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92
제192화
하예진은 당장이라도 구토가 치밀어 오를 것 같았지만, 참고 고개를 들었다.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슨 주문을 외고 있는지, 그들에게서 무슨 냄새가 나고 있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고개를 든 하예진은 끔찍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된다.
“우, 우웩……!”
그것을 보자, 도저히 구토를 참을 수 없었다.
거대한 불꽃 위로 두 개의 사체가 익어가고 있었다. 하나는 개였고, 하나는 사람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 모두 배 속이 텅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배에서 꺼낸 내장은 불꽃을 중심으로 둥글게 흩뿌려져 있었다. 13인의 여인과 지혜성이 춤을 추며 밟던 검은 선은, 불꽃에 익어가는 개와 사람의 내장이었던 것이다.
“……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연신 구토를 쏟아내는 하예진과 달리, 문요셉의 반응은 의외로 태연했다.
다만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춤추듯 일렁이는 불꽃을 따라 흔들리는 눈동자에는 공포와 분노가 번갈아 담겼다.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눈과 입, 안면 근육이 온통 따로 놀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인간이 아닌 것처럼 기괴했다.
“오늘…… 오늘은, 무기가 필요하겠어. 쓸 만한 둔기가 어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문요셉이, 왼손에 쥐고 있던 꽃다발을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꽃다발을 가만히 응시하던 그가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여기 있었군! 이럴 수가, 너무나 훌륭한 무기가 아닌가!”
문요셉은 꽃다발을 하늘에 헌사하듯 높이 들고는, 감탄하며 외쳤다. 그는 구토를 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하예진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몹시 신난다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하예진 선생, 축복 보조를 부탁하네!”
* * *
실기고사가 끝난 이후로 나는 한 번도 학교를 가지 않았다. 질병 결석을 낼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마유현을 상대하느라 학교에 갈 겨를이 없었다.
어차피 시험이 끝나서 수업도 거의 안 할 테니, 학교를 가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었다.
주말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처음에는 주말인지도 몰랐다. 내일이 토요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성하연의 전화 때문이었다.
– 내일 시간 있어요?
“그게 왜 궁금하지?”
어쩐지 약속을 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성하연의 물음에 나는 단칼에 잘라 대답했다. 휴대폰 너머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어이가 없어서 내뱉는 헛웃음 같은 소리도 났다.
성하연은 마음을 추스르려는 듯 한숨을 쉬었다.
– ……저번에 우리 아버지 뵙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그랬지.”
– 내일 아버지가 시간이 나실 것 같아서, 그래서 물어본 거예요.
“내일 학교 가지 않나?”
– 뭔 소리예요? 내일은 토요일이잖아요.
나는 성하연의 말을 듣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정신을 차릴 틈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 것은 맞지만, 설마 날짜 감각이 이토록 흐려졌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미각, 촉각뿐 아니라 다른 감각도 나날이 흐려지는 것 같아서 나는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 것이었다.
– 여보세요? 끊었어요?
“아니.”
– 아니, 그럼 왜 말을……. 아무튼 내일 시간 되는 거죠?
“그래.”
– 생각해 보니까, 몸은 괜찮아요? 아프다고 들었는데.
“그럭저럭.”
– 아하, 네……. 그럼, 내일은 어디서 볼까요?
“내가 그리로 갈게.”
– 네, 그럼…… 네? 온다구요?
“왜? 어차피 너 주말에도 기숙사에 있는 거 아니야?”
– 그렇기는 한데…….
“어차피 나도 기숙사 한번 들러야 하니까, 학교에서 만나는 걸로 해. 끊는다.”
뚝.
그리하여 나는 지금 기숙사에 와 있다. 굳이 기숙사로 온 이유는, 입을 만한 옷이 전부 기숙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겸사겸사 키우던 꽃에 물도 주었다.
입을 옷은 신중하게 골랐다. 성하연을 만나기 때문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성하연은 안중에도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옷을 차려입을 이유는 없었다.
문제는 성유다였다.
‘성유다가 뒤에서 너를 봐주는 것 같던데. 재선출 시험 때도 그렇고, 그 외에도 여러모로…….’
‘이유는 나도 모르지. 네 정체를 알고 있거나, 아니면…… 뭐,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마유현의 말이었다. 그는 성유다가 내 정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리고 ‘정화의 일족’이 가진 힘이 생각보다 막강하다는 사실과, 정화의 일족과 교황청의 관계에 대한 정보도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먼 옛날, 사탄교 ‘식탐’에게 교황이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호위대가 기지를 발휘한 덕분에 즉사는 면했으나, ‘식탐’은 놓치고 말았으며, 교황은 흑마법에 걸린 탓에 죽음을 면하기는 힘들 것처럼 보였다.
그때 호위대에 속한 사제 중 한 명이 나와 스스로 상처를 내고, 그 피로 축복진을 지어 교황에게 걸린 흑마법을 정화한다.
당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교황을 구해낸 사제가 정화의 일족의 시조이며, 사제가 쓴 축복이 오늘날 정화의 일족이 쓰는 정화의 축복진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정화의 일족은 교황청과 일종의 계약을 맺어 서로 돕는 관계가 되었다고.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는 잡념을 털고 옷을 골랐다. 화려한 옷은 피하는 편이 나을 것 같으나,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면 학생처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냥 무난하고 깔끔한 옷을 골라 입었다. 셔츠 정도면 적당하겠지.
[반지는 그대로 끼고 갈 생각이냐.]그렇게 기숙사를 나서려던 차에, 렉바가 말을 걸었다.
“렉바……. 오랜만이네요.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단지 네가 혼란스러워 보여서, 잠시 말을 아꼈을 뿐.]너무 자주 들어서 어쩔 때는 귀찮게 느껴지기까지 했던 렉바의 목소리도 오래간만에 들으니 반가웠다.
마유현을 만난 날, 렉바는 내게 ‘선택에 달려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이후로 한 번도 목소리를 들려준 적이 없었다.
혼란스러워 보여서 말을 아꼈다고 하지만, 나는 렉바가 사라져버린 줄 알고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렉바가 없었기에 나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또한 렉바의 의도였을까. 모를 일이다.
나는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입을 열었다.
“마유현을 풀어준 제 선택은 옳았나요?”
[글쎄, 네 생각은 어떻지?]“틀린 선택이었지만, 그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곧장 마유현을 죽이면 나는 쫓기는 신세가 된다. 내가 죽기 전까지 교황군은 나를 쫓을 것이며,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추격에 저항할 것이다.
저항은 소극적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와 가족, 교인들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성전이 될 것이며,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다. 나는 그러기를 원치 않았기에 마유현을 죽이지 않고 풀어줬다.
당연히 불안하고, 무섭다. 나의 정체를 아는 자가 버젓이 세상을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구토가 치민다.
그럼에도 전쟁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언젠가, 어머니에 대해 삼촌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나는 너무나도 쉽게 성전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지만……. 막상 마유현을 죽이면 성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틀린 선택은 아니다. 옳은 선택도 아니었지만.]렉바가 말했다. 나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럼 무슨 선택이죠?”
[선택에 옳고 그름은 없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을 것이냐, 그것이 선택의 본질이지.]“…….”
[선택에 후회가 없길 바란다. 그래서, 반지는 어찌할 생각이지?]렉바가 물었다. 나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보았다.
저번에 나는 이 반지에 각인된 주술을 통해 아버지의 기억을 엿보았다.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성유다와 친구였다. 성유다는 이 반지에 대해 알고 있다. 반지를 끼고 가면, 성유다가 반지를 알아보고 내 정체를 눈치챌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성유다가 이미 내 정체를 눈치채고 있다면……. 반지는 성유다를 향한 무언의 경고, 또는 협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결국 또 선택이었다. 고민하던 중에 렉바가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택은 네 몫이지만, 나는 빼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게 안전할 터이니.] [나는 그대로 끼고 가는 것을 추천하지! 그 편이 훨씬 재밌을 거야.]이어서, 바론 삼디가 말했다. 둘의 의견이 교차하고 있었다. 고민은 깊어지기만 했다. 둘이 이어서 말을 주고받았다.
[지금이 재미를 따질 때인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바론 삼디. 그렇게 장난스럽게 말할 일이 아니다.] [반지를 끼고 가는 편이 더 재밌지만, 더 안전하기도 하지.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야. 나름 진심이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반지는 정체가 발각될 위험 요소에 불과하다. 위험 요소는 제거하는 게 맞아.] [뻔뻔스럽군, 렉바. 너 또한 그들의 관계를 알고 있지 않나?] […….]바론 삼디의 말에 렉바가 입을 다물었다. 바론 삼디가 말한 ‘그들의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의 관계가 무슨 뜻이죠?”
[……말해줄 수 없다. 적어도 지금은.] [나는 말해줄 수 있지만, 지금은 모르는 편이 낫기는 해.]“아니…… 이럴 거면 말을 꺼내지를 마세요.”
[그건 어렵다. 나는 호사가거든.] [나는 말 꺼낸 적 없다. 바론 삼디가 멋대로 떠들어댄 것이지.]아무래도 둘 다 말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나는 반지를 끼고 갈지 빼고 갈지 계속 고민했다.
반지를 빼고 안전을 도모할까, 아니면 도박을 해볼까.
그러나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때 강지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대로 고민해 봤자 어차피 결론은 내려질 것 같지 않아서, 잠깐 생각을 접고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 교주님.
“네, 왜요?”
– 예배당에 없으시던데, 기숙사로 가셨나요?
“네, 오늘 약속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전화했어요?”
–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문요셉 이단 심문관에 대해 몇 가지 더 알아낸 것이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강지아에게 문요셉에 대한 뒷조사를 부탁했었지. 예전에는 광인처럼 내 뒤를 파려고 했던 문요셉이 요즘은 조용해서 잊고 있었다.
연락을 한 것도 저번에 마유현에게 부착할 위치추적기와 도청 장치를 구할 때가 마지막이었다.
“어떤 거죠?”
– 거창한 건 아닙니다. 문요셉이 이단 심문관이 된 부분이 너무 작위적으로 보여서, 그 부분을 조사해 봤는데…….
전화 너머로 책장을 넘기는 듯 펄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책이 덮이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강지아가 말을 이었다.
– 문요셉의 아내가 악마종에게 죽임 당한 것은 저번에 이야기했나요?
“네. 12년 전인가, 뭐 그쯤이었던 것 같은데.”
– 그때 문요셉의 아내가 죽은 것이, 문요셉의 동생 때문입니다. 조사해 보니 동생이 사탄교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요?”
강지아가 내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겠지만, 그럼에도 믿기 어려웠다. 한 가정에서 이단 심문관과 사탄교도가 동시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럼 이단 심문관이 된 것도 동생을 잡기 위해서인가?”
– 아니요, 문요셉의 동생은 12년 전에 죽었습니다.
놀랄 틈도 없이 강지아가 말을 이었다.
– 문요셉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동생을 죽였습니다. ‘손에 벽돌을 들고 있었으며, 몹시 격분하여 대화가 불가한 상태였음…….’이라고 기록된 문서가 하나 있습니다. 그 직후 문요셉은 이단 심문관이 됐습니다.
‘카인도 아마 자기 동생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을 거야. 일단 돌로 치고 보니 죽어버린 거겠지.’
문득, 신성 훈련장에서 둔기에 대해 설명하던 문요셉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