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01
제201화
“정인아는 아파서 못 온다고 하고……. 미안한 얘기지만 너네 방학이 없어져서, 조만간 다시 시험 기간이다. 준비 똑바로 해. 계속 놀지만 말고.”
하예진 대신 나온 유정학이 조회를 했다. 곧 시험 기간이라는 말에 학생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렀다.
그러고 보니 요즘 계속 하예진이 아니라 유정학이 담임 노릇을 하고 있었다. 종종 일이 있어서 교무실에 들를 때에도, 하예진의 얼굴만은 보이지 않았다.
정인아는 결석이었다. 오늘까지 하면 내리 일주일 동안 결석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연락을 해보아도 그녀가 받질 않았다. 도대체 어디가 얼마나 아픈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아, 도선우는 끝나고 잠깐 교무실로 내려와라.”
유정학은 그 말을 남기고 교실을 나갔다. 하예진이면 모를까, 유정학이 나를 따로 교무실로 불러낸 적은 없었기에 나는 조금 의아한 마음으로 교무실로 내려갔다.
그는 나를 앞에 두고서도 피로에 찌든 얼굴로 모니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내가 부르자 유정학은 조금 놀란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맞아. 내가 내려오라고 했지. 참……. 요즘 정신이 없어, 정신이…….”
유정학은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책상 위에 늘어진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중 하나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나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았다. 유정학은 서류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너 저기, 걔. 오늘 안 온…… 정인아. 걔랑 친하지?”
“네, 친합니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유정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그거 정인아 성적표인데, 오늘까지 일단 확인은 시켜줘야 하거든. 학교 오면 그때 주려고 그랬는데, 뭐 일주일 동안 아프다고 하니 별수 있나.”
“아…….”
“직접 전해주고 저기, 오른쪽 아래 이름 위에 사인도 좀 해달라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유정학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굽은 목과 충혈된 눈이 몹시 피곤해 보였다.
나는 그에게 묵례를 하고 곧바로 교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인아에게 문자를 해보았다.
“…….”
답장은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다시 휴대폰을 확인해 보았지만, 역시나 답신은 오지 않았다.
늘 정인아와 밥을 같이 먹었는데, 그녀가 오지 않으니 따로 밥을 먹을 친구가 없었다. 솔직히 혼자 먹어도 별 상관은 없고, 정 뭐하면 강대만을 찾아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강대만은 언제나 밥을 먹은 뒤에 운동을 해서, 그와 함께 밥을 먹은 날이면 나도 예외 없이 운동을 해야만 했다.
게다가 요즘 강대만은 한수련과 같이 있는 날이 많아졌다.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가, 강대만과 한수련 사이에 눈치 없이 끼게 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몰랐다.
[혼자가 싫으면 내가 말벗이 되어줄 수는 있지.]렉바가 말했다. 그가 말벗을 해주는 것은 좋지만, 식당에서는 그의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대답하지 못하고 렉바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은 조금 괴로운 일이었다.
“흠.”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결국 혼자 먹기로 하고 교실을 나섰다. 그때, 앞문에서 교실 안쪽을 기웃거리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늘 성하연과 함께 다니던, 긴 회색 머리칼이 눈에 띄는 그 친구였다.
이름이…… 아마 김라희였을 것이다.
“……아!”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는 탄성을 내지르며 나에게 다가왔다.
“야, 너 혹시 하연이랑 연락돼?”
김라희가 다짜고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성하연에게 연락이 안 온 지 꽤 됐다. 그동안은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그녀가 먼저 연락을 보내고는 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문자 한 통 받아본 일이 없었다.
성유다와 만난 날, 성유다가 성하연에게 뭔가 말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들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아니, 요즘 연락 안 하는데. 왜?”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김라희가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학교를 안 나와서. 연락도 안 되고……. 진짜 아는 거 없어?”
“없는데.”
“아이, 씨……. 왜 몰라?”
“뭐?”
애초에 나는 성하연이랑 친했던 적이 없었다. 성유다와 만난 날 포석을 깔기 위해서 잠깐 친한 척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그때 했던 이야기는 전부 분위기를 풀기 위해 한 거짓말에 불과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서 나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니, 성하연이랑 같이 다니더니 성격이 옮았나?
“그걸 왜 나한테 지랄─”
“야, 도선우! 오늘 밥 나가서 때리실?”
험한 말이 나오려던 차에, 그리 반갑지 않은 얼굴이 하나 더 등장했다. 마유현이었다.
그는 어디서 운동을 하고 온 건지 땀을 뻘뻘 흘리며 다가왔다. 그는 나와 김라희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김라희를 엄지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얘 뭐냐? 이거 성하연 친구 아니야?”
“…….”
김라희는 말없이 마유현을 응시하다가, 그대로 뒤돌아서 떠나버렸다. 마지막으로 보인 표정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게 떠올라 있었다. 마유현의 언행에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물론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오히려 수고를 들이지 않고 김라희를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뭐야?”
마유현은 그런 김라희를 잠깐 쳐다보았으나, 이내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야, 아무튼 오늘 밥은 나가서 먹자. 오늘 급식 밥 검찰 총장이다. 이건 진짜 못 먹어.”
“너 친구 없냐?”
“뭐, 너도 없어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냐?”
마유현이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근데 학교를 어떻게 나가게. 경비가 못 나가게 할 텐데.”
“담 타면 되지. 우리 학교 담 별로 안 높잖아.”
“귀찮아.”
“아이, 새끼…….”
마유현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나는 마유현의 제안에 응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뭘 먹든 맛이 안 느껴지는데,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급식을 두고 굳이 나가서 밥을 먹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마유현이 뭔가 생각난 듯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야, 생각해 보니까 너 아버지한테 받은 것 중에 논문 같은 건 없었냐?”
“……논문?”
“서류나, 아니면 책도 되고, 아무튼 뭐 그런 거 있잖아. 기록 같은 거.”
그런 것은 받은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가 주술에 대해, 그리고 때로는 신성력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며 여러 논문과 서적을 썼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중에 풀려 있던 것은 성전 당시 말소되었고, 그렇지 않은 것은 전부 행방이 묘연하기 때문이다.
“너……. 어디까지 알고 있지?”
나는 마유현에게 성큼 다가가며 물었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점심시간이라 학생들은 없었지만, 복도 천장에 설치되어 있는 CCTV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군의 권능을 쓰면 저것도 무력화시킬 수 있겠지만……. 굳이 학교에서 권능을 쓸 필요는 없겠지.
“그래, 나가서 밥이나 먹자.”
“……아니, 생각해 보니까 그냥 급식 먹는 게 나을지도?”
마유현이 뒷걸음을 치며 말했다.
“나가자고. 아까 나가서 먹자며?”
조금 더 강압적으로 밀어붙였다.
나는 아버지의 연구 기록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반면 마유현은 그러한 아버지의 연구 기록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걸 알 필요가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다른 친구랑 먹기로 했던 거 같다. 선약이라 어쩔 수 없네, 미안하다!”
“야.”
나는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널 죽여도 정보는 다른 데서 충분히 얻을 수 있어. 그게 번거로우니까 널 살려두고 이용하는 거고.”
“…….”
“네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정보를 얻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되면, 나는 너를 죽인다. 쓸모도 없고 위험하기만 한 사람을 살려둘 이유가 없지.”
“……그럼 너도 위험해진다고, 저번에 말했던 것 같은데.”
“뭐 어쩌라고.”
나는 오군의 권능을 사용할 준비를 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죽어도 돼. 후계자는 이미 정해 놨으니까. 죽기 전에 너 하나 데려가기가 어려울 것 같냐?”
마유현은 내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떨렸다.
“에이, 씨발. 괜히 말했네…….”
마유현은 불만스럽다는 듯 중얼거리며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담을 넘는 일은 쉬웠다. 피렌체 담은 꽤 낮은 편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낮은 구간이 있었다.
그곳을 통해 담을 넘자,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서도 쉽게 학교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사람이 잘 드나들지 않는 외진 곳이기도 해서 들킬 염려도 없었다.
담을 넘고 난 뒤, 마유현은 학교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나를 데려갔다. 간판이나 인테리어에 멀쩡한 구석이 없는 몹시 허름한 식당이었다.
“망한 거 아니냐?”
“원래 이런 데가 진짜 맛집이야. 이야기 나누기에는 여기가 편하기도 하고.”
마유현의 말대로, 이곳은 이야기를 나누기가 편했다. CCTV는 당연히 없었고, 주인장은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올 때 말고는 주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손님도 우리 말고는 없었으니까.
마유현이 추천한 음식을 시켜서 먹어 보았지만 별다른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유현은 아주 맛있다는 듯이 음식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가 식사를 거의 다해갈 무렵 나는 입을 열었다.
“아까 하던 얘기 계속해.”
“아, 어어. 잠깐만. 근데 다 먹고 얘기하면 안 되냐? 먹으면서 말하면 체할 거 같은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었다.
마유현은 식사를 마치고 난 뒤, 물을 마시고 입까지 닦고 나서야 비로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무튼 저, 연구 기록 같은 거 없냐고 물었었지, 아까?”
“그래.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없어.”
“없다고? 흠…….”
마유현은 물을 벌컥벌컥 마신 뒤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럼 그냥 없나 보다.”
“오군.”
쐐애액─!
오군을 부르자,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젓가락이 마유현의 오른쪽 눈을 향해 날아들었다.
탁.
나는 그것이 마유현의 눈알을 꿰뚫기 전에 잡아서 멈추었다. 열기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젓가락이 마유현의 눈동자 앞에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마유현의 얼굴은 단숨에 사색이 되었다.
“연구 자료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본데.”
“…….”
“앞으로 거짓말은 하지 마. 두 번은 못 막아주니까.”
나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물에 담그며 말했다. 열기가 식으면서 칙, 소리가 났다.
마유현은 식은땀을 닦아내고,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성유다랑 저, 너희 아버님이랑 예전에 협업했던 건 알지? ‘노아의 방주’도 그중 하나고.”
“알아.”
자선의 성호 재선출 시험을 봤을 때, 방주의 주인인 노아가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 노아는 아버지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방주를 만든 사람 중에는 아버지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반지에 깃든 주술을 통해 엿본 기억. 그 기억 속에서 성유다와 아버지는 친구였다.
마유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성유다가 가지고 있을 거야.”
“그렇게 단정 짓는 근거가 있나? 버렸을지도 모르는데.”
“버렸을 리는 없어. 도명…… 너희 아버님이 버릴 리는 당연히 없고. 성유다도 그건 못 버려.”
“가지고 있어봐야 위험하기만 할 텐데. 애초에 우리가 아니면 그 논문은 가치가 없어.”
여기서 ‘우리’라는 말은 부두교를 칭했다.
아버지는 주술과 로아의 권능을 연구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술을 깊게 연구했다.
부두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로마니카교인 입장에서, 아버지의 연구 자료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었다. 가지고 있어봐야 위험하기만 하다.
부두교도라거나, 부두교와 유착 관계에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될 수도 있으니.
“그럼에도 아직 버리지 않았다는 건, 그 자료가 우리에게도 가치가 있다는 뜻이겠지.”
마유현이 말했다.
오군의 권능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는 뜻이었다.
* * *
마유현은 연구 자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제법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마유현은 그다지 영양가 있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다만, 성유다가 연구 자료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사실 하나만큼은 진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나는 그가 한 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성유다가 연구 자료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걸 가져와야 한다.
그러나 가져올 방법이 없었다. 성유다는 저번 일로 나를 경계하고 있으므로.
성하연을 이용하면 편하겠으나, 문제는 그녀가 학교를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성유다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어 연락도 해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전화가 왔다는 걸 몰라서 못 받은 게 아니었다. 성하연은 내 전화를 일부러 거절하고 있었다.
나는 의미 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성유다를 다시 만날 방법을 생각했다. 정확히는 그가 가지고 있을 연구 자료를 빼 올 방법에 대해서.
당장 생각나는 건 성유다의 저택에 몰래 들어가서 자료를 빼 오는 방법이지만, 너무 위험해서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선교여행도 조만간이구나.]침대에 누워 있던 내게 렉바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준비할 건 없느냐?]“편지랑……. 성물 조금. 그리고 사전 작업도 조금 해야죠.”
강원교단의 간부인 윤창수가 내게 준 편지는 꼭 챙겨야 한다. 그게 없으면 박물관 직원의 협조를 구할 수 없을 테니까.
혹시 모르니 성물도 챙기고, 반지와 몸에 주술을 각인해 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되도록이면 몸에 각인한 주술을 사용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일단 각인은 해놓는 편이 좋다.
[그리고, 또…….]렉바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갑자기 왜 말을 멈췄나 했는데, 휴대폰에서 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손을 뻗어 휴대폰을 가져왔다. 정인아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나는 뜸 들일 것도 없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뭐 해, 너.”
– …….
급한 마음에 말투가 날카롭게 나와버렸다. 그 탓인지 정인아는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이 깊은 정적을 만들었다.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정인아의 숨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왔다. 그 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집이야? 뭐 하고 있어. 몸은 괜찮은 거야?”
‘그 친구가 갈 때가 됐다는 뜻이지.’
바론 삼디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그의 모습을 찾아보았지만 뺀질거리는 해골은커녕 실크해트의 끄트머리도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바론 삼디와 함께 나타나던 보랏빛 안개조차도.
오늘 점심까지만 해도 바론 삼디는 내 곁에 있었다. 정인아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바론 삼디는 갑자기 사라졌다.
“야, 정인아. 너 지금 어디……!”
뚝.
전화가 끊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