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96
제196화
성유다의 하인은 나를 저택 대문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괜찮으시면 집까지 태워 드리겠습니다.”
하인은 익숙한 몸짓으로 차 문을 열어주며 내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감사하지만 혼자 가겠습니다. 그게 편해서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하인이 종종걸음으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하인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대문이 닫힌 뒤 기숙사로 갔다.
키우던 꽃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까 물을 준 덕분에 흙은 촉촉했다. 언제쯤 싹이 나고, 언제쯤 꽃이 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침대에 누웠다.
성유다는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처음부터 알았을 수도 있고, 도중에 알았을 수도 있고, 의심만 하다가 방금 대화를 기점으로 확신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는 내가 부두교의 교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모종의 이유로 그것을 묵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뻔뻔스럽군, 렉바. 너 또한 그들의 관계를 알고 있지 않나?]바론 삼디가 했던 말은 그 ‘모종의 이유’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관계에서 ‘그들’은 성유다와 아버지를 의미할 것이며, 어쩌면 어머니까지 포함하여 이르는 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성유다와 아버지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성유다는 나의 정체를 묵인하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단순히 ‘친구를 배신한 것에 뒤늦게 죄책감을 느꼈다’라는 이유는 아닐 것 같았다.
렉바나 바론 삼디라면 아버지와 성유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도 같지만…….
[나도 그때 일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없군.]일단, 렉바는 말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길래 자꾸 비밀로 하는 거죠?”
나는 약간 기분이 상해서 말했다. 렉바는 늘 나를 위하는 척하면서, 정작 내게 필요한 정보나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버리고는 했다. 머릿속에서 렉바의 씁쓸한 웃음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그때 일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면 설명할 게 너무 많아진다.]“그럼 이왕 말하는 김에 싹 다 설명해 주면 되겠네요.”
[안 돼.]“왜요?”
[때가 이르다. 내게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고 해서 의문이 풀리지는 않을 거야. 오히려 의문은 쌓이기만 할 거고, 혼란도 가중될 테지.]“아, 그러세요…….”
이렇게까지 부탁했는데도 기어코 말을 안 해주는 걸 보면, 진짜 말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체념한 채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렉바가 말해주지 않고, 바론 삼디도 말해주지 않는다면, 그때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어머니와 성유다밖에 없다.
그러나 슬프게도, 어머니가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태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럼 남은 건 성유다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 반지를 보여준 일로 성유다는 눈에 띄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이 명백한 협박의 의미이자, ‘네가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나 또한 알고 있다’라는 뜻의 공격적 의미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리라.
때문에 그는 나를 교황청에 고발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를 몹시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상태로는 물어봐도 원하는 대답을 듣기 어려울 것이다.
성하연을 통해 정보를 몰래 캐내는 방법도 있지만, 성하연이 성유다와 사이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아서 힘들 것 같다. 내가 가고 난 뒤 성유다가 성하연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모른다는 것도 문제다.
그럴 걸 대비해서 성하연에게 미리 말을 해두기는 했지만…….
[때를 기다리거라.]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렉바의 말 대로, 때를 기다리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그래, 미끼는 던졌으니, 언젠가는 입질이 오겠지.]바론 삼디가 거들었다. 그가 킬킬대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반지를 보여준 것으로 만족해라. 고작 반지 하나에 쩔쩔매는 꼴이 제법 재미있지 않았나?]“아니요, 생각보다…….”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나는 말을 걸어오는 렉바와 바론 삼디의 말을 무시하고, 잠을 청했다. 한동안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아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그 탓에 피로가 쌓여 있었다.
잠은 금방 왔지만 악몽을 꾸었다. 성전의 기억이 반복되는 악몽과, 불길이 나를 집어삼키는 악몽, 그런 것들이었다. 어쩐지 익숙하고 진부한 악몽이었다.
이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내용의 악몽을, 어릴 적에 수도 없이 경험했던 것만 같은 기분.
잠이 깼을 때는 밤이었다. 안이고 밖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워서,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악몽을 꿔서 그런지 개운하기보다 찌뿌드드했다.
그래도 피로는 조금 풀린 느낌이었다. 나는 갈증을 느꼈고, 물을 마시러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다.
“…….”
그때 어디선가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노란 안광이 떠올라 번뜩이고 있었다. 눈동자에 가로줄이 나 있었다. 눈빛은 마치 뱀처럼 몹시 표독스러웠다.
아니, 그것은 정말로 뱀의 눈이었다.
[꼬마야, 안녕.]농담이나 비유가 아니라 정말 뱀이었다. 그건 담 발라의 현현(顯現)이었다. 담 발라의 매혹적이고 달콤한 목소리가 귀를 타고 들려왔다.
눈 깜짝할 사이 담 발라는 내 몸을 타고 올라와서, 내 귓가에 대고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담 발라…….”
나는 가까스로 목소리를 냈다. 잠에서 막 깨어난 참이라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보통 로아의 현현에는 전조가 있다.
렉바는 교차로에 가야만 만날 수 있고, 바론 삼디는 나타나기 전에 보랏빛 안개를 흩뿌린다. 소보와 바데는 반드시 함께 등장하며, 폭풍우를 동반한다.
담 발라는 이러한 전조도 없이 등장했으니, 나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당황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왜 이렇게 작아졌어요?”
담 발라가 원래 크기가 아닌, 기껏해야 애완용 뱀 수준의 앙증맞은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 * *
주말을 맞은 정인아는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만나 간만에 놀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정인아는 옷을 고르다 말고 문득 휴대폰을 확인했다. 친구들에게 온 연락이 쌓여 있었지만, 그중 도선우에게 온 연락은 없었다.
아프다고 하니 걱정이 돼서 전화도 해보았지만 도선우는 받지 않았다. 연락도 오지 않았다. 뭐 하고 있는지, 살아는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고, 조금 슬프기도 하고,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정이었다.
정인아는 잡념을 털어내고 옷을 고르다, 별안간 들려온 벨 소리에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냈다. 전화가 오고 있었다. 도선우는 아니었고, 엄마였다.
“……아!”
생각해 보니, 곧 부모님이 돌아오실 때가 됐다. 귀국하기 전에 안부 인사차 전화를 하신 모양이었다. 정인아는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응, 여보세요?”
정인아는 전화를 받은 채 옷을 골랐다. 각 잡고 꾸미기는 귀찮아서, 되도록 꾸민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편한 옷을 골랐다. 휴대폰 너머로 안부를 묻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잘 지내지? 시험도 끝나서 요즘 그냥 놀기만 해. 응, 오늘도 약속 있어서 잠깐 나가려고.”
정인아는 부모님의 말에 적당히 대답하며, 고른 옷을 침대 위에 대충 던져 놓았다. 전화를 하면서 옷을 갈아입을 수는 없었으니.
“시험? 필기는 잘 봤어. 2등 정도? 장학금 라인 안에는 들었지. 응? 아니, 뭐 이런 걸로 축하 파티를 해. 다음에 1등 하면 그때 하면 되지.”
“학교는……. 그때 이후로는 별일 없어. 솔직히 아직 좀 불안하긴 한데…….”
“아이, 밥은 걱정하지 말라니까. 알아서 잘 먹고 있어. 나 요리도 할 줄 알아, 이제. 친구한테도 해줬는데 맛있대. 아, 거짓말 아니라니까!”
사실 거짓말이 맞다.
“또 미뤄졌다고? 아……. 그래도 이번 달 안에는 오는 거지? 아무튼 얼른 와, 보고 싶어. 응~”
영국 부근에서 활동하던 사탄교가 이동하려는 조짐을 보여서, 출국 심사가 몹시 까다로워졌고 그 탓에 예정보다 2주 정도 귀국이 늦어질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정인아는 되도록 아쉬운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코끝이 찡했다. 사실 엄마 목소리를 들은 순간부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가까스로 참은 것이었다.
정인아는 고인 눈물을 휴지로 찍어서 닦아내고, 골라 두었던 옷을 입고 거울을 봤다. 억지로 눈물을 참았더니 코가 부어 있었다.
“하…….”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정인아는 붓기도 제대로 빼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그러고도 시간이 촉박해서 마지막에는 뛰어야 했다.
요즘 운동과 거리를 두고 살았더니, 고작 몇 초 뛴 것만으로 숨이 찼다.
“오, 인아! 딱 맞춰서 왔네.”
겨우겨우 약속 장소에 도착한 정인아는 친구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숨부터 골랐다. 인사를 나눌 여력조차 없었다.
겨우 숨을 고른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모이기로 한 것은 6명인데, 온 사람은 3명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애들은?”
“걔네 원래 좀 늦어. 오늘은 늦지 말라고 했는데, 이 새끼들이……. 아, 저기 온다.”
친구가 정인아의 물음에 대답하다 말고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늦은 세 명이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세 명은 미리 와 있는 친구들을 보고 뒤늦게 달리는 시늉을 하며 다가왔다. 약속을 주선한 친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 세 명에게 다가갔다.
“야, 내가 오늘 늦지 말라고 했지. 너는 맨날 늦냐? 어?”
“오늘은 얼마 안 늦었잖아. 이 정도면 선방이지.”
“왜 늦었는데? 변명이라도 해. 이유가 타당하면 봐준다.”
“이유? 음…….”
추궁을 당하던 남자아이가 고개를 들더니,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 해가 오늘 너무 쨍쨍해서.”
“그게 늦은 거랑 무슨 상관이냐?”
“어, 이유 없이 늦었다는 뜻이야. 이거 미안하게 됐다!”
“야이 씨…… 싸울래?”
“감당되냐? 축복 사용 가능?”
둘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같이 온 남자아이 하나가 정인아에게 다가왔다. 학기 초에 배성현 무리와 어울리던 친구였다. 남자아이는 머쓱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 인아 맞지?”
“아…… 응, 근데?”
정인아는 쌀쌀맞게 인사를 받았다. 선입견 없이 보려고 해도 선입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배성현과 어울렸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지금은 배성현과 친하지 않다고 하지만, 만약 배성현이 퇴학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이 아이는 계속 배성현과 놀았을 것이다.
배성현이 퇴학을 당하고 나서 착한 척 조용히 지내는 것도, 뒤늦게 세탁을 시도하려는 것 같아서 솔직히 마음에 안 든다.
“아니, 그냥……. 내가 학기 초에 좀 그러고 다녀서……. 혹시 그때 기분 나쁘게 한 거 있으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아니야, 괜찮아. 이제 와서 무슨…….”
정인아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얼핏 들으면 사과를 받아주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사과가 늦어서 받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남자아이도 정인아가 자신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둘이 벌써 친해졌어? 너네 둘이 제일 걱정이었는데.”
그때, 한창 다른 남자아이와 티격태격하던 친구가 와서 능청스럽게 말을 걸었다.
친해진 건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사이가 더욱 불편해진 것에 가까웠지만, 정인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뭐. 인사만 했어.”
“그래?”
친구는 정인아와 남자아이를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정인아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대뜸 걷기 시작하며 말을 이었다.
“일단 밥부터 먹자! 나 급하게 나오느라 밥도 못 먹고 나옴.”
“넌 좀 안 먹어도 될 거 같은데…….”
아까까지 한창 티격태격하던 남자아이가 끼어들어서 대뜸 시비를 걸었다. 친구가 표정을 구기며 남자아이를 노려보았다.
“이건 진짜 싸우자는 거지?”
“농담~ 아, 나도 배고프다. 뭐 먹을래?”
“아, 여기 주변에 뭐 중식 하는 데 있던데. 거기…….”
아이들이 걸으면서 점심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정인아는 가만히 들으면서, 적당히 맞장구만 쳐주었다. 달리 먹고 싶은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요즘 입맛이 없어서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았다. 지금도 그렇게 뭔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메뉴가 대충 정해지고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도 아이들의 입은 쉴 줄을 몰랐다. 시험 얘기부터 소문 얘기, 연애 얘기 등 화제가 다양했다. 정인아는 이번에도 맞장구만 쳤다.
“어? 저거 성하연 차다.”
그때, 누군가 도로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도로로 쏠렸다. 얼핏 봐도 가격이 엄청날 것 같은 차가 도로를 누비며 지나가고 있었다.
선팅이 짙지 않아서 내부에 누가 타고 있는지도 얼핏 보였는데, 일단 운전석에는 운전기사로 추정되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그걸 보고 하나같이 감탄을 흘렸다.
“야, 맞네. 성하연 맨날 저거 타고 등하교 하잖아.”
“저 차 타는 사람이 성하연밖에 없어?”
“그럼 성하연 말고 저런 차를 누가 타? 생각하고 질문했나요?”
“와……. 근데 저런 차는 얼마나 하냐?”
“알아서 뭐 하게? 너는 어차피 평생 벌어도 못 살 텐데.”
“궁금해하는 것도 안 되냐? 이 새끼는 입만 열면 시비야…….”
“근데 차들이 그냥 알아서 다 비켜주네. 역시 차는 비싸고 봐야…….”
“너 같으면 저 근처에서 운전하고 싶겠냐?”
아이들이 한 마디씩 거드는 동안 정인아는 가만히 있었다. 성하연의 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두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잘못 본 건가,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맞았다. 정인아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정확히는 묘하게 기분이 더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 근데 같이 타고 있던 애, 도선우 아니냐?”
뒷좌석에 성하연과 함께 앉은 도선우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