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05
제205화
“여행에 술을 안 들고 오는 게 정신 나간 거지.”
마유현은 자신의 행동에 한 점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그런 태도를 보이니 오히려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가 가져온 술을 훑어보았다. 종류도 참 다양하다. 맥주도 있고, 값비싼 양주도 있다.
그중 보라색과 금색으로 화려하게 병을 장식한, 유난히 비싸 보이는 술에 시선이 꽂혔다.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술이었다.
“……야, 저건 먹지 마라.”
나는 턱짓으로 그 술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유현이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댔다.
“아니, 왜? 이거 깔 생각에 얼마나 설렜는데?”
“먹지 말라면 먹지 마.”
나는 강대만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강대만은 짐을 푸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듣고 있을 것이었다.
“……이유는 나중에 알려줄 테니까.”
강대만이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건 염만근의 공장에서 제조한, 도취 주술이 각인된 술이었다. 뚜껑을 열면 띠가 끊어지면서 각인해 두었던 미량의 도취 주술이 발동되고, 그 안개가 용액에 스며드는 구조다.
염만근이 만든 술을 다른 성직자들이 좋다고 즐기는 건 상관없다. 염만근의 술이 잘 팔린다는 것은, 부두교의 재정 상황도 그만큼 나아진다는 뜻이니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 술을 마시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술에 취한 사람은 위험하다. 더구나 술만 취한 게 아니라, 주술에도 취한 사람은 더더욱 위험하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강대만같이 덩치 크고 힘 좋은 놈이 저 술을 먹고 취했다가는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이게 이번 여행의 주인공격인 놈인데. 이걸 안 까는 건 말이 안 되는데…….”
“뒤지게 맞기 싫으면 말대꾸하지 마라.”
“흠……. 알겠다!”
마유현은 의외로 쉽게 수긍했다. 그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염만근의 공장에서 제조한 술을 캐리어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는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근데 진짜 먹지 마?”
“어, 그거 까면 병으로 네 대가리 깬다.”
“허……. 그럼 다른 술은 먹는다? 너도 먹을 거지?”
“꺼져. 안 먹어.”
나는 술을 싫어했다. 예전에 삼촌이 술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 * *
시간이 되어, 우리는 한대호가 말한 지하 1층 강당으로 내려갔다. 강당이라고 했지만, 여러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가 비치되어 있는 탓에 헬스장이나 다름없는 광경이었다. 강대만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웃으며 기구를 둘러보았다.
“운동을 못 하면 어쩌나 했는데, 이런 곳이 있었군! 참으로 다행이다!”
강대만은 시험 삼아 강당에 있는 운동 기구를 사용해 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여자애들과 한대호가 왔다.
한대호는 왼쪽 어깨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전부 온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쿵!
한대호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려놓는 소리만 들어도 엄청나게 무거운 것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손바닥을 탁탁 턴 그는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우리를 빙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를 굳이 이곳에 모은 이유는, 전달할 물건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한대호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꺼낸 것은 통신용 성물인 ‘모세의 떨기나무조각’이었다. 그는 이어서 이름 모를 목걸이 형태의 성물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주먹만 한 크기의 자그마한 구체를 꺼낸 뒤, 한대호는 가방을 닫았다.
그는 먼저 떨기나무조각과 목걸이를 우리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긴급한 경우, 모든 통신은 떨기나무조각을 통해서 한다. 떨기나무조각은 현재 사우디에 머물고 있는 다른 성직자들과도 연결되어 있으니, 반드시 ‘긴급한 상황’에서만 사용해야 한다.”
한대호의 말투는 근엄했다.
“다음으로, 너희에게 준 목걸이는 방어형 성물이다. 성유다 전 추기경님께서 성전 이후에 개발한 물건이야.”
순간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성하연을 향했다. 성하연은 몸을 움찔 떨었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대호가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슬람의 극단 조직이 사용하는 탄환은 특수하다. 그 탄환에 맞으면, 일시적으로 축복 및 치유의 효과를 받을 수 없게 되지.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신성력과 상극인 어떤 약물을 탄환에 심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
아이들의 표정이 굳었다. 분명 안전하다고 해서 왔는데, 갑자기 극단 조직이니, 탄환이니 하는 이야기를 들은 탓이었다. 한대호는 그런 아이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무서워할 건 없어. 그 목걸이만 제대로 차고 있으면, 결코 죽을 일은 없을 거다.”
한대호가 설명을 이었다. 목걸이는 성물이며, 차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신성력이 막을 이루어 전신을 감싼다.
총격과 같은 강한 충격을 받으면, 막은 충격을 흡수하는 동시에 깨진다. 즉 1회용 방어막인 셈이었다. 그 목걸이는 여타 성물과 달리 이름이 없었는데, 제작자인 성유다가 이름 붙이기를 원치 않았다고 한다.
“애초에 그 목걸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는 게 제일 좋지.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 하는 것이 내 역할이기도 하고. 자, 그럼 마지막으로…….”
한대호는 그렇게 말하며, 주먹만 한 크기의 작은 구체를 들어 보였다.
그가 신성력을 사출하여 구체에 집어넣었다. 신성력은 구체를 중심으로 길쭉하게 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창의 형태로 변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빛의 창이었다.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창끝이 찬란하게 빛났다. 그 모습이 어쩐지 눈에 익었다.
실기고사가 있었던 날, 마유현은 저것과 똑같이 생긴 창으로 내 옆구리를 찔렀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외형에 사소한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빛의 창’이라는 점에서는 같았다. 나는 흘깃 마유현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이것도 성유다 전 추기경님이 만드신 거라서 이름이 없다. 그래서 그냥 휴대용 창이라고 부르면 되는데……. 뭐, 중요한 건 아니고. 대충 호신용 무기라는 것만 알아 둬라.”
한대호는 그렇게 말하며 창을 하늘에 던졌다. 그러자 찬란한 빛을 내뿜던 창은 사라지고, 초라한 구체만 남았다.
신성력을 주입한 뒤 쥐고 있는 동안은 창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놓치는 순간 다시 구체로 돌아가는 구조인 것 같았다.
“아무튼, 이걸 누구에게 맡길지 여기서 정해야 한다. 자원할 사람 있나?”
한대호는 구체를 바닥에 통통 튕기며 말했다. 구체는 제법 탄성이 있어서, 바닥에 튕겨도 깨지거나 형태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농구공처럼 다시 튀어 올랐다.
정적 속에서 구체가 튕기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 아무도 쉽사리 입을 열지 않던 차에, 강대만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한대호 단장님께서 쓰는 것이 제일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내가 쓰면 손해야.”
한대호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런 거 없이도 내 한 몸 스스로 지키는 것 정도는 가능해. 근데 너희는 아니지. 그리고 이걸 사용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는 내가 너희 곁에 없거나, 혹은 너희를 도울 수 없는 상황일 거다. 그러니 너희 중 한 명이 가지고 있는 것이 맞아.”
“아, 그럼 도선우가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강대만은 그때, 대뜸 나를 추천했다. 한대호가 고개를 갸웃대며 나를 보았다.
“너, 창도 쓸 줄 아냐?”
“아뇨?”
[보수는 쓸 줄 안다!]나는 고개를 저었다. 보수가 끼어들어서 말했지만 무시했다. 보수가 창을 잘 다루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저걸 내가 들고 다닐 수는 없다.
저런 걸 가지고 있으면 괜히 다른 사람 눈에 띄기 십상이고, 그럼 박물관에서 역행의 지팡이를 훔치려는 계획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한대호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창을 못 다루는 사람이 이걸 들고 있으면 짐이나 다름없지. 그럼 도선우, 네가 생각하기에 이걸 누구에게 주는 것이 맞을 것 같나?”
“…….”
한대호는 내게 선택권을 넘겼다.
별것도 아닌데 괜히 고민하게 됐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마유현이었다. 실기고사를 치를 때, 그가 창을 쓰는 모습을 본 탓이었다. 그러나 그는 창을 쓰는 법을 알고 있다 뿐, 능숙하게 다루는 것 같지는 않았다.
“김진서가 좋을 것 같습니다.”
달리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김진서의 이름을 댔다.
그녀가 창을 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성전사과 실습이나 대련을 할 때 검을 쓰는 모습을 종종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검을 잘 쓰면 창도 잘 쓸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달리 이유가 있나?”
한대호는 나와 김진서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착하고 임기응변에 능해서, 비상시 무기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흠……. 그래?”
한대호는 제 턱을 쓰다듬으며 김진서를 쳐다보았다. 김진서는 시선을 내리깐 채 요지부동이었다. 한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반대 의견 없으면 김진서 학생에게 맡기는 것으로─”
“반대하겠습니다.”
그때, 여민서가 기다렸다는 듯 끼어들었다. 그녀는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침묵했다가, 이내 고개를 들며 말을 이었다.
“한대호 단장님께서 말씀하신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적은 누구입니까?”
“……누구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 적이 존재치 않는 긴급 상황도 있으니까. 그러나 특정한 적이 있는 경우라면, 이슬람 극단 조직과 사탄교도일 가능성이 높을 거다.”
“이슬람 극단 조직은 사람 아닙니까?”
“사람이지.”
“그럼 긴급한 상황에서, 김진서는 저 창으로 사람을 찔러야 한다는 말이네요.”
여민서는 오만한 투로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한대호의 표정이 차츰 굳었다.
“그렇다면 김진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찌르기 직전에 망설일 게 분명합니다. 찰나의 망설임이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를 일이니, 차라리 제가…….”
“내가 이 얘기를 안 했군.”
한대호가 여민서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구체를 쥔 한대호의 팔에 핏줄이 돋아나 있었다.
“이건 비살상 무기다. 오직 제압만을 위해 만들어진 무기지. 알기 쉽게 말하자면, 조금 길쭉한 전기 충격기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
“…….”
“내가 너희에게 진짜 창을 줄 수는 없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기도 하고, 어쩌면 살인을 강요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여민서는 할 말을 잃고, 그저 입을 반쯤 벌린 채 서 있었다. 한대호는 그런 그녀를 검지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고맙다. 하마터면 이게 비살상 무기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넘어갈 뻔했어. 이름이 뭐지?”
“여민서입니다.”
“여민서……. 성전사과인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
“맞습니다.”
“지적은 날카롭고 좋다. 그러나 앞으로는 예의 있게 말해.”
한대호의 말을 들은 여민서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여민서는 달리 불평을 토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한대호의 표정이 그녀보다 더욱 딱딱하고 무섭게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대호의 굳은 얼굴은 성직자가 아니라 깡패라고 해도 믿을 만큼 험악했다.
“같은 말이라도 말투에 따라 설득력이 달라진다. 명심해.”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나머지, 반대 의견 없으면 해당 무기는 김진서 학생에게 맡기는 것으로 한다. 이의 있는 사람?”
한대호가 물었으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한대호는 들고 있던 구체를 김진서에게 무신경하게 던졌다. 몹시 대충 던져서 받기 어려워 보였음에도 김진서는 어렵지 않게 잘 받아냈다. 한대호는 그런 김진서를 보고 피식 웃었다.
“운동 신경 좋네. 어디를 가든 계속 들고 있어라. 만약의 경우, 네가 다른 아이들을 지켜줘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김진서는 자신의 손에 들린 구체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짝!
한대호가 손뼉을 쳤다.
“자, 전달할 내용은 이것으로 끝이다. 다들 올라가서 쉬도록 해.”
그렇게 말하는 한대호의 얼굴에는 어느덧 미소가 맺혀 있었다. 아까 보여줬던 험상궂은 표정은 일찍이 사라진 뒤였다.
나는 그가 준 목걸이와 떨기나무조각 성물을 챙기고, 얼른 숙소로 올라가려고 했다. 박물관에서 역행의 지팡이를 훔치는 계획에 대해, 담 발라와 상의할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 도선우. 너는 잠깐 남아서 나 좀 따라와라.”
그런데 한대호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어……. 저요?”
나는 확인차 되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대호가 나를 따로 불러낼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름을 잘못 부른 것이라고 말해주기를 바랐지만, 애석하게도 한대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이런 망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