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0
제20화
[자선반 도 모 학생에게 부정 표창 및 학교 폭력 의혹을 제기합니다.저는 오늘 아침 미사 때 표창장을 받은 도 모 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도 모 학생은 제게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저는 아직도 그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도 모 학생이 기적을 사용하여 마수들을 속박한 것은 사실이나, 마수가 출현한 경위 또한 의심스럽습니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표창장을 받기 위해 도 모 학생이 마수를 푼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해 자작극이라는 것으로─]
“뭔 개 같은 소리야, 이게.”
“허, 참. 아니, 뭐?”
글을 읽다 만 구준혁이 욕지거리를 했다. 정인아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욕만 안 했을 뿐이었다.
먼저 자선반에 도씨 성을 가진 학생은 나밖에 없다. 대놓고 나를 겨냥하여 쓴 글이었다.
또한, 나는 중학교 때 학교 폭력을 저지른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당했으면 당했지.
게다가 내가 표창장을 받기 위해 마수를 풀었다니. 이런 되도 않는 헛소리를 창출해 내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 아닐까. 쓴 새끼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조회 시작할게요. 다들 치료는 잘 받으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반에서 수상자가 나온 건 분명 기쁜 일이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상황이네요.”
하예진이 조회를 하는 동안에도 나는 그 글만 읽었다. 하예진의 목소리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그 글을 반복해서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화만 쌓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어지러워 도저히 글을 읽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글은 ‘그랑체’라는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학생들은 SNS와 메신저, 문자 등으로 해당 글을 공유했다.
글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이야깃거리가 필요했을 뿐이며, 내가 그 희생양으로 지목되었을 뿐이었다.
1교시 수업이 시작된 뒤에도 떠나간 정신은 돌아올 줄을 몰랐다.
“자, 다들 알다시피, 신성물질학이라는 것은──”
1교시 수업은 .
소위 ‘신물학’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단순히 신성물질학을 줄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듣다 보면 목에서 신물이 올라올 정도로 재미가 없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거나 엄청나게 재미가 없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나는 도중에 기절하듯 잠이 들고 말았다. 아까 일로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수업이 재미가 없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도선우!”
“합. 예? 네?”
자고 있던 나를 깨운 것은 신물학 교사였다. 다른 학생들이 날 보며 웃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시선이, 지금은 나를 끔찍하리만치 울렁이게 했다. 그들 모두가 나를 비웃고 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학교생활 끝났지, 아주. 어? 정신 안 차리지?”
“아, 죄송합니다.”
“자, 그럼 일어난 김에 질문. 대답하면 앉게 해주마.”
신성물질학 교사가 지우개로 칠판을 쓸어 닦으며 말을 이었다.
교사의 머리는 반쯤 벗겨져 있었는데, 벗겨진 부분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몇몇 학생들이 그 광경을 보고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나는 저게 뭐가 웃긴 건지 잘 모르겠다.
“디바이늄. 신성물질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물질이다. 디바이늄과 신성력이 반응할 시 발생하는 현상 세 가지를 설명해 봐.”
아, 이거.
예전에 공부했던 내용이다. 분명 디바이늄과 신성력이 반응하면, 그 현상이 일어난다.
그 현상, 그 현상…….
무슨 현상이었지. 모르겠다.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늘어진 잡념은 기억을 잘라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고 무엇도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 내 말을 따라 하면 된다. 알겠지?]멍한 정신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새어 들었다.
[첫 번째, 팽창 또는 수축. 두 번째, 40.1도의 열 방출. 세 번째, 발광. 그리고 저 대머리는 세 가지라 말했는데 네 가지다. 마지막 네 번째. 과포화 상태일 경우, 폭발.]“첫 번째, 팽창 또는 수축. 두 번째, 40.1도의 열 방출. 세 번째, 발광. 대머리께서는 세 가지라 말씀하셨지만 원래는 네 가지입니다. 네 번째, 과포화 상태일 경우, 폭발.”
“…….”
이상하게 교실 분위기가 싸해졌다. 나는 분명 따라 하라는 대로 따라 했을 뿐인데.
뭐지? 내가 또 뭘 잘못했나? 왜 다들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대머리라는 말까지 그대로 따라 하면 어떡하냐! 대머리 놈이 화나서 얼굴이 시뻘겋게 됐잖아. 자숙 문어가 되어버렸군.]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도선우. 배짱이 아주 좋구나. 대머리라. 마음 같아서는 교권 침해로 간주하고 싶지만, 대답이 완벽했으니 이번 한 번만 봐주마.”
다행히 교사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를 용서해 주었다.
그래도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얼굴은 여전히 새빨갰다. 정말 자숙 문어 같았다.
“자, 뭐 아무튼. 저놈이 설명한 대로, 디바이늄은 신성력과 반응하면 상황에 따라 네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째─”
교사는 내가 한 말에 설명을 덧붙이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역시나 재미는 없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교사의 머리 가죽을 보는 것이 제일 재밌었다.
그 순간,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방금 내 머릿속에 울린 목소리는 렉바였나? 아니, 렉바는 역사나 종교학 같은 형이상학에 조예가 깊은 반면, 신성물질학이나 신성역학과 같은 형이하학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이 없다.
형이하학에 조예가 깊은 것은 렉바가 아니라……
바론 삼디.
그 이름을 떠올린 순간, 뇌리에 그분의 이미지가 스쳤다.
정장. 시가. 실크해트. 럼주. 보랏빛 연기. 그 너머로 보이는 붉은 안광.
[오늘도 할 말이 있어서 왔다. 네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기에. 참, 이번 내용은 필기해 두면 도움이 될 거야.]언제나 장난기 넘치던 말투는 오늘따라 진지하고 엄숙했다. 나는 괜스레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곤 가방에서 안 쓰는 노트를 꺼내 펼치고 펜을 들었다. 바론 삼디의 말을 필기할 요량이었다.
[8시, 시립 공원으로 갈 것. 미끄러움 주의. 지각하지 말 것. 평정을 잃지 말 것. 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바론 삼디가 잠깐 뜸을 들였다.
[불조심.]그 말을 마지막으로 바론 삼디는 사라졌다. 여느 때처럼 모호하고 우회적인 조언들이었다.
지금 당장은 바론 삼디의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정답은 아마, 8시에 시립 공원으로 가면 알 수 있을 것이다.
* * *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김진서는 오늘따라 유달리 피곤했다.
방구석에 위치한 저 흉물 때문이었다. 그것은 가로세로 1m 크기의 거대한 상자였다.
“저걸 언제 다 먹어…….”
김진서가 탄식을 내뱉으며 상자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부스럭, 하고 비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상자에서 젤리 봉투 하나를 꺼내 망연자실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 거대한 상자는 젤리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오늘 아침 도선우에게 주었던 그 젤리였다.
도선우에게 주고, 같이 다니는 친구들에게 하나씩 다 나눠 줬는데도 저렇게 많이 남았다. 이제 더 이상 줄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저걸 혼자 다 먹기에는…… 살이 찔 것 같았다.
‘그냥 도선우한테 다 줄까.’
애초에 이 젤리는 도선우에게 주기 위해 주문한 것이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작은 선물이라도 쥐여 줄 셈이었다.
헌데 도선우에게만 주자니 뭔가, 뭔가 부끄러웠다. 다른 아이들이 괜히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
이 무렵 학생들은 남녀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만 보아도 썸이라 착각하는 애들이 태반이다. 더구나 젤리를 주고받기까지 한다면 정말 터무니없는 소문까지도 퍼질 우려가 있었다.
학사 일정에 지쳐 연애 세포가 말라비틀어져 버린 사춘기 17살 고등학생이란 그런 종족들이었다.
그리하여 김진서가 택한 것이, ‘남는 김에 줬다’ 전법이었다.
마치 젤리가 집에 남아도는 것처럼. 이리저리 아무 데나 퍼 줘도 줄지 않는 것처럼. 친구에게도 주고 선생님에게도 주고, 끝으로 도선우에게도 주면 아주 자연스럽게 선물을 전달할 수 있었다.
덤으로 고맙다는 말도 전할 수 있었고.
하여, 김진서는 아버지에게 젤리를 좀 사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근데 설마 한 박스를.”
대충 한 묶음 정도 사줄 줄 알았건만.
통 큰 그녀의 아버지는 한 박스를 주문해 주었다. 심지어 가로세로 1m짜리 특대 박스를 말이다.
이 정도면 전교생에게 젤리를 돌려도 남을 판이었다.
우우웅─.
수백 개의 잉여 젤리를 어떻게 처리할까 궁리하던 차, 메신저 알림이 울렸다.
[뭐 해?]고준민이었다.
악마종 퇴치 실습 이후 종종 연락을 해오는데, 김진서는 아무리 귀찮고 피곤해도 고준민에게는 답장을 해주었다.
답장을 하지 않으면 고준민이 보낸 수천, 수백 통의 문자가 그녀를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그녀도 좋아서 답장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있지] [젤리는 주문했어?]도선우에게 젤리를 주기로 정한 것도 고준민의 영향이 컸다. 고준민은 젤리를 무척 좋아했고, 만약 선물을 받는다면 젤리를 받고 싶다고 했다.
도선우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부디 좋아하길 바랄 뿐이다.
김진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뒤늦게 고준민에게 답장을 보냈다.
[응] [그렇구나]고준민과의 대화는 언제나 짧게 끝났다. 할 이야기도 없는데 의무적으로 계속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무척 괴롭고 갑갑했다.
어느덧 김진서는 고준민과의 연락을 두렵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 잠시 동안 연락이 오지 않았다. 편안했다. 해방감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너 이거 봤어? 그랑체 올라온 글이거든] [(사진을 보냈습니다.)]그러나 해방감도 잠시, 곧바로 고준민에게 연락이 왔다.
고준민이 보낸 사진은, ‘그랑체’라는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폭로 글을 캡처한 것이었다. 김진서는 스크롤을 내려가며 찬찬히 그것을 읽었다.
“……이게 뭐야.”
자선반 도 모 학생이라니. 자선반에 도씨 성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도선우.
폭로 글은 노골적으로 도선우를 지칭하여 비난하고 있었다. 비난에는 근거가 없었으며, 모두 선동에 불과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댓글 내용이었다. 퇴학시켜라, 죽어라와 같은 내용은 그나마 약과였다.
‘부모가 사이비인 것 아니냐’라는 내용의 악플까지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도를 넘었다.
[괜히 너도 엮일까 봐 걱정되네. 이런 애들은 바로 퇴학시켜야 하는데.] [혹시 도선우라는 애랑 아는 사이야?]고준민은 이런 말도 안 되는 글을 믿는 듯했다. 도선우는 아무리 봐도 학교 폭력을 저지르거나, 표창장을 받기 위해 마수를 푸는 등의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었다.
도선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폭로 글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알긴 알지] [근데 아무리 봐도 그럴 애가 아닌데]김진서는 용기를 내어 도선우를 두둔했다. 고준민은 연락을 보고도 한동안 답장이 없었다.
김진서는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그럴 애 안 그럴 애가 어딨어] [지금 가해자 옹호하는 거 아니지?]“…….”
숨이 턱 막혔다. 무슨 말을 해도 통할 것 같지가 않았다.
김진서는 고준민이 보내준 캡처본으로 글을 다시 읽었다.
아무리 봐도 도선우에게 악감정을 가진 누군가가,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쓴 글이었다. 적어도 김진서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글을 읽던 그녀는, 마침내 보고 말았다.
이 허무맹랑한 거짓 폭로 글의 추악한 진실을.
김진서는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들어 고준민에게 문자를 보냈다.
* * *
나는 바론 삼디의 조언대로 저녁에 시립 공원으로 왔다. 아직 8시까지는 1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저녁의 싸늘한 공기가 콧등을 스쳤다. 공원은 몹시 조용했다. 그저 침묵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나를 향한 거짓 폭로 글을 다시 읽었다. 글은 외울 정도로 많이 읽었으니 이제 그만 읽도록 하고, 차라리 댓글을 읽기로 했다.
댓글이 수백 개나 더 달려 있었다.
‘부모가 사이비인 것 아니냐’라는 악플이 가장 많았다. 우리 부모님은 진짜 사이비였기에 별 타격은 없었다.
이것도 읽다 보니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손이 덜덜 떨리고 숨이 멎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그냥 웃으면서 보게 된다.
이윽고 8시가 되었다.
멀찍이 누군가가 공원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왔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음에도 그 특징이 뚜렷한 탓에,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 누군가 했더니.”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