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02
제202화
사라진 바론 삼디. 전화를 하는 동안 들려오던 가느다란 숨소리와 갑자기 끊겨버린 전화. 모든 것이 불길했다.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보려고도 했다.
바론 삼디는 평소처럼 여자를 꼬시러 간 것이다. 정인아도 내게 전화를 잘못 걸어서,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화가 끊긴 것도 마찬가지다. 전화를 잘못 걸었듯이 잘못 끊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 쪽으로 생각이 기울자, 나는 더 이상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됐다.
바론 삼디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태연하게 정인아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정인아의 책상 위에 국화꽃이 올려져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홀로 남겨질 정윤아가 떠올랐다.
[돌아가거라.]렉바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밖이었다. 나는 정인아의 집 방향으로 무작정 걷고 있었다.
식은땀이 났다. 추운 게 아니었는데 이가 덜덜 떨려서 맞부딪치고 있었다. 고양이가 생각난다. 자취방과 함께 불타 없어진 고양이가.
[별일 아닐 테니, 돌아가거라.]렉바가 말했으나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자기 몸 챙기는 건 너보다 그 아이가 더 잘할 거다. 장담하지. 아팠으면 진작 병원에 갔겠지.]“병원에 가지 못할 정도로 아플 수도 있어요.”
[네 나이 또래 애들은 그 정도로 아플 일이 없다. 무엇보다 인간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나는 렉바의 말을 무시하고 걸었다. 인간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반만 맞았다. 인간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기도 했지만, 때로는 허무할 만큼 쉽게 죽기도 한다.
[무엇보다, 죽는다고 한들 그게 뭐가 잘못됐느냐?]“이건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그래, 너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구나.]렉바는 내 말을 들은 체도 않고 말을 잇는다.
[네가 지금 두려워하는 것이 뭐지? 정인아라는 아이의 죽음이 두려운 것이냐?]“…….”
[아니면, 속죄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 두려운 것이냐?]나는 말없이 걸었다.
렉바의 말이 맞다. 나는 정인아의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곧 선교여행이 코앞이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정윤아가 사람으로 돌아오는 것도 조만간이다. 그 전에 정인아가 죽는 것이 두려웠다. 죄를 씻을 기회조차 없어질 것이 두려웠다.
어쩌면 렉바의 말처럼 정인아는 멀쩡한 상태일 수도 있다. 내가 별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을 떨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만약이라도 정인아가 잘못된다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막지 않은 것이 된다면, 그에 대한 후회가 너무 클 것 같았다.
[그래, 이것 또한 네 선택이냐.]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또한 선택이었다. 나는 내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면 시간이라도 잘 확인하거라.]렉바는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 * *
정인아의 집 앞에 도착해서, 그녀에게 전화를 한 번 더 걸어보았다.
예상은 했지만 받지 않았다.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노크도 해보았지만 반응이 없다. 초인종을 한 번 더 누르고 기다려 보았지만 역시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
아무리 깊게 잠들어 있다고 해도,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깨는 게 보통이다. 그 이전에 전화가 왔을 때 깼어야 정상이다.
애초에 지금은 그 정도로 깊게 잠들 만한 시간이 아니었다. 해는 졌지만, 아직 밤이라고 할 만큼 깜깜해지지는 않은 때였던 것이다.
나는 정인아의 현관에 달린 도어 록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오군.”
오군의 권능을 썼다. 이걸로 도어 록을 조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오군이 내게 권능을 빌려주지 않고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거짓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겠지.]오군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우면서도, 동시에 불같이 뜨거웠다. 말투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그가 싫어하는 것은 거짓말, 그리고 도둑이었다. 그러므로 현관문을 딸 때 오군의 권능을 빌릴 수는 없을 것이었다.
“보수.”
그럼 그냥 힘으로 문을 부수면 된다. 나는 보수를 불렀다.
[제물 부족. 빌려줄 수 없다! 힘을.]“분명 그저께 제물을 줬던 것 같은데.”
[……사실, 조금 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했다. 선지자는 지금 휴식이 필요한 상태인 것 같다.]“…….”
보수가 말했다.
모든 로아가 나의 판단에 반대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이런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마유현을 가두고 심문할 때에도, 강지아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방에서 나왔다. 로아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니, 로아는 처음부터 그랬지. 그들은 언제나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지금껏 내 뜻대로 된 일이 있었던가? 나는 그저 상황에 휩쓸리기만 했으며, 그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부득불 선택했을 뿐이었다.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나는 홧김에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신성력을 사출했다.
축복을 쓰고 힘을 주면, 문고리가 부서지든 문이 부서지든 어쨌거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었다.
철컥.
그러나, 신성력을 사출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문고리를 돌리기도 전이었다. 열린 문 틈새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정인아가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이 정인아라는 사실을 눈치채자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낯설게 보였다.
내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녀의 얼굴에서 정윤아의 인상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정인아의 낯빛은 초췌하게 변해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정적 속에서, 정인아가 갑자기 문을 닫으려고 들었다.
콱!
얼른 문틈에 발을 밀어 넣었다. 정인아는 문을 닫지도, 열지도 못한 채 버둥대다가 이내 찌푸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가늘어진 그녀의 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인아가 한숨을 쉬며 현관에 걸려 있던 안전고리를 풀고 문을 열었다.
“……왜 왔어,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는 몹시 작았다. 큰 소리를 낼 여력이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주머니에 꾸깃꾸깃하게 접어 넣어두었던 그녀의 성적표를 꺼냈다.
“이거, 성적표 전해주러.”
* * *
사실은 정인아가 많이 아파 보여서, 예전처럼 죽 같은 간단한 요리라도 해주고 가려고 했다.
아파서 쉬는 동안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았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인아는 나를 한사코 집에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당연히 안 되지! 네가 우리 집에 들어오려는 것부터가 이상하잖아, 이런 시간에!”
“뭐가 이상해?”
“……이상하다면 이상한 거야.”
정인아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밖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그녀의 집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가서 벤치를 찾아 앉았다. 어느덧 하늘이 깜깜해진 시간이었다.
그녀는 내 옆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거나 고개를 숙여 땅을 보거나, 이따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러나 나를 보기만 했을 뿐,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얼마나 아팠던 거야. 학교를 일주일이나 쉴 정도면.”
“……얼마 안 아팠어.”
정인아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그냥……. 학교 가기 싫어서 꾀병 부린 거야.”
“그래?”
정인아는 누가 봐도 아파 보였다. 몸은 전보다 더 말라서, 이렇게 가늘어지다가 나중에는 사라져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괜찮은 척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 보이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굳이 추궁하지 않았다. 나도 그럴 때가 있으니까.
“왜 가기 싫었어?”
“……막 가기 싫고, 그런 것도 아니었어. 다음 주부터는 다시 가야지. 한 일주일 정도 쉬니까 학교도 다시 가고 싶더라.”
정인아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웃는 표정이 어색했다. 억지로 지은 웃음이었으니 어색하게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그녀는 여전히 거짓말이 서툴렀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왜 가기 싫었어.”
“아니…… 가기 싫었던 게 아니라. 그냥 좀…….”
정인아가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려 보았지만, 그녀는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할 뿐 그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싣고 온 공기가 무거웠다.
나는 입을 다문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 안 해도 돼.”
“……무슨 말이야?”
“지금은 말하기 싫은 거 아니야?”
그녀에게도 당장은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 누군가에게 말한다고 해서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고민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녀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이 많다.
사실 나는 그녀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녀가 지금 당장 말할 수 없는 것까지 꼬치꼬치 캐물어서 말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말하기 싫은 건, 아니야.”
그녀는 고개를 느리게 저으며 말했다.
“그럼 뭐야.”
“그냥……. 별거 아닌 일인데, 별거 아니라고 생각되는 게 싫어서 어떻게 말할까 고민 중이었어.”
“그냥 말해. 별거 아니라고 생각 안 하면 되잖아.”
“아잇, 기다려. 재촉하지 마. 어차피 말할 거야.”
정인아가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녀는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잠자코 있다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숨을 내쉬며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아까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부모님이 이번 주…… 아니, 저번 주에는 오셨어야 했는데. 또 일정이 미뤄져서 보름 뒤에나 오실 것 같다고 해서.”
“응.”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계속 그러니까 조금 우울했던 것 같아. 집에 혼자 있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또…….”
그녀는 말을 하다가 흘깃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맞다, 이건 그냥 말하는 건데. 저저번 주말에 너랑 성하연이랑 같이 있는 거 봤어.”
“저저번 주말이면…….”
성하연이랑 같이 있는 걸 봤다고 하니, 아마 성유다를 만난 그날일 것이다.
“그때 성하연이랑 같이 있긴 했어. 만날 일이 있어서.”
“아, 그래? 걔랑 만날 시간은 있으면서 나한테 연락할 시간은 안 났나 봐?”
“그때 내가 연락을 안 했나?”
“이거 봐, 기억도 못 하네.”
정인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는 이 정도로 화를 낼 일인가 싶어 입을 열었다.
“그게 그렇게 서운했어? 학교도 안 나올 정도로.”
“당연히……. 아니, 그것 때문에 안 나간 게 아니잖아! 아까 내가 뭐라고 그랬어. 그냥 말하는 거라고 했지.”
“그냥 말하는 거면 굳이 지금 말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
“……그래, 좀 서운했다. 뭐 그럼 안 되냐?”
정인아가 퉁명스럽게 수긍하며 말을 이었다.
“원래 성하연이랑 친했어?”
“원래가 아니라 지금도 안 친한데.”
“뭐? 그럼 그때는 왜 같이 있었어?”
“성하연이 아니라 성유다…… 전 추기경님 뵈러 간 거야.”
나는 그냥 성유다라고 말하려다 황급히 존칭을 덧붙였다. 정인아는 놀라서 커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눈을 깜빡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바보 같고 조금 귀여웠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뭐야, 그럼 그냥 오해한 거였네.”
“그런 셈이지. 왜 혼자 오해하고 난리야?”
“……뭐? 너 말을 왜 그렇게 하냐? 맞을래?”
정인아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다가 나를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고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다행이네. 오해라서.”
“이거 때문에 학교 안 나온 거였네, 결국.”
“아니라고, 바보야! 내가 그런 좀생이로 보이냐. 이유로 따지면 그것보다…….”
씩씩대며 말하던 정인아가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정인아가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보았다. 나도 그녀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나무 위로 새 둥지가 보였다.
“그것보다…….”
그녀는 둥지를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 뭐?”
“……아, 그래! 너 때문에 서운해서 아팠나 보다. 네 잘못이야, 다.”
“그게 왜 그렇게 돼?”
“뭐, 너 때문에 아팠으면 네 잘못 맞잖아.”
“허…….”
나는 적당히 그녀의 말에 어이가 없는 시늉을 해주었다. 그녀를 이토록 초췌하게 만든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그 이유를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정인아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두통이 있는 모양이었다.
“머리 아파?”
“조금……. 근데 괜찮아. 슬슬 돌아갈까?”
정인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번에 내게 지어 보였던 미소는 조금 어색했다. 그게 마음에 걸렸지만,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녀를 집 앞까지 바래다줄 생각이었으나, 정인아가 거절했다. 한사코 바래다주려고 하자, 정인아는 한숨을 쉬며 손가락으로 멀리 있는 가로등 하나를 가리켰다.
“그럼 저기까지만 바래다줘. 집까지는 안 돼. 괜히 내가 네 시간 뺏는 것 같으니까.”
“저번처럼 또 집 가다 쓰러지는 거 아니지?”
“무슨, 나 그렇게 안 아프다니까. 별 걱정을 다 하네.”
정인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쩐지 쓸쓸한 미소였다. 나는 그녀가 가리켰던 가로등까지 그녀를 바래다주었다.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려는 찰나, 가로등 밑에서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잠시 기다렸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마음을 먹은 듯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 선교여행. 언제 가는 거였더라?”
“예정대로면 모레.”
“얼마나 갔다 와?”
“2박 3일이었나, 3박 4일이었나……. 아마 2박 3일일 거야.”
“아하…….”
정인아는 떨떠름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속눈썹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내리깔았던 시선을 다시 들어 나를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미소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거, 혹시 안 갈 수도 있어?”
그녀가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