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99
제199화
“이야……. 너랑 가니까 그냥 프리 패스네.”
학교를 나온 마유현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가 혼자 갔을 때는 조퇴 허가증을 보여주었음에도 경비가 조퇴를 허가해 주지 않아서, 학교를 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와 함께 친구와 병문안을 간다고 이야기하자 경비는 아무런 의심 없이 우리를 보내주었다.
사실 나는 병문안을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여민서가 선교여행에 동참하는지 여부를 아직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 떠올라서, 그냥 같이 가기로 했다. 마유현을 감시하려는 목적도 조금이나마 있었다.
“왜 나만 조퇴를 안 시켜주나 모르겠어. 너무 자주 해서 그런가.”
마유현이 말했다.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경비였어도 마유현은 조퇴를 안 시켜줄 것 같았다.
우리는 묵묵히 병원을 향해 걸었다. 여민서가 입원해 있는 병원은 피렌체와 제휴를 맺고 있는 곳이어서 학교와 무척 가까웠다.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이 시계는 잘 때도 풀면 안 되는 거냐?”
걷던 도중 마유현이 차고 있던 시계를 톡톡 건드리며 물었다. 내가 그를 감시하기 위해 주었던 시계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뒷일 감당되면 풀어.”
“……도대체 시계를 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궁금하면 풀어봐.”
솔직히, 마유현이 시계를 풀거나 고의로 파손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시계에는 위치 추적기와 도청 장치가 내장되어 있고, 갖가지 주술이 각인되어 있다.
시계를 푸는 순간 마유현은 혼절 주술에 의해 잠이 든다.
나는 그사이에 위치 추적기를 통해 마유현이 있는 위치로 갈 수 있고, 그때 마유현을 죽이든가, 아니면 시계를 다시 채우든가 하면 된다.
마유현은 시계를 묵묵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막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네.”
“근데 왜 자꾸 물어보는 거지?”
“약간……. 너무 강한 힘을 가져서 봉인돼 버린 비운의 영웅……. 그런 느낌이라, 멋있어서.”
“…….”
헛소리였다.
우리는 병원에 도착해서, 병문안을 위한 절차를 밟았다. 피렌체와 제휴를 맺고 있는 병원이어서 그런지, 접수원에게 학생증을 보여주자 일부 절차는 넘어갈 수 있었다.
접수원은 우리에게 피렌체 학생들만 특별히 받을 수 있는 건강 검진 혜택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으나, 나는 건강 검진 같은 걸 받을 일이 없어서 그냥 흘려들었다.
무턱대고 건강 검진 같은 것을 받았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성직자라는 직업이 참 편해.”
여민서의 병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도중, 마유현이 말했다.
“뭔 소리야?”
“솔직히 별로 하는 것도 없는데 대우는 이상할 정도로 좋잖아.”
“그렇기는 하지.”
나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납득이 되는 말이었다. 내가 위장 신분을 얻어가면서까지 피렌체에 들어오려고 했던 이유 중에는, 성직자가 웬만한 직업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점도 있었으니까.
그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
하나같이 덩치가 무척 크고, 얼굴이 사나운 성직자들이었다. 그중 가장 덩치가 큰 성직자 하나가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딘가 낯이 익다 싶어서 계속 보았다.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아는 얼굴이었다.
“……한대호 단장님.”
“도선우?”
동부성기사단장인 한대호였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며 크고 두툼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깍듯하게 그의 악수를 받았다.
한대호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반가운 기색을 내비치며 말을 이었다.
“네가 병원은 무슨 일이야. 어디 다쳤어?”
“아니요, 여기에 입원한 친구가 있어서 병문안 차 왔습니다.”
“난 또 다쳐서 온 줄 알았네. 하도 다친 모습만 봐서. 요즘 몸 간수는 잘 하고 있어?”
“네, 요즘은 잘 안 다칩니다. 근데 단장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검사할 게 하나 있어서, 점심시간에 잠깐 들렀지. 옆은…….”
한대호는 내 옆에서 엉거주춤하게 서 있던 마유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대호는 가늘게 뜬 눈으로 마유현을 쳐다보다가, 뒤늦게 알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이었다.
“마유현 아니야? 둘이 친구였어?”
“넵, 친구 비슷한 겁니다. 하하…….”
마유현이 떨떠름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를 받았다. 마유현이 예의를 차리는 모습은 낯선 것을 넘어 기이할 지경이었다. 한대호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무 커서 몰라봤네. 성하께서는 건강하신가?”
“하하……. 잘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뵌 지가 좀 돼서……. 아마 건강하실 겁니다.”
“그거 다행이네. 너도 병문안으로 온 거냐?”
“넵, 그렇습니다.”
“그래, 다음에 셋이 뭐 밥이라도……. 아, 잠시.”
한대호가 말을 하다 말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을 확인하자 환한 웃음까지는 아니어도 은은하나마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의 입이 축 늘어졌다.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굳어 있었다.
한대호는 눈을 질끈 감더니,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간 되면 밥이라도 사줄까 했는데, 안 되겠네.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야 할 것 같아. 또 보자!”
“넵, 살펴 가십쇼.”
“그래, 조만간 연락하마.”
한대호는 그렇게 말하며, 거구의 몸을 이끌고 병원을 나갔다. 우리는 한대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와, 저 덩치가 어떻게 사람이냐? 고릴라 아니야?”
마유현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나는 한대호 앞에서 유난히 예의를 차리던 마유현의 모습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어쩐지 깍듯하더라. 무서워서 그런 거였냐?”
“저 덩치를 보고도 안 쫄 수가 있냐?”
“덩치가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네 앞에서는 축복도 못 쓸 텐데.”
나는 한대호를 무서워하는 마유현을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마유현은 타인의 신성력을 제 것처럼 다루는 능력이 있다. 아무리 한대호라고 해도, 아니, 한대호보다 더한 강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마유현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축복이나 기적, 치유 등 신성력을 활용한 기술 일체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축복이 무슨 소용이냐? 저 주먹이 머리통에 꽂힌다고 생각을 해봐라. 눈물보다 뇌수가 먼저 나온다니까?”
“애초에 그럴 일이 없을 텐데. 한대호가 뭐 하러 네 머리통에 주먹을 꽂아?”
“혹시 모르지.”
마유현이 고개를 들어 엘리베이터 천장을 살피며 말했다. CCTV가 있는지 살피는 기색이었다.
물론 나는 엘리베이터에 CCTV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들어온 직후 CCTV의 유무부터 확인했던 것이다.
마유현은 안심하듯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한대호는 위험인물이야.”
“왜?”
“가정 환경이 불우해서 잃을 게 없고, 신념이 또렷해서 회유가 안 되거든.”
띵─!
그때 엘리베이터가 5층에 도착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가정 환경이 불우하다고?”
“조금.”
마유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거랑 별개로, 예의를 차려서 나쁠 게 없는 사람이지. 나중에 도움을 받을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한대호는 능력도 있고 나름 인망도 두텁거든.”
“음.”
“애초에 예의는 차려서 나쁠 게 없지.”
나는 대충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대호가 예의를 차려서 나쁠 게 없는 사람이라는 건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말하면, 진정으로 상대를 존중해서 예의를 차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필요에 따라 예의를 차린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제로 마유현은 사람을 가려가며, 필요에 따라 예의를 차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이 어쩐지 불쾌했다.
철컥.
여민서의 병실 앞에 다다르자, 마유현은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민서는 누워서 책을 읽고 있었고 병상 옆에는 웬 조그마한 남자아이가 앉아서 여민서의 수발을 들고 있었다.
1인실이었는데, 무척 넓었다. 그래서인지 여민서는 아직 우리가 온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여민서와 남자아이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누나, 물.”
“땡큐. 아, 그러고 보니 학교는 어땠냐?”
“음……. 다 좋은데 선생님이 수업을 너무 어렵게 가르쳐. 내가 멍청해서 이해를 못 하나…….”
“선생 새끼 내가 패 줄까?”
“어? 생각해 보니까 내가 멍청한 게 맞는 것 같아……!”
“그러냐? 그럼 공부하다 보면 이해되겠지. 정진해.”
수발을 들던 남자아이는 여민서의 동생인 것 같았다. 생긴 건 제법 여민서와 닮았지만 말투나 행동은 여민서와 딴판이어서, 어쩐지 친동생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여민서는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며 책을 읽다가, 문득 우리 둘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뭐냐, 너네?”
여민서가 책을 덮으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마유현과 나는 그제야 여민서에게 다가갔다.
여민서의 동생은 우리를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다소곳이 모은 채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어, 안녕하세요! 누나 친구분이신가요?”
“응, 너는 민서 동생인가?”
여민서의 동생이 반갑다는 듯 인사를 했다.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녀의 동생도 빙긋 미소를 지었다.
불만과 분노로 가득 차서 날카롭고 사나운 여민서의 눈빛과 달리, 그녀의 동생은 눈빛이 아주 초롱초롱하고 맑았다.
“네! 아, 그럼 인사 나누세요. 저는 가보겠습니다.”
“어? 금방 있다가 갈 거라서 그냥 있어도 되는데?”
“야, 야. 그냥 가라고 해. 어차피 쟤 공부해야 돼.”
괜히 우리 때문에 억지로 자리를 피하는 건가 싶어 말했는데, 여민서가 나서서 동생을 보내려고 했다. 동생은 우리 눈치를 살피며 종종걸음으로 병실을 나갔다.
마유현은 여민서의 동생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여민서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동생? 귀엽네. 초등학생이야?”
“어.”
“친동생이지?”
“그럼 주워 온 동생이겠냐? 그딴 걸 왜 물어봐?”
“아니, 너랑 안 닮았길래. 동생은 되게 착한 것 같네.”
“나랑 성격이 닮았으면 내가 저걸 키우고 있겠냐? 진작 버렸겠지.”
여민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단 농담인 것 같기는 한데, 여민서가 한 말이라서 그런지 진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여민서는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갑자기 여긴 왜 왔어?”
“병문안. 반갑지?”
마유현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니, 존나 안 반가운데. 병문안을 올 거면 돈이라도 들고 오든가.”
“병문안 오는데 선물도 아니고 무슨 돈이야?”
“어차피 선물도 돈 주고 사는 건데 뭐가 다르냐?”
“선물에는 이, 마음이 들어 있잖아.”
“개소리야. 돈에는 마음이 안 담기냐?”
여민서가 피식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진짜 왜 온 거야? 병문안 하나 때문에 온 건 아닐 거고.”
“너 선교여행 가냐?”
나는 미뤄두었던 질문을 꺼냈다.
선교여행 일정이 정말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하예진의 눈에 잘못 띄어 본의 아니게 한동안 그녀의 심부름꾼 노릇을 해야 했던 나는 임원들의 선교여행 참석 여부를 알고 있었다.
한수련만 불참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참가하는 걸로 알고 있으나, 여민서만은 아직 참석 여부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여민서는 내 질문에 잠깐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누구누구 가는데?”
“한수련 빼고 다.”
“마유현, 너도 가냐?”
여민서가 물었다. 마유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몰라? 일단 신청은 했던 거 같은데?”
“허……. 뭐 이런 생각 없는 놈이.”
여민서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눈으로 마유현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입을 다문 채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김진서도 가냐?”
여민서가 나를 보고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민서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 고민이 깊어진 모양이었다. 여민서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정적이 흘렀다. 바람이 커튼을 흔드는 소리마저 크게 들릴 만큼 짙은 정적이었다.
“하……. 일단 가는 걸로 해.”
“일단?”
“발목 낫는 거 보고. 좀 걸을 만하다 싶으면 간다고 전해줘……. 근데.”
여민서가 의아하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었다.
“김진서도 간다고? 상태가 그 지경인데 갈 수가 있나?”
“걔 상태가 어떤데?”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김진서가 다쳐서 입원해 있다는 것만 알았지,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는 모르고 있었다.
많이 다쳤다는 것만 어렴풋이 들었을 뿐 그녀에게 연락을 할 경황도 없었고, 연락이 오지도 않아서 신경조차 안 쓰고 있었다.
여민서는 특유의 공격적인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듯 하며 입을 열었다.
“병문안 한 번도 안 가봤냐? 미친놈 아니야, 이거.”
“……시간이 없었어.”
“바빠 봤자 얼마나 바쁘다고. 시간이 없기는 지랄……. 궁금하면 가봐. 걔, 내가 알기로는 아마 이 건물 8층에 입원해 있을걸.”
“너 김진서랑 사이 안 좋지 않냐? 걔한테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
마유현이 물었다. 여민서가 마유현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입꼬리만 올려서 웃었다. 입은 웃고 있는데, 마유현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초점 없이 공허했다. 어딘가 섬뜩한 웃음이었다.
그녀는 넓지만 병상이 하나밖에 없어서 마치 텅 빈 것처럼 보이는 병실을 천천히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라……. 서로 이해가 안 되는 거지. 관심이 없는 건 아니야.”
* * *
여민서와 마유현은 그 이후로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눴다. 대부분 잡담이었고, 마유현이 말을 걸면 여민서가 대답을 하는 식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거의 보기만 했다. 이따금 나에게 질문이 들어오면 적당히 대답을 하고, 맞장구를 치는 것이 전부였다. 마유현과 여민서는 제3자인 내가 보기에 제법 죽이 잘 맞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유현이 왜 여민서의 병문안을 오려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마유현과 그나마 말이 통하는 것이 여민서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여민서의 공격적인 말투를 별생각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마유현밖에 없었다.
“여민서도 얘기하다 보면 성격이 괜찮지 않냐?”
병실을 나온 마유현이 말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네…….”
“아니, 그렇잖아. 애가 좀 툴툴대긴 해도 가끔 귀여울 때도 있다니까?”
나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마유현의 말에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나도 여민서의 성격이 마냥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타인의 감정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녀에게는 제법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면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 외에는 장점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굳이 찾자면,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화법을 기가 막히게 구사한다는 것 정도.
“여민서도 소문이 너무 이상하게 났어, 나처럼.”
“그래.”
귀찮아서 대충 대답해 주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여민서가 말해준 대로 8층으로 갔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위화감을 느꼈다.
소독약 냄새가 물씬 나는 데다가, 간호사와 의사, 치유 사제들이 피로에 전 얼굴로 허둥지둥 뛰어다니는 탓에 병원이라는 느낌이 물씬 나던 5층과 달리, 8층은 전혀 병원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진한 알코올 냄새보다는 꽃향기와 같은 향긋한 냄새가 먼저 느껴졌고, 복도를 걷는 의사와 간호사, 치유 사제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같은 건물인데도 마치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여기는 피렌체 재단에서 공짜로 입원시켜 주는 데가 아니네. 사비로 들어오는 데야.”
마유현이 말했다. 그는 8층의 풍경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좋은 데 입원했네. 하긴, 돈이 많으니까……. 아, 저기 보인다. 813호.”
“근데 이렇게 갑자기 가도 되나? 절차도 없이.”
“뭐 어때, 잠깐 보고 나올 건데.”
마유현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813호 병실로 다가갔다.
똑똑.
마유현은 여민서의 병실로 들어갈 때는 노크도 없이 문부터 벌컥 열었으면서, 김진서의 병실을 방문할 때는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아까는 노크 안 하더니 왜 지금은 하냐?”
“김진서는 애가 좀 무섭더라고.”
똑똑.
마유현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노크를 했다. 그러나 반응이 없었다. 재차 노크를 해보았지만 역시나 반응이 없다. 마유현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뭐야, 자나?”
“……그럴 수도 있겠네. 일단 들어가자.”
나는 약간 불안해지려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차분하게 문을 열었다. 텅 비어 있던 여민서의 병실과 달리 김진서의 병실은 이것저것 가구나 소품 같은 것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면적도 비슷하고 1인실인 것도 같았지만, 김진서의 병실 쪽이 조금 더 화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유현과 나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병상에 다가갔다. 이쯤 다가왔으면 누군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법도 한데, 김진서는 병상 위에서 미동조차 없었다.
이불을 끝까지 뒤집어쓰고 자는 중인 것 같았다.
“…….”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은, 김진서에 팔의 꽂혀 있어야 할 링거 바늘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촤악!
나는 이불을 들췄다.
“……뭐야?”
병상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