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79
제179화
도대체 저놈이 왜 저기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축복의 힘을 빌리면 3층 높이까지 뛰어 올라가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어떻게 저기로 올라갈 생각을 했는지였다.
도선우는 지금 우측 건물 3층에 있다. 여민서는 그곳에 가장 많은 인원을 배치했다.
강대만에게서 협력 신청이 오기 전까지는 ‘토큰 수급용 전투원’으로 사용한, 조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이들이었다.
여민서는 그들에게 유탄 발사기를 쥐여 주고, 신호를 주면 총구를 도선우에게 겨눈 뒤 방아쇠를 당기라고 지시했다.
즉, 그곳은 가장 많은 유탄 발사기와 탄환이 배치되어 있는 곳이며, 동시에 가장 많은 토큰이 저장되어 있는 곳이었다.
여민서의 입장에서 공격을 받았을 때 가장 손실이 큰 곳. 역린.
연막 탓에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와중에, 도선우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채고 저리로 갔을까.
바람이 불어 연막이 사라진 그 찰나의 틈에 그것을 간파한 건가.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나 되나? 저 미친놈 대체 뭐 하는 새끼야?
모르겠다. 일단 지금 당장은…….
“야, 얼 타지 말고 저거 쏴!”
여민서가 황급히 도선우를 가리켰다.
바위 뒤와 건물 곳곳에 매복해 있던 저격조가 일제히 나타나 도선우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러나 그들은 미처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잦아들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바람이 거셌기 때문이다.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기를 주저하는 동안, 또다시 도선우의 모습이 사라졌다.
도선우를 향해 있던 총구들이 목표를 잃고 방황했다. 누군가는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듯 여민서를 보며 눈을 빛내기도 했다.
“아이 씨, 저 개새끼가……!”
그러나 지금은 태연히 지시나 내리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는 걸걸한 욕설을 내뱉으며 축복진을 그리고는, 축복의 빛이 다리에 채 닿기도 전에 계단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직 그녀만이, 도선우가 창문을 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도선우는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놈이었다. 전세가 완전히 불리해지기 전에 도선우를 막아야 했다.
* * *
부웅─!
바람이 불었다. 아니, 바람이 나를 도왔다.
바람은 상대적으로 자연스럽다. 마른 하늘에 벼락이 떨어지거나, 불기둥이 솟구치거나, 뱀이 나오거나, 거대해진 식물이 움직이거나…… 그런 것들보다 훨씬.
눈속임용 축복과 적당한 연기를 더하면, 바데의 권능은 보다 다양한 상황에서 무궁무진하게 활용이 가능했다.
나는 한동안 로아의 권능을 연습했고, 그중에도 특히 바데의 권능을 숙달하려 노력했다. 바데의 바람은 강하지만 섬세한 조종은 불가능하다.
나는 바람의 범위를 좁히고, 그 힘을 한 점에 집중시키는 법을 연습했다.
뭘 해도 안 늘어나는 축복과는 달리, 로아의 권능을 연습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어렵다. 많은 제물을 바치고, 많이 권능을 써보면서, 동시에 로아와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면 된다.
다행히, 바데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바데의 엘리베이터 서비스는 어땠는지? 후기 부탁드린다!]“굿! 최고다!”
나는 3층 난간에 매달린 채 여민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바데를 기분 좋게 만들고 싶으면, 그저 아부를 떨어주면 됐다. 굳이 진심을 담을 필요도 없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참을 수 없다는 듯 신난 말투로 칭찬을 해주면, 바데는 신나서 날뛰었다.
쨍그랑!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을 주먹으로 깨고 들어갔다. 유리 조각 몇 개가 주먹에 박힌 것 같았지만 당장 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별로 아프지도 않으니 나중에 빼면 그만일 것이다.
지금은 그깟 유리 조각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어……! 도, 도선우다!”
건물 3층에 매복해 있던 성전사과 조원 중 하나가,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
그는 소리를 치며, 창문 밖을 향하던 총구를 나에게 옮겼다. 외침과 함께 같은 층에 있던 성전사과의 모든 조원들이 나를 보았고, 그들의 수많은 총구가 나를 향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기술명을 외쳐라! 예배당에서 우리가 연습했던 그 기술이 필요한 순간이다!]바데가 신나서 외쳤다.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대편 조원을 향해 달려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데의 권능을 숙달하며,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은 내가 그의 장단에 맞춰주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기술’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내가 주먹을 뻗는 것으로 신호를 주면, 주먹을 뻗은 방향으로 응축된 바데의 바람이 발사되어, 마치 주먹으로 상대를 타격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
나는 상대방이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는 순간, 주먹을 뻗으며 기술명을 외쳤다.
“위, 윈드 펀치!”
[윈드 펀치! 얍, 얍!]차마 입에 담기에는 너무 쪽팔린 기술명이라 목소리도 줄이고 말을 더듬고 말았으나, 바데는 무척 즐거운 모양이었다.
부웅─ 퍽!
바람과 함께 뻗은 주먹이 상대방의 턱을 가격했다. 사실상 주먹이 아니라 응축된 바람에 맞은 것이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의식을 잃고 나동그라지며 들고 있던 유탄 발사기를 떨어트렸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일대가 정적에 휘감겼다.
성전사과의 수많은 조원들이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 쉽사리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내가 와서 당황한 탓이 클 것이다.
“세상에…….”
그때, 누군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말투였다.
“주먹이 보이지 않았어……!”
“이 미친 새끼야! 감탄하지 말고 쏴!”
그때, 여학생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일대의 정적을 깼다. 그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조원들이 엉성하나마 나를 조준한 채 방아쇠를 당겼다.
퉁! 퉁!
유탄 발사기의 총성은 익숙하다. 나는 불쾌감을 느낀다. 보수의 권능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이상할 정도로 심장이 격하게 뛴다. 유탄 발사기의 총성에서 비명 소리가 겹쳐 들렸다. 환청이었다. 분명히 환청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가장 가까운 적을 향해 달린다. 거리를 좁혀 주먹을 뻗고, 다시 주문을 외친다.
“윈드 펀치! 윈드 펀치!”
[오, 좋아! 바로 그거다! 얍, 얍!]부우웅─!
깨지거나 열려 있던 창문 틈을 타고 바람이 새어 들어온다. 나는 어느덧 그 바람의 흐름을 읽는다. 바람이 어디서부터 날아와 어디를 향할 것인지, 그 궤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데와의 유대감이 끈끈해진 것을 넘어, 바데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된 것만 같았다.
후두둑!
바람은 내 손길을 따라 내 몸을 휘감아 둘러싼다.
내게 날아오던 탄환들이 바람에 힘을 잃고 멈추었다가, 이내 허물어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탄환을 피하는 게 아니라 탄환이 나를 피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나는 바데를 믿었고, 그래서 탄환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적을 향해 내달리며 주먹을 뻗을 뿐.
주먹을 뻗을 때마다 바람이 불고, 거센 바람이 적을 강타하면, 적은 쓰러진다. 그들이 들고 있던 유탄 발사기가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그들이 쏜 탄환은 내 몸에 닿지 않고, 그 모습을 본 적의 얼굴에는 선연한 혼란이 깃든다.
이따금 제압한 적의 주머니에서 토큰이 흘러나왔는데, 그건 주워서 챙겼다. 가끔은 제압한 적의 유탄 발사기를 빼앗아, 아직 제압하지 못한 다른 적에게 던지기도 했다.
굳이 공들여 던질 필요는 없었다. 혹여 빗나가도, 바데의 바람이 궤적을 바로잡아 주었으니.
퍽!
“으악!”
순식간에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적들을 제압했다.
손에 유리 조각을 박은 채로 마구 휘둘렀더니 어느새 주먹이 피로 흥건했다. 피는 바람에 말라붙어서 끈적했다. 상처도 살짝 깊어진 것 같았다.
시험이 끝나고 예배당으로 돌아가 곧장 복원 주술을 사용해도 흉터가 남는 건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지아 누나가 보면 또 뭐라 잔소리를 할 게 분명했다.
나는 마지막 남은 상대 하나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미, 미친놈……!”
바닥에 주저앉아, 하얗게 질린 상대가 말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피로 말라붙은 주먹을 들었다.
“야아악─!”
그때, 계단 쪽에서 외침이 들렸다. 날카롭고 걸걸하며, 분노에 찬 듯 갈라지고 째진 목소리였다. 볼 것도 없이 여민서의 목소리다.
이렇게 상황이 완벽하게 돌아갈 줄은 몰랐는데, 어쨌거나 잘됐다.
나는 들었던 주먹을 내리고 여민서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하, 하……. 더럽게 힘드네. 씨바, 거 발목만 안 다쳤어도.”
여민서는 그렇게 말하며, 쓰러진 자신의 조원들을 둘러보았다.
“뭔, 씨발, 벌써 이 지경이야!”
여민서가 화에 못 이겨 외쳤다. 시멘트 바닥에 사람이 축 늘어져 널브러진 꼴은 내가 보아도 참 괴괴한 풍경이었다.
* * *
여민서는 축복과 함께 계단을 빠르게 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도선우처럼 단번에 3층까지 뛰어 올라가고 싶었지만, 발목이 다쳐서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나름 빠르게 계단을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올라와 보니 벌써 상황이 끝나 있었다.
도선우 하나에게, 전투원 전멸. 정확히는 전멸은 아니고 한 명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한 명조차 전의를 상실한 뒤였다. 사실상 전멸이라 해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이러면 이미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는 없게 된다. 여민서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애써 삭이다가, 시큰거리는 발목까지 더해지자 차마 삭일 수가 없어서 인상을 찌푸리며 도선우를 삿대질했다.
“미친놈! 수틀리면 바로 주먹질이냐? 네가 그러고도 성직자야?”
“성직자가 총 들고 협박하면서 위화감 조성하는 건 되고?”
“…일리 있군. 좋아, 왜 이러는 거야? 바라는 게 뭔데?”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맞는 말이어서 재빨리 인정하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바라는 게 뭔지 알 수 있다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는 아니더라도 동등한 위치에 설 수는 있을 것이었다.
“한수련 전에, 나머지 두 인질을 두고 먼저 협상하는 것.”
“오케이, 그 정도는 하지. 그래, 그 두 명은 얼마에 넘길 건데?”
여민서는 못 이기는 척 제안을 받아들였다. 여기서 제안을 거절하면 저놈이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상식에서 벗어난 수준의 값을 부르는 게 아닌 이상, 한수련을 사는 데에 필요한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지불할 생각이었다.
“7개.”
“……두 명 합쳐서?”
“아니? 각각.”
“개미친 새끼! 야, 그냥 다이다이 깨자. 협상 파기하고 확 죽여─!”
우뚝.
위협적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도선우에게 다가가던 여민서의 걸음이 멈췄다.
의도적으로 ‘충돌’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 도선우 몰래 축복진을 그리고 있던 손도 멈췄다.
축복진이 되지 못한 신성력이 흩어지며 사라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민서의 시선은 도선우의 손에 꽂혀서 미동조차 않고 있었다.
“오지 마.”
도선우의 피 묻은 손에는 토큰이 들려 있었다. 3층에 배치한 저격조가 가지고 있던 토큰이었다.
도선우와의 협상 직전에 조원들의 토큰을 전부 회수해서 모으기는 했지만, 미처 회수하지 못한 토큰이 있었던 모양이다.
민서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 그거 어차피 못 쓰는 거 알지? 토큰은 귀속품이야. 전자시계에 등록되어 있어서, 네가 가지고 있어도 뭐 달라지는 거 없어. 협상 도중에 토큰을 강제로 탈취하고, 그거는 규칙 위반이니까.”
여민서가 속사포로 말했다. 그녀는 당황하면 말이 빨라지는 버릇이 있었다.
여민서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토큰은 귀속품이라, 협상에 의한 공식적 양도가 아니면 다른 사람 손에 들려 있어도 의미가 없었다.
사제과에 대한 배려와 실기에서 전투의 비중이 너무 높아질 것을 고려한 규칙이었다.
하지만 협상 도중에 토큰을 강제로 탈취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은 없었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 여민서가 아무렇게나 지어낸 말이었다.
콰직!
그때, 도선우가 들고 있던 토큰을 바닥에 내던졌다. 어찌나 강하게 던졌는지 토큰이 반으로 쪼개졌다.
도선우는 그것을 밟고, 또 밟고, 밟으며 잘게 부쉈다. 여민서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도선우가 슬며시 미소 지었다.
“부수지 말라는 규칙은 없지?”
“야이 개새끼야─!
“오지 마. 하나 더 부순다.”
도선우가 토큰 하나를 더 꺼내 들며 위협했다.
그에게 다가가던 여민서의 걸음이 반사적으로 멈췄다. 여민서에게는 토큰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그녀는 이번 실기를 잘 봐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저번 사건에서 죽어가는 가브리엘을 살리고, 이후 그에게 상당한 규모의 금전적 지원을 받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갑자기 거액의 금전적 지원을 하겠다고 나서면 가브리엘도, 여민서도 입장이 곤란해질 여지가 있었다.
그리하여 가브리엘은 묘안을 내놓았다. 장학금을 명목으로, 재단을 통해 그녀를 후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여민서가 장학생으로 선정되어야 했다. 그것이 여민서가 간절한 이유였다. 장학생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필기와 실기를 합산한 석차가 10위 안에 들어야만 했으므로.
“어, 알겠어. 일단 진정하고, 그 저기, 토큰부터 내려놔.”
여민서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말했다.
흥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목소리의 떨림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도선우는 토큰을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고는, 주먹에 말라붙은 피를 떼어내며 입을 열었다.
“제안은 받아들인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그래, 네 좆대로 해라. 인당 7개에 팔아, 이 개자식아.”
도선우는 말없이 두 인질의 수갑 열쇠를 넘겨주었고, 여민서도 토큰 14개의 소유권을 그에게 넘겼다.
여민서는 자꾸만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어서 속이 쓰리고 아팠다. 발목만 괜찮았으면 개기기라도 해보겠는데, 상태가 이래서 1:1로 싸우는 것은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었다.
“자, 다음은 한수련이지? 한수련은 씨발아, 얼마에 넘길 거야? 토큰 한 100개 정도면 되냐?”
“그 정도는 바라지도 않고. 한 50개?”
“하…….”
여민서가 한숨을 토했다. 부르는 값이 너무 터무니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지금 당장 토큰 50개가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한수련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별 쓸모도 없는 인질 두 마리를 구하자고 토큰 14개를 썼던 것도 전부 한수련을 위해서였다. 이미 지불한 값이 있어서 더더욱 한수련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그 절반 정도는,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절반이라. 절반…….”
도선우는 고민하는 척했지만,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선명하게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침묵은 길고 짙어서, 묘하게 사람을 긴장시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여민서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대충 절반해서, 20개 정도로 할까. 아까 14개도 받았으니까.”
“……흠, 그럼 나야 고맙지.”
여민서는 기분 좋은 티를 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여기서 기분 좋은 티를 내면 도선우가 마음을 바꿀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선우는 여민서의 표정을 잠깐 살피는가 싶더니, 이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20개.”
그가 한수련의 수갑 열쇠를 넘겼다. 여민서도 토큰 20개의 소유권을 그에게 넘기며 남몰래 웃다가, 돌아서는 도선우의 모습을 보고 문득 기분이 나빠졌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는데, 직감적으로 손해를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협상은 끝난 뒤였다.
* * *
“이득이네.”
솔직히 처음에는 20개만 얻자는 생각으로 협상을 진행했는데, 어찌어찌 상황이 돌아가다 보니 기대 이상의 토큰을 얻어낼 수 있었다. 아무튼 잘된 셈이었다.
괴괴한 시멘트 건물의 3층에서 협상을 마친 뒤, 우리는 내려왔다.
그리고 강대만의 품에 안겨 있던 한수련과 나머지 인질 두 명을 여민서 쪽으로 넘겼다.
“한수련 이 개같은 새끼야. 너 구한다고 얼마를 써야 하는 거야?”
“미친년이, 네가 배신만 안 했으면 이런 일 없잖아!”
“배신 안 했으면 둘 다 잡혔을 거야. 최악보다는 차악이 낫다는 거지.”
여민서는 뻔뻔스럽게 말하며 한수련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나머지 두 인질의 수갑도 푸는 동안, 근처에 매복해 있던 성전사과의 조원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얼핏 보아도 30명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4개 조가 연합한 모양이었다.
“야, 빨리 꺼져. 꼴 보기 싫으니까. 10분 뒤에 개패서 수갑 채워버리기 전에.”
“여민서, 너는 입이 너무 거칠다! 욕을 좀 줄이는 건 어떤가?”
나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강대만이 나서서 말했다. 여민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말 예쁘게 하면 나한테 돈 주냐?”
“아니, 나는 그렇게 돈이 많지 않다.”
“근데 왜 오지랖이지? 근육 파괴술로 근육 다 찢어줄까?”
강대만은 자신만만하게 자기 가슴을 툭 쳤다.
“어지간한 기술로는 내 근육을 찢을 수 없을 거다!”
“운동 깔짝 했다고 자부심 좆되네, 멸치 새끼가.”
“방금 그 말은 참을 수가 없군. 덤벼라.”
협상을 하면서 신경이 예민해진 것인지, 여민서의 말투는 한층 공격적으로 변해 있었다.
둘이 실랑이를 하는 동안 나는 지형을 살피고 있었다. 혹시라도 다시 전투를 벌이게 될지 모르니, 지형지물을 살펴 미리 계획을 짜놓을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여학생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성전사과의 조원인 것 같았는데, 협상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화들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몸을 굽히며 살금살금 이곳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저거, 너희 조원이냐?”
나는 그녀를 가리키며 여민서에게 물었다. 여민서가 미간을 좁히며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여민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르는 얼굴인데?”
“어, 쟤 내 친구!”
옆에 있던 한수련이 반가운 얼굴로 말하더니, 직후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대며 말을 이었다.
“근데 쟤 사제과인데……? 왜 여기 있지?”
사제과라는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화기애애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왁자지껄하기는 했던 분위기가 단숨에 싸늘하게 식었다.
사제과의 그녀는 우리의 시선을 눈치채고 주춤주춤 뒷걸음을 치다가, 이내 전자시계를 미친 듯이 두드리며 사제과 진영 방향으로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저건, 자신의 위치를 조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전자시계를 조작하는 동작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