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88
제188화
“네 정체가 아직까지 걸리지 않은 건…….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야.”
마유현은 내가 준 식사를 하고 나서 멋대로 입을 열었다.
식사라고 했지만 사실 먹다 남은 걸 모아서 냅다 섞은, 그야말로 개밥이었다. 그럼에도 마유현은 감지덕지라는 듯 맛있게 먹었다.
하루하고도 반나절 동안 굶은 데다, 막대한 육체적 고통을 느끼면서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몰렸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의미지?”
“말 그대로. 운이 좋았다는 거지.”
마유현은 입에 물고 있던 음식까지 말끔히 삼키며 말을 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만 볼 수 있어.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게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살거든. 그게 네가 아직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는 이유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인 거 같은데.”
“맞아. 나는 남들보다 조금 많이 알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만, 아는 만큼밖에 볼 수 없다는 점에서는 남들과 같지.”
“근데 왜 지가 뭐라도 된 것 마냥 개소리를 늘어놓는 거지?”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얼마 없거든. 너랑 나는 그런 점에서 닮았지.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니까.”
그건 그랬다. 나는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내 곁에는 렉바가 있고, 바론 삼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많은 경험과 넓은 견식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 앞에서 나는 무지하고 어리석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질 수도 없었다.
“근데, 그게 내가 운이 좋은 거랑 무슨 상관?”
“누구 하나라도 ‘피렌체에 부두교의 교주가 있다’라는 의심을 했다면 네 정체는 금방 발각됐을 거야.”
“그랬겠지.”
“근데 운 좋게 아무도 그런 의심을 하지 않았거든. 아무리 그래도 피렌체에, 부두교의 교주쯤 되는 인간이 잠입해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네가 여기저기 티를 내고 다녀도 아무도 몰랐던 거지.”
“어.”
“네가 주술이나, 저기 뭐야, 기적 비슷한 거…… 권능! 그 권능 같은 걸 아무리 써도. ‘기적이다’, ‘축복의 활용이다’ 하면서 자기네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상황으로 합리화를 시키는 거야.”
마유현이 말을 이었다.
“사실 나도 그래. 주술이 이 정도로 사기인 줄은 몰랐거든. 뭐 저항할 틈도 없이 기절하더라고. 이런 줄 알았으면 안 따라왔지.”
“알겠는데, 이 씨발 새끼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지하 감옥에 대해서 좀 얘기하라고.”
“아, 처음 물어본 게 그거였지. 맞다.”
몇 번을 물어봤는데 지하 감옥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도 않고 딴소리만 내내 지껄이고 있다. 마유현은 한차례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지하 감옥은 총 일곱 곳이 있어. 네 곳은 그냥 중범죄자들이 갇힌 곳. 그래도 나머지 세 곳보다는 시설이 좋아.
“…….”
“두 곳은 교황청에 반기를 들었거나, 타락하여 문제를 일으킨 성직자들이 갇힌 곳. 시설은 나쁘지 않지만 관리는 가장 빡센 걸로 알아. 아무래도 전직 성직자들이었으니, 잡범들보다 완력이 세니까. 그리고…….”
“마지막 한 곳이, 너희가 보기에 사이비라 생각되는 사람들이 갇히는 곳이겠군.”
“그렇지. 사탄교도나 부두교도는 다 거기 있다고 보면 돼.”
“장소는 알고 있나?”
내가 물었다. 마유현은 고민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나도 아직 정식 후계자인 건 아니라……. 교황이나 성유다, 뭐 그쯤 되는 인물 아니면 거기까지는 몰라.”
“성유다?”
너무나 익숙하고, 그래서 불쾌한 이름이었다. 이제는 그 이름만 들어도 솜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그때, 주머니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하수영에게 전화가 오고 있었다. 아마도 급한 전화는 아닐 것이다. 하수영에게 급한 전화가 올 리가 없으니까.
무엇보다 지금 받으면 하수영의 목소리가 마유현에게 들릴 가능성이 있다. 마유현의 목소리를 하수영이 듣게 돼도 곤란하다.
나는 전화를 거절하고 입을 열었다.
“성유다가 뭐 어쨌다는 거지?”
“전직이라고 해도 추기경이었으니까, 그 정도 정보는 있겠지. 정확한 건 그 사람만 알겠지만.”
마유현이 설명을 이었다.
“대주교까지는 짬만 차면 교황청에서도 대충대충 직위를 하사하는 편인데, 추기경은 달라. 거기부터는 교황 선거에 참가할 수 있어서.”
“교황 선거? 그런 게 있으면 네가 말한 후계자 같은 게 무슨 소용이지?”
“얼마나 많은 추기경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냐, 그게 후계자의 조건인 셈이지. 혈통이 받쳐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보수적인 추기경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으니까, 내가 유력 후계자라고 소문이 나 있는 거고.”
“나한테 접근한 이유도 그 교황 선거라는 것과 연관이 있나?”
“……연관이 없지는 않지.”
마유현은 마지못한 듯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너 말고 다른 후계자는 몇 명이나 있냐?”
“셋.”
마유현은 짧게 대답했다. 일순간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것은 아주 잠시였으나, 그 잠깐 동안 그의 얼굴이 몹시 기괴하게 뒤틀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아주 좆같은 새끼들이야.”
“너만 할까.”
마유현은 뭐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나는 방 안 가득 뿌옇게 피어 있는 안개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생각이 많았다. 그러나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안개나 다름없는 생각들이었다.
“……근데, 너 성유다랑 아는 사이 아니었냐?”
“뭐?”
어이가 없는 질문이었다. 물론 나는 성유다를 알고 있다. 예전에 내가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갖은 방법으로 그에 대한 뒷조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성유다를 죽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던 때였다.
그러나 성유다는 나를 모른다. 성하연이나 피렌체의 교직원, 또는 내가 모르는 그의 인맥을 통해 내 이름 정도는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피렌체의 학생, 자선의 성호라는 거짓으로 범벅된 이름이다. 성유다는 교주로서의 내 이름은 모르고 있다.
그렇게 믿고 싶었고, 그렇게 믿고 살았다.
이어진 마유현의 말은 나의 바람을 처참히 부수고 말았다.
“성유다가 너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 * *
“다들 알겠지만, 하예진 선생님이 한동안 자리를 비우게 되셨습니다. 그동안 자선반의 담임은 제가 맡게 될 건데, 참. 오늘 도선우 학생은 아파서 결석이라고 하니…….”
하예진을 대신하여 나온 유정학이 조회를 진행했다. 대부분 자잘한 공지 사항이었다. 실기고사에 대한 언급을 하기는 했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실기고사 성적은 별도로 공개되지 않을 예정이며, 필기와 실기를 합산한 성적표를 보면 실기 점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였다.
정인아는 듣는 둥 마는 둥 조회를 들었다. 하예진 선생님의 조회가 아니었기에 제대로 듣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고, 도선우가 결석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실기고사가 있던 날, 도선우는 내내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다음부터 연락이 없었다.
걱정이 되어 그날 밤 전화를 할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자신의 전화가 그에게는 불편할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시간은 자습. 시험 끝났다고 노는 건 좋은데, 그렇다고 너무 놀면─”
“학교생활 끝난 거 아니다. 아직 2학기 남았으니까, 지금부터 철저히 예습을 해야 너희보다 성적 높은 애들을 따라잡을 수─”
“특히 여기 사제과인 애들 있지? 너희는 성기사나 성전사처럼 몸으로 때울 수도 없으니까, 지금부터─”
오전 수업은 거의 자습이었다. 사실 자습보다는 할 짓 없는 교사들의 설교를 듣는 시간에 가까웠다. 말이 자습이지, 정말로 자습을 하는 학생들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기고사를 치르다 다친 하예진과 김복동, 김진서와……. 아무튼, 그 네 명에 대한 흉흉한 소문은 아직도 건재했다.
그럼에도 시험이 끝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의 마음은 들떠 있었다. 방과 후에 어디를 가자, 주말에는 또 어디를 가자, 이런 이야기들이 이따금 정인아의 귀에 들어왔다.
“인아야!”
아이들이 화기애애하게 떠드는 목소리를 들으며, 홀로 읽히지도 않는 성서를 읽고 있던 그녀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아는 얼굴이었다. 학기 초에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그리고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였다.
“야, 시험도 끝났는데 왜 공부해. 벌써 예습해?”
“응? 아, 응. 그냥 할 거 없어서.”
“할 거 없다고 공부를 해? 와, 너도 진짜…….”
질색하는 친구를 보고 정인아는 미소를 지으며 읽던 부분에 책갈피를 끼웠다. 성서를 덮은 그녀가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그냥 보고만 있던 거지. 근데 왜?”
“별건 아니고, 주말에 뭐해?”
“음…… 뭐 없을걸?”
“그래? 그럼 주말에 너도 나올래?”
친구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학기 초에는 거의 도선우랑…… 걔랑 다녔고. 최근 들어서는 도선우 외에 다른 친구들을 만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사실 시험공부를 하느라 사람 자체를 많이 안 만나기도 했고.
시험이 끝나도 공부는 놓지 않고 꾸준히 하기로 마음먹기도 했고, 곧 소논문 대회가 있는 탓에 다시 바빠질 예정이기도 했지만, 하루 정도는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주말에 달리 해야 할 것도 없었다.
“그래. 근데 뭐 할 건데?”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밥 먹고 대충 돌아다니다가, 볼링이나, 아니면 뭐…… 그러지 않을까? 노는데 일일이 계획 세울 건 없지.”
“괜찮네. 반 애들끼리만 노는 거지?”
“응. 너랑 나랑, 저기 예리랑……. 그리고 남자애들 몇 명 낄 것 같은데. 저기 앉아 있는 애들.”
친구가 뒤편에 모여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예리라는 아이와 남자아이 세 명이 모여서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애들 중에 낯익은 얼굴이 보여서, 정인아는 표정을 구겼다.
“쟤, 예전에 배성현이랑 같이 다니던 애잖아.”
“어? 아, 그렇긴 한데……. 솔직히 나도 좀 나쁘게 보긴 했거든? 근데 얘기해 보니까 착하던데? 반성도 하는 것 같고. 진심으로.”
“야…… 아무리 그래도.”
정인아가 눈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제 와서 착한 짓을 한다고 해도 과거에 지은 잘못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반성을 하고 있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근본적으로 나쁜 아이일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도, 한때 배성현과 함께 다녔던 패거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좋게 볼 수가 없었다.
친구는 고민하는 정인아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럼 쟤만 안 오면 되는 거지? 야, 유재빈! 인아가 너 싫─!”
“야, 야! 미친, 미쳤어. 그런 뜻이 아니잖아!”
정인아는 친구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원래도 막무가내인 성격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입을 틀어막은 손을 치우자, 친구가 입을 열었다.
“올 거지?”
“알았어, 갈게. 진짜, 어이가 없어서…….”
정인아는 순진하게 묻는 친구의 모습에 마음이 풀려서 그만 웃고 말았다. 친구가 배시시 웃었다.
“어디서 몇 시에 볼지는 정해지면 알려줄게!”
“응, 알겠어. 근데…….”
정인아는 흘깃 도선우의 자리를 보았다. 자리는 비어 있었다. 오늘은 아파서 못 온댔지. 많이 아픈가? 실기고사장에서 봤을 때는 많이 아파 보이긴 했는데…….
“그, 혹시 못 갈 수도 있으면 내가 연락할게.”
“뭐? 너 왜 또 밑밥 깔아.”
“밑밥이 아니라…… 혹시 못 갈 수도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
“불안한데, 인아가 약속 파토 낸 게 한두 번이 아니라…….”
“야, 그 정도는 아니다! 말 진짜 서운하게 하네.”
“알겠어, 알겠어. 아무튼 이따 연락해!”
친구는 그렇게 말하고 교실을 나갔다. 어디 급하게 갈 데가 있는 듯한 걸음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