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75
제175화
마유현은 총 5개 조와 연합했다. 그중에는 정인아가 속한 조도 있었다.
마유현은 상대적으로 신체 조건이 좋거나, 능력이 뛰어난 조원들을 시켜 성직자를 만나 토큰을 얻도록 했다.
개인 행동을 하되, 성기사과나 성전사과에 속한 조와 마주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도망쳐서 대열에 다시 합류하라는 말도 전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조원들은 마유현과 함께 축복진을 그렸다.
그들이 신성력을 사출하면, 마유현이 그것을 마치 자신의 신성력인 것처럼 다루며 축복진을 그렸다.
여러 가지 축복진을 하나의 갈래로 엮은 융합 축복진이었다. 그것은 크고, 동시에 엄청나게 복잡했다.
축복에 나름 일가견이 있는 자들조차 마유현이 그리고 있는 축복진이 무엇인지 몰랐다.
일사불란하게 지시를 내리는 마유현의 언행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의 눈빛은 확신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 누구도 마유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홀린 듯 마유현을 따르고 있었다.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어, 정인아입니다.”
정인아는 돌아다니며 토큰을 수집하는 부대에 배속됐다. 그녀는 성직자들을 만나 토큰을 땄다.
축복의 활용이나 몸을 써야 하는 과제는 기피했고, 머리를 쓰는 과제만 골라서 했다. 주로 축복진을 분석하거나 암호를 해석하는 과제였다.
사제들은 전투를 보조하는 일을 맡기도 하지만, 보통 축복진을 연구하거나 고대 문헌, 성서 등을 해독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분석, 해독 과제는 그러한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 내어진 것이었다.
성직자들은 제법 어려운 문제도 손쉽게 풀어내는 정인아에게 관심을 가졌다. 이름을 묻거나 명함을 건네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훗날 있을 의뢰 실습이나 파견 등에서, 자신의 사제단으로 오라는 일종의 스카우트 제안이었다.
“어…… 너.”
도선우를 만난 것은 토큰을 얻고 대열로 합류하는 길이었다. 마유현의 지시대로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정인아는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도선우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홀린 듯한 걸음이었다.
도선우의 상태가 너무나 처참한 탓에 도망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는 퇴로를 물색하려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체념한 듯 정인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무슨 일을 당했기에 이런 몰골이 되었는지 궁금했고, 왜 조원과 함께 있지 않고 홀로 떨어져 나와 있는지 의아했다.
그녀가 경위를 묻자, 도선우는 강대만에게 맞았다고 대답했다.
“뭐?”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도선우의 상태를 보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조원끼리 불화가 일어나서 싸우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강대만에게 맞았다면 대충 상황도 이해가 된다.
정인아는 어깨에 닿는 도선우의 온기를 느끼며 입을 열었다.
“싸운 거야?”
“의견 충돌이 좀 있었어.”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이렇게!”
정인아가 소리를 지르다가 말을 멈췄다.
“……패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럼, 너는 맞고만 있었던 거야?”
“내가 이 정도니까…… 강대만은 이미 죽었지.”
“웃기고 있네! 보니까 맞기만 했구만.”
정인아는 화를 내면서도 피식 웃었다. 피떡이 되도록 맞아놓고 태연하게 허세를 부리는 도선우가 웃기기도 했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도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도선우가 숨을 내뱉을 때마다 목 언저리와 귓가에 숨결이 닿았다. 그의 숨에서는 미미한 피 냄새가 나고 있었다.
“시험은 어떻게 할 거야. 중도 포기?”
“응, 아마…….”
도선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쉬어서 갈라지는 목소리는 작았고 힘이 없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본인도 그걸 알고 있는지, 도선우는 말을 할 때마다 입가를 귀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귀에 숨이 닿을 때마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왜 이렇게 찰싹 붙어 있어. 거머리냐?”
정인아가 괜히 퉁명스럽게 도선우를 떼어내며 말했다. 그러나 도선우는 그럴수록 오히려 더 다가왔다.
“붙어 있으면 안 돼?”
“안 되는 게 아니라…… 무거워! 그리고 나 감기 걸렸어. 옮으면 안 돼.”
“힘들어서 그래. 좀만 기대자.”
“아, 그럼 나 말고 벽에 기대든가. 아니면 바닥에 누우면 되잖아……!”
정인아가 그렇게 말하며 도선우를 떼어내려 했지만, 그는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벽은 차가워. 바닥은 더러워서 눕기 싫고.”
“…….”
도선우는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으로 정인아의 머리를 가져와 품에 안았다. 힘껏 밀쳐낸다면 얼마든지 밀쳐낼 수 있었을 테지만, 정인아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아파서 조금 쉬겠다는 애를 매몰차게 밀어낼 수 있을 만큼 그녀의 마음은 단호하지 못했다.
“미안.”
도선우가 품에 안은 정인아의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 있었다. 사과를 받고 나니 괜히 미안하고 무안했다. 도선우는 부상자였고, 중도 포기를 한다면 경쟁자도 아니었다.
그런 그를 너무 차갑게 대한 게 아닌가 싶었다. 정인아는 그의 품 안에서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씨…… 기대든 안기든 너 마음대로─”
또각.
그 순간, 정인아의 뒤통수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얼핏 들으면 구둣발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소리와 함께 그녀의 의식이 흐려졌고, 말은 끝을 맺지 못하고 흩어졌다. 정인아는 영문도 모른 채 의식을 잃고 흐느적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진짜 미안…….”
철컥.
도선우는 연신 사과를 반복하며, 기절한 정인아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그의 오른손 검지가 부러져 있었다.
정인아가 인질로 포획되었다는 메시지가 전자시계에 떠올랐다.
* * *
휴교 기간 동안 주술을 체득하기 위한 연습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걸 연습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차라리 수련이나 수양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주술진을 그리고, 또 주술의 안개를 제어하며 단지 무식하게 주술을 사용하기만 했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주술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저 묵묵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아버지가 이루었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몇 주, 심지어는 몇 달이 지나도 진전이 없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아버지가 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다져놓은 길을 고스란히 걸어가는 것조차 버거웠다.
나는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걸어야 했고,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나름 성공한 셈이구나.]나는 부러트린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렉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에서는 전기가 통하는 듯 찌릿한 감촉만 희미하게 느껴질 뿐 아프지는 않았다.
예배당에 머무는 동안 나는 매일 밤마다 새벽의 검으로 손가락 부분의 살을 째고, 상처에 주술을 각인했다. 무식한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해도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몸속에 몇 겹의 주술을 꾸준히 새겨넣자, 비로소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나는 주술을 체득했다. 아버지의 방식은 아니었다.
그렇게 손에 각인했던 주술은, 손가락을 부러트리면 발동되었다. 그것으로 정인아를 재우고 그녀를 인질로 포획했다.
나를 동정하고 믿어준 정인아를 배신했다.
쓰러진 정인아를 등에 업고, 강대만이 있는 쪽으로 걸었다. 정인아는 가벼웠지만, 내 몸 상태가 멀쩡하지 않아서 굉장히 무겁게 느껴졌다.
가쁜 숨을 내쉬며 몇 분쯤 걸었을 때, 바론 삼디와 보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속인 아이를 또 속인 거냐? 이거 완전히 쓰레기 다 됐군.] [그렇게 안 봤는데……. 보수는 선지자에게 실망했다.] [시험이란 원래 조금씩 권모술수를 써야 하는 법이다. 이 경우에는 속은 게 잘못이지.]렉바가 나를 두둔했다.
[그래도 조금 심했어요. 아무리 시험이라 해도.] [꼬마는 이제 꼬마가 아니게 되었구나…….]그란브와가 나를 힐난했고 담 발라가 헛소리를 지껄였다. 그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뒤엉켜 섞이면서 소음이 되었다. 생각이 사라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뒤흔드는 것만 같았다.
목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출혈 때문인지 모를 어지럼증이 일었다.
“아, 씹……. 아니다. 그냥…… 제발 좀 조용히 해주세요.”
[나는 조용히 했다. 다른 놈들이 시끄러울 뿐이지. 특히 바론 삼디 말이다.] [아니, 렉바가 제일 시끄러웠다. 나는 솔직히 몇 마디 하지도 않았잖아?] [보수가 미안하다!] [조금 심했던 건 사실이었어요! ……진짜 조금이요.] [꼬마야……, 못 본 새 많이 까칠해졌구나.]아무래도 다들 조용히 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정인아를 업고 있는 와중이라 귀를 막을 수도 없었고, 귀를 막는다고 해서 들리지 않을 목소리도 아니었다.
목소리 탓에 머리가 무거웠다. 이것이 선지자의 무게? 그렇다면 생각보다 가볍군.
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시험을 치르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먼저 전자시계를 통해 강대만에게 연락하여 접선지를 정했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대만을 비롯한 조원들은 사제과 진영과 성기사과 진영 사이의 경계에 있는 적당한 건물을 골라,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바탕 전투를 치른 직후인지 강대만의 몸이 진흙에 뒤덮여 있었다. 보아하니 성하연과 한수련 외에도 몇 명의 인질이 더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강대만과 조원들이 포획한 모양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이었다.
“오, 도선…… 몰골이 왜 그러지?”
강대만은 얼굴에 묻은 진흙만 손으로 대충 닦아내더니, 내 몰골을 보자마자 놀란 듯 물었다.
나는 기절한 정인아를 다른 인질들 옆에 눕혀 놓았다. 그리고 성물을 밀반입할 때 사용했던 외투를 그녀 위에 덮어주며 입을 열었다.
“싸웠어. 사제과 애들 17명이랑.”
“이겼나?”
“이겼으니까 얘를 데려왔지.”
“저, 이거 수갑 열쇠 좀 줘요.”
나는 쓰러진 정인아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성하연이 뭐라고 말했지만 못 들은 척했다.
강대만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듯 침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흠…… 그런데, 고작 사제 17명을 상대하면서 그렇게 다쳤다고? 믿을 수 없군!”
“아, 말을 잘못했다. 17명이 아니라 71명이었어.”
강대만이 머릿속으로 71명과의 전투를 상상하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시선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강대만이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난데. 그거 아주 치열한 싸움이었겠군.”
“아주 치열했지.”
이걸 믿네.
강대만은 내 말이면 다 믿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애를 악인으로 만들어 가면서까지 정인아를 속였다.
양심의 가책이 두 배로 느껴졌다.
인질로 잡혀 있는 한수련이 벽에 기대어 앉은 채, 대화를 나누는 우리 모습을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도 네가 없는 동안 전투를 몇 번 치렀다. 사제 쪽과의 전투는 대부분 승리했지만, 성전사 쪽은…….”
“졌겠지. 그래도 손실은 적네.”
나는 앉거나 누워서 쉬고 있는 조원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다들 전투에 의한 피로가 얼굴과 온몸에 쌓여 있었다.
게다가 수도 조금 적었다. 나와 강대만을 제외하면 다른 조원은 8명이 있어야 정상인데, 지금은 5명밖에 없었다.
성전사과에 속한 조와 전투를 치르며 3명의 조원을 잃게 된 모양이었다.
“미안하다. 여민서와의 전투에서 너무 체력을 많이 소진해 버렸어. 무엇보다 나는 조원들을 통솔하는 재주가 없다.”
“아니…… 이 정도면 괜찮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가 포획해 온 인질의 수를 셌다.
한수련, 성하연, 정인아. 그리고 처음 보는 얼굴 2명. 총 5명이다.
이 정도면 정말 괜찮았다. 특히 한수련과 성하연의 존재가 컸다. 그들 둘은 각 과에서 핵심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일단 지금은 쉬어. 조원들 컨디션도 중요하니까.”
조원들 컨디션보다, 일단 나부터 쉬고 싶었다. 강대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그럼, 쉬고 난 다음 작전은 뭐지?”
“쉬고 난 다음에 수갑 좀 풀어주세요…….”
나는 강대만의 물음에 대답하기에 앞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시험이 끝나기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지금 인질과 토큰을 두고 협상을 하면 제법 많은 양의 토큰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인질 팔러 가야지.”
“오……. 방금 마치 영화에 나오는 악역 노예상 같았다. 정말 멋있군.”
“어, 고맙다.”
저게 칭찬인지 비난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고맙다고 했다.
지금은 생각을 길게 할 여유가 없었다. 일단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는 게 먼저였다.
고작 몇 분 쉰다고 체력이 회복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 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나는 건물에 널브러져 있는 낡은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등받이에서 끽끽 소리가 났지만 그런대로 앉을 만했다. 적어도 의자로서의 조건은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나는 앉아서 숨을 고르고 또 골랐다.
“으음…….”
목구멍과 코끝에 맴돌던 비릿한 피 냄새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때, 그녀가 일어났다.
정인아는 졸린 눈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발견했다. 그녀가 흐릿한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눈치였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