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78
제178화
정인아와 성하연은 마유현의 안내를 따라 사제과 진영으로 돌아왔다.
마유현을 필두로 모인 사제들은 주택가로 둘러싸인 마른 저수지에 터를 잡고 모여 있었다.
그들은 도란도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마유현이 오자마자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기계처럼 신성력을 사출하기 시작했다.
마유현은 그들이 사출한 신성력을 지휘하듯 옮겨 자신의 손에 담았다. 마유현의 눈길을 따라 축복진이 그려졌다.
마른 저수지의 중앙에는 그렇게 그려진 축복진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쌓이고, 겹쳐져 있었다.
“이게…… 뭐죠?”
성하연이 바닥에 늘어진 수백 개의 축복진을 둘러보았다.
그 수많은 축복진이 하나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융합 축복진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은 아직 발동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저것이 발동되어 축복의 빛을 발하게 된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 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기적에 가까운 축복. 그리고…….”
누군가를 위한 선물이자, 무료한 일상 속 자그마한 여흥. 마유현은 뒷말을 삼켰다.
어차피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피렌체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
마유현은 다른 학생들이 사출한 신성력으로 축복진을 그리고, 그것을 겹겹이 쌓았다.
그의 눈동자가 찬란하게 빛났다. 마유현의 동공에 깃든 이채인지, 혹은 신성력의 광채가 반사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거대한 융합 축복진을 보고 놀라 말을 잃은 성하연과 달리, 정인아는 태연한 얼굴로 축복진을 훑어보고 있었다.
표정이 진지했다. 마치 이 거대한 축복진을 분석하기라도 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마유현은 그런 정인아의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축복진을 그리느라 현란하게 움직이던 손도 어느덧 멈춰 있었다.
“…….”
마유현이 정인아를 향해 다가가더니, 그녀의 어깨에 슬며시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친한 척 그녀에게 고개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아까 보니까 도선우랑 싸운 것 같던데. 왜 싸운 거야?”
“…….”
“못 들었어? 아니면 일부러 대답을 안─”
팍!
정인아가 마유현의 손길을 거칠게 떨쳐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마유현을 응시했다.
두 눈동자에 불쾌감이 선연하게 떠올라 있었다. 약간의 경멸도 서려 있었다.
몇 초간 싸늘한 얼굴로 마유현을 보던 그녀가 축복진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이 부분 틀렸어.”
그녀가 거대한 축복진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마유현은 고개를 갸웃대며 삐딱한 미소를 지었다.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혀 있었다. 지적당한 것이 불쾌한 얼굴이었다.
“뭐, 어디 말하는 거야?”
“여기. 안 보여?”
“여기라고 하면 뭐 어쩌라고? 그리고, 맞는지 틀렸는지 그걸 네가 어떻게…….”
마유현은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다가, 정인아가 가리킨 부분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잘 보니 정말 틀려 있었다. 융합 축복진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에서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봐, 틀렸다니까.”
정인아가 코웃음을 쳤다.
융합 축복진에는 주요 축복과 보조 축복이라는 게 있다.
주요 축복은 융합 축복진의 구심이 되며, 주특성을 구성한다. 보조 축복은 주요 축복의 특성을 보조하는 한편, 축복진이 전반적으로 안정적으로 발동되도록 한다.
한데 이 주요 축복과 보조 축복의 연결이 너무 긴밀하거나 헐거우면, 주요 축복의 특성이 보조 축복에 묻히거나, 혹은 주요 축복이 제대로 발동되지 않을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그러네.”
마유현은 떨떠름한 얼굴로 수긍하며 얼른 그 부분을 수정했다. 손을 대지도 않고 그저 보는 것만으로 신성력이 꿈틀대며 고쳐졌다.
보통 같으면 굳이 수정하지 않아도 될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거대한 융합 축복진을 전개하는 경우에는, 이런 작은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마유현은 자신이 고친 부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연결이 안 되어 있던 것도 아니고, 연결이 ‘조금’ 헐거웠을 뿐이다. 융합 축복진에 대한 이론이 철저하고 완벽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눈이 아무리 좋아도 찾지 못할 실수였다.
“어떻게 찾았냐?”
마유현이 물었다. 정인아는 가늘게 뜬 눈으로 마유현을 쳐다보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냥, 보이길래.”
“그냥 보여? 흠……. 너 이번에 필기 몇 등이었냐?”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정인아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마유현은 살짝 당황했다.
소문으로 들었던 것과 사뭇 다른 성격 때문이었다.
“그냥 뭐, 머리 좋을 것 같아서. 대답하기 싫으면 말든가.”
“……2등이었는데.”
“뭐야, 잘 봤네? 왜 말하기 싫어한 거야?”
정인아는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마유현은 필기 수석이었다. 그런 그에게 시험을 잘 봤다는 말을 들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마유현은 대답하지 않는 정인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녀의 등을 가볍게 툭 밀치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잘됐네. 여기 근처 쭉 돌아다니면서, 내가 실수한 부분 있으면 좀 짚어줘. 아까처럼.”
“……그걸 내가 왜─”
“같은 과니까, 서로 좀 돕자는 거지.”
마유현은 그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꺼림칙한 미소가 아닌, 제법 그럴듯하게 따스한 미소였다.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기도 하고. 필기 2등이면 믿고 맡길 만하지.”
“……너는 1등이잖아.”
“내가 총점이 398점이었고, 2점이 신성역학에서 깎였거든. 그래서 신성역학만 2등이었는데, 그럼 1등은 너 아니냐?”
정인아는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기분 좋은 말이었다.
아까부터 계속 굳어 있던 정인아의 표정이 살짝 풀어지는 것을 마유현은 포착했다. 그는 미소를 감추며 자못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가 신성역학이니, 융합 축복진, 뭐 이런 거를 잘 못해. 잔실수가 많거든. 네가 하든 아니든, 실수를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긴 해.”
“…….”
“근데 네가 하면 좋긴 하지. 성적이 좋으면 일단 믿을 만하니까. 필기 성적으로 실력을 판단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아무튼.”
마유현은 그쯤에서 말을 끊고 정인아를 쳐다보았다.
그는 그녀가 거절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마치 그녀의 거절이 두려운 것처럼 처량한 눈빛을 연기했다. 정인아는 그 눈을 끝까지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지금은 시험 중이었고, 정인아는 마유현과 같은 조였다. 그가 명령도 아닌 부탁을 해오는데 거절을 할 수는 없었다.
마유현을 도와 사제과와 그들의 조가 실기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면, 정인아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어떡할래? 하기 싫으면 그냥 저기 껴서 신성력만 보태도 되고.”
마유현이 물었다. 정인아는 융합 축복진 주변을 둘러싸고 서서, 기계처럼 신성력만 사출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아니, 뭐……. 할게. 같은 조니까, 그리고…….”
“응, 고마워!”
마유현은 어울리지 않게 쾌활한 말투로 감사를 표했다.
정인아는 얼결에 융합 축복진을 검수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녀는 광활하게 펼쳐진 축복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유현이 놓친 부분이나 실수한 부분을 짚어 보고했다.
그러면 마유현은 그것을 수정하는 한편, 다른 아이들의 신성력으로 새로운 축복진을 그려 나갔다.
성하연은 멀뚱히 서서 그것을 보고만 있었다. 마유현이 그녀에게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고 있던 탓이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신성력을 사출하려고 하면, 마유현이 황급히 그녀를 제지했다.
“너는 가만히 있어.”
“네? 아니, 왜…….”
“그냥 쉬고 있어. 나중에 필요하면 내가 부를 테니까.”
필요하면 부를 것이라는 말이, 어쩐지 자신을 도구로 여기는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 기분이 나빴지만 성하연은 달리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표할 수 없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도구처럼 이용되고 있었다.
융합 축복진에 신성력을 기여한 아이들도, 그것을 제어하여 축복진을 그리고 있는 마유현도, 축복진 부근을 돌아다니며 실수를 잡아내는 정인아도.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도구로 여겨지는 것에 불쾌함을 느낄 때가 아니었다. 휴식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성하연은 자신이 조의 일원으로서 기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죄책감과 부담감을 느끼는 한편,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아.”
그렇게 몇 분, 거대했던 축복진이 보다 더 거대해지고 웅장해질 무렵. 마유현이 탄식인지 탄성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그는 총기로 반짝이는 눈을 돌려 성하연을 보았다. 성하연은 그 시선에 놀라서 몸을 떨었다.
그 눈빛이 어째서인지 도선우와 비슷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도선우와 다르기도 했다.
성질은 같으나 본질은 다른 눈이었다. 그가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성하연, 네가 필요한 때가 지금이다. 따라와.”
“아, 네.”
성하연은 신성력을 사출할 준비를 하며 마유현을 뒤따랐다.
망부석처럼 서서 마유현과 정인아, 그리고 여러 조원들이 혹사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이제는 지쳤다.
이제야 자신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단 사실에 성하연은 미약하나마 기쁨을 느꼈다.
“여기.”
곧 마유현은 걸음을 멈추고는, 융합 축복진의 어느 한 부분을 가리켰다.
축복진의 중앙, 주요 축복진이 빼곡히 채워져 있어야 할 부분의 어느 한 점이 텅 비어 있었다.
채워지지 않은 부분은 고작 한 점이었으나, 마치 그 한 점 때문에 축복진은 발동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성하연은 신성력을 사출했다. 찬란한 빛이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무슨 축복진을 그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축복진을 그리면─”
“정화.”
“네?”
“정화의 축복진이라고. 다시 말해줘?”
성하연은 축복진을 그리려던 손을 멈추었다.
아버지가 말하기를, 정화의 축복진을 사용해도 되는 경우는 세 가지밖에 없었다.
첫째, 내가 위험할 때. 둘째,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이 위험할 때. 셋째, 정화의 축복진으로 하여금 상대가 얻는 이득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았을 때.
그 외의 경우에는 정화의 축복진을 사용하지 말며, 정화의 피를 쏟지도 말라고 배웠다. 특히 남의 강요에 못 이겨 정화의 피를 낭비하는 실수는 결코 범하지 말라고.
마유현은 그녀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계속 너만 쉬라고 한 이유가 뭐겠어? 정화의 축복진이 필요하니까 그런 거지. 그건 너 말고는 아무도 못 하거든.”
“어……, 아니, 그건 그렇게…….”
“그렇게 막 쓸 수 있는 축복은 아니지, 피를 써야 하니까. 근데.”
마유현은 양손을 과장된 몸짓으로 들어 보이더니, 축복진을 둘러싼 조원들 모두를 둘러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안 보여? 너 말고는 다 열심이야.”
“…….”
성하연은 마유현의 손짓을 따라 조원들의 모습을 보았다. 다들 힘들어하는 기색이 얼굴에 선연하게 떠올라 있었다.
급기야는 바닥에 엎어져 쓰러진 아이도 있었다. 마유현은 유독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학생 하나를 정확히 가리켰다.
“얘네가 이렇게 쓰러져 가면서까지 노력하는 동안, 너는 뭐 했냐?”
“그건 그쪽이 저보고 쉬라고 해서─”
“그건 괜히 힘 낭비했다가, 정작 필요한 순간에 정화의 축복진을 못 쓸 수도 있어서 그런 거고.”
“…….”
정화의 축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쉬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신성력을 사출하여, 정화의 축복이 아닌 다른 축복진을 만드는 데에 기여했을 것이다.
마유현의 말은 궤변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다른 조원들이 힘을 모아 융합 축복진을 만들 때 홀로 쉬는 동안 느꼈던 죄책감과 부담감이 성하연의 어깨를 짓눌렀다.
“하, 씨……. 야, 빨리 결정해. 하기 싫으면 싫다고 빨리 말하라고.”
마유현은 거기서 말을 멈추고 잠깐 침묵하고는, 축복진을 둘러싼 조원들을 삿대질했다.
“근데, 네가 이러면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돼. 쟤들 노력도 뭐, 사실상 물거품 되는 거고.”
“…….”
“원하면 그렇게 해. 너는 필기도 잘 봤을 거 아니야? 실기 망친다고 딱히 피해 볼 건 없겠지. 조원들은 좀 피해 보겠지만, 어차피 네 알 바는 아닐─”
촤륵!
마유현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 성하연이 축복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도 선이 복잡하고 화려한 것이, 정화의 축복진이 분명했다.
마유현은 그것을 보고 작게 미소 지었다. 성하연이나, 그 아비나 둘 다 이런 화법에 약했다.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건지.
“뭐, 날카로운 거 없어요? 뾰족한 거나.”
축복진을 그리던 성하연이 마유현을 쳐다보며 퉁명스레 물었다.
마유현은 귀에 차고 다니던 피어싱을 떼었다. 십자 모양의 자그마한 피어싱이었다. 날카롭지는 않지만 뾰족해서, 작은 상처를 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이걸로 되나?”
“더러워서 쓰기 싫은데요.”
“……어, 더러워서 미안하다. 근데 좀 참아줘. 애들 생각해서라도.”
성하연의 말은 아까보다 훨씬 차가웠다. 마유현은 아까와는 상반된 살가운 태도로 성하연을 구슬렸다. 성하연은 피어싱의 날카로운 부분을 검지 끝에 대고, 강하게 눌렀다.
“흐윽.”
성하연이 인상을 찌푸리며 짧은 신음을 흘렸다. 몇 번 해봤는데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이었다.
손끝에서 피가 방울방울 흘러나왔다. 그렸던 축복진에 피를 흘려 넣자, 발동될 듯 발동되지 않던 축복진에서 찬란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축복진에서 흘러나오던 빛은 지금까지 보았던 여느 빛보다도 찬란하고 밝았다. 축복진을 그린 성하연조차 놀라 뒷걸음을 쳤을 정도였다.
반면, 마유현은 환하게 웃으며 빛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빛에 몸을 내던져, 스스로 빛에 삼켜지고 비로소 하나가 되길 바라는 것처럼.
“고맙다. 덕분에 모두의 수고가 빛을 발하게 됐네!”
빛의 한가운데에서 마유현이 말했다. 빛에 가려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말투는 몹시 신나 있었다. 성하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는.”
그녀는 터질 듯한 울음을 억지로 삼키며 말을 이었다.
“다시는 나한테 이딴 거 시키지 마세요.”
성하연은 그 말을 남기고는 축복진에서 벗어나, 자신의 조원들이 있던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유현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빛의 한가운데에서 손을 들었다. 수신호였다.
마유현의 지시에 따라 융합 축복진의 동서남북을 지키던 아이들이 수신호를 보고 일제히 성호를 그었다. 그러고는 품에서 성유(聖油)를 꺼냈다.
성전사과에게 무기가, 성기사과에게 수갑이 주어졌듯, 사제과에게 주어진 성물(聖物)이었다.
촤아악─!
아이들은 성유를 자신의 머리에 망설임없이 부었다.
그들은 끈적한 기름을 머리에 뒤집어쓴 채로 그 자리에 무릎을 꿇더니, 어떤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축복진의 빛은 중앙의 주요 축복에서부터 보조 축복으로, 나아가 기름을 뒤집어쓴 아이들에게로 퍼졌다.
빛은 커진다. 더없이 찬란한 빛이 저수지를 가득 메웠다.
빛의 산란을 지켜보던 마유현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모았다. 맞닿은 두 엄지가 십자로 교차하고 있었다. 그가 눈을 감고 고개를 들었다.
“아도나이시여, 그리고 나의 천사, 가브리엘이시여!”
그의 외침이 빛을 타고 울렸다. 땅에 낮게 내리깔려 있던 빛이, 마유현의 목소리에 응답하듯 하늘로 솟구쳤다. 빛이 하늘을 뒤덮었다.
어쩌면 태양보다도 밝고 찬란한 빛이 아이들의 머리 위를 영롱하게 비추었다. 아이들은 놀랍고 두려운 마음으로 마유현과 빛을 보았다.
그리고 마유현이 눈을 떴다.
“축복 속에서 기도하오니, 부디 응답하소서.”
촤아아아아─!
하늘을 뒤덮은 빛이, 저수지에 모여 있던 아이들의 머리 위로 비가 되어 쏟아졌다. 빗줄기는 굵었고, 무거웠으며,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기쁨에 겨운 얼굴로 그 비를 맞았다. 정확히는, 비를 맞고 난 자들의 얼굴에 기쁨이 차오르고 있었다. 비를 맞은 자들의 몸에서 축복의 빛이 찬란하게 흘렀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과 그들의 몸에서 흐르는 빛이 커지면서 뒤섞였다.
빛이 우리를 돕고 있다, 하늘이 우리를 돕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거대한 힘 앞에서 그들은 감동을 느끼고, 경외를 느끼고, 일체감을 느꼈다.
그곳에 개인의 의지라고는 없었다. 빛, 아도나이의 종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의 의식과 의지는 하나로 뭉쳐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축복이었고, 기적이었다.
* * *
“대열.”
도선우의 말과 함께, 성기사-D 조의 일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란한 움직임에 비해 만들어진 대열은 초라했다.
도선우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고, 강대만을 제외한 다른 조원들은 기마전 대형의 기마처럼, 모여서 손을 맞잡았다.
강대만은 홀로 대열에서 물러나서, 한수련을 안아 들었다.
“꺅, 야! 뭐 하는 거야아악!”
한수련이 발버둥치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수갑 탓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강대만은 한수련의 저항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불쾌한 얼굴로 그녀를 응시했다.
“가만히 있어라.”
“이, 이이……! 야, 너 나랑 사귈 거냐!?”
“뭔 소리를 하는 거지?”
“나랑 사귈, 어? 그럴 것도 아니면서 이러면 안 돼, 너!”
한수련이 쫑알쫑알 떠들었고, 강대만은 시큰둥하게 받아쳤다.
두 사람의 대화와 완성된 대열을 본 여민서가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훌쩍 일어났다. 그녀가 도선우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며 입을 열었다.
“끝이야? 인원이 적어서 그런가. 너무 초라한데?”
“그렇게 봐주면 고맙고.”
도선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근데 연기 좀 치우면 안 되냐? 거슬리네. 앞도 제대로 안 보이고.”
“내가 그걸 왜 치워줘? 그러라고 뿌린 연기인데.”
여민서가 어깨를 으쓱하며 놀리듯 말했다.
여민서는 도선우의 실력을 알았다.
한수련과 2인조로 다니던 도중 도선우와 전투를 치렀을 때, 그는 날아오는 연막탄을 손으로 잡아서 막았다. 그래서 협상 지점 근처에 연막탄을 놓아 연기가 퍼지도록 했다.
도선우가 아무리 순발력이 좋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유탄까지 막을 수는 없을 테니.
그리고 연막을 뿌려 시야를 제한하면, 상대 입장에서 이쪽의 전력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가지고 있는 정보의 차이를 이용하여 심리적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이었다.
“아……. 그러냐?”
“협상이나 할까? 한수련은 얼마에 넘길래?”
도선우의 반응이 미적지근해서, 여민서는 얼른 본론으로 말을 넘겼다. 도선우는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아니, 한수련 말고 다른 두 인질 먼저 얘기하고 싶은데.”
“그래서 어쩌라고? 나는 한수련만 살 생각인데?”
“인질 둘 먼저, 한수련은 그다음. 이게 우리 제안이고, 받아들일 생각 없으면 협상은 이쯤 하자.”
“허어…….”
여민서가 짜증 섞인 숨을 토하며 고개를 양옆으로 꺾었다. 목에서 우득 소리가 났다. 기분이 몹시 못마땅할 때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협상 도중과 직후 10분간 인질 포획 금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있으나 마나 한 규칙이야. 그렇지 않냐?”
“글쎄……. 그걸 굳이 지금 말하는 이유가 뭐지?”
“너, 뭐 믿고 깝치냐?”
여민서가 위협적인 걸음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
위협적이되 연막의 안개로 몸을 가릴 수 있을 정도까지만 다가갔다. 그 이상 다가가면 도선우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도선우는 여민서의 물음에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대열을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들어 자신을 둘러싼 건물을 확인했다.
창문마다 고개를 내밀고 총구를 겨누고 있는 성전사과의 조원들을 헤아렸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안개 탓에 실루엣만 겨우 보였고, 그렇기에 수를 헤아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는 애초에 성전사과의 전력을 헤아릴 생각이 없었다.
“보여줘?”
도선우가 말했다. 그의 눈빛에 싸늘한 이채가 돌았다. 일말의 흔들림도 없는 동공은 또렷이 여민서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분위기가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여민서는 물론 조원들까지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분위기에 말려들면 그대로 끝이었다. 기 싸움에서 밀리면 협상을 불리하게 시작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차라리 협상을 안 하는 편이 나았다.
여민서는 여유를 가장한 웃음을 보였다.
“어, 함 보여줘봐. 이 씨─”
후웅─!
여민서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 세찬 바람이 불었다.
일대를 둘러싸고 있던 연기가 순식간에 흩어지며 사라졌다. 여민서는 돌연 불어닥쳐 오는 바람에도 눈을 뜨고 도선우의 동태를 보려고 했지만, 끝내 눈을 감고 말았다.
낡은 건물에 붙어 있던 분진과 자갈이 튀어서 눈을 찔러버린 탓이었다.
“─발럼아, 지금 뭐……!”
바람이 잦아들고, 여민서가 신성력을 사출하며 눈을 떴을 때, 애써 뿌려 놓았던 연막은 이미 죄다 바람에 날아가 사라진 뒤였다.
뿌옇게 흐려져 있던 공기가 어느덧 쾌청하게 맑아져 있었다.
보이는 것은 한수련을 안아 들고 있는 강대만, 그리고 기마 대형으로 서 있던 조원들이 넘어져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 조원들의 몸에는 축복의 빛이 감돌고 있다.
처음에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선우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바람이 불어왔을 때,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마치 바람이 그를 돕기라도 하는 것처럼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그때, 여민서는 부자연스러운 그림자 하나가 일렁이는 걸 보았다. 그녀가 그림자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아니…….”
여민서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만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도선우는 하늘에 있었다. 정확히는, 여민서가 저격조를 매복해 놓았던 우측 건물 3층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여민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이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지만, 여민서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