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9
제19화
김진서와 만난 다음 날, 나는 학교로 갔다.
휴교 기간이라 수업은 없었지만, 피렌체 부지에 있는 여러 시설들을 이용하는 것은 가능했다. 나는 헬스장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학교에선 되도록 집 밖으로 나오지 말 것을 권유했지만, 아무도 없는 자취방에서 쓸쓸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은 벤치 프레스로 가슴 운동을 할 생각이었으나, 웬 괴물 같은 놈이 벤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등 운동을 하기로 했다.
“후.”
40kg, 10회, 5세트. 렛 풀 다운의 정석을 지키며 열심히 등 운동을 하고, 잠시 숨을 골랐다. 오랜만에 하는 운동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조금 더 힘들었다.
쉬는 동안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휴교 기간임에도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전부 성전사과나 성기사과 지망 학생들인 듯했다.
그중에는 김진서도 있었다. 그녀는 러닝 머신에서 유산소 운동을 하는 중이었다.
다행히 잘 회복한 것 같았다. 표정도 평소보다 좋았다.
“뭐야. 너 퇴원했네? 언제?”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중 누군가 말을 걸었다.
구준혁이었다.
“어제.”
“퇴원했으면 말을 해야지, 새끼야. 내가 병문안 간 건 알어?”
“아 맞네. 삼촌한테 들었어. 고맙다.”
“알고도 연락을 안 한 거야 그럼? 이거 아주 악질이네.”
“어제 너무 바빴어. 이것저것 할 게 많아서.”
배정환과의 거래. 김진서와의 만남. 집에 들어와서는 피곤해서 바로 잤다.
연락할 경황조차 없을 만큼 바쁜 날이었다. 구준혁에게 굳이 연락을 할 이유도 없었고.
“근데 너 퇴원하고 바로 운동해도 되는 거…… 어? 이거 봐라.”
구준혁이 대뜸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김진서 좋아하냐?”
“갑자기 뭔.”
그러곤 갑자기 헛소리를 했다.
“아니, 너 김진서 보고 있었잖아. 아니야?”
“아까 잠깐 살짝 본 거야. 겨우 그거 가지고 무슨.”
“본 거 맞네. 좋아하네. 맞지? 맞냐? 좋아하냐?”
“아니라고. 그냥 금방 나았길래. 쟤도 좀 많이 다쳤었잖아.”
어제 김진서를 만난 일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냥 적당한 말로 해명했다.
구준혁은 열심히 달리고 있는 김진서를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왜 저렇게 빨리 나았지?”
“뭐?”
“회복력이 좋은 건가? 흠.”
구준혁이 팔짱을 낀 채 고뇌하는 척을 하더니, 이내 빙긋 웃었다.
“좋은 병원 다녔나 보다. 돈도 많으니까.”
“어, 뭐 그렇겠지.”
“아무튼 운동 열심히 해라. 나는 가련다. 여기 미친놈이 있거든.”
구준혁이 수건으로 흐른 땀을 대충 닦아내고는 헬스장을 나갔다. 걸음이 다소 급했다.
나는 흐름이 끊기기 전에 즉시 운동을 재개했다. 구준혁이 말한 미친놈이 누구인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렛 풀 다운에 이어 풀 업, 그리고 시티드 로우.
등 근육이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무렵, 이두 운동으로 넘어갔다.
“라잇 웨이! 호우─!”
열심히 바벨을 들어 올리던 도중, 벤치 쪽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것이라 하기엔 너무나 야성적인 목소리. 가히 짐승의 울음소리라 보아도 무방했다.
팔, 다리, 가슴 등.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몸을 가진 거한이 벤치 프레스를 하고 있었다.
바벨 양쪽에 20kg 원판이 각각 다섯 장.
총 중량 220kg을 거한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들어 올렸다.
[저게 사람이 맞나? 곰이 인간으로 둔갑한 것 같은데.]산전수전 다 겪은 렉바조차 놀랄 정도였다.
“컴 온! 라잇 웨이. 이지 웨이! 호오오오우─!!”
그야말로 미친놈이 따로 없었다.
나는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저 미친놈의 기합 소리를 무시했다. 그럼에도 이따금 이어폰을 뚫고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목청이 컸다.
그 미친놈이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마지막 세트를 앞뒀을 무렵이었다.
“그만. 다친다!”
놈의 거대한 목청은 이어폰조차 뚫었다.
“팔꿈치를 고정해라! 안 그럼 관절이 박살 날 거야.”
마침 팔꿈치가 찌릿찌릿 아팠던 터라, 그가 시키는 대로 자세를 교정해 보았다.
그러자 팔꿈치 통증이 마법처럼 사라지고, 이두에 자극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좋아, 도선우!”
“뭐야. 내 이름 어떻게 알─”
“사건을 겪고도 단련에 힘쓰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다!”
그의 체육복 가슴팍에 ‘강대만’이라 적힌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익숙한 이름이었다.
신입생 대표 7인, 근면의 성호를 하사받은 학생이다.
진단평가 당시, 신입생 대표 중 유일하게 상위권에 이름을 못 올린 학생이기도 했다.
강대만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기 운동을 하러 갔다.
라잇 웨이─! 호우─!
기합 소리가 헬스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미친 새낀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운동을 마치고 헬스장을 나왔을 때도 강대만은 여전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 * *
일주일.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휴교 기간도 어느덧 끝이 났다.
그 기간 동안 내 일과는 언제나 같았다. 운동을 하고, 축복진과 치유진 그리는 연습을 하고, 이따금 주술을 연습했다.
이진성 삼촌에게서 곧 제단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낭보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학교로 가는 길. 하늘이 오늘따라 쾌청했다. 걸음도 가벼웠다.
등굣길이 이토록 즐거웠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침 미사에서 표창장 수여식이 있을 예정이에요. 도선우 학생이 받게 될 거니까 늦지 말고 일찍 오도록 해요.]어젯밤, 하예진 선생님으로부터 온 문자 덕분이었다.
표창장은 수상 실적에 포함되며, 이는 고위 성직자가 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목표에 한 걸음 가까워진 셈이었다.
이윽고 강당에 도착. 표창장 수상 대기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어느덧 미사가 시작되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제 큰 탓이옵니다─”
신부들이 나와 시작 예식을 진행했다. 미사는 절차에 따라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는 그 시간 대부분을 졸면서 할애했다. 나는 애초에 미사를 들을 이유가 없다. 로마니카교 신자가 아니니까.
이윽고 미사가 끝났다. 신부가 단상에서 내려오고, 마이크를 잡은 한 교사가 단상에 올라갔다.
“아, 아.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금부터 간단한 공지 사항과 표창장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시작이었다.
“먼저, 지난주에 벌어진 마수 사건에 대한 근거 없는 정보는 퍼트리지 말아 주십시오. 피렌체에 사탄교도가 잠입하였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교직원과 학교 전담 성기사분들이 조사를 진행 중이니,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가급적 언급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수여식이 있기 전, 교사가 공지 사항을 전했다.
사탄교도가 피렌체에 잠입하였다는 건 기정사실이다. 그럼에도 교사들이 이를 극구 부정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명문 사립 성직자 아카데미인 피렌체에 사탄교도가 잠입하였다는 소문이 돌면, 피렌체의 명예가 실추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의도가 뻔했다.
“다음으로 표창장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인내반 김진서, 자선반 도선우 앞으로.”
김진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단상으로 총총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뒤를 따랐다.
단상 위로 올라가자 밝은 조명이 우리를 비췄다.
“1학년 인내반 김진서. 위 학생은 기지를 발휘하여 재난 상황을 타개하는 데 기여하고 안전한 대피를 도모함으로써 피렌체 아카데미의 명예를 향상시킨 데에 공이 크므로 이에 표창함. 피렌체 아카데미 이사장 김, 창, 원.”
김진서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표창장을 받았다. 단상 아래 학생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다음, 1학년 자선반 도선우. 이하동문.”
나 역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표창장을 받았다. 학생들이 박수를 쳐주긴 쳐줬는데, 김진서가 표창장을 받을 때에 비하면 소리가 현저히 작았다.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차별이 좀 심했다.
“자, 인사.”
사회자의 말에 맞춰, 우리는 학생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꾸벅 숙여 학생들을 향해 인사했다.
역시나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그 갈채는 오롯이 김진서의 것이었다. 나를 위한 박수는 없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개의치는 않았다.
내게는 표창장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고위 성직자가 되겠다는 목표에 가까워진 것만으로 기뻐하기엔 충분했다.
수여식을 마지막으로 미사는 끝이었다. 나는 표창장을 든 채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하늘이 약간 우중충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그, 야!”
괜히 울적해하던 와중, 뒤편에서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흘깃 고개를 돌려보니 김진서가 있었다.
검정 중단발의 머리가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호흡이 거친 것으로 보아 뛴 듯했다.
“아. 너, 손가락은 다 나았─”
“이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진서가 대뜸 뭔가를 내밀었다.
젤리였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이게 한창 유행이라고 하던데, 나는 먹어본 적이 없었다. 실제로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냥 고맙다고. 그때 말 못 한 것 같아서. ……아, 손가락은 이제 괜찮─”
“그래. ……어? 아. 손가락 다 나았다는 거지? 흉터는?”
“아, 흉터……는 없었어.”
어쩐지 대화가 삐걱거렸다.
내가 말을 하려고 하면 김진서가 내 말을 끊고, 김진서가 말을 하려고 하면 내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분위기가 괜히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늘 웃음기 만연하던 김진서의 얼굴은 딱딱하고 차갑게 굳어 있었다.
“아무튼 갈게.”
김진서는 그렇게 말하곤 앞서가던 자신의 친구들 무리에 합류했다. 그러곤 가방에서 젤리를 꺼내 자신의 친구들에게 줬다. 내게 준 것과 같은 종류였다.
애초에 친구들에게 주려고 산 젤리였는데, 남은 김에 내게도 준 모양이었다.
[손가락을 붙여줬는데 젤리 한 봉투! 참으로 수지맞는 장사구나.]렉바가 비아냥거렸다. 이해득실을 따지자면 명백한 손해였다.
그러나 애초에 돈을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었기에, 손해라는 느낌은 전혀 안 들었다.
단순히 김진서가 불쌍해 보여서. 아니, 이게 아니고 김진서가 이사장 딸이어서 도와준 거였으니까.
답례로 받은 것이 젤리라는 건 조금 아쉬웠다. 나는 젤리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안 가리고 다 먹는 내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음식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젤리를 음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야, 너 왜 혼자 가. ……뭐야, 젤리?”
얼마간 걷자 정인아와 구준혁이 나란히 걸어왔다. 정인아가 내 손에 들린 젤리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근처에선 안 팔던데. 어디서 샀어?”
“내가 산 게 아니고. 아까 김진서한테 받았어.”
“어? 너 김진서랑 친해?”
정인아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아주 미세하게.
“친하지는 않은데, 그냥 일이 좀 있어서.”
“뭐야. 저번에 훔쳐보던 게 설마!”
옆에서 듣고 있던 구준혁이 대뜸 끼어들었다.
“뭘 훔쳐봐. 내가 언제.”
“하긴 서로 젤리를 주고받을 정도의 사이면 훔쳐본 게 아니라 상호간의 어떤, 그 시그널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보아도 무방한─”
퍽.
정인아가 구준혁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내심 통쾌했다. 안 그래도 좀 짜증 났는데.
“너 이제 조용히 해.”
“아, 야! 정강이 좀 그만 차. 진짜 개아프거든? 맞아볼래?”
구준혁이 정강이를 부여잡고 깡충깡충 뛰었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장난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교실이었다.
우리는 별생각 없이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헌데, 아이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이 조금 이상했다. 정확히는 ‘나’를 보는 시선이 이상할 정도로 싸늘했다.
아이들의 눈빛에는 명백한 적개심이 서려 있었다. 그 적개심은 전부 나를 향한 것이었다.
“뭐여. 분위기 왜 이래?”
구준혁도 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띠링!
경쾌한 문자음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정인아와 구준혁에게 온 문자였다. 나는 받지 못했다.
“뭐야, 이게.”
정인아가 굳은 얼굴로 문자를 살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