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15
제215화
그들은 기폭 장치를 손에 든 채, 천천히 우리에게 걸어왔다. 우리가 반격을 가하면 기폭 장치를 눌러 자폭을 할 것이고, 반격을 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인질로 잡히게 될 것이었다. 반격을 하지 않아도 자폭을 할 가능성도 있었다.
“Takbīr!”
“─────!!!”
“ʾXXXXhu ʾakbar─!”
“Takbīr!”
그들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외치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전세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빛과 함께 등장한 한대호를 보고 저들이 뒷걸음쳤지만, 지금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외치는 저들을 보고 우리가 뒷걸음쳤다.
툭.
뒷걸음을 치다가 누군가와 부딪혔다. 덩달아 같이 뒷걸음을 치던 김진서였다. 그녀와 등을 맞댄 꼴이 되었다. 김진서뿐만이 아니었다. 강대만도, 한대호도, 여민서도 전부 주춤주춤 뒷걸음을 치며 한곳에 모이고 있었다.
“…….”
포위망은 순식간에 좁혀졌다. 저들 중 한 명이라도 기폭 장치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우리는 전부 폭사(爆死)할 것이다. 어쩌면 박물관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아무리 몸이 단단한 한대호라도 폭발까지 맨몸으로 견뎌낼 수는 없을 것이었다.
“────!!”
적들의 포위망은 어느덧 촘촘하게 좁혀져 있었다. 목에 염소 문양이 있는, 대장처럼 보이는 남자가 뭐라뭐라 외치며 우리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당연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렉바가 통역을 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는 통역을 해주지 않았다.
“──, ───!!”
남자가 재차 외쳤다. 나는 그의 손가락이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 보았다. 그는 김진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남자는 김진서를 향해 연신 손가락질을 하다가, 그녀를 넘기라는 듯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엄지로 출구 방향을 까딱까딱 가리켰다.
대충 김진서를 넘기면 알아서 나가겠다는 말인 것 같았다.
“김진서를 넘겨라, 뭐 그런 뜻인 거 같은데.”
“못 알아들은 척해라. 그래야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남자의 말을 알아들은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여민서와 한대호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대충 알아들은 것 같았다. 여민서는 한대호의 말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동안, 나는 오군을 불렀다. 폭발물에 쇠로 된 장치가 하나도 없을 리는 없다. 오군의 권능을 쓰면 폭발물을 전부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총기를 고철덩어리로 만들었던 것처럼.
[아니, 안 되지.]그러나 오군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욕을 입에 담을 뻔했다. 오군이 말을 이었다.
[돕고 싶지만 제물 부족. 억지로 권능을 써도, 모든 적의 폭탄을 해체할 수는 없을 것.]이어진 오군의 말을 듣고서야, 요즘 제물도 제대로 주지 않고 오군의 권능만 사용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가만 보면 로아들은 항상 중요한 순간에 제물이 부족하다고 징징거린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강대만이 의아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왜 김진서를 달라는 거지? 이해할 수 없군.”
“제일 눈에 띄어서 그런 거 아니냐? 창 든 꼴만 봐도 가장 납치하고 싶게 생기긴 했어.”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여민서의 고삐 풀린 말버릇에 강대만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적들의 대장에게서 보았던 염소 문양을 떠올렸다.
“사탄교랑 연관이 있을 거야.”
“사탄교?”
“도선우 말이 맞다. 아까 흑마법을 사용하는 걸 봤어. 김진서를 데려가려는 것도…….”
한대호가 김진서를 흘긋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뭔가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기고사장에 등장한 악마종도 그렇고, 이번 사탄교도는 김진서를 노골적으로 노리고 있다. 여민서가 결연한 눈빛으로 적들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김진서를 그냥 넘겨버리고…….”
“뭐? 야.”
“아니, 네가 이제 가는 척하면서, 우리가 그 틈을 노리고 반격하자는 거지.”
여민서가 급히 둘러댔다. 한대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위험해.”
“그…… 말이 그렇다는 거죠.”
“내가 돌진한 다음, 그 틈을 타는 건 어떤가!”
“안 돼……. 너희를 미끼로 쓸 수는 없다. 차라리 내가…….”
한대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사실 방법은 있었다. 오군의 권능을 쓰는 것도, 바데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오군의 권능은 써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으며, 바데의 바람을 이용하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주술을 쓰는 것이었다.
그간 주술을 많이 연습했다. 경지에 이르기 위한 연습도 있었지만, 단순히 주술의 출력과 주술진을 그리는 속도를 높이기 위한 연습도 매일같이 했다.
박물관에 있는 적들을 재우는 것쯤이야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주술을 사용하면 정체를 들키게 된다. 반드시.
정체를 들키지 않고 주술을 써서 적들을 재우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했지만,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한수련?”
그때, 김진서가 어딘가를 보고 중얼거렸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지만, 한수련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떨기나무조각의 희미한 빛만이 어둠 속에서 별처럼 일렁일 뿐이었다. 떨기나무조각을 들고 있는 것이 한수련인 모양이었다.
여민서도 한수련을 보았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쟤는 저기서 뭐 하냐, 지금?”
“……설마.”
한대호가 불길하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한대호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 또한 한수련이 뭘 하려고 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신성력을 사출하여 떨기나무조각에 불어넣었다. 그러고는, 2층 난간에 매달려 떨기나무조각을 검은 장정들의 틈 사이에 휙 던졌다.
떨기나무조각은 평소보다 더욱 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성물은 보통 신성력을 불어넣은 정도에 비례하여 성능이 오른다. 떨기나무조각의 경우, 신성력을 많이 불어넣으면 통신 시 소리가 커진다.
“으와아아아아악─!”
으와아아아아악─! 으와아아아아악─!
갑자기 들려온 고함. 아니, 고함에 가까운 비명. 그것은 분명히 마유현의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는 한수련과 성하연, 그리고 마유현의 떨기나무조각을 타고 이곳저곳에 퍼졌다. 같은 목소리가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렸다.
움찔.
우리를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던 적들의 몸이 일순간 굳었다. 기폭 장치 위에 올려져 있던 그들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한대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단숨에 축복진을 그려 축복의 빛을 자신의 온몸에 휘감았다. 그러고는 팔을 X자로 교차한 채, 적들을 밀쳐내며 길을 텄다.
“전부, 엎드려─!”
아이들은 반사적으로 살길을 찾았다. 한대호가 낸 길을 따라 달리던 아이들은 그의 외침이 들리자마자 바닥에 엎드렸다.
나는 부두 마력을 사출할 준비를 하며 적들의 동태를 살폈다. 그들의 손은 전부 기폭 장치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들이 아주 약간의 힘을 주어 버튼을 누르는 순간, 박물관은 불바다가 되고 우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었다.
일촉즉발이었다. 한대호는 도망치는 것이 더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온몸으로 우리를 감싸려고 들었다. 그러나 그 큰 몸으로도 우리를 전부 감쌀 수는 없었다.
김진서는 창을 들어 적에게 겨누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여민서와 한수련은 엎드렸다. 강대만은 무슨 말을 중얼거리며 주먹을 쥐었다. 마유현은 여전히 떨기나무에 대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성하연은 보이지 않는다.
딸칵.
그 순간, 버튼이 눌렸다.
찰랑.
동시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시간이 멈췄다.
한대호는 온몸으로 우리를 감싼 채, 김진서는 창을 적에게 겨눈 채. 여민서와 한수련은 엎드린 채. 강대만은 주먹을 쥔 채. 마유현은 떨기나무에 입을 가져다 댄 채. 적들은 기폭 장치를 누른 채.
그대로.
전부 멈췄다. 내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조차 기이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손가락은커녕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뚜벅, 뚜벅.
어디선가 불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렸다.
[꼬마야.]귓가에 담 발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르고 딱딱한 나뭇가지가 손에 닿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쥐었다.
[가져왔단다, 네가 부탁한 대로.]그것이 역행의 지팡이, ‘포토미탕(poteau mitan)’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러나 직후, 지팡이는 내 손에서 사라졌다. 나는 지팡이를 잡으려 손을 계속 쥐락펴락했지만 어디에도 지팡이는 없었다.
지팡이는 이미 내 손을 벗어나 있었다.
뚜벅, 뚜벅.
불규칙적인 발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멈춰버린 공간을 렉바가 홀로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그는 지팡이에 반신을 의지한 채 절룩거리며 걸었다. 내 손에서 사라졌던 지팡이는 어느새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제야 좀 걸을 만하구나.]쿵─!
렉바가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그 순간 풍경이 뒤바뀌었다.
[교차로에 온 것을 환영한다.]시야가 보랏빛 안개에 휘감기더니 이내 어둠으로 가득 찼다. 교차하는 어둠이 두 개의 길을 만들었다. 붉은 달빛이 어두운 길을 밝혔다.
어둠 속에 수십 쌍의 별이 떠올랐다. 적색 별, 녹색 별, 백색 별, 황색 별이 어둠 속에서 한 쌍을 이루어 빛나고 있었다.
그건 수많은 로아의 눈이었다. 그란브와, 소보, 보수, 마리네트……. 그 외, 교차로에 머물고 있는 수많은 로아들의 눈. 로아는 다가오지도 않고, 멀어지지도 않은 채 그저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래, 우리였다.
[모두들.]교차로에 초대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