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11
제211화
김진서는 말없이 박물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강대만과 여민서가 같은 조였지만 딱히 할 얘기가 없었다. 할 얘기가 있었다고 한들, 그녀는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묵묵히 걷다가 마유현, 한수련, 성하연 팀과 마주쳤다. 마유현과 신나게 떠들고 있던 한수련은 김진서를 보고 눈을 치켜떴다.
“오! 뭐야, 너네 어디 있었어? 처음부터 그냥 같이 다닐까 물어보려고 그랬는데, 이제야 만났네.”
“그냥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쪽에 신기한 것들이 많더군!”
한수련의 물음에 강대만이 대답했다. 김진서는 한수련을 보았다가, 마유현, 성하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분명 넷이 한 조였는데 셋이서만 다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도선우가 없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았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도선우는?”
김진서가 한수련을 보고 물었다. 그러나 한수련은 강대만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옆에 있던 마유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걔 화장실 간다고 잠깐 빠졌는데.”
“아…….”
“여민서, 너는 근데 왜 나 보고 아는 척을 안 하냐?”
마유현이 여민서를 향해 공격적으로 물은 탓에, 아쉬움 섞인 김진서의 탄식은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았다. 내내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던 여민서는 한쪽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마유현을 올려다보았다.
“뭔, 잠깐 본 걸로 내가 아는 척을 해야 돼?”
“당연히 해야지.”
“지랄.”
“요즘 민서가 자꾸 기어오르네. 주먹 맛 좀 볼래?”
“아, 이 개새끼가 뭘 잘못 처먹었나? 요즘 왜 자꾸 시비지?”
여민서가 으르렁대는 모습을 마유현은 웃으며 지켜보았다. 가만 보면 마유현은 여민서에게 욕 듣기를 즐기는 것 같았다. 그들은 때로는 화기애애하게, 때로는 살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어?”
그때, 한창 강대만과 이야기를 나누던 한수련이 김진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수련은 김진서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대뜸 탄성을 흘렸다. 그녀의 시선은 김진서가 입고 있던 치마에 멈춰 있었다.
“치마 예쁘다! 평소랑 스타일이 좀 다른데? 원래는 되게 짧게 입지 않았나?”
“그랬지.”
김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녀는 오늘 발목 기장의 긴 치마를 입었다. 이슬람 문화권의 나라에서는 피부를 많이 노출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들었고, 태양이 강한 만큼 피부가 탈 위험도 컸기 때문이다.
활동성을 위해 비교적 짧은 옷을 입던 그녀로서는 나름 스타일에 변화를 준 셈이기도 했다.
“되게 잘 어울리네. 키가 크니까 뭘 입혀도 예쁘다.”
“아니, 그 정도는…….”
“음, 키가 문제가 아닌가? 얼굴이 예뻐서 잘 어울리는 건가?”
“…….”
한수련의 과한 칭찬에 김진서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쩌다 모이게 된 두 팀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헤어져서 각자 박물관을 관람했다. 같이 다니자는 한수련의 의견이 있었지만, 너무 우르르 몰려다니면 번거롭다는 마유현의 의견으로 각자 다니게 되었다.
한수련은 강대만과 떨어지게 된 것이 못내 아쉬운 듯, 끝까지 강대만에게 장난을 쳤다.
그렇게 다시 말없이 박물관을 관람하고 있을 때였다.
쾅─!
누군가 박물관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들어왔다.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였다. 그 뒤로, 수십의 장정들이 척척 걸음을 맞추며 따라 들어왔다.
“뭐야, 저 새끼들? 어둠의 자식들인가?”
여민서가 헛웃음을 토하며 말했다.
* * *
나는 직원의 안내를 따라 걸었다. 가면서 직원이 뭐라고 말했지만 바로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렉바가 직원의 말을 통역해 주었고, 그러면 나는 뒤늦게 직원이 뭐라고 말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영광이다, 도움을 줄 수 있어 다행이다, 그렇게 말하는구나.]“음…….”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대답으로 충분할 듯했다.
직원이 나를 데려간 곳은 박물관 2층 구석에 위치한 통제실이었다. 어두컴컴한 내부에, 박물관 곳곳을 촬영하는 CCTV 화면만이 음침하게 빛나고 있었다. 화면 너머로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등을 구경하는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김진서, 강대만, 여민서 팀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관람에 전념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긴 셋이 나눌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여민서가 김진서, 강대만과 사이가 안 좋으니까.
반면 한수련, 성하연, 마유현 팀은 제법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도 나누며 다니고 있었다. 성하연은 가만히 있었고, 보통 한수련과 마유현이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직원이 CCTV 화면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고 말했다.
[여기가 지팡이가 있는 곳. 이곳 CCTV와 보안 시스템을 끌 것이다.]렉바가 통역해 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은 CCTV 화면 옆에 있는 열쇠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고 돌렸다.
드르륵, 서랍이 열리며 그 안에서 레버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직원이 레버를 내렸다. 딸깍, 소리와 함께 화면이 꺼졌다.
통제실에 마음대로 드나드는 것도 모자라 CCTV와 안전장치를 마음대로 만질 수 있다니.
일개 직원은 확실히 아니었고, 나름 박물관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직원이 또 뭐라고 말했는데, 얼굴에 약간의 불안이 맴돌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는 지팡이를 훔치기 어려울 것이다, 라고 말하는구나.]“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CCTV와 보안 장치를 끈 것만으로는 지팡이를 훔치기 어려웠다. 그 때문에 담 발라를 이곳에 데려온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직원에게도 담 발라가 소동을 일으킬 예정이라는 것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말이 통하지 않는 데다가,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니었으니.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해라.]그때 렉바가 말했다. 그는 직원이 쓰는 언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따라 말할 수 있도록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나는 그대로 렉바의 말을 따라했다.
그 말을 들은 직원이 내게 뭐라고 말하면, 렉바는 다시 말했고, 나는 그걸 따라했다. 한 차례 대화가 오가자 직원의 얼굴에 비로소 안도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나는 직원을 따라 통제실을 나왔다. 박물관은 아직도 평화로웠다. 직원이 내 쪽을 돌아보며 뭐라고 말했다.
[지팡이가 있는 곳까지 안내해 준다고 하는구나. 길이 복잡하고, 멀고, 구석에 있어서 혼자서는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나는 직원의 안내를 따라 걸으며 렉바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는 뭐라고 말한 거죠?”
[뱀 하나가 나타나 소동을 일으킬 것이나, 당황하지 말고 숨어라. 전부 계획된 일이니까. 이렇게 말했다.]렉바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박물관이 무너질 수도 있냐고 묻기에, 무너질 수는 있지만 심하지는 않을 것이며, 직원이 책임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렀다. 고맙다고 대답하더구나.]딱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해준 셈이었다. 나는 렉바의 지혜에 내심 감탄했다.
박물관은 2층에서도 1층이 내려다보이는 구조였다. 나는 난간에 기대어 1층을 내려다보며 직원을 따라 걸었다.
저녁 시간의 박물관은 한적했으며, 여행객처럼 보이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여행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굳이 박물관에 들를 이유가 없기도 했다.
어쨌거나 다행이었다. 이번 계획은 사람이 많아서 좋을 게 없었다. 사람이 많으면 지팡이를 훔치다 걸릴 수도 있었고, 담 발라가 일으킨 소동에 휘말려 부상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지니까.
쿵─!
그때였다. 박물관 입구 쪽에서 들려온 소음에 직원도 나도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입구를 거칠게 밀어 열고는, 위협적인 걸음으로 성큼성큼 박물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선두에 선 남자를 필두로 수십의 장정들이 척척 걸음을 맞추며 박물관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너풀거리는 재질의 펑퍼짐한 가운 같은 것이었는데, 오전 중에 현지 사원을 들렀을 때 봤던 복장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슬람교의 성직자들이 단체로 박물관에 관람을 온 줄 알았다.
“…….”
뭔가 잘못됐음을 짐작한 것은, 직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검은 옷의 장정들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입을 열고 뭐라고 말했다. 나는 렉바의 통역을 기다렸다.
당연히 아니었다. 부두교도를 데려올 것이었다면 강지아나 경상교단의 육은형, 혹은 강원교단의 윤창수 등 소수 정예 인물을 데려왔을 것이다.
무엇보다 부두교도는 저렇게 눈에 띄게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직원의 표정이 굳었다. 1층에 도열한 검은 장정들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얼핏 보아도 20여 명은 될 것 같았다. 관람하던 관광객들이 장정들을 보고 수군거렸다.
촤악.
장정들이 일제히 검은 두건을 뒤집어썼다. 그들이 입고 있던 펑퍼짐한 옷 안에서 검은 금속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총이었다.
권총도 있었고 소총도 있었으며, 자그마한 대포 같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선두에서 장정들을 이끌던 남자의 목에 그려진 문양을 본다.
익숙한 문양이다. 염소.
투두두두두─!
그 남자가 하늘에 대고 총을 갈겼다. 위협 사격이었다. 조명과 창문이 깨지고 유리 조각이 바닥에 우수수 쏟아졌다. 관람객들이 귀를 막고 몸을 웅크린 채 떨었다.
남자는 1층에서 비명을 지르던 직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뭐라고 외쳤다. 직원 하나가 인질로 잡혔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1층의 풍경을 엿보았다. 한수련, 마유현, 성하연 팀은 탁 트인 곳에 있었던 탓에 무릎을 꿇고 투항하고 있었다.
김진서, 강대만, 여민서 팀은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김진서의 팔에 제법 큰 상처가 나 있다. 쏟아진 유리 파편에 찔린 듯했다.
행동해야 했다. 그런데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최근 도취 주술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탓이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검은 장정들을 제압하는 것이 먼저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얼른 지팡이를 사수하는 것이…….
“…….”
나는 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가방을 열자 안에 들어 있던 담 발라가 조심스럽게 기어 나왔다. 담 발라는 나의 명령을 기다린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느리게 흔들었다. 나는 손가락을 내밀었다.
“물어요.”
[……아아, 그렇구나.]콰득!
담 발라가 내 손가락을 물었다. 아프지는 않다. 손끝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나는 그 피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소보와 오군의 베베(vèvè)였다. 먼저 완성된 것은 소보의 문양이었다. 문양에서 보랏빛 광채가 희미하게 흘렀다. 문양은 마치 번개처럼 간헐적으로 강렬한 빛을 토했다.
“소보.”
꽈과앙─!!
박물관의 모든 빛이 사라졌다. 박물관뿐만 아니라 인근에 있는 모든 건물의 불도 꺼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장정들이 자기들끼리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그들이 총을 장전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 순간, 암흑 속에서 오군의 베베가 완성되었다.
“오군.”
오군의 베베가 내 말에 응답하듯 강한 빛을 발했다. 검은 장정들이 내뱉는 고함 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에 맞춰 관람객들의 비명 소리 역시 커졌다. 암흑이 빚어낸 혼돈이 박물관을 지배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는 모두 눈을 감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눈을 떠도 의미가 없었다.
“바데.”
대신 나는 바데를 불렀다. 깨진 창문 틈으로 은은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바람이 박물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몸을 부드럽게 휘감았다.
나는 바람의 흐름을 느꼈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움직임을 느꼈다. 바데의 바람이 곧 나의 피부이자 촉각이었다.
바람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떨던 관람객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장정이 그 관람객에게 총을 겨누었다.
탕!
총성이 울렸다.
“아아아아악, 아아, 아아아……!”
총성과 함께 박물관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정적 속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비명은 관람객의 것이 아니라 방아쇠를 당긴 장정의 것이었다.
[너무 정교한 쇳덩이는 전쟁을 무의미하게 만들지.]나의 부탁으로 권총을 폭발시킨 오군이 말했다.
“다녀와요, 담 발라.”
나는 바닥에 있던 담 발라에게 말했다. 담 발라는 빠르게 몸을 움직여 어딘가로 기어갔다. 나는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바람으로 지형을 느끼며 걸었다.
1층에 도착했을 때는 한 번에 너무 많은 권능을 사용한 탓인지 코피가 흘렀다. 출혈 때문에 머리도 잘 굴러가지 않았다. 그러나 도취 주술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도취 주술에 취한 상태로 내린 판단은 온전치 못했다. 내 뜻이 아닌 도취 주술의 뜻대로 움직이는 셈이었다.
이제는 내 뜻대로 한다.
어둠 속에서 빗소리가 들렸고, 번개가 쳤다. 간헐적인 섬광이 박물관의 사람들을 비추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