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
제2화
예배를 무사히 끝낸 뒤. 지하 예배당의 뒤편.
“삼촌, 이런 거 돌리지 말라니까?”
“이런 거라도 안 하면 돈줄 끊긴다니까. 신도들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거 몰라?”
“아니, 전단지를 돌릴 거면 좀 제대로 만들든가. 디자인이 왜 이래?”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전단지를 들어 보였다. 무지개 그러데이션 배경에, 가독성 따위는 철저히 무시한 글꼴.
가히 파멸적인 디자인이었다.
“왜? 멋있지 않아?”
그러나 삼촌은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이진성.
내 외삼촌이자, 부두교의 제사장. 아까 예배에서 내게 마이크를 건네주었던 바로 그분이다.
부두교 전반의 행정 실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무척이나 유능한 정보원이기도 하다.
이렇듯 여러 분야에 다재다능한 사람이지만, 미적 감각은 부족했다. 부족한 게 아니라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디자인 바꿔. 아니, 아예 디자인 담당을 새로 뽑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야, 뽑는 것도 다 돈이야. 무지개 배경이 뭐 어때서? 세련되고 좋잖아?”
“세련은 무슨. 하, 아니다.”
더 말해봐야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삼촌을 지나쳐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는 꿉꿉한 곰팡내가 났다. 환기를 하고 싶었으나, 창문이 없어 환기를 할 수 없었다.
나는 방구석에 있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이불은 습기가 차서 눅눅했다.
“으.”
[지하이니 어쩔 수 없지.]내가 싫은 소리를 하자, 머릿속 목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내게 깃든 로아의 목소리였다.
이 로아의 이름은 ‘렉바’.
인간과 로아를 중재하며, 다른 모든 로아를 지배하는 로아의 지도자.
그 명색에 걸맞게, 렉바의 권능과 주술은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로 강대하다.
라고, 렉바가 본인 입으로 말했다.
[나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 전부 사실이다.]“네, 믿어요.”
나는 침대에 누운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사실일 것이다.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지금은 제단이 없어서 실력 발휘를 못 하고 있을 뿐이야.]“저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못 믿는 것 같아서 혹시나 말해본 거다. 투정 부릴 시간에 얼른 제단이나 되찾아라.]렉바가 못마땅하다는 듯 덧붙였다. 그냥 무시했다.
나는 렉바의 투덜거림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허공에 오른손을 휘적거렸다.
이윽고 손끝에서 보랏빛 광채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 광채를 물감 삼아 허공에 주술진을 그렸다. 보라색 직선과 곡선이 이리저리 교차한 형태의 주술진.
이윽고 완성된 주술진에서 음산한 보랏빛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상급 환혹(幻惑), 정신 착란의 주술.
로마니카에 신성력이 있다면, 부두교에는 부두 마력이 있다.
주술진을 그리면 주술을 사용할 수 있으며, 주술진을 그리기 위한 물감이 되는 것이 바로 부두 마력이었다.
렉바가 감탄하듯 읊조렸다. 나는 부두교의 교주였으므로, 부두 마력을 다루는 것은 물론 주술진을 그리는 것에도 능통했다. 부두 마력에 있어서는 업계 1등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문제는 이걸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
세상은 부두교를 사이비라 규정, 부두교도를 모조리 잡아 처벌하고 있다.
일반교도들도 이러한데, 교주인 나는 말할 것도 없다. 교주라는 사실을 들키는 순간, 2대 교주였던 아버지처럼 화형을 당하고 말 것이다.
[그리 걱정하지 마라. 걸리지 않으면 되니까. 걸릴 일도 없고.]“걱정한 적 없어요.”
얼굴과 이름을 포함, 아주 간단한 인적 사항조차 밝혀진 바가 없으므로, 이대로면 걸릴 위험은 거의 없다.
허나 부두 마력을 사용하면 내가 교주라는 사실이 발각되고 말 것이다. 때문에 부두 마력은 사용할 수 없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주술진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번엔 왼손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역시나 손끝에서 광채가 흘렀다. 그러나, 아까와 달리 색이 새하얬다.
이번에는 부두 마력이 아니라 신성력이었다.
하급 근력 향상의 축복.
[형편없군.]렉바는 그것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내가 보아도 그랬다. 아까 그린 주술진에 비해, 지금 신성력으로 그린 축복진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상급 주술진을 본 직후여서 그런지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상심하지는 마라. 신성력과 부두 마력을 동시에 다룰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니.]렉바가 나를 위로했지만 딱히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침대에 풀썩 누웠다.
내 전문 분야인 부두 마력은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신성력을 쓰기에는 내 재능이 너무나 모자라다.
이대로면 고위 성직자가 되기는커녕, 피렌체를 졸업하는 것조차 벅찰 듯싶었다.
[꼭 고위 성직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부두교의 교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그건 내가 싫어요.”
[네 모친이 아직까지 살아 있을 거란 보장도 없고.]“아니요. 살아 있습니다.”
7년 전 성전.
아버지는 죽었고 어머니는 교황청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다. 교황청 지하 감옥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추기경급 이상의 고위 성직자에게만 주어진다.
그리고, 나는 고위 성직자가 되어 어머니를 만날 것이다.
이것이 내가 피렌체에 입학한 이유이며, 고위 성직자가 되려는 이유였다.
* * *
다음 날, 학교로 가는 걸음이 무거웠다.
어제는 지하 예배당에서 잠시 낮잠을 자다가, 밤이 되어서야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삼촌이 피렌체 입학 기념으로 선물해준 자취방이었다.
부두교 지하 예배당에서 통학을 하면 의심받을 위험이 있으니, 피렌체를 다니는 동안은 자취방에서 통학하라는 의미였다.
피렌체까지는 걸어서도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워서 편하긴 했으나, 혼자 맞는 아침은 외로웠다. 오늘따라 걸음이 유달리 무거웠던 것도 이런 까닭이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무거운 걸음을 억지로 떼어가며 걷기를 몇 분.
언제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신비롭고 웅장한 풍경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파릇파릇한 수목과 갓 튼 새싹으로 둘러싸인 담벼락.
그 너머, 고딕 양식으로 축조된 본관과, 본관을 중심으로 늘어선 수많은 건물. 그 모든 것들을 축복하듯 찬란하게 쏟아지는 햇살.
피렌체 아카데미의 교정이었다.
[시설이 좋군. 우리는 누구 때문에 지하에서 곰팡이 먹으면서 예배하는데.]렉바의 투덜거림은 가볍게 무시한다. 나는 자연미 가득한 길을 천천히 걸으며 1학년 건물 쪽으로 갔다.
이윽고 교실 앞에 다다랐다. 교실 문 위로 ‘1학년, 자선’ 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었다.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빈자리에 가 앉았다. 창가 쪽 뒷자리였다.
드르륵─!
곧 누군가 힘차게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한쪽 팔에 출석부를 끼운 채, 싱글싱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교탁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다 온 거 같네요.”
아무래도 자선반의 담임 교사인 것 같았다.
탁탁!
교사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막대기로 교탁을 두드렸다. 고개를 숙인 채 각자의 공부에 전념하고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반갑습니다. 자선반 담임 교사를 맡은 하예진이라고 해요. 1년간 잘 부탁드려요. 혹시 여기 사제과 지망하는 학생 있나요?”
몇몇 학생들이 쭈뼛쭈뼛 손을 들었다. 대략 3분의 1정도다.
“생각보다 많아서 다행이네요. 저는 신성력 활용 수업 교사이면서, 동시에 사제과 담당 교수이기도 해요. 지금 손 드신 분들은 나중에 수업하면서도 종종 볼 수 있겠네요.”
하예진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그녀의 양 뺨에 자그마한 보조개가 피었다.
“아무튼, 다들 피렌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피렌체는 중학교와 분위기가 조금 다를 거예요. 수업도 생각보다 어려울 거고, 실습도 많기 때문이죠. 적응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일단 적응하고 나면 생각보다 편할 거예요.”
하예진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을 이었다.
“다들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겠죠. 그 느낌을 마음껏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또한 신입생의 특권이니까요.”
하예진은 새학기라고 겁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학생들을 독려해 주었다.
말투는 사근사근했고, 입에는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있다. 외모도 무척이나 예뻤다. 덕분에 첫인상이 아주 좋았다.
그녀가 담임이라면 앞으로 1년간의 학교생활은 순탄할 것 같았다.
“참, 그리고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하예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섬뜩함이 일었다.
“신성 모독, 교권 침해, 그 외 7죄종에 해당하는 죄를 저지르는 자. 그리고 우상 숭배를 하거나, 사교를 믿는 자. 만일 그런 사람이 여기 있다면, 제 손으로 친히 퇴학을 시켜 주겠어요.”
하예진은 그렇게 말하곤 다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런 사람만 아니라면, 저는 여러분을 언제나 사랑으로 대할 거예요. 부디 저를 실망시키는 학생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우상 숭배를 하는 자. 사교를 믿는 자.
모두 나였다.
[우상 숭배라니? 너는 올바른 신을 섬기고 있지 않으냐. 바로 우리, 로아 말이다.]그러니까, 로아를 믿는 것 자체가 우상 숭배이고 사교를 믿는 행위다. 성전 이후로 그렇게 정해졌다. 고귀하신 렉바께서는 모르겠지만.
[비꼬지 마라.]“그럼 조회는 이상입니다. 참, 배성현 학생?”
“네.”
하예진이 이름을 호명하자, 한 남학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훤칠한 키, 흠잡을 데 없이 수려한 외모. 신입생 대표 7인, 그중 자선의 성호를 하사받은 배성현이었다.
“자선반 반장은 배성현 학생입니다. 피렌체에서는 성호를 받은 학생이 반장을 맡아요. 변동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럼, 배성현 학생은 앞으로 열심히 해줘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배성현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예진은 배성현에게 빙긋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출석부를 들고 교실을 나갔다.
하예진이 나가자 교실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아이들은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새학기의 긴장을 풀었다.
나만 빼고.
나는 친구가 없었다.
몇몇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 분주히 말을 걸며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애석하게도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 대부분은 자선반 반장이자 자선의 성호, 배성현에게만 말을 걸었다.
“자선의 성호는 어떻게 받은 거야?”
“입학시험을 잘 본 것도 있고. 아버지가 기부를 좀 하셔서 나도 따라서 한 적이 있거든. 그거 때문인 것 같아.”
“우와…….”
아이들은 감탄을 하며 동경의 시선으로 배성현을 쳐다보았다. 배성현은 그 시선을 느끼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책상에 얼굴을 묻고 엎드린 채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엿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냥 어쩌다 보니 들렸다. 엎드려서 남의 대화나 엿듣고 있는 나 스스로가 조금 비참했다.
[외로워하지 마라.]렉바는 나를 위로하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딱히 위로가 되진 않았다. 아니, 위로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나는 친구가 없어도 그리 슬프지 않았다. 외로움을 느낀 적도 드물었다.
오히려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의 부모는 사탄교도였고, 체포를 당해 수감 중이었다.
당연하지만 그 학생은 지독한 괴롭힘에 시달렸다.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열렸지만, 가해자는 경미한 처벌만을 받았으며 도리어 피해자였던 그 학생이 전학을 갔다.
나 역시 신분을 위장하지 않았더라면 그 학생처럼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삼촌이 마련해준 위장 신분. 어머니는 성전에서 성기사로서 순직했고, 아버지는 해외 파견을 나간 성직자라는 설정이다.
이 위장 신분 덕분에 피렌체에 무사히 입학할 수 있었으며, 연좌제에 의한 괴롭힘을 피할 수 있었다.
뭐, 신분을 위장한다고 해서 친구가 생기는 건 아니었지만.
[딱히 중요하지는 않지.]렉바의 말대로, 중요하지는 않았다.
내가 피렌체에 입학한 이유는, 고위 성직자가 되어 어머니를 만나기 위함이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친구를 만들 틈조차 없었다. 지금은 고위 성직자가 되기 위해, 신성력을 연마하는 것에만 신경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리고 고위 성직자가 되기 위해선, 오늘 있을 체력 시험에서 두각을 드러내야만 했다.
* * *
수업 첫날인 만큼, 대부분의 수업은 오리엔테이션으로 진행되었다.
교사들은 한 달 뒤 있을 ‘그날’을 생각해서라도 학생들의 호의를 사둘 필요가 있었다. 첫날부터 수업을 하거나 실습을 하면 학생들의 원성을 살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첫날부터 수업을 진행하는 미친 교사가 있을 리 없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한다.
“반갑다. 실전 체육 과목의 교사이자 성기사과의 교수, 김복동이다. 오늘은 바로 실습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불만은 받지 않는다.”
놀랍게도 그런 미친 교사가 있었다.
자신을 김복동이라 소개한 그는, 체육복조차 구매하지 않은 학생들을 기어코 운동장으로 끌고 나왔다.
모래 먼지가 풀풀 날리는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김복동은 설명을 이었다.
“실전 체육. 생소한 과목일 터다. 다들 알겠지만, 성직자는 기초 체력을 중시할 필요가 없다. 정확히는, 기초 체력‘만’을 중시할 필요는 없다. 그 이유가 뭔지 아는 사람 있나?”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대답을 피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뒤 장신의 남학생 하나가 자신 있게 손을 들었다.
“그래. 이름이?”
“배성현입니다.”
자선의 성호, 배성현이었다.
“신체 강화와 관련된 축복을 사용하여, 신체적 능력을 일시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성직자들은 축복으로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럼, 성직자들은 기초 체력을 연마할 필요가 없을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직자도 운동을 한다. 정확히는 성직자이기에 운동을 해야 한다.
김복동은 바닥에 널브러진 추 하나를 들었다. 케틀 벨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추다.
“아니, 오히려 축복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더욱 기초 체력을 연마해야 한다.”
김복동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추를 내던졌다. 추는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날았다. 말 그대로, ‘날았다’라는 표현이 적합했다.
쿠웅──!
추는 운동장 한가운데에 거대한 소리를 내며 착지했다. 추를 중심으로 희뿌연 모래 안개가 일었다.
얼핏 200m 정도는 거뜬히 날아간 것 같았다. 너무 멀어서 솔직히 짐작도 잘 안 됐다.
“방금 나는 축복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오직 신체 능력만으로 추를 던졌다. 대략 250m쯤 날아간 것 같군. 그럼 축복을 사용한다면 어떨까?”
김복동이 신성력을 사출하여 축복진을 그렸다.
하급 근력 강화의 축복.
축복진에서 흘러나온 빛은 이윽고 김복동의 오른팔을 감쌌다. 김복동은 그 상태로 다시 추를 던졌다.
추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하늘을 날았다. 착지는 보이지 않았다. 추가 학교 담장을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넋을 잃었다. 김복동은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하급 근력 강화의 축복은 시전자의 근력을 대략 1.5배 정도 향상시킨다. 그러나, 단련을 하면 그 효율을 3배까지 끌어 올릴 수 있지. 이게 너희가 실전 체육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실전 체육을 통해 축복의 숙련도를 높일 수도 있고.”
김복동은 바닥에 널브러진 추를 하나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잡설이 길었군. 아무튼, 오늘은 너희들의 근력 수준을 확인할 겸 체력 시험을 볼 것이다. 추를 던져서 가장 멀리 보낸 학생은 최고점. 그 아래로 점수가 차등 지급된다. 축복 사용은 자유. 이상, 질문?”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역시나 배성현이었다.
“아니라면 죄송하지만, 거리와 상관없이 만점을 받는 다른 방법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까먹었군. 그래, 어차피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테지만 설명해서 나쁠 건 없겠지.”
김복동은 들고 있던 추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만점을 받을 방법이 있다는 말에, 몇몇 학생들이 눈을 반짝였다.
“먼저, 추를 던져서 50m 지점을 넘긴다. 그리고 자신이 던진 추의 낙하지점을 예측하여, 추를 받아낸다. 이것에 성공하는 자에겐 거리 불문 만점을 주도록 하겠다. 특수 조건이라 할 수 있지.”
반짝거리던 아이들의 눈에 절망이 들어찼다.
추를 던져서 50m 지점을 넘길 수 있는지조차 긴가민가한데, 그것을 자기 손으로 받아내기까지 해야 된다.
추를 50m 이상 던질 수 있는 근력은 물론, 50m 달리기를 2~3초 내로 주파할 수 있는 스피드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일단 나는 못 한다. ‘그분’의 권능을 사용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럼, 바로 시험을 시작하도록 하자. 처음은 반장, 자선의 성호 배성현이다.”
김복동의 호명에 배성현이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그는 기준선에 선 채, 연거푸 한숨을 쉬더니 손끝으로 신성력을 사출했다. 그러고는 빠른 속도로 축복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중급 근력 강화, 하급 근신경계, 하급 회복력…… 그 이상은 모르겠군.]배성현이 사용한 축복은 하나같이 난도가 높은 것들이었다.
모든 축복을 자신의 오른팔에 때려 넣은 배성현은, 이내 추를 던졌다.
부웅─!
추는 하늘을 날았고,
쿵─!
이내 흉악한 소리를 내며 낙하했다.
“배성현, 212m!”
김복동이 배성현의 기록을 알렸다. 그 압도적인 기록에 나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자선의 성호는 교황으로부터 ‘괴력의 축복’이라는 특수한 축복을 하사받는다. 이름 그대로 괴력을 갖게 되는 축복이며, 그 힘의 일부를 타인에게 나눠주는 것도 가능하다. 그야말로 ‘자선’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축복인 것이다.
배성현의 어마어마한 괴력도 물론, 그 축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배성현.”
“네.”
김복동은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기본적인 힘도 좋지만, 축복의 활용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회복력 강화의 축복으로 부상 위험을 줄였고, 그로써 중급 근력 강화의 효율을 최대로 높였다. 아주 잘했어. 다른 학생들도 보고 배웠으면 좋겠군. 따라 할 수만 있다면 말이지.”
배성현의 입꼬리가 실룩실룩 떨렸다. 기쁜 마음을 억지로 삼키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들어가.”
배성현이 자리로 돌아왔다. 학생들이 경외와 질투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배성현은 그 시선을 즐기는 듯했다.
“다음, 구준혁.”
이후 김복동의 호명이 이어졌다.
호명된 학생들이 나와서 추를 던지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대개는 50m조차 넘기지 못하고 골골댔으며, 몇몇 학생들만 두각을 드러냈다.
시험이 종막에 다다를 즈음, 1위는 단연 배성현이었으며, 구준혁이 162m로 2등, 정인아가 143m로 3등이었다.
“도선우.”
그리고 시험의 마지막 차례에 내 이름이 불렸다.
그 무렵에는 아무도 내게 관심을 두는 이가 없었다. 다들 어깨가 아프다며 툴툴대거나, 혹은 과도한 신성력 사용의 부작용으로 앓아누운 채였다.
나는 기준선에 서서 축복을 사용했다.
하급 근력 강화의 축복.
축복진에서 흘러나온 빛무리가 내 팔을 감쌌다. 그리고 남몰래, 로아의 권능을 하나 사용했다.
내가 추를 들어 던질 준비를 하자, 김복동이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댔다.
“준비는 그걸로 끝인가?”
“네.”
“축복 사용은 자유라고 했을 텐데. 굳이 하급 근력 강화의 축복만을 사용한 이유는?”
“아…….”
나는 잠깐 망설였다.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좀 쪽팔린데.
“제가 사용할 줄 아는 축복이 이거 말고는 없습니다.”
김복동은 그제야 납득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풉, 하고 나를 비웃는 소리가 학생들 사이로 드문드문 새어 나왔다. 이래서 말하기 싫었는데!
“그래. 시험 진행하도록 해라.”
김복동이 팔짱을 낀 채로 내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별로 기대도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추를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10.25kg짜리 추는 생각보다 묵직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가볍게 느껴졌다.
근력 강화의 축복을 사용한 덕도 있었지만, 아까 불러들인 로아의 도움이 컸다.
[로아, 보수가 선지자의 부름에 응한다.]보수(Bosu). 생전에 적병 1,000명을 맨손으로 찢어 죽였다던 로아.
상징은 황소. 생전의 업적과 상징에 걸맞게, 그의 권능은 ‘괴력’.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기적에 가까운 괴력이다.
부웅─!
추를 던졌다. 끝에 손이 살짝 미끄러져서, 아쉽게도 배성현의 212m 기록을 뛰어넘지는 못할 것 같았다.
허나, 상관은 없다. 내 목표는 애초에 배성현의 기록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뿌득. 뿌득.
자세를 낮추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보수의 괴력이 고스란히 다리에 전해졌다. 무릎 관절에서 괴상한 소리가 났다.
촤악!
발을 힘차게 내딛어 달리기 시작했다. 모래 먼지가 흩날리는 소리와 함께, 폭발하듯 몸이 앞으로 나아갔다.
내 목표는 처음부터 이것이었다. 내가 던진 추를 내가 잡아내어, 만점을 받아내는 것.
참고로, 보수의 상징은 아까 말했듯 황소.
황소의 특기는 돌진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