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86
제186화
보이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눈앞의 광경은 선명했다.
안개에 휘감겨 의식을 잃어가던 마유현의 몸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오른쪽 눈과, 노랗다 못해 하얗게 탈색된 머리에서 빛이 흐르고 있었다.
빛이 얇은 장막이 되어 마유현을 감쌌다. 그 장막이 안개를 막고, 이어서 빨아들이고 있었다.
“웁……!”
몸에 힘이 빠지고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빛의 장막은 안개를 빨아들이고, 이어서 나를 지탱하고 있던 얼마 남지 않은 힘마저 빨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주술진을 황급히 부수었다. 주술진이 가동을 멈추고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제야 힘이 빠지는 느낌이 없어졌다. 나는 숨을 고르고 가까스로 자리에 섰다.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가 하얘지며 어지럽게 점멸했다.
어쩐지 익숙한 감각이었다. 나는 예전에도 분명 이러한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상자…….”
아이덴 동산에 파묻혀 있던 상자의 내부를 그란브와의 권능으로 엿보려 했을 때. 나는 오늘처럼 피를 토했다.
그때는 단순히 내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란브와의 권능을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했기에, 상자 안을 엿볼 수 없었던 것이라고.
그렇게 간단하게 결론짓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이 상자와 마유현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렷한 의지를 갖춘 무엇이, 미지의 힘을 사용하여 노골적으로 나를 방해하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씨발…….”
처음에는 당황했다. 주술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어이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눈깔로 남을 꿰뚫어보는 것도 모자라, 타인의 신성력을 제 것인 것처럼 활용하고, 심지어는 주술조차 통하지 않는다. 이건 너무 불합리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무력감을 느낀다.
주술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에게서 강제로 정보를 캐낼 방법은 없다. 기억 분쇄를 사용하여 그의 기억을 지우고, 오늘 일을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다.
기억 분쇄는 말 그대로 기억을 분쇄하는 것이다. 내가 지우고 싶은 기억만 선택적으로 지울 수는 없다.
기억 분쇄를 사용하면, 오늘의 기억은 물론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정보까지 몽땅 사라지고 만다. 애초에 기억 분쇄 주술이 통할지조차 의문이다.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그를 보호하고 있는 ‘미지의 힘’이 무엇인지. 경쟁자가 많다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내가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지하 감옥과 성전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내게는 어떤 정보가 유용하고 유용하지 않은 건지 판단할 능력조차 없었다.
아는 것도 없었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무력하다. 나는 너무나 무력했다.
“윽……. 뭐야, 시발. 나 왜 자고 있었지?”
그러는 동안, 어느덧 마유현도 의식을 되찾았다. 나는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아, 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협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아, 맞아. 그 얘기 중이었지. 얼마든지 해.”
“네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정보가 어떤 종류인지 알고 싶은데.”
말이 협상이지, 사실 나는 마유현을 살려 둘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를 죽이든 살리든 감수해야 할 리스크는 동일하지만, 살리면 필시 얻을 수 있는 게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사실을 밝힐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는 동등한 위치가 아니며, 나는 얼마든지 너를 죽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선심을 써서 협상을 해주는 것이라는 뉘앙스로 대화를 끌어가야 했다.
“네가 지금 가장 궁금한 게 뭔데? 내가 아는 한 대략적으로, 그러니까……. 맛보기 정보는 지금 풀어줄 수도 있는데.”
“지하 감옥.”
마유현이 묻는 말에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내가 피렌체에 입학하여 고위 성직자가 되려고 했던 건 전부 이것 때문이었다. 지하 감옥에 수감돼 있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마유현은 뭐라 말하려다가 이내 입술을 달싹이며 입을 열었다.
“정확히 지하 감옥의 뭐가 궁금한 지, 어떤 지하 감옥을 말하는 건지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
“교황청 지하 감옥에 대해서, 네가 아는 걸 전부 말해.”
“아니, 그러니까……. 아, 이걸 먼저 말했어야 되는구나.”
마유현은 찌푸린 얼굴로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교황청 지하 감옥이 좀 많아. 내가 아는 것만 한…… 7곳 정도.”
“…….”
“종류도 꽤 다양한데, 말해줘?”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새벽의 검을 들었다.
“어, 야. 야이 씨발, 왜 말해줬더니 지랄이야!”
서걱.
그리고, 검으로 그의 손을 묶은 매듭을 잘라서 풀어주었다. 마유현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한참이나 자신의 손을 보다가, 뒤늦게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나는 새벽의 검을 부두 마력으로 되돌려 없애며 입을 열었다.
“협상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일단 손만 풀어줬다. 발이랑 목은 나중에.”
“……나중에? 아니, 협상을 받아들이는 거면 당장 풀어줘야…….”
“살려준다고 했지, 풀어 준다고는 안 했다.”
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언젠가 풀어주기는 할 거야. 아마…… 내가 만족할 만큼의 정보를 얻고, 너를 감시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된 다음. 계속 이렇게 감금하고 있으면 의심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
“그때까지는 여기 있어라. 밥은 줄게. 별 맛은 없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며 방을 나오고, 문을 밖에서 잠갔다. 방 안에서 마유현이 뭐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시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 * *
“흐음, 알겠네. 주소는 자네가 머무는 기숙사로 보내면 되나?”
문요셉은 대뜸 걸려온 도선우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도선우는 여느 때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물건을 구해달라고 청했다.
그가 원하는 물건은 위치 추적기와 도청 장치, 그리고 그 두 기기를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소형 단말기였다. 문요셉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을 이었다.
“……뭐, 금방 보내줄 수는 있지.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말이야. 한데, 그걸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지 묻고 싶군.”
도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전화 너머로 정적이 흘렀다. 문요셉은 대답을 기다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련히 잘 쓰리라고 믿겠네. 이만 끊지.”
아무래도 대답할 생각이 없는 듯하여, 문요셉은 대화를 끝맺었다. 위치 추적기와 도청 장치를 보내 달라고 하는데, 그 용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니 영 꺼림칙하기는 했다.
그러나 문요셉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정확히는, 캐물을 필요가 없었다.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피렌체 모범생처럼 보이는 도선우가 뒤에서는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그것은 조만간 김진서를 통해 밝혀질 예정이었다.
조급할 필요가 없었으며, 지금은 도선우에 대한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할 때였던 것이다.
“흐름 끊어서 미안하네. 하예진 선생, 하던 이야기 계속 해줄 수 있겠나?”
“네……. 그런데 어디까지 얘기했죠, 제가.”
하예진은 병상에 누워 힘없이 대답했다. 문요셉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문요셉은 기억력이 좋아서, 스치듯 지나간 사람의 인상도 제법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문요셉은 저번에 조사차 피렌체를 들렀을 때, 교무실에서 잠깐 본 하예진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와 지금의 하예진은 인상이 무척 달랐다. 어떻게 보면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도 같았다.
비단 얼굴 살이 빠져 수척해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문요셉은 하예진의 눈동자에 깃든 빛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김진서라는 아이와 만나고, 의식을 잃었다는 대목까지 들었네.”
문요셉은 그러한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으며 대답했다. 하예진이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문요셉은 그녀가 대답할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 하예진이 결심과 체념에 찬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의식을 잃은 게 아니라,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아요.”
“꿈?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나?”
문요셉이 눈썹을 치켜뜨며 흥미를 보였다.
분명 김진서는 의식을 잃고,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하예진은 ‘꿈을 꾸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의식을 잃은 뒤의 기억이 남아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김진서가 거짓된 진술을 했을 가능성도 있었고, 하예진과 김진서가 흑마법에 잠식당한 정도가 달라서 진술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문요셉에게는 기쁜 소식이었다. 문요셉 역시 같은 악마종의 흑마법에 당하여, 하예진처럼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속죄에 한 걸음 다가선 기분이었다. 문요셉은 설레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감추며 하예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예진은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 입술을 달싹이며 대답을 주저하고 있었다.
“꿈의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기 싫다면 말하지 않아도 되네. 말하고 싶은 부분만 말해줘도 충분해. 지금 이렇게 협조해 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네.”
“……고맙습니다. 조금 나중에…… 결심이 서면, 그때 꿈의 내용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럼 연락 기다리도록 하지. 참, 그러고 보니 명함도 안 줬군. 미안하네, 요즘 정신이 없어서.”
문요셉은 그렇게 말하며 명함을 하예진에게 건넸다. 하예진은 목례를 하며 공손하게 그것을 받아 들었다.
“네, 그럼 명함에 적힌 번호로, 조만간…… 웁.”
그때, 하예진이 갑자기 헛구역질을 했다. 구토를 필사적으로 참으려는 듯 눈동자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문요셉은 놀라서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건네주려다, 손수건이 없다는 걸 깨닫고 급한 대로 휴지를 뽑아 주었다.
“괜찮나? 왜 그러지? 혹시, 아직도 흑마법의 후유증이 남아 있나?”
“아니요……. 죄송합니다. 갑자기 헛구역질이…… 후.”
하예진은 휴지로 식은땀을 닦아내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별안간 몰려온 구역감은 조금 가신 듯했으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하예진은 차분히 숨을 골랐다. 호흡이 차츰 안정되었을 무렵, 그녀는 문요셉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오늘 표본 연구소를 다녀오셨나요.”
그녀가 말한 표본 연구소란, 서울 서부 쪽에 위치한 ‘마물 표본 연구소’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전투 도중 수집한 마수나 악마종의 살점이나 신체 부위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
훈련에 쓰이는 모조 악마종이나 모조 마수 등을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문요셉은 하예진의 병실을 방문하기 전에 그곳을 들렀다. 이번에 나타난 악마종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위해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사할 것이 있어서, 방금 다녀오는 길이지. 어떻게 알았나?”
문요셉은 오랜만에 당황스러웠다. 그는 그 사실을 하예진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표본 연구소에 대한 이야기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하예진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 사실을 알아차린 걸까.
옷에 악마종 표본에서 흘러나온 피가 묻어 있었나? 아니, 분명 오기 전에 옷을 갈아입었는데…….
“그,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냄새가 좀, 나서.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잊어주세요.”
“아, 냄새가…… 났다는 거군. 내 몸에서 냄새가 나던가?”
“어, 몸에서도 나고, 명함에서도……. 아닙니다. 그렇게 막, 신경 쓰일 정도로 나는 건 아니라…….”
문요셉은 괜스레 명함의 냄새를 맡아보고, 또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도 맡아보았다.
그러나 마물 표본 관리소에서 맡아지는 특유의 매캐하고 끈적한 향기는 없었다. 적어도 문요셉은 그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설령 냄새가 난다고 해도 극히 희미할 것이다. 어찌어찌 냄새를 맡았다고 해도, 그것이 마물 표본 관리소에서 나는 냄새라는 것까지 정확히 알아맞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아니, 흔치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이 정도 후각이면 마약을 찾거나 사탄교의 은거지를 색출할 때 쓰이는 탐지견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불쾌하게 만들어서 미안하군.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오도록 하지.”
“아닙니다, 저는 불쾌했던 게 아니라…….”
“그 전에, 자네에게 사탄교 색출 작업 협조를 부탁하고 싶군. 이단 심문관 재량으로 말일세.”
반드시 쓸모가 있다.
하예진에게 협조를 구하며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는 문요셉의 눈에 희미하게 광기가 담겨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