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85
제185화
화륵!
내 손바닥 위로 마리네트의 불꽃이 이글거렸다. 무슨 까닭인지 불길의 모양새가 아름다웠다.
나는 마리네트의 권능으로 불러낸 불꽃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닿는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모순된 불씨를 만들 수도 있었고, 반대로 닿는 모든 것을 불태워 없애는 지옥의 불길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차가워서는 별 없는 밤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부두교도들의 마음을 달랠 수 없었고, 너무 뜨거워서는 고통을 주기도 전에 죽어버릴 것이었다.
나는 적당히 뜨거운 수준으로 불길의 온도를 맞추었다. 대충 끓는 물과 비슷한 온도일 것이다.
이 정도가 고통을 주기에도, 공포를 심기에도 적당했다.
“……너, 그런 재주도 있냐? 피렌체가 아니라 서커스단에 들어가지 그랬어. 그럼 날 만날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마유현이 여유가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조롱했다. 그러나 그가 그저 여유를 가장하고 있을 뿐이며, 실제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목소리의 떨림에서 묻어나오는 공포심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그 역시 고통 앞에서는 작아지는,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아니…… 오히려 널 만나서 다행이야.”
그렇게 말하며, 그의 묶인 손에 불을 가져다 댔다. 마유현의 손끝이 움찔거리며 본능적으로 불을 피한다.
나는 그것을 쫓아, 다시 손에 불을 가져다 댄다. 마유현은 몸을 꿈틀거리며 필사적으로 불을 피하고, 나는 그것을 쫓는다.
“쫄지 마.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심장이 뛰었다. 불을 본 까닭인지, 아니면 별 없는 밤의 참상이 떠오른 까닭인지 알 수 없다. 웃음이 나왔다.
기쁘고, 통쾌하다. 공포에 떠는 마유현이 우스워서? 쫓기는 입장에서, 잠시나마 쫓는 입장이 되어서? 알 수 없다.
아, 그냥 지금 이놈을 태워서 죽여버리면, 원인을 알 수 없이 응어리진 이 마음도, 어쩌면…….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을 때, 충동은 멎었다. 나는 마리네트의 불꽃을 잠시 집어넣고, 노크 소리가 들려온 문 쪽을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노크 소리가 들려올 때가 아니었다. 한동안 예배당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삼촌이, 하필 오늘 돌아온 건가?
아니면 강지아인가? 아니, 강지아는 아닐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방 안에 들어가서 절대 나오지 말라고 당부해 두었기 때문이다.
똑똑.
“…….”
그러는 동안, 또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흘깃 마유현을 보았다. 그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칼날로 허벅지를 냅다 찔러도 아무렇지 않던 놈이, 불꽃에만 유난히 과민반응을 보이니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을 무서워하는 건가? 나처럼.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나는 숨죽인 채 노크 소리가 들려온 문으로 다가갔다. 삼촌이나 강지아일 수도 있지만, 다른 침입자일 가능성도 있었다.
마유현 정도 되는 인물에게는 미행이나 경호원 몇 명이 붙어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렇다면 위층에 있던 지아 누나는?
“…….”
아니, 지아 누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방 안에 들어가서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고 일렀으니, 운이 좋다면 무사할 것이다. 설령 무사하지 않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철컥.
나는 오른손으로 새벽의 검을 든 채, 왼손으로 문고리를 돌렸다. 그럼에도 문 건너편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경계심을 눈치챈 걸까. 일부러 문을 열어준 것이었는데도 상대는 섣불리 방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나간다. 이곳은 나의 예배당이다. 상대가 누구든, 얼마나 잘났든, 주술과 로아의 권능의 사용이 자유로운 이상 제압은 시간문제다.
끼이이…….
나는 천천히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아직 문 반대편에서는 반응이 없다.
타앙!
문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문고리가 부서진 모양이다.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나는 문 건너편에 있던 상대를 팔꿈치로 강하게 밀어 벽으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새벽의 검을 상대의 목에 댔다.
상대는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게 제압되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새벽의 검에서 흘러나온 불길하고 스산한 광채가 상대의 얼굴을 비추었다.
짙은 어둠과 안개 속에서 상대의 얼굴이 드러났다.
“저 강지아입니다, 교주님.”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 즉시 칼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서 칼이 닿은 부분을 만졌다. 피가 묻어나왔다. 칼을 대서 위협만 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조금 벤 모양이었다.
“……내가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말했던 거 같은데.”
“네, 그렇게 말씀하시긴 하셨지만…….”
“근데 왜 나왔을까.”
언짢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언짢다는 말 하나로 다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복잡했다.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했고, 슬픈 것 같기도 하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너무 답답해서 무슨 말이라도 꺼내 보고 싶었지만, 말이 입 밖으로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강지아는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잠깐 있어요.”
나는 그렇게 말한 뒤, 복원 주술을 써서 그녀의 목에 난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얕은 상처라서 금방 나았다. 흉터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탓으로 그녀가 다쳤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방 밖으로 나왔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몸이 무거웠다. 끝이 없는 바다에 내던져진 채 한없이 침몰하는 기분이었다. 화가 나고 슬픈데,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무서웠다. 이대로 입을 다문 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게 두면 당장이라도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왜 나왔어요?”
일단 아무 말이나 꺼내 보았다. 타인의 목소리가 절실했다. 그녀는 말없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들고 있던 물건을 내게 건네주었다.
“교주님 방에서 발견했습니다.”
그건 공책이었다. 휴교 기간 동안 예배당에서 주술과 로아의 권능을 연습했을 때, 이따금 떠오른 기억의 편린들을 적어 둔 공책.
“고작─”
‘이거 때문에 내 말을 안 듣고 기어 나왔냐’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공책을 펼치고, 그 안에 적힌 내용들을 보자 말문이 막혔다.
나는 공책에 부모님과 함께 지냈던 기억이나 그분들의 말을 기록했다. 잊어서는 안 되지만 자꾸만 잊게 되는 것들.
평생토록 또렷할 줄 알았지만 문득 희미해지곤 하는 기억들을 잊고 싶지 않아서, 나름 열과 성을 다해 공책에 글자를 써 내려갔다.
분명, 그러려고 했다.
“…….”
-손톱깎이가 말을 듣지 않아서, 부러트렸다. 나는 문을 열어야 했다. 손잡이가 없어 열지 않는다. 언젠가 땅 속을 보았다. 벌레가 많았다. 지하는 너무 답답하다. 언젠가는 나도 높은 곳에서……. 기회를. 한 번만 기회.
-아빠가 돌아오지 않아.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
-살려줘.
읽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단어가 마구 흩뿌려져 있었다. 글자는 크기가 제각각 달랐고, 문장은 의미를 알아볼 수가 없이 어지러웠다. 애초에 의미가 있는 문장을 쓰려고 한 것 같지가 않았다. 피로 쓴 것처럼 붉은 글씨가 공책을 가득 메우고 있어 섬뜩했다.
“……교주님?”
강지아가 나를 불렀다. 대답하지 않고 공책을 덮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무서웠다. 공책에 적힌 글자의 필체가 나의 것이었다.
나는 이런 기괴한 글을 쓰려고 한 적도 없고, 쓴 기억도 없다. 그래서 더 무섭다.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고개를 들었다. 강지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으신─”
“괜찮아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괜찮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별로 괜찮은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나날이 닳아가고 있었다.
촉각은 나날이 무뎌졌다. 나중에는 무엇이 뜨겁고 무엇이 차가운지조차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미각이 사라진 지는 꽤 됐다. 지아 누나가 해준 음식이 어떤 맛이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촉각과 미각의 상실은 매일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흐릿하게 흘러갔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래서야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차라리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이제 올라가 봐요, 누나.”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미쳐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강지아를 보내고 다시 지하로 돌아오는 길에, 마리네트의 불로 공책을 태웠다.
* * *
나는 벽에 기대앉아, 흩어지고 뭉치기를 반복하는 안개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셔 봤다. 온몸에 안개가 찼다.
상쾌한 것 같기도 하고, 개운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또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야.”
그때, 마유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몸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며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표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안개 탓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안개 너머로 어렴풋하게 보이는 마유현의 실루엣을 쳐다보았다.
원래 같으면 이러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당장 마유현을 고문하든, 아니면 주술을 쓰든 해서 뭐라도 캐내야 했다.
그가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내가 교주라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이 더 있는지. 교황군을 피해 도망쳐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도주 및 은거를 위해 필요한 정보 등.
“야, 죽었냐?”
“…….”
마유현이 깝죽거리며 말을 걸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마유현에게 정보를 캐내려면 얼마든지 캐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쩌다 정체가 발각되고 만 것인지, 언제부터 미쳐 있었던 건지.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생각하면 끝도 없었다.
자책과 후회 속에서 나는 무기력하게 침잠하고 있었다.
생각했다. 내가 고위 성직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지. 왜 고위 성직자가 되고 싶었더라?
교사들 눈에 잘 보이기 위해,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가면을 쓰며, 스스로를 잃어가면서까지 피렌체에 들어가려고 했던 이유가, 뭐였더라…….
“……지하 감옥.”
생각났다.
나는 쥐고 있던 새벽의 검을 들었다. 칼날에 마리네트의 불꽃을 담았다. 새벽의 검만 들었을 때는 태연하던 마유현의 눈동자에 공포가 서렸다. 마리네트의 불꽃은 부두 마력과 만나 보랏빛으로 빛났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하면 굳이 고문을 한 뒤 복원 주술로 지혈을 해줄 필요가 없었다. 불이 알아서 지혈을 해줄 테니까.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위대한 발견이다.
내가 말없이 새벽의 검을 들이밀자 마유현이 발버둥을 쳤다.
“야, 야이, 이 씨발! 고문을 할 거면 먼저 질문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아, 그랬지.”
“하, 하아……! 미쳤군. 말이 통하는 놈일 줄 알았는데, 그냥 고문에 미친 새끼─”
우득.
마유현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그의 발가락이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내가 부러트린 것이었다.
마유현은 새빨개진 얼굴로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뒤늦게 찾아온 고통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비명은 곧 흐느끼는 신음으로 바뀌었다.
“쓸데없는 말을 하거나,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발가락을 하나씩 부러트릴 거야……. 아니면 칼로 발바닥을 찌를 수도 있고.”
“아, 아아아……. 이미 부러졌잖아, 미친, 개 미친 새끼가……!”
“주접떨지 마. 금방 나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주술진을 그렸다. 상급 복원 주술이었다. 마유현의 으스러진 발가락에 주술의 안개가 닿았다.
발가락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꿈틀거리며,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마유현은 여전히 고통에 떨고 있었다.
“그래도 아프긴 하겠지만.”
복원 주술은 단지 대상의 상태를 온전하게 되돌릴 뿐, 고통까지 없애 주지는 못한다. 나는 칼날을 그의 발에 들이밀었다.
아까보다 발버둥이 거세다. 역시 공포를 심는 데에는 말보다 행동이 나았다. 말을 이었다.
“교황청 지하 감옥에 대해서 말해. 위치, 특징…… 아는 건 뭐든.”
마유현은 내 물음에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 알고 있는 게 있으나, 대답을 주저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그의 발에 칼날을 박아 넣으려고 했다. 그때, 마유현이 황급히 나를 저지하며 입을 열었다.
“자, 잠깐! ……협상, 협상을 하자.”
“협상?”
나는 그를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동등한 입장이 아닌데 어떻게 협상을 하지? 여기가 아직도 고사장인 거 같냐? 일단 발가락 하나는 부러트리겠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였으니까.”
“자, 잠깐만! 이런 씨발, 내 얘기 좀 들어! 듣고 해도 되는, 어? 듣고 해도 되는 거 아니야?”
마유현이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무슨 소리를 할까 궁금해서, 발가락을 부러트리는 것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그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일단, 이거부터 말할게. 나를 죽이면 너한테도 손해야.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왜 내가 손해일 거라고 생각하지?”
“내가 심장이 조금 안 좋아서, 몸에 기계가 하나 박혀 있거든. 내 심장이 멈추면, 교황군에서 내 위치를 알게 돼.”
“…….”
“여기서 나를 죽이면 이곳의 위치도 발각될 거다.”
마유현의 표정이나 말투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 말이 진실이라면, 이곳에서는 그를 죽일 수 없었다.
설령 내 정체가 발각되어 교황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고 하더라도, 예배당의 위치만큼은 들키지 않는 편이 나았으니.
물론, 그렇다고 내가 마유현을 죽일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비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냐? 그럼 다른 곳에서 죽이면 되겠네.”
“그래도 네가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된다는 건 똑같아.”
마유현은 제법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죽으면 교황군에서 전국 CCTV며 블랙박스, 그런 것들을 다 뒤질 거야. 잡는 건 모르겠지만, 나를 죽인 사람이 너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지.”
“…….”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유현의 몸에 기계 장치가 박혀 있든 박혀 있지 않든, 그는 로마니카교에 있어 여러모로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가 죽거나 실종되면 내 정체가 발각되고 말 것이다.
“그건 너를 살려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그러나 내가 여기서 그를 살린다고 해도 결과는 같을 것이었다. 결국, 내 정체는 발각되고 말 것이다. 마유현에게 내 정체를 들킨 순간부터, 내가 뭘 어떻게 하든 결과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내 말을 들은 마유현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절대 다른 사람한테 네 정체를 말하지 않을 거야. 맹세할 수 있어, 이건.”
“내가 그 말을 믿어줄 거라고 생각하나?”
“정보는 시중에 풀리면 가치가 떨어져.”
마유현이 난데없이 뜬구름 잡는 소리를 했다. 그는 발에 칼이 들어오는 것이 두려웠는지 몸을 움츠리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네가 부두교의 교주라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건, 내가 아는 한 나밖에 없어. 그리고 그 정보는 나만 알고 있을 때 가장 가치가 높지.”
“…….”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되지. 그건 내가 가진 정보의 희소성과 가치를 스스로 낮추는 일이니까.”
마유현의 말은 빨라서, 한 번에 알아듣기 어려웠다. 나는 그의 말을 천천히 곱씹으며 차분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교주라는 사실을 혼자 알아서 얻다 써먹으려고?”
결론적으로, 그의 말은 그럴듯한 궤변에 불과했다. 희소성이 있는 정보가 다른 정보에 비해 가치가 높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효용성이 없다면, 아무리 희소성이 높은 정보라고 해도 가치는 낮다. 마유현은 내 말을 듣고는 작게 웃음을 지었다.
“써먹을 데가 많지. 세간에는 내가 차기 교황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생각보다 경쟁자가 많거든.”
“뭐?”
“교황청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제한하고 있어. 너도 어렴풋이 눈치는 챘겠지만……. 그리고 나는 그렇게 제한된 정보를 너에게 줄 수 있다.”
제한된 정보. 그 말만 듣고도 떠오르는 게 많았다. 대표적으로 구준혁에 대한 건이 있었다.
교황청은 사탄교도가 피렌체에 잠입했다는 사실 자체를 불명예스럽게 여겼고, 그 외에 여러 가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여 구준혁이 사탄교도라는 사실을 은폐했다.
“물론, 나도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긴 해. 그래도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많이 알고 있지. 네가 궁금해하는…… 지하 감옥이나 성전. 아니면 로마니카교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
“그 정보를 내게 알려줘서 네가 얻는 게 없을 텐데?”
“얻는 게 많지. 일단은, 네가 나를 섣불리 죽이지는 못하게 될 거고.”
“정보만 캐내고 죽이면 그만이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알려주지는 않을 거야.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테니까.”
그 말이 맞았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전까지 나는 그를 죽일 수 없었다. 아직까지 그를 죽이지 않은 것도 그러한 까닭이었다. 내가 그를 죽이지 않는 게 아니라, 죽일 수 없는 처지라는 사실을 마유현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자, 어때. 너한테도 나쁘지 않은 협상이라고 생각하는데.”
“흠…… 나쁘지 않기는 하지. 근데…….”
확실히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마유현은 차기 교황으로 알려진 자이며, 그렇기에 남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로마니카교에 대해서는 특히 모르는 게 많았다. 마유현과 협상을 하면, 내가 몰랐던 여러 유용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을 것이었다.
“굳이 협상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굳이 손해를 감수해 가면서까지 협상을 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부두 마력을 사출했다. 흘러나온 거대한 부두 마력의 덩어리가 흩어지고 뭉치며 안개를 헤쳤다. 부두 마력은 단번에 수십 개의 주술진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융합 주술진은 그렇게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주술진에서 흘러나온 안개는 끈적하고 짙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굳이 협상을 하지 않아도, 그에게서 정보를 캐낼 방법은 많았으므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