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87
제187화
하예진은 금방 퇴원했다. 김복동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흑마법에 의해 정신을 잃었을 뿐, 부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 있었던 김진서와 아이는 부상의 정도가 커서, 짧게는 며칠이나 길게는 몇 주 정도 더 입원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예진과 김복동이 퇴원한 직후, 피렌체에서 회의를 위해 교직원들을 소집했다.
둘은 실기고사의 감독관으로서, 그리고 고사 도중 발생한 사건에 대한 목격자로서 회의에 참석했다. 문요셉 또한 실기고사의 감독관으로서 회의에 참석하여, 평가 기준에 대한 논의에 참여했다.
“명색이 회의인데, 어째 회의에 참석하는 인원은 몇 없는 것 같군. 원래 이러나?”
회의가 끝나고, 피렌체의 회의실을 나온 문요셉이 하예진에게 물었다. 하예진은 체념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았다.
“늘 이렇지는 않지만, 종종 이럴 때가 있어요. 특히, 사탄교와 관련된 사건 같은 게 터지면…….”
“하긴, 조심할 만한 일이기는 하지. 자칫하면 줄줄이 옷을 벗게 될 수도 있으니.”
피렌체는 예전에도 문제가 무척 자주 일어나는 곳이었다. 문요셉이 피렌체에 재학할 때도, 그 이전에도 그랬다.
그러나 예전에는 학생들에 의해 발생한 사고가 많았고, 지금은 사탄교와 같은 외부인에 의한 사건이 많다는 점에서 달랐다.
피렌체 내부에서 발생한 일은 수습하기가 편했다. 그러나 외부인, 특히 사탄교와 관련된 사건이 발생하면 수습하기가 어려웠다. 사탄교와 관련된 일로 처신을 잘못했다가 파면을 당하는 일도 예사였다.
“하나, 아무리 그래도 교감 선생의 태도는 조금 이상하군.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그, 머리가 짧던…….”
습관처럼 추리를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문요셉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앞으로 한 남자가 와서 길을 막고 있던 탓이었다.
문요셉은 아주 못마땅한 눈으로 자신의 길을 막고 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문요셉도 키가 아주 큰 편이었는데, 앞에 선 남자는 그보다 훨씬 컸다. 덩치도 몹시 커서 사람이 아니라 벽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크다’라는 말보다 ‘거대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사내였다.
시비라도 걸 생각인가, 싶었던 순간 남자는 고개를 90도로 숙여 문요셉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문요셉 이단 심문관님, 저 한대호입니다. 기억 안 나십니까?”
“한대호? 한대호……. 아, 한대호! 기억하지. 당연히 기억하지!”
뒤늦게 한대호를 알아본 문요셉이 반색을 표했다. 하예진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엉거주춤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한대호가 김복동의 친구라는 건 알지만, 딱히 이야기를 나눌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문요셉은 반갑게 악수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그래, 자네가 피렌체는 무슨 일인가? 혹시 자네도 이번 실기고사 감독관이었나? 어떻게 한 번을 안 마주쳤지?”
“아닙니다, 실기고사는 아니고, 다른 일로 협의할 것이 있어 잠시 방문했습니다.”
“하긴, 피렌체도 동부성기사단 관할이니……. 요즘 여러모로 바쁘겠어. 그러고 보니 못 본 새 얼굴이 좀 상했군. 한 10년은 늙은 것처럼 보이네.”
“하하……. 농담이 과하십니다.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닙니다.”
둘은 안부를 묻고, 때로는 농담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대호에게 전화가 왔을 때 둘은 비로소 대화를 끝마치고 헤어졌다. 한대호를 보내고도 문요셉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남아 있었다.
“간만에 보는 친구라 더 반갑군. 저 친구가 동부성기사단장이 될 때 내가 도움을 조금 줬거든. 그때부터 친하게 지내고 있지.”
“아하…….”
“근데, 생각해 보니 하예진 선생이 한대호와 비슷한 연배 아닌가?”
“……사실, 피렌체 동기입니다.”
“오, 그래? 그럼 아까 인사라도 나누지 그랬나.”
“그 정도로 친하지는 않아서요.”
“저런.”
문요셉은 별 감흥 없이 대답하고는 걷기 시작했다. 하예진은 그 옆을 나란히 걸으며 흘깃 문요셉을 보았다.
회의 도중, 김진서와 그 곁에 있던 아이의 성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나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상황을 고려하여 특혜를 주기에는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반드시 있을 것이었고, 그렇다고 특혜를 주지 않기에는 김진서가 처해 있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김진서는 이사장의 딸이었던 것이다.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그들은 그저 책임을 지기 싫었을 뿐이다. 자신의 말이 어떠한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알 수 없기에 입을 다물고, 다른 누군가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비겁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특혜를 확실하게 주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때 나선 것이 문요셉이었다. 그는 회의장에 있는 모든 인원들 중 최연장자였고, 교계도 가장 높아서 편하게 말을 이었다.
“고사장에 나타난 악마종을 몰아냈다고 하고, 그런 학생을 피렌체가 키우고 있다, 피렌체는 교사가 학생을 보호할 뿐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잘 버무리면 공정성에 대한 논란은 없겠지. 악마종을 몰아낸 건 사실이니까.”
“…….”
“여론을 잘 만든 뒤에 특혜를 주면, 학생들의 사기도 제법 오를 것이고. 아예 김진서 학생을 피렌체를 상징하는 인물로 선정해서 홍보를 해도 되겠군. 이번 기회에 아예 분위기를 전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문요셉은 청산유수로 말을 쏟아냈다. 대부분은 그의 말에 동의하는 듯했으나, 당연하게도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문요셉은 반대 의견이 나올 때마다 그것을 간단하게 제압해 버렸다. 권위가 아닌, 논리로.
결국 문요셉의 의견을 고스란히 따라, 김진서와 아이에게는 차석에 준하는 수준의 점수를 주기로 결정되었다.
하예진은 그런 문요셉을 조금이지만 존경하게 되었다. 성격이 좀 이상한 것 같기는 하지만, 성직자로서 상식은 갖춘 사람인 것 같았다.
“그나저나 미안하네. 퇴원하고 나면 좀 쉬고 싶을 텐데, 내가 너무 고생을 시키는 것 같군.”
“네? 아뇨, 저도 제가 원해서 하는 거예요.”
하예진은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문요셉이 대뜸 협조를 요청했을 때에는 당황했다. 쉬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문요셉을 향한 불신이 컸다.
수사에 이용만 당하고, 실질적인 이익 없이 버림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예진은 교사가 아닌 사제였을 때, 그런 일을 수도 없이 겪었던 것이다.
그러나 회의에서 문요셉이 보여준 모습을 보고 그를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제 슬슬 퇴직 이후에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아야 할 때였다. 그녀는 이미 퇴직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흑마법이 보여준 꿈을 통해 자신의 뒤틀린 욕망을 본 뒤, 더는 교직에 남아 있을 수 없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도착했군.”
말없이 걷던 두 사람의 걸음이 멈췄다. 문요셉이 뒷짐을 진 채, 다 무너져가는 허름한 건물의 옥상에 내걸린 십자가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하예진은 당황한 얼굴로 문요셉과 십자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수사를 할 거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일단 들어오게. 본격적인 수사 이전에 해야 할 것이 있거든.”
하예진은 꺼림칙한 심정으로 문요셉을 따라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말이 허름한 건물이지, 그건 말 그대로 폐가였다.
원래는 작은 성당인 것 같았는데, 원래 같으면 신도들이 앉아 있어야 할 길쭉한 의자들은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강당 가장자리에 전시되어 있던 성상(聖像)은 머리가 부서져 어딘가 기괴한 분위기를 풍겼고, 십자가와 벽에는 웬 핏자국 같은 것이 묻어 있어 공포 영화의 배경 같은 곳이었다.
성당 특유의 가슴을 벅차게 하는 설렘이나, 성스러움 따위는 없었다. 그저 음산하고 괴괴했다. 하예진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문득 끼쳐오는 소름에 몸을 떨었다.
“무서워하지 말게. 여기도 예전에는 제법 그럴듯한 성당이었고……. 지금은 내 집이기도 하거든.”
“…….”
“믿지 못하겠지만 익숙해지면 그럭저럭 살 만하다네. 잠은 잘 안 오는 것 같기는 하다만.”
정말 믿을 수 없었다. 하예진은 이런 곳에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었다. 하루가 아니라 며칠을 이런 곳에서 묵었다간 정신이 나가버릴 게 분명했다.
“가족분들은…….”
하예진은 문득 떠오른 말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으려다가, 사실상 초면이나 다름없는 문요셉에게 건넬 말은 아니라는 생각에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흘깃 문요셉의 눈치를 봤다. 충분히 불쾌할 수 있을 만한 말이었음에도 문요셉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고 있었다.
“가족은 없네. 자네가 보기에는 나 같은 놈이 가정을 꾸리고 살 수 있을 것 같은가?”
“…….”
자조적인 농담에 하예진은 입을 다물었다. 반응이 오지 않자 문요셉은 아쉽다는 듯 한쪽 입꼬리만 비틀어 웃었다.
한차례 문답 이후 말이 없어진 둘은 무너진 성당의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구석에 난 문을 열자 복도가 나왔고, 복도 끝에 또다시 문이 있었다.
문요셉이 문고리에 열쇠를 집어넣었다.
끼이이…….
성당의 불쾌한 풍경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불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 너머는 암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문요셉은 아무렇지 않은 듯 암흑을 헤치고 방 안으로 들어갔지만, 하예진은 문 앞에 서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둠이 두려운 까닭은 아니었다. 방 안에서 맡아지는 역한 냄새 때문이었다.
악마종의 살, 마수의 침, 사람의 피, 그리고 잡다한 약품 냄새……. 하예진조차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없는 복잡하고 끔찍한 냄새가 났다.
딸칵.
그때, 문요셉이 불을 켰다.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던 하예진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 찼다.
“이게…….”
“고래를 보려면 먼저 고래의 배 속에서 나와야 하지.”
하예진이 방 안의 광경을 둘러보았다. 어디를 보나 놀라웠다. 지나왔던 괴괴하고 스산한 분위기의 성당과 복도의 풍경을 전부 잊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사진들이었다. 얼핏 봐도 수백 장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피사체의 종류는 다양했다. 사람도 있었고, 마수, 악마종……. 이따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시체 같은 것도 찍혀 있었다.
그 사진과 사진 사이로 수십 가닥의 화살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그다음으로 보인 것은 책상 위 가득 쌓인 무기들. 대부분이 철퇴나 망치와 같은 둔기였고, 주먹에 끼워 쓰는 너클이나 총처럼 생긴 석궁도 있었다. 하나하나가 살벌하게 생겼다.
“…….”
그러나 하예진의 시선은 사진도, 무기도 아닌 서재에 꽂혀 있었다.
그녀는 독서광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애서가라고 불릴 만큼은 됐다. 특히 전문 분야에 관해서는 안 읽어본 책이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책을 많이 읽었다.
한데, 문요셉의 서재에 있는 책들은 그녀조차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거대한 서재를 빼곡히 채운 수많은 책들이 전부 금서(禁書)라는 사실을, 하예진은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이곳에서 자네는 고래의 배 속에서 나오게 될 거야. 고래를 보는 것은 그다음이라네.”
문요셉이 서재에서 책 한 권을 꺼내 하예진에게 건네며 말했다.
사람의 가죽을 기워 만든 표지를 씌운, 혐오스러운 형상의 책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