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94
제194화
한 남자가 호화롭게 치장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불꽃처럼 붉었고, 눈동자는 보석처럼 빛나는 녹색이었다.
남자는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책을 들고 있던 그의 손이 곧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손등에는 검은 핏줄이 징그럽게 돋아나고 있었다. 핏줄은 손등을 파고 팔, 어깨, 목, 마침내 남자의 이마에까지 돋았다.
“버러지 같은 자식!”
콰앙!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읽고 있던 책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어찌나 강하게 던졌는지 마룻바닥에 구멍이 뚫렸다.
곁에 있던 여자가 화들짝 놀라더니, 종종걸음으로 남자에게 다가왔다. 여자는 거의 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나, 남자는 그런 여자의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자기, 왜 그렇게 화를 내요? 놀랐잖아요, 정말.”
여자가 몸을 남자에게 찰싹 붙이며 말했다. 여자는 얇은 천 하나를 엉성하게 걸치고 있었는데, 그것이 자태를 더욱 농염하게 만들고 있었다. 목소리는 꿀처럼 끈적하고 달콤했다. 여자의 뜨거운 입김이 남자의 귀에 닿았다.
그러나 남자는 유혹에 넘어가긴커녕, 귀찮다는 듯 여자를 밀어냈다.
“멍청한 놈 하나 때문에 통로가 끊긴 걸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기회는 많으니까, 화 풀어요. 일단 침대로 갈까요, 자기?”
“아, 안 돼. 도저히 이해가 안 돼. 내가 그놈에게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열등한 로마니카교인 하나에게 죽임을 당해!”
“자기는 화낼 때도 참 멋져요, 어쩜…….”
여자는 남자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몸 위에 올렸다. 걸치고 있던 천은 이미 벗어서 바닥에 내던진 뒤였다.
파악!
그러나 남자는 여자의 손길을 뿌리쳤다. 남자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만 같은 강렬한 분노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남자는 곧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꼬시는 것도 상황 봐 가면서 해.”
“화내는 모습이 멋있어서 참을 수 없었어요. 봐요, 저 벌써 이렇게…….”
쨍그랑!
그때였다. 거대한 뭔가가 엄청난 속도로 창문을 깨고 남자의 방으로 들어왔다. 유리 파편이 요란하게 튀며 남자의 피부에 박혔다.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씨발, 이건 또 뭐야!”
남자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피부에 박힌 유리 파편을 뽑았다. 남자는 유리 파편에 박혀 아픈 것보다, 방 안으로 들어온 불청객이 불쾌해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불청객의 정체는 새였다.
거대한 앵무새.
새는 남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대고, 날개를 정리했다. 깃털과 함께 톱밥이 튀었다. 새는 박제였다. 그것이 구준혁이 보낸 새라는 사실을 남자는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아, 너였나? 마지막 이름이…… 종팔? 아니다, 구준혁이었나? 참 발음하기 힘든 이름이야. 뭐 아무튼, 무슨 일이지?”
“창식아! 곧 가나? 한국.”
새가 말했다. 새의 목소리는 구준혁과 어렴풋이 닮아 있었으나, 말투가 어눌했다. 어순도 뒤죽박죽이었다.
그러나 대충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예정보다 늦어질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조만간이다.”
“창식! 알겠다. 먹을 생각? ‘손톱’.”
“‘손톱’을 먹을 생각이냐는 말인가?”
“정확함.”
“그래. 손톱을 먹으러 가는 김에 겸사겸사, 마음에 드는 아이 하나를 데려올 생각이야.”
남자가 태연하게 말하다가, 문득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근데, 나를 왜 ‘창식’이라고 부르지? 기묘한 이름인데.”
“창부의 자식, 줄임말. 하하!”
“뭐, 뭐? 이, 이, 열등한, 비천한 동양인 자식이!”
남자는 홧김에 새에게 발길질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그만두었다. 새의 희멀건 눈동자가 자신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준혁이 저 ‘제3의 눈’을 이용해서 어떤 흑마법을 쓸지 모른다. 단순히 흑마법의 파괴력만 따지면 구준혁을 이길 자는 없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우리끼리 싸울 이유는 없지.”
“쫄?”
“거사를 앞두고 있는 참에, 너와 싸워서 힘을 소모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너도 힘을 비축하려면 당분간 흑마법의 사용은 자제해야 하지 않나?”
“옳은 말. 창식!”
“창식이라고 부르지 마, 개자식아.”
남자가 이마에 검은 핏줄을 세우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는 한숨을 쉬어 화를 가까스로 추스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거지? 고작 나를 놀리겠다고 이 먼 길을 오지는 않았을 거고.”
“당부할 것. 공격 금지! 두 사람.”
“‘두 사람을 공격하지 말라고 당부하러 왔다’. 그래, 그 두 사람이 누구지?”
“사진. 참고!”
철퍽, 철퍽…….
새가 부리를 활짝 벌리더니, 대뜸 구토를 했다. 토사물 사이 사진이 두 장 있었다.
갈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동글동글하게 생긴 여자 하나. 그리고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에, 전체적으로 음침한 분위기가 나는 남자 하나.
“이 두 명은 건들지 말라는 거군. 이유가 있나?”
“까라. 까라면. 창식아.”
“…….”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충혈된 눈이 새의 희멀건 눈동자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명령조의 말투, ‘창식’이라는 기분 나쁜 호칭.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남자는 이마에 돋은 검은 핏줄을 만지작거리다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감옥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 하는 네놈 말을, 내가 꼭 들어야 하나?”
“하하! 하하!”
남자의 말을 들은 새가 웃었다. 진짜로 웃는 게 아니라 웃음소리를 조악하게 흉내 내는 소리였기에, 소리의 울림이 기괴했다.
한참을 웃던 새의 눈동자가 남자의 얼굴을 향했다. 새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부리를 움직였다.
“이러고 있으니, 우습나? 내가.”
“…….”
남자는 입을 다문 채 새의 눈동자를 쳐다보다가, 이내 눈을 깔았다.
“농담이다, 구준혁. 너무 진지하게 반응하니 무안하군.”
남자가 웃으며 상황을 무마했다. 구준혁은 ‘오만은 칠죄종의 대장쯤 되는 이름인데, 나보다 약한 놈이 오만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라는 이유로 ‘오만’을 집어삼킨 놈이다.
지금은 그가 감옥에 갇혀 있고, 힘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지만, 언제 힘을 되찾아 감옥을 나올지 모른다. 어지간하면 비위를 맞춰주는 편이 나았다.
“그럼 피렌체의 다른 아이는 상관없나? 가령, 김진서나.”
“좋을 대로.”
“그래, 그래. 그럼 네가 말한 두 친구는 안 건드리는 걸로 하지.”
“지켜, 반드시. 약속! 그럼, 재회!”
푸득!
새는 짧은 작별 인사와 함께 날개를 폈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 나갔다. 남자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거리며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의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은 차츰 작아지다가, 이내 사라졌다.
곧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안색은 분노로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여자가 다가와 남자에게 폭 안겼다.
“자기, 이제 화는 그만 내요.”
“……그래, 그러지.”
“근데, 나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여자는 남자의 가슴에 코를 비비며 말을 이었다.
“김진서라는 아이에게 왜 그렇게 집착해요? 별 볼 일 없는 여자 같던데. 얼굴도 내가 나아요.”
“아니, 별 볼 일 없는 여자가 아니야.”
남자가 웃었다.
“그 아이의 신체는 우월해……. 동양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남자가 여자의 몸을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는 어릴 때 잡아올 생각이었는데, 아쉽게 잡아오지 못했지.”
“대신 그 아이의 양모를 죽였죠.”
여자가 남자의 손길에 몸을 비비며 교태를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이의 양모는 몸이 형편없었어. 심장만 그럭저럭 쓸 만했지. 그래서 그냥 죽인 거야. 심장만 빼고.”
“그 아이의 몸은 어디를 쓸 생각인가요?”
“다리, 눈, 그리고 근섬유 몇 가닥.”
“그리고?”
“그렇게 최고로 우월한 생명체를 만들고…….”
남자는 몹시 흥분한 것처럼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여자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에, 나의 뇌를 이식한다.”
* * *
성하연은 아버지와 악수하고 인사를 나누는 도선우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얼핏 보면 도선우의 표정은 평범했다. 오히려 아버지를 만난 것이 진심으로 반갑고, 영광스러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웃는 입과는 달리, 그의 눈동자에는 명백히 상대를 적대하는 빛이 떠올라 있었다.
아니, ‘적대’라는 말조차 그 눈빛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었다. 성하연은 도선우의 그 묘한 눈빛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인사는 이쯤 하고, 들어가지요.”
“네, 알겠습니다.”
성유다가 악수를 놓으며 말하자, 도선우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성하연은 그때 다시 도선우의 얼굴을 보았다. 이번에는 눈동자에 적의가 깃들어 있지 않았다.
총기로 반짝이는 눈빛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순진함까지 깃들어 있었다. 아까 보았던 눈빛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
잘못 본 건가?
생각해 보면 도선우가 아버지에게 적대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를 뵙고 싶다고 먼저 말을 꺼낸 것도 도선우였고, 아버지는 전 추기경이자 로마니카교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신 분이다. 가정에서 얼마나 좋은 아버지였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사회적으로는 존경받는 위인이었다.
잘못 본 거겠지, 성하연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됐던 것이다.
성유다는 응접실로 성하연과 도선우를 인도했고, 가는 길에 하인에게 차를 내오라고 시켰다. 응접실에 세 명이 둥글게 마주 앉았다.
곧 하인이 차를 내왔고, 성유다가 점잖게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입을 열었다.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고 들었습니다.”
성유다는 찻잔을 탁자 위에 소리 없이 내려놓으며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 이유가 궁금한데…… 내게 달리 물어보고 싶은 게 있나요?”
성유다의 말투는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웠다. 나이나 교계, 어떻게 보아도 아랫사람인 도선우를 대할 때 굳이 높임말을 쓰는 것은 그의 버릇이었다.
도선우는 성유다의 물음을 듣고 자세를 고쳐 앉더니, 상체를 앞으로 약간 숙인 채로 입을 열었다.
“네. 제 진로와 연관하여 하나, 그리고 ‘콘클라베’에 대하여 하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도선우의 말투는 지나치게 딱딱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부드럽지도 않았다. 말하는 자세나 태도에서는 격식이나 예의가 적당하게 묻어났다.
성하연은 처음 보는 그의 모습이었다. 그토록 예의를 차리는 도선우의 모습은 어색하면서도 새롭게 느껴졌다.
성하연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본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었고, 그 탓인지 두 사람 사이에는 어쩐지 싸늘한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었다.
대화에 그녀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자연히 두 사람만 말을 주고받는 모양새가 됐다.
“진로에 대한 질문을 먼저 듣고 싶은데……. 내가 조언을 한다고 한들 과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군요.”
“반드시 도움이 될 것─”
“아니요, 생각보다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성유다는 도선우의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도선우는 그럼에도 불쾌한 기색 한번 내비치지 않으며 묵묵히 성유다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제 조언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도움이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학생은 궁극적 목표가 무엇입니까?”
성유다는 어쩐지 공격적인 태도로,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성하연은 의아했다. 내내 은은한 미소를 입에 머금은 채 나긋나긋한 말투로 도선우를 상대하던 아버지가 왜 갑자기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선우는 조금 당황한 것 같았지만, 겁먹지 않고 오히려 싱긋 미소를 지었다.
“……첫째는 이단 심문관이 되는 것이고, 둘째는 추기경이 되는 것입니다. 성유다 님과 같은.”
“학생은 성기사과인 걸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제 조언은 의미가 없겠군요.”
성유다가 차를 홀짝이며 말을 이었다.
“현실적으로 말해서, 지금은 성기사가 고위 성직자가 되기 힘든 구조입니다. 고위 성직자가 목표라면 사제가 제일 유리하죠.”
“그건 언제나 그랬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유다 님께서 추기경이 되었을 때도─”
“아니요, 그때는 상황이 지금보다는 나았습니다.”
달그락.
성유다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소리가 났다. 성하연이 침을 꿀꺽 삼켰다. 끼어들 분위기가 아니었다. 끼어들 생각도 없었지만.
성유다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말을 이었다.
“그때는 사탄교의 등장이나 부두교의 분열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덕분에 무엇보다 능력이 중요한 시기였고, 성기사도 나름 활약할 기회가 있었죠.”
“…….”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은 능력보다 연줄이 중요하고, 성기사는 활약할 곳이 없습니다.”
성유다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그때는 연줄이 없어도 능력이 되면 얼마든지 고위 성직자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능력이 되어도 연줄이 없으면, 일정 이상으로 승계(陞階)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입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전과(轉科)하세요. 이단 심문관은 포기하고 사제가 되든가, 아니면 성전사로 추기경을 달고 명예 이단 심문관 직위를 하사받는 편이 빠르고 쉬울 겁니다.”
성유다의 말은 지독할 만큼 차가웠지만, 현실적이었다. 성하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쩐지 자신이 혼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 탓이다.
그녀는 흘깃 도선우의 눈치를 살폈다. 도선우는 기분 나쁜 내색조차 하지 않고 그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는, 그 당시와 같은 혼란이 다시금 발생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기사과를 택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도선우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악마종과 마수 발생 수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고, 심지어는 피렌체에 사탄교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행동이 차츰 적극적이고, 대담하게 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
“사탄교 ‘분노’가 체포된 뒤 사탄교도의 활동이 급격히 증가했고, 그때 성유다 님께서도 대주교가 되셨던 걸로 압니다. 이번에 사탄교의 ‘시기’가 체포되었으니, 그때와 같은 양상이 이루어질 겁니다.”
“통찰력은 제법 있군요.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닙니다.”
성유다는 이제 찻잔을 들지 않았다. 그는 어느덧 도선우가 하는 이야기에 몰입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성기사가 활약할 기회가 많아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순직율도 높아지죠. 자신의 능력에 확신이 없다면, 활약하기도 전에 죽을 겁니다.”
“저는 제 능력에 확신이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여러 번, 이미 성과를 낸 바도 있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그러나 아까 말했던 것처럼 능력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연줄이 없으면 고위 성직자가 되기 힘듭니다. 한 번 뿌리내린 교계주의는, 시대가 바뀐다고 해도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성유다의 말을 들은 도선우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차는 이미 식어버린 뒤였다. 그가 찻잔을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연줄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제가 아는 성기사가 몇 명 있습니다.”
“누구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동부성기사단의 한대호, 그리고…… 중앙성기사단의 문요셉 이단 심문관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성하연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한대호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단 심문관씩이나 되는 사람과 친분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친구가 얼마 없어서 몰랐는데, 제법 인맥이 넓은 모양이었다.
성유다도 자못 놀란 얼굴이었다. 그는 도선우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하나같이 실력이 좋은 성기사인데…… 두 사람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궁금하군요. 피렌체 내에서는 접점이 그리 많지 않았을 텐데.”
“한대호 단장은 바사르 화재에서, 문요셉 이단 심문관은…… 피렌체에 사탄교도가 등장한 일로 연이 닿았습니다.”
“한데, 그 정도 친분이 있으면 내가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면 될 텐데. 왜 굳이 나에게 왔습니까?”
성유다가 찻잔을 들더니, 다리를 꼬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내리깐 눈으로 도선우를 슬며시 쳐다보았다.
“친분은 있지만, 그걸 활용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제 상황은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결코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도선우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듣고 싶어, 성유다 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성하연은 그 말에 담긴 저의를 파악했다. 그것은 비단 ‘인맥을 활용하는 법’ 따위를 알고 싶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로마니카교의 표면이 아닌 이면을 보고자 하고 있었다. 성유다는 그의 대답에 만족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평범하지는 않군요.”
성유다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리고 있으세요. 서재에 가서 학생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가져올 테니.”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