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12
제212화
갑작스럽게 박물관 안으로 몰려든 검은 괴한들, 총성. 깨진 전등과 창문. 사태를 인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한대호가 말한 ‘긴급한 경우’였다.
김진서는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한 여민서와 강대만을 끌고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쏟아진 유리 조각이 팔을 크게 베고 지나갔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일일이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김진서는 환부를 손바닥으로 눌러 급한 대로 지혈하며, 기둥 뒤에서 검은 장정들의 동태를 엿보았다.
“…….”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김진서의 주머니에는 휴대용 창이 들어 있었다. 살상이 아닌 제압을 위해 만들어진 무기라고 했다. 그러나 상대는 총을 들고 있었다. 김진서는 한대호에게 받아서 차고 있던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목걸이가 탄환을 막아주는 것은 한 번뿐이다. 목걸이만 믿고 섣불리 나섰다가는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 죽을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김진서는 창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능숙하지 않은 무기를 다루면 동작에 허점이 생길 테고, 상대는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거 실제 상황이냐?”
그때, 여민서가 뜬금없이 물었다. 그녀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검은 장정들은 직원 하나를 붙잡고 고함을 지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덕분에 여민서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김진서는 여기서 말해도 목소리가 검은 장정에게 닿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뭐, 훈련 상황일까.”
“…….”
여민서는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듯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없이 주머니를 뒤졌다. 그녀가 손에 든 것은 한대호에게 받은 떨기나무조각이었다.
조각은 자그마한 불빛을 토하고 있었다. 일렁이는 불빛에서 아주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대호의 목소리다.
– 위치 국립 박물관. 신원 미상의 조직이 박물관을 점거했다. 목적은 불명. 조속한 지원을 요청. 타 부대에도 전달 바란다.
– 듣고 있는 학생들은 조직에게 저항 의지를 보이지 말고 투항해라. 너희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가능하다면, 현재 위치를 말해라. 내가 가겠다. 일행에게도 전달 바람.
한대호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침착한 것 같기도 했지만, 말끝마다 목소리가 자그맣게 떨렸다. 한대호도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여민서가 떨기나무의 일렁이는 불꽃에 입을 가져다 댔다.
“여민서, 강대만, 김진서 1층, 기둥 뒤에 은신 중입니다. 다른 애들도 1층입니다. 육안으로 보일 만큼 가깝습니다.”
여민서는 검은 장정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발음은 또렷해서 한대호에게는 충분히 전해질 것이었다.
김진서는 휴대용 창을 주머니에서 꺼내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검은 장정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아.”
그때, 강대만이 갑작스럽게 탄식했다. 여민서와 김진서가 동시에 고개를 돌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강대만이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동요하고 있었다.
강대만은 그 거대한 몸을 웅크린 채, 식은땀을 흘리며 자그맣게 떨고 있었다. 여민서가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이 새끼 왜 이래?”
“나는.”
강대만이 몸을 부르르 떨며 말을 이었다.
“평생 이겨낼 수 없는 건가.”
그의 눈동자에 절망이 담겼다.
* * *
“무릎 꿇고 손 들고 가만히 있어.”
“…….”
마유현은 박물관에 들어선 검은 장정들이 총을 갈기는 걸 보자마자, 성하연과 한수련에게 말했다. 평소에는 약간 높은 톤에 가깝던 목소리가 지금은 무겁고 낮았다.
한수련이 침을 꿀꺽 삼키며 고분고분 지시를 따랐다. 성하연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검은 장정들을 보고 끔찍하고 익숙한 공포를 다시금 느끼고 있었다.
성하연은 무릎을 꿇은 채,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한대호에게 받은 떨기나무조각을 꺼낼 생각인 것 같았다.
턱.
“야.”
그러나 마유현이 그녀의 손을 막았다. 그는 말하기 전에 검은 장정의 동태를 살폈다. 그들은 직원을 잡고 인질극을 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지만, 고개만 돌리면 바로 이쪽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떨기나무조각을 꺼내면 안 된다. 안 그래도 성하연과 마유현의 외모는 눈에 띄었다. 누가 봐도 수상한 작자들이 누가 봐도 수상한 물건을 들고 있으면, 장정들의 표적이 직원이 아닌 이쪽으로 바뀌게 될 위험이 있었다.
성하연은 공포에 질린 눈동자로 마유현을 쳐다보다가, 이내 그의 말뜻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잠자코 손을 들었다.
“…….”
마유현은 손을 든 채 검은 장정들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저번에 도선우에게 납치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도심의 가로등과 조명을 일제히 끄고, 암흑 속에서 주술을 사용하던 도선우를 떠올렸다.
섣부른 추측에 불과하긴 하지만, 도선우는 마치 전자 기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저들이 들고 있는 총기 또한 도선우라면 무력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지금 이 자리에 도선우가 없다는 것이었다.
“……마유현.”
그때, 한수련이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마유현이 고개를 까딱였다.
“말해.”
“지금 빠르게 도망치면 도망칠 수 있는 거 아니야?”
“…….”
마유현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도망치기에도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다.
성하연이 신성력을 대량 사출하고, 그것을 조작하여 일시적으로 검은 장정들의 시야를 가릴 수 있기는 했다. 그 틈을 타 도망치는 방법도 생각을 해보았지만…… 역시 위험하다.
갑작스러운 빛에 놀란 장정들이 여기저기 무차별적으로 총을 갈길지도 모를 일이었으므로.
“……이따가 신호를 줄게.”
그러나 지금은 안정이 먼저였다. 마유현은 한수련과 더불어 성하연을 안심시킬 요량으로, 마치 계획이 있다는 듯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한수련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유현은 호시탐탐 검은 장정들의 눈치를 보며 기회를 엿보았다.
꽈과앙─!
그때, 번개가 쳤다.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박물관의 불이 전부 나갔다. 갑작스러운 암흑에 관람객들은 물론 검은 장정들까지 혼란에 빠졌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철컥, 누군가 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났다.
탕!
“아아아아악─!”
총성이 울렸고, 비명이 울렸다. 하지만 비명은 검은 장정의 것이었다. 깨진 창문 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함께 들려오는 빗소리가 거셌다. 성하연과 한수련은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그러나 마유현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상황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도선우다.
번개가 내리친 것도, 비가 올 리 없는 곳에 이토록 세찬 비가 내리는 것도, 바람이 부는 것도, 장정의 총이 폭발한 것도 전부 도선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일을 벌일 수 있는 것은 그놈밖에 없었다.
역시, 이 자식은 적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 아군으로 두어도 완전히 굴복시켜야 한다. 굴복시킬 수 없다면, 차라리…….
“지금, 튀어!”
마유현은 도선우에 대한 상념을 털어내며, 한수련과 성하연에게 외쳤다. 마유현의 예상대로라면, 도선우는 검은 장정들이 들고 있는 총을 전부 무력화했을 것이다.
도망친다면 지금이 기회였다. 도선우에 대한 생각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어디, 어디로 튀어?!”
“일단 아무 데나 숨어! 통신은 떨기나무로!”
“오, 오케이!”
한수련이 외치며 어딘가로 도망쳤다. 걱정했던 성하연도 알아서 잘 도망쳤다. 마유현은 거대한 전시물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신성력을 사출하여 눈가에 원을 그렸다.
원 너머로 세상을 보았다. 암흑 속에서도 사람들의 몸속에 깃든 ‘흐름’은 보였다. 이것으로 다른 일행과 검은 장정, 그리고 한대호의 위치를 파악할 생각이었다.
그때, 이질적인 흐름을 가진 자가 이질적인 흐름을 가진 자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 장정 하나가 단검을 들고 도선우의 뒤를 밟고 있었다.
“야, 도선─!”
파직!
그때, 마유현의 눈가에 그려진 원에 금이 갔다. 도선우를 향한 경고의 외침이 끊겼다. 원은 곧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윽……!”
그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마유현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거친 숨을 토했다. 심장이 요동쳤다. 그는 계속해서 숨을 골랐지만, 마음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눈알이 터져버린 것 같은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흐름’이 빛에 가까운 자들은 피렌체 학생들이었다. 이질적인 흐름을 가진 자들은 검은 장정이거나, 도선우였다. 그러나 흐름이 아예 보이지 않는 것도 있었다. 아니, 마유현의 인지를 초월한 흐름을 가진 존재가 있었다.
“무슨…….”
그는 원 너머로 본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도선우의 뒤를 쫓던 검은 장정. 그 뒤로, 알 수 없는 흐름을 지닌 거대한 뱀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장면을.
* * *
검은 장정들은 갑작스러운 어둠과 총기 불량에 당황했다. 섣불리 방아쇠를 당겼다가 손목이 날아간 동료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린 그들은, 쉽사리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총기를 든 채 대장의 지시를 기다렸다. 그때, 대장이 들고 있던 총기를 다시 품 안에 집어넣었다.
“───!!”
대장이 외쳤다. 각자 들고 있던 총을 잠시 집어넣고, 단검으로 먼저 인질을 포획하라는 지시였다. 특히 검은 단발머리 여자를 잡아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검은 장정들은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고 대장의 지시를 따라 총을 품 안에 집어넣었다. 대신 단검을 빼 들고 흩어졌다.
어둠은 장정들에게 친숙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그리고 적을 죽이는 방법을 매일같이 훈련한 자들이었다. 입고 있는 검은 옷은 어둠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더욱 교묘하게 감춰줄 것이었다.
그들에게 어둠은 오히려 아늑했다.
“…….”
그때, 검은 장정 하나가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인기척은 계단 쪽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누군가 2층에서 1층으로 겁도 없이 내려오는 중이었다.
검은 장정은 살금살금 그쪽으로 다가갔다. 둔감한 상대는 검은 장정이 자신의 뒤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장정은 자신의 인기척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의 뒤를 잡았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단검을 들었다.
[쉿.]단검을 상대의 목에 들이밀기 직전이었다. 어디선가 갑자기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꿀처럼 달콤하고 끈적한 목소리였다. 질척하고 차가운 혀가 장정의 등허리를 핥았다. 장정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끔찍한 생물체가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장정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아아, 멍청하고 불행한 아이야.]빳빳하게 굳은 장정의 귀에 대고, 담 발라가 말했다. 두 갈래로 갈라진 혀가 장정의 목을 휘감았다.
[하필이면 골라도 이 꼬마를 고르다니.]우득.
장정의 몸이 바닥에 힘없이 늘어졌다. 그 목에는 더 이상 머리가 달려 있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