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90
제190화
문요셉은 호화롭게 꾸며진 계단을 올라, 고민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왈, 왈! 크르르…….
닫힌 현관 너머로 개 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짖는 소리는 얼핏 들어도 무척 사납고 우렁찼으며, 많았다.
최소 중형 크기 이상의 개가 여러 마리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예진은 내심 기대하는 마음으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개를 무척 좋아했던 것이다.
철컥.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아, 문요셉인가? 오랜만이네.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내가 연락 없이 방문하는 게 한두 번인가? 수사 중이라 자네에게 조언을 구할까 해서 왔는데…… 어이쿠.”
멍, 멍!
문요셉은 이야기를 하다 말고 현관 밖으로 나와 자신을 격하게 반기는 개들을 맞이했다. 개는 그 하나하나가 덩치가 무척이나 커서, 문요셉조차 그들의 격한 마중을 받아 주기가 버거웠다.
하예진은 자신에게 다가온 개 한 마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개들의 환영이 잦아들었을 무렵, 문요셉이 입을 열었다.
“언제 봐도 참 활기찬 아이들이군.”
“하하……. 내 생각에는 좀 덜 활기차도 될 아이들이야. 손님이 올 때마다 이래서 나도 참 곤란해.”
“그렇겠군. 근데 원래 네 마리였나? 내 기억으론 다섯 마리였던 것 같은데.”
문요셉은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잘 넣고는, 집 안으로 발을 들이며 물었다. 하예진은 말없이 뒤따랐다. 문요셉의 친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문요셉의 물음에 대답했다.
“얼마 전에 죽었어.”
“저런…… 유감이군. 저번에 봤을 때는 건강했던 것 같은데.”
“나중에 알아보니 병을 앓고 있던 모양이야. 주인 생각한다고 아픈 티를 안 냈던 거지. 바보처럼 착한 놈이었지.”
이야기를 듣던 하예진은 문득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주인을 생각한 개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런 개에게 마음에도 없는 미운 소리를 하는 주인의 심정도 이해가 됐던 것이다.
문요셉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괜한 걸 물었군. 좀 괜찮나?”
“안 괜찮다고 별수 있나, 그냥 이러고 사는 거지……. 그래, 수사 중에 조언을 구하러 왔다고? 근데 옆에 분은?”
친구는 하예진을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문요셉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막 사제품(司祭品)을 단 파릇파릇한 친구인데, 재능이 특출해서 데리고 다니고 있지.”
“네? 전─”
“처음에는 내가 가르칠 생각으로 데리고 왔는데, 지금은 내가 배우는 신세라네. 이번 수사에서도 아주 크게 도움을 받았어.”
문요셉은 하예진의 말을 끊어내며 말을 이었다.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조금 높았다. 하예진은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이후 눈치껏 고개를 숙이며 문요셉의 친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어, 서울남부사제단의 하예진입니다.”
“아, 하예진……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아무튼 반갑네. 나는 중앙성기사단의 지혜성이라고 하네.”
“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예진은 자신이 사제단에 갓 들어간 신입일 적에 썼던 말투를 쓰며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지혜성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하예진을 쳐다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차를 내오는 걸 깜빡했군. 문요셉 자네는 커피일 거고……. 하예진 사제님은 뭘로 드릴까?”
“아, 저는 그냥 물로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도 물로 주게. 오늘은 커피가 별로 안 당기는 날이군.”
“우리 문요셉이가 커피 안 당기는 날도 있나? 아무튼 알겠네. 여기 앉아서 편하게 기다리게.”
지혜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차를 내러 갔다. 주방에서 향긋한 녹차 향이 퍼지고 있었다.
문요셉이 자리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하예진이 그 옆에 앉고는 신경질적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뭐 하는 거예요?”
말투는 날카로웠지만 목소리는 작게 속삭이는 수준이었다. 문요셉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받았다.
“이러는 게 나중을 생각하면 편해. 내가 기회를 만들 테니, 그때 자네가 이 친구 집을 좀 뒤져주게.”
“아니, 편한 게 문제가 아니라. 저를 사제라고 하면 어떡해요? 적어도 주교라고 했어야죠.”
“왜? 뭐가 문제인가?”
“제가 나이가 몇인데, 사제라고 하면 믿을 리가…….”
“그 나이에 사제품 다는 사람도 꽤 많아. 자네가 유달리 빨랐던 거지. 무엇보다 자네는 동안이라 괜찮네.”
“…….”
하예진은 할 말이 많았지만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주방에서 지혜성이 나오고 있는 참이었기 때문이다.
지혜성은 문요셉과 하예진의 앞에 물잔을 놓고, 자신의 자리 앞에는 녹차가 담긴 찻잔을 놓았다.
지혜성이 찻잔을 홀짝이는 동안 문요셉은 지혜성의 모습을 관찰하듯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자네가 원래 녹차를 좋아했던가?”
“아, 최근에 찻잎 수집에 빠져서 말이야.”
“예전에는 술을 수집했던 것 같은데.”
문요셉이 혼잣말을 하듯 나지막이 말했다. 지혜성이 녹차 향을 음미하듯 눈을 감은 채 작게 미소 지었다.
“뭐, 예전에는 술에 목매다시피 했지만……. 술을 끊고 나서는 수집한 술도 전부 팔고 찻잎으로 갈아탔지.”
“자네는 옛날부터 뭘 수집하는 걸 좋아했지. 나는 그런 고상한 취미는 안 맞더군.”
“아아, 그러고 보니 자네는 옛날부터 사냥이니, 사격, 뭐 그런 걸 좋아했지. 야만적인 취미라고 생각하지만, 취향이 다른 것이니…….”
“야만적이라서 좋지. 본능이 깨어나는 기분이거든.”
문요셉은 그렇게 말하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하예진을 흘깃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 친구도 수집하는 걸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자네와 말이 통할지도 모르겠어.”
“오, 그래? 혹시 뭘 수집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성화(聖畫)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고 있네. 내 기억이 맞나?”
문요셉이 하예진을 향해 말하며 눈치를 줬다. 하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성화 수집이 취미입니다.”
대답하는 그녀의 표정은 몹시 떨떠름했다. 거짓말을 하려고 하니 표정 관리가 안 된 것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낯선 상사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사회 초년생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요셉은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지혜성은 하예진의 말을 듣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오, 나도 기회가 될 때마다 성화를 수집하고 있지. 취미보다는 재테크에 가깝지만. 그래, 성화의 어디에 꽂혀서 수집을 하게 되었나?”
“…….”
하예진은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고 문요셉을 보았다. 그러나 문요셉은 하예진에게 아무런 귀띔도 하지 않은 채, 신나서 떠드는 지혜성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하예진은 배신감에 숨이 턱 막혔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웅장함과, 빛 표현 같은 것이 매력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뭘 좀 아는군! 성화를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그 웅장함은 말로 담아내기 어렵지. 아도나이를 향한 경외와 숭고함을 담으려던 옛 화가들의 빛 표현에는 경이마저 느껴지고.”
“하하…….”
하예진은 뭐라고 맞장구를 쳐야 할지 몰라서 그냥 웃었다.
“자네, 지하에 성화를 전시해 둔 방이 있지 않나? 예전에 나도 한 번 구경했던 것 같은데.”
그때, 문요셉이 끼어들어 말했다. 지혜성은 그 말을 듣고 잠깐 주춤하더니, 하예진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고는 안심하듯 미소를 지었다.
“그랬지, 참.”
“자네만 괜찮으면 구경을 시키는 게 어떤가? 아주 좋아할 것 같은데.”
“아……. 나야 물론 괜찮지. 근데 수사에 대한 조언을 구하러 온 것 아니었나? 이 친구도 옆에서 들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조언이야 내가 나중에 전해주면 그만이지만, 지하에 있는 성화는 지금 아니면 못 보는 것 아닌가.”
“그렇기는 한데…….”
“자네, 기억하나? 문외한인 나조차 자네의 전시실에 갔을 때 큰 감동을 받았지. 하물며 이 분야를 아는 하예진 사제가 자네의 전시실에 가게 된다면, 얼마나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될까!”
“아이, 참. 알겠네, 알겠어. 열쇠를 줄 테니 얼마든지 구경하고 와.”
지혜성은 마지못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디선가 열쇠를 가져와 하예진에게 줬다.
얼결에 그것을 받아든 하예진은 자신을 지그시 쳐다보던 문요셉과 눈을 마주쳤다.
그 눈빛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예진은 문요셉의 눈빛에 담긴 뜻을 전부 읽어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갈피를 잡았다.
“저쪽 계단으로 내려가면 철문이 하나 있는데, 빗장에 걸린 자물쇠를 그 열쇠로 풀고 들어가면 돼. 좀 어두울 건데, 조명이 닿으면 그림이 상할 수도 있어서…… 조금 참아주면 좋겠군.”
지혜성이 주절주절 말했다. 문요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여기 지혜성이와 이야기 좀 나누고 있을 테니 편하게 다녀오게.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아…… 알겠습니다.”
“이왕이면 ‘많이’ 보고 오게. 흔치 않은 기회야.”
문요셉이 하예진의 두 눈을 또렷이 응시하며 말했다. 하예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예진은 ‘기회를 만든다’라는 문요셉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깨달았다. 녹차를 좋아하냐는 물음부터 취미 이야기로 이어진 그 모든 대화의 흐름이 문요셉의 계획 안에 있었던 것이다.
철컥.
하예진은 계단을 내려가, 빗장에 걸린 자물쇠를 풀고 문을 잡아당겨 열었다. 지혜성이 경고한 대로 방 안은 몹시 어두웠다. 그림을 보기에는 빛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하예진의 목적은 그림 따위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방을 뒤지고, 증거를 수집하는 데에는 이 정도 빛이면 충분하다.
아니, 오히려 어둡기에 충분했다.
‘사탄교도에는 코븐이라는 것이 있어. 코븐은 그들의 수장을 불러내기 위한 의식을 하려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지.’
하예진은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을 걸으며 문요셉의 말을 떠올렸다.
‘그 모임에서, 본인이 사탄교도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증표 같은 것이 분명히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증표에는 필연적으로 흑마법의 잔향이 묻어 있을 거고.’
어둠 속에서 드문드문 성화가 보였다. 하예진은 성화에 그려진 인물들의 눈이 자신을 감시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성화 속에 그려진 빛은 어둠의 베일에 가려 스산하고 불길한 빛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자네는 그 증표를 찾아내면 돼.’
하예진은 문요셉의 말을 떠올리며 정신을 다잡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뇌었다.
그리고 문요셉이 준 문서에 적혀 있던 글을 곱씹었다. 자신이 사탄교도라면, 사탄교의 ‘증표’를 어디에 숨겼을지 생각했다.
하예진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냄새를 맡았다. 지혜성이 관리를 열심히 하지 않은 건지, 전시실은 텁텁한 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먼지 냄새를 지나면 그림에서 나는 미약한 물감 냄새가 맡아졌고, 그다음에는 웬 약품 냄새가 맡아졌다. 냄새는 뒤섞여서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
그러나, 집중하면 분명히 맡아지는 냄새가 있다. 그녀였기에 맡을 수 있고, 또 그녀였기에 구분할 수 있는 냄새.
흑마법의 향.
평소 같았으면 맡지 못했을 냄새다. 그녀는 흑마법에서 무슨 향이 나는지, 애초에 향이 나기는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번에 실기고사장에서 흑마법에 취해 꿈을 보고 난 뒤, 그녀는 흑마법의 매혹적이고 진득한 향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윽……!”
냄새를 따라 걷다가, 한 그림 앞에 선 그녀는 끔찍할 만큼 강한 악취를 맡았다.
먼지, 물감, 약품, 그 외 갖은 잡다한 냄새를 전부 지워버릴 만큼 흑마법의 냄새가 강하게 나고 있었다. 냄새는 그림이 아니라, 그림 너머에서 나고 있었다.
그림 너머에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림을 치우면 너머에 있는 악취의 근원이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아마 사탄교의 ‘증표’일 것이다.
끼이이…….
하예진이 액자를 잡아 그림을 치우려던 그 순간.
“지금 뭐 하는 거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