세상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 남은 것은 태초의 암흑. 무엇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두렵고도 까마득한 암흑이었다.
눈동자를 보고 있던 네 사람 모두가 같은 소리를 듣고, 같은 풍경을 보고 있었다.
– 비 냄새가 나네.
그곳에서, 그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던 그릇된 욕망의 편린을 본다.
* * *
“계약은, 어떻게…….”
[네가 원하는 바를 이뤄 주었단다.]담 발라가 말했다.
나는 베베로 현현(顯現)된 그녀의 모습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전달하였을 뿐, 현장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란브와의 권능을 사용하면 확인할 수 있기는 했다. 실제로 나는 그란브와의 권능을 쓰려고 했다.
[아니요. 이번에는 정말 안 돼요.]“…….”
그러나 그란브와가 매몰차게 거절해 버렸다. 또 권능을 빌려주면 내가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이번에는 정말 빌려주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말투가 평소와 달리 몹시 단호하고 딱딱했다.
나는 그냥 담 발라를 믿기로 했다. 그녀가 어떻게 잘 해결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믿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마리, 네트.”
화륵!
건물을 나오기 전, 먼저 마리네트의 불꽃을 불러 베베의 흔적을 지웠다.
불꽃은 바닥에 흩뿌렸던 뼛가루를 태울 만큼만 타오르고, 그다음부터는 힘을 잃었다.
나는 건물 밖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다시 ‘성기사-D’ 조의 대열에 합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건물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연달아 로아의 권능을 사용한 탓에 몸에 힘이 없었다.
소보, 단 웨도, 보수, 그란브와, 담 발라, 마리네트…….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여섯. 이렇게 많은 로아의 권능을 일시에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문득 운이 좋을 거라던 바론 삼디의 말이 떠올랐다. 도대체 어떻게 이게 운이 좋은 거지?
[바론 삼디의 말을 아직도 믿나? 그놈의 말은 슬슬 신빙성이 없지.] [아니, 운이 좋을 거라는 내 말은 진실이야. 그것이 오늘 드러나지는 않았을 뿐. 결국 선지자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허풍 떨긴.] [허. 오늘따라 왜 이럴까? 쓸데없이 까칠하시군.]렉바와 바론 삼디가 티격태격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섞였다.
나는 건물 1층으로 내려와 잠깐 쉬기로 했다.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니라, 쉬지 않으면 도저히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깨진 거울을 본다.
“…….”
눈과 코와 입에서 흐른 피로 얼굴은 물론 옷까지 새빨갛게 칠해져 있었다. 얼굴은 초췌하다.
거울 너머로 보는 내 모습은 산산조각 나 있었다. 깨지고 부서지고 어긋난 모습. 어디선가 본 듯한 나의 모습에, 나는 참을 수 없는 구역감을 느꼈다.
속을 게워내려고 했지만, 나오는 것은 헛구역질밖에 없었다. 위액조차 나오지 않았다.
얼굴에 흐른 피를 옷깃으로 대충 닦아내고 다시 걸었다. 건물을 나와 맑은 공기를 마셨다. 공기에서는 피비린내가 났다. 내 입과 코에서 나는 냄새였다.
로아의 목소리들이 뒤엉킨다. 주로 상태가 안 좋을 때, 도취 주술에 의해 정신이 지나치게 각성되었을 때 이러고는 했다.
사자의 계약을 위해 교차로에 발을 들인 뒤, 교차로에서 영원인지 찰나인지 모를 시간을 보낸 뒤부터 특히 이런 경우가 잦았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었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길 만도 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당연히 참고 넘기는 게 맞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차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 제발 좀─!”
[쉿.]분에 못 이겨 소리를 치려 했으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담 발라의 매혹적이고 달콤한 목소리가 내게 침묵을 요하고 있었다.
나는 귓가에 스미는 소름을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내게 다가오는 한 사람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어……. 너.”
“…….”
“아니, 너 왜 여기. 어? 얼굴은 왜…….”
정인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손끝은 물론 입술까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안색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나는 그녀의 물음에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인질 포획을 위한 수갑이 들려 있었다.
나는 괜스레 뒤를 돌아보거나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퇴로를 물색할 생각이었다. 사방에 널린 것이 퇴로였다.
문제는 내 몸 상태였다. 걷기도 힘든데 뛸 힘이 있을 리 만무했다. 도망을 친다고 해도 우습게 따라 잡힐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상대가 정인아라고 해도.
“괘…… 괜찮은 거야, 너?”
정인아가 느릿한 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며 연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망치는 것도 안 되고, 전투를 해도 당연히 질 것이다. 죽을 각오로 임하고 싸우면 어찌어찌 이길 수 있겠지만, 그럴 가치가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잡히기에는 싫었다. 고사장을 습격할 마수와 악마종을 처치하느라 개처럼 굴렀는데, 막상 시험을 망쳐버리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폭.
비틀비틀 걸어가서 정인아에게 머리를 기댔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중심을 실은 채로 숨을 골랐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놀란 탓인지, 그녀의 몸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느덧 그녀의 몸이 떨리지 않게 되었을 무렵, 그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무슨 짓을 했길래 얼굴이 이 모양이야?”
정인아가 다그치듯 말했다.
그녀는 수갑을 들고 있었지만, 딱히 나를 인질로 포획할 생각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말투에서는 나를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녀는 성정이 유약했다. 말만 잘하면 그녀에게서 도망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어쩌면, 그녀를 포획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강대만한테 맞았어.”
“뭐?”
나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