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84
제184화
강지아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이유는, 마유현이 그녀의 얼굴을 보게 둘 수 없으니까.
정체를 들키는 것은 나 하나로 충분하다. 삼촌이나 강지아, 그 외에 다른 모든 부두교도들의 얼굴을 마유현에게 보여서는 안 됐다. 목소리조차 들리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혼절 주술로 마유현을 재웠고, 직후 바알의 아가리에 그를 집어넣었다. 실기고사장에 몰래 챙겨갔던 것이었다. 그리고 예배당으로 와서 강지아를 내 방에 숨기고, 지하로 갔다.
“…….”
지하 예배당에서 한 층 더 내려간 지하. 평소라면 들어갈 일도 없으며, 굳이 들어가고 싶지도 않은 곳이었다.
그곳은 덥고 습했다. 어두운 데다가 어디서 흘러나오는 건지 모를 보랏빛 안개로 자욱해서, 한 치 앞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안개는 필시 주술의 안개였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안개를 들이마셔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종종 이곳에서 주술을 연구하고는 했는데, 그때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흔적이기에 주술의 효력은 남아 있지 않은 것이고.
계단을 내려가서, 아버지가 늘 주술을 연구하던 그 방으로 갔다. 안개가 더욱 짙었다. 바알의 아가리에서 마유현을 꺼냈다. 그는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예배당에서 가져온 끈으로 그의 손발을 묶고, 목에 올가미를 채웠다. 그리고 손발을 묶은 매듭과 올가미를 연결해서, 단단히 고정했다. 이렇게 하면 손발은 물론 고개도 까딱할 수 없다.
마유현을 포박하고, 벽에 기대앉았다. 내 호흡은 규칙적이었다. 아까는 불안하고, 초조하고, 분노에 차서 어쩔 줄을 몰랐는데,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차분하다.
“렉바.”
나는 렉바를 불렀다.
“렉바, 목소리가 안 들려요. 말을 안 하고 있는 건가요?”
대답은 없다.
“뭘 어떻게 해야 될까요.”
침묵 속에서,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프지 않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저는…….”
[네 선택에 달려 있지.]렉바가 말한다. 복잡했던 머릿속에 잡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낯익은 풍경이 들어찬다. 갈림길 위에 서 있는 렉바. 그리고 렉바는 나에게 말을 건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나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 * *
“……아이, 씨…….”
“……미친…… 뭘, 어떻게…….”
목소리.
마유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황급히 눈을 떴다. 벽에 기댄 채 그대로 잠들었나? 미친 새끼! 언제부터 잠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갈림길의 환상, 렉바의 목소리……. 그 이후로, 기억이 송두리째 없다. 아무리 피곤했다고 해도 이 와중에 잠을 자다니, 어이가 없다.
그래도 잠깐 잔 덕분인지 정신은 맑다. 나는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마유현에게 다가갔다. 그는 매듭을 풀지 못하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퍽!
“욱……!”
나는 그의 복부를 발로 찼다. 팔다리가 묶여 앞판이 훤히 드러나 있던 덕분에 차기가 쉬웠다. 마유현이 외마디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가 나를 보았다. 눈동자에 어떠한 감정이 담겼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서로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짜고짜 배부터 차는 건 너무하지 않냐? 아무리 그래도─”
뻑!
다시 마유현의 배를 찼다. 이번에는 외마디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신음을 흘릴 수조차 없이 강하게 걷어찼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통 속에서 바닥을 뒹굴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부두 마력을 사출했다.
재현, 새벽의 검.
적어도 지금은 마유현을 죽이면 안 된다. 그를 죽이고 나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다. 더는 수습할 여지조차 없이, 교황청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새벽의 검을 뽑았다. 죄인의 목을 벨 때 쓰는 참수검과 달리, 새벽의 검은 제물로 바쳐질 짐승 따위의 가죽을 벗길 때에 쓰였다. 인간의 가죽을 벗길 때에도.
“언제부터 알았지?”
나는 새벽의 검을 마유현의 다리 위에 얹은 채로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주저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칼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푹.
“아, 아아악─!”
마유현이 비명을 질렀다. 환부에서 피가 흘렀다. 그가 입고 있던 바지가 붉은 피로 축축하게 젖었다.
여기서 더 힘을 주어 찌르면, 칼날은 그의 근육을 뚫고 이내 뼈에 닿을 것이다. 아마 평생 온전하게 걸을 수는 없는 몸이 되겠지.
고통을 주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움직이면 더 아파. 그래서, 언제부터 알았지?”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마유현 앞에 쪼그려 앉은 채, 칼자루 위에 손을 얹고 재차 물었다. 마유현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이 전부였다.
그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순간, 칼날이 자신의 근육을 갈기갈기 찢어 놓으리라는 사실을.
“하, 하……! 후. 그래, 언제부터 알았냐고?”
숨을 고르며 가까스로 고통에 익숙해진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유현은 몇 초간 다시 숨을 고르다가 말을 이었다.
“정확하게 안 건 오늘. 그전까지는 의심만.”
“언제부터, 뭘 보고 의심했지?”
“눈.”
“똑바로, 알아듣기 쉽게 말해. 안 그러면─”
“아, 아아악! 이런 씨바, 잠깐. 잠깐만, 안 그래도 설명하려고 했어.”
내가 칼자루를 쥐고 힘을 주려고 하자, 마유현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나를 말렸다. 나는 손에 힘을 풀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마유현이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나만 쓸 수 있는 축복이 있어. 정확히는, 나에게만 주어진 축복. 그걸 쓰면 남들이 못 보는 걸 볼 수 있게 되지.”
“못 보는 것?”
“그래, 그러니까…….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빛의 흐름이 보이지.”
빛의 흐름?
“계속 말해.”
“보통 사람들은 몸에 빛 같은 게 흘러. 그걸 사출하면 신성력이 되지. 저번에 내가 박제와 사람을 구분할 수 있었던 것도 축복 덕분이야. 박제는 몸에 빛이 흐르지 않거든.”
“내 몸에도 빛이 흐르지 않고 있었나? 그때부터 의심을 시작한 거고.”
“아니? 빛은 있었어. 색이 달랐지.”
마유현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말한, ‘사람들의 몸속에 흐르는 빛’을 나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고, 그는 그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보통은 다들 옅은 노란색이야. 타고난 신성력의 밀도가 높은 사람은, 흰색으로 보이기도 해.”
“…….”
“근데 너는……. 보라색, 붉은색에 가까웠지. 흰색도 조금이지만 섞여 있었고.”
“너 말고, 나를 의심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말해. 그때 본 걸 누구에게 말했는지도.”
“나 말고는 없어, 아마도. 다른 사람한테 말한 적도 없고.”
“……왜?”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아무리 행실이 불량하다고 한들 마유현은 로마니카교에 소속된 놈이다. 심지어 교황의 가족이며, 차기 교황으로 지목되는 자이기도 하다.
로마니카교를 위해서라면, 내 정체를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 옳다. 그러나 마유현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내 정체를 알아낸 뒤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도리어 나를 도와주기도 했다.
왜?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니까. 아니, 말할 이유가 없는 거지. 말하지 않는 편이 좋으니까.”
“그러니까, 도대체 왜─”
“자꾸 멍청한 질문만 하는데……. 이럴 때는 왜 말하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지.”
마유현은 마치 나를 가르치기라도 하려는 듯 아니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왜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않고, 너에게만 그 말을 했냐. 이게 중요한 거지.”
“왜 그랬지? 협박이라도 할 생각이었나?”
“협박……. 아니, 협박은 아니야. 난 네가 잡히지 않기를 바라고 있거든.”
“…….”
적어도 내가 보기에, 마유현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다. 오군에게 슬쩍 눈치를 줘보았지만 반응은 없다. 마유현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잡히지 않기를 바란다는 마유현의 말은 진실.
“내가 잡히지 않기를 바란다…… 왜지?”
나는 마유현의 머리채를 쥐어 들었다. 그리고 안개에 가려진 그의 표정을 보았다.
마유현은 대답을 주저하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다가, 갑자기 웃었다. 말 그대로 입이 귀에 걸린 것처럼, 크고 흉측한 웃음이었다.
퉤.
그 순간, 내 눈을 향해 뭔가 날아왔다. 그것이 마유현이 뱉은 침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유현이 만족스럽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미쳤냐? 내가 그걸 알려주게?”
“……그래, 내가 너무 살갑게 굴었지.”
마유현의 허벅지에 박힌 칼을 더욱 깊이 박으며, 비틀었다. 그의 다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근육이 비틀려 찢어지는 소리거나, 아니면 뼈가 부러지는 소리일 것이다.
비명은 없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이 아플 테니.
고통을 주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생각 이상으로 출혈이 심했다. 방치하면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마유현은 아직 죽으면 안 됐다. 나는 그의 다리에 박힌 칼을 뽑아낸 뒤, 부두 마력을 사출했다.
촤르륵─!
부두 마력이 순식간에 주술진으로 바뀐다. 주술진에서 흘러나온 안개는, 마유현의 산산조각 난 다리를 감싼다. 이내 상처는 말끔히 낫는다. 복원 주술이었다.
다만, 복원 주술은 통증을 없애는 효과가 없다. 상처는 없으나 고통은 남는다.
나는 그에게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의 고통을 줄 것이었으며, 동시에 결코 죽이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마유현은 멍청하게 입을 벌린 채 침을 질질 흘리며 바닥을 뒹굴다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비명을 지르고, 이내 비명마저 멈췄을 무렵.
“하, 하하하! 하, 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마유현은 정말로 웃고 있었다. 그는 미친 듯이 웃다가, 웃는 것조차 지쳤을 때 호흡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하, 하…… 후. 사람을 찌르는 게 익숙한가 봐? 하긴, 사람도 죽여봤으니 이런 건 별일도 아니지?”
“사람을 죽여? 뭔 개소리지?”
내가 말하자, 마유현이 고개를 갸웃댔다.
“바사르 상가 지하에 있던 사탄교도들 죽인 거, 너 아니야?”
“……걔네는 사람이 아니었어.”
그들은 사람을 납치하고, 그 속을 비워내고, 솜과 톱밥으로 빈 자리를 메워 박제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란 듯이 전시하고, 예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아 피해자를 우롱했다.
같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저급한 족속들.
마유현은 내 말을 듣고 또 다시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꾸며낸 웃음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웃음이었다.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기괴했다.
“아, 하하……. 맞지, 걔네는 사람이 아니지. 확실히 우리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닮았어. 아니, 똑같아.”
“개소리를…….”
“우리 둘 다, 사고방식 자체가 이분법적이야. 어쩔 수 없지. 그게 편하거든.”
“…….”
“‘별 없는 밤’. 그때 일은 미안해. 근데, 그때 내가 보기엔 너희도 사람이 아니었거든. 네가 사탄교도들을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것처럼. 그러니까 이해할 수 있지?”
“……그때, 부두교도들을 잡아갔을 때도. 네 그 잘난 눈으로 구분했나?”
나는 화를 참고 말했다. 지금 여기서 화를 내면, 나도 모르게 마유현을 죽일 것만 같아서. 심장 소리가 컸다. 숨이 거칠었다. 눈앞이 하얗게 흐려지고 있었다. 마유현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내 물음에 대답했다.
“아니? 그때는 축복도 안 썼지. 대충 감으로 때려 맞힌 거야. 어차피 죽고 나면 다 같은 시체잖아?”
“아…….”
속이 울렁거린다.
“보수…… 아니, 마리네트.”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