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91
제191화
“지금 뭐 하는 거지?”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지나칠 정도로 낮고 위협적이어서, 얼핏 들으면 사람의 목소리 같지가 않았다.
하예진은 액자에서 손을 뗐다. 너무 놀라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예진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인영을 보았다.
“아, 그러니까. 저기…….”
“뭐 하고 있냐고, 물었네.”
인영은 어느덧 하예진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지혜성이었다.
대화를 할 때의 인자한 미소는 없었다. 어둠 탓에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혜성의 얼굴이 기괴하고 섬뜩하게 일그러져 있다는 사실만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대답하지 않을 건가?”
지혜성은 그렇게 말하며 하예진에게 손을 내뻗었다. 그 손은 그야말로 마수(魔手)였다. 하예진은 다가오는 마수 앞에서 무기력했다. 어둠으로 시꺼멓게 칠해진 손이 하예진의 뺨을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턱.
그 순간, 하나였던 인영이 두 개로 나뉘며, 뻗쳐오던 손이 멈췄다.
“어이쿠, 내가 데려온 친구가 큰 실수를 했군.”
“…….”
어느새 다가온 문요셉이 지혜성의 손목을 붙잡은 채 능청스럽게 말을 걸고 있었다. 지혜성은 말없이 문요셉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문요셉이 말을 이었다.
“나도 저 그림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네. 불타는 떨기나무를 통해 아도나이께서 강림하는 장면 아닌가! 불꽃의 묘사가 어찌나 생생한지, 진짜 불이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게 하지.”
“문요셉, 자네.”
“그래, 나도 저번에 저 사진을 만지려다 자네에게 저지를 당했지. 저 그림을 보면 꼭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네.”
“그런 적 없네. 자네는 늘 성화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어.”
“데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데이기를 바라며 불꽃에 무심코 손을 올리고 마는 거야. 마치 불나방처럼. 그렇지 않은가, 하예진 사제?”
문요셉이 하예진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를 바라보는 문요셉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광기가 발하는 이채였다. 하예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이해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의 그림 아닌가. 손대지는 말았어야지.”
“죄송합니다.”
“…….”
지혜성은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문요셉은 지혜성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만 가지. ‘아는 게 많은 자는 스스로를 초라하게 꾸민다’라고 했나? 아무튼, 자네 조언은 새겨듣겠네.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어. 자, 하예진 사제. 얼른 가도록 하세.”
문요셉은 제 할 말만 하고, 가벼운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얼른 지혜성의 집을 나왔다.
문요셉은 집을 나오고 한참 동안이나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예진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지혜성의 집으로부터 멀어졌다.
“……냄새를 맡았나?”
“…….”
문요셉의 물음에 하예진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문요셉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군. 눈앞에서 확증을 잡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지만 심증이 명확해요. 냄새도 그렇고, 언행도 수상한 구석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저 친구를 대상으로 후속 수사를 할 생각이네.”
문요셉은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자네는 후속 수사에서 빠지는 편이 좋겠어.”
“……네?”
하예진은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장장 사흘을 잠도 제대로 못 자가면서 수사에 도움을 줬는데, 용의선상이 좁혀지자 곧바로 버려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문요셉은 시선을 바닥에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후속 수사부터는 정말 위험해질 거야. 이건 도심에 나타난 악마종을 잡고, 마수를 잡는 그런 뻔한 일이 아니야. 악마종과 마수가 발생하는 근원, 말하자면 사자 굴에 제 발로 기어들어 가는 일이지.”
“그래도 빠지고 싶지는 않아요.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저는─”
“이번 일로 사탄교도를 잡게 된다면, 자네 몫은 내 확실히 챙겨주지. 그 부분은 걱정할 것 없네. 그래도 동참하고 싶나?”
그 말에 하예진은 잠깐 고민했다. 사탄교도를 잡은 것에 대한 보상은 얻되, 위험한 일에서는 빠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었다.
“……처음부터 위험한 일인 줄 알고 있었어요. 이제 와서 겁주셔도 안 빠져요.”
“그럼 이번 주 주일에, 우리 집 앞으로 오게. 저번에 갔던 그 부서진 성당 말이야.”
“네.”
“그때 합류해서 같이 이동하도록 하고,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게.”
둘은 그 자리에서 흩어졌다. 하예진의 얼굴에는 긴장과 두려움이, 그리고 문요셉의 얼굴에는 묘한 슬픔과 공포가 떠올라 있었다.
* * *
철컥.
나는 마유현의 손목에 시계를 채우고, 그의 발과 목을 묶고 있던 매듭을 마저 풀었다.
마유현은 오래간만에 되찾은 신체의 자유를 만끽하며 기지개를 켜다,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보며 입을 열었다.
“뭐냐, 이건? 위치 추적기 같은 거냐?”
“위치 추적기랑, 도청 장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사실대로 말했다. 숨기는 것보다 알려주는 편이 마유현의 언행을 제한하는 데에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유현은 예상했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위치 추적기는 알겠는데, 도청 장치까지? 도청해서 뭐 하려고.”
“네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지 관찰해야 하니까.”
“시계는 비싼 거라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근데 내가 시계를 풀거나 부수면 의미 없는 거 아니냐?”
“해봐.”
“뭐?”
마유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나는 마유현을 예배당 지하에 감금한 동안, 그에게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그에게 주술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그에게 통하는 주술은 ‘혼절’, ‘악몽’으로 두 가지. 그 외, ‘기억 분쇄’, ‘도취’ 등의 주술은 일절 통하지 않았다. 주술을 시전하면,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이 나를 공격했다.
나는 마유현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궁금하면, 해봐. 시계를 풀거나, 부수거나, 뭐든.”
나는 그의 시계에 주술을 각인했다. ‘혼절’, ‘악몽’, 그리고 ‘기억 분쇄’. 시계를 풀거나, 혹은 시계가 파손되거나, 아니면 문요셉에게 받은 수신기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주술은 발동된다.
첫째로 혼절과 악몽 주술이 마유현을 재우고, 악몽에 빠지게 만들 것이며, 둘째로 기억 분쇄가 마유현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지울 것이다.
그가 혹시라도 이상한 말을 하거나 수상한 곳에 가면, 나는 즉시 버튼을 눌러 마유현을 재운다. 그리고 위치 추적기를 통해 마유현을 찾아서 죽이면 된다. 그리하면 나는 완벽히 마유현을 제어할 수 있었다.
“……뭘 해보기까지. 됐다, 어차피 의미도 없는 거. 그래서 이제 내보내 주는 거냐? 간만에 햇빛 좀 보겠네.”
“어.”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며 주술진을 그렸다. 주술진을 본 마유현이 당황하며 큰 소리를 냈다.
“내보내 준다며! 야이 씨발아, 이건 말이 다르잖아!”
“맨정신으로 내보내면 우리 예배당의 위치가 노출될 수 있으니까.”
“야, 잠깐만. 나 못 믿어? 아무한테도 말 안 한다니까, 내가 몇 번을 말해야─
그러는 동안 주술진은 완성되었다. 주술진에서 흘러나온 안개가 마유현을 휘감았다.
마유현은 뒤늦게 코와 입을 가리며 안개를 막으려 했지만 무용지물이다. 주술의 안개는 그리 쉽게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 뜨고 일어나면 밖일 거야.”
털썩.
그는 금세 정신을 잃었다. 다른 주술은 안 통하는데 혼절 주술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통한다.
기절한 그를 바알의 아가리에 담아 밖으로 나갔다. 내내 예배당에만 있느라 낮인지 밤인지도 몰랐는데, 나와 보니 밤이었다.
나는 피렌체 A동 기숙사 앞에 그를 버려두고 나왔다. A동 기숙사는 여학생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마유현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다른 사람이 먼저 그를 발견한다면, 그는 몹시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었다.
물론 내 알 바는 아니었다.
* * *
하예진은 주일미사를 불참하고, 문요셉과 약속한 대로 그의 집 앞으로 갔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도 문요셉은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설마, 집 앞으로 오라고 해놓고 자기 혼자 후속 수사를 하러 간 건가?
그런 생각과 함께 배신감이 치밀어 오르기 직전, 문요셉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는 왼손에 웬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조금 늦었군, 미안하네. 아침에 감사패 수여식을 한다기에 갔는데, 생각보다 행사가 길어져서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수여식이었네요.”
하예진은 어렵지 않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문요셉은 악마종과 마수가 발생할 위치를 용케 예측하여, 그 자리에 자신이 선별한 성직자들을 배치해 놓았다.
덕분에 큰 피해 없이 악마종과 마수를 대거 토벌하게 되었는데, 그 일에 대한 감사패를 받게 된 것이었다. 한데 어째서인지 그의 손에는 감사패가 없었고 꽃다발만 들려 있었다.
“근데 감사패는 어디 가고 꽃다발만 있어요?”
“감사패랑 잡다한 것들은 그냥 사무실로 보내 달라고 했네. 수사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았거든.”
“그 꽃다발이 더 방해될 것 같은데요.”
문요셉은 하예진의 말을 듣고 자신의 손에 들린 꽃다발을 보았다.
“확실히 그럴 것 같기는 하군. 버리는 게 낫겠나?”
“……아니요, 생각해 보니까 이왕 받은 건데 버리기는 좀 그렇네요.”
“아무래도 그렇지. 뭐, 지금은 이런 잡담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얼른 가세.”
문요셉은 그렇게 말하며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하예진은 군말 없이 그를 뒤따랐다.
그들의 목적지는 성당이었다. 지혜성이 주일마다 명예 신부로서 미사를 집전하는 곳.
둘은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성당을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몰래 성당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성당 구석에 놓인 버려진 고해실 뒤편에 몸을 숨겼다.
둘은 지혜성을 미행할 생각이었다.
“근데, 굳이 주일에 미행을 해야 하나요?”
하예진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문요셉은 단상 부근을 서성거리며 성당을 정리하는 지혜성의 모습을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사탄교도가 모이는 집회가 있다면 주일에 할 거야. 그때가 성직자들의 기강이 가장 해이할 때니까.”
“…….”
결국 문요셉도 확신은 없다는 뜻이었다. 하예진은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지혜성의 동태를 지켜보았다.
이렇게 보기만 하다 별 수확 없이 하루가 지나버리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들었다. 무엇보다, 고해실 뒤에 몸을 숨긴 채 누군가를 엿보는 일이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혜성은 몇 분째 별 의미 없이 단상을 서성거리기만 했다. 중간에 성서를 펴서 읽기도 하고, 기도를 올리려는 듯 합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성당 뒤편에 놓인 성상 하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구석에 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 가는 거죠?”
“나도 모르지. 일단 기다려 보게.”
둘은 속삭이는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 뒤, 지혜성이 다시 나타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도록 지혜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문요셉이 조사하기로, 지혜성은 보통 미사를 집전한 이후 단상을 배회하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거나, 약속이 있으면 약속 장소로 이동하기 때문이었다.
문 너머에 휴게실이 있고, 그곳에서 낮잠을 자는 것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했다. 지혜성은 불면증이 있어서 낮잠은커녕 밤잠도 제대로 못 자는 사람이었다.
“……진입하지.”
“네? 어디로 진입을 해요?”
“저 문으로.”
문요셉은 지혜성이 들어간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하예진은 그의 말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섣불리 진입하는 것은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죠.”
그러나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에 오히려 진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둘은 발소리를 죽인 채 지혜성이 들어간 문으로 향했다.
문요셉이 숙달된 솜씨로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는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었다.
둘은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다 내려가자 문이 하나 더 있었는데, 굳게 잠겨 있어 열리지 않았다.
“잠겨 있어요. 어떻게 하죠?”
“다 방법이 있지.”
문요셉은 품에서 철사를 꺼내, 잘 구부리고는 열쇠 구멍에 철사를 집어넣었다. 잠겨 있던 문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열렸다.
“…….”
누가 보면 이단 심문관이 아니라 영락없는 도둑이었다.
잠긴 문이 열리자, 동굴이 나왔다. 동굴에는 빛이 없어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저 멀리 작은 빛이 일렁이는 모습만 간신히 보일 뿐이었다. 빛은 너무나 멀어서 얼핏 보면 점처럼 보였다.
둘은 말없이 빛을 따라 걸었다. 빛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어느덧 빛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둘은 짜기라도 한듯 걸음을 동시에 멈추었다.
“AUM SHRIM MAHA LAKSHMIYEI SWAHA AH-UU-MM──”
동굴의 끝에는 거대한 공동(空洞)이 있었다. 땅을 파서 만든 광장 같은 곳이었다. 그 광장의 중앙에 거대한 불꽃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불꽃을 중심으로 검은 선이 둥글게 그려져 있었다. 그 선을 따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행색의 여인 13명과 지혜성이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뜻을 알 수 없는 기괴한 주문을 외고 있었다.
“읍……!”
하예진이 자신의 입과 코를 막으며 구역감을 억눌렀다. 지독하고 끔찍한 흑마법의 냄새가 그곳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13인의 여인과 지혜성은 불꽃의 춤사위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그들이 외는 주문의 소리가 겹쳐서 기괴한 소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사탄의 연회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