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16
제216화
뚜벅, 뚜벅.
렉바가 인파 사이를 걸었다. 붉은 달빛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섬뜩하게 적셨다. 타오르는 듯이 강렬한 안광이 교차로에 초대된 사람들의 면면을 훑었다.
렉바를 바라보는 얼굴이 다양했다. 박물관을 급습한 검은 장정도 있었고, 피렌체의 학생과 한대호, 심지어는 관람객도 있었다.
표정과 눈빛도 다양했다. 그들은 경악하거나,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하거나, 혹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렉바가 지팡이를 들었다.
쿵.
그러자, 뒤섞여 있던 인파 중에 일부가 사라졌다. 교차로에는 박물관을 급습했던 검은 장정들만 남았다.
렉바는 그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검은 장정들에게 그의 미소는 섬뜩했다. 그들의 종교로서는 들어본 적 없는, 미지의 초월적인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그러한 존재의 미소는 섬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오한을 느꼈다. 렉바의 미소와 시선이 두려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렉바가 아닌 또 다른 ‘무언가’의 시선이 그들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선은 하늘에서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검은 장정을 이끌던 대장이 고개를 들었다.
털썩.
그는 교차로의 하늘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입을 벌리더니,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벌어진 입에서 침이 주르륵 흘렀다.
눈이 붉게 충혈됐고, 눈동자는 좌우로 미친 듯이 떨렸다. 그는 그토록 두려움에 떨면서도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 악. 윽, 크륵……!”
까각, 까각, 까가각.
급기야는 거품을 물고 쓰러지더니, 자신의 눈을 파내려는 듯 손톱을 세워서 눈구멍에 집어넣었다.
그는 손톱으로 자신의 눈알을 찌르고 긁었다. 그러나 눈에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유리를 긁는 듯 소름 끼치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대장의 갑작스러운 기행에, 검은 장정들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교차로의 하늘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존재를 마주했다.
붉거나, 푸르거나, 또는 희멀건 눈을 가진 존재가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미지의 존재는 도저히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그들 하나하나는 인간들이 섬겼던 바람이었으며, 번개였고, 초목이었다. 문명의 근원인 강이었고 물이었으며, 불이었다.
검은 장정들은 이곳이 살아 있는 자를 위한 땅이 아니라, 망자나 영적인 존재를 위한 땅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저 거대한 자들이 신적인 존재라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동시에 환희와 동경에 젖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원초적이고 신적인 존재들을 향해 그들은 끝없는 아름다움과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근원을 좇는 인간의 본능이었다.
뚜벅, 뚜벅.
렉바가 걸어왔다. 작고 초라한 노인처럼 보였던 그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졌다. 교차로와 교차로에 존재하는 모든 영적인 것들을 총괄하는, 그 무엇보다 거대한 존재가 그들의 앞에 있었다.
렉바가 지팡이를 들어 허공에 가볍게 휘저었다.
촤르르르르…….
그러자, 교차로를 이루고 있던 어둠이 소용돌이치며 뭉쳤다가, 다시 소용돌이치며 흩어지면서 새로운 형태로 거듭났다.
검은 장정들의 눈앞에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렉바는 그 갈래 길의 중앙에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내가 너희에게 두 개의 길을 주었다.]렉바가 말했다. 그의 손에는 어느덧 파이프 담배가 들려 있었다. 그가 담배를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너희가 고른 길이, 너희가 원하는 길이다.]렉바가 연기를 뱉었다. 둥근 연기가 달빛을 받아 붉어졌다.
[어느 길로 가겠느냐?]쿵.
렉바가 재촉하듯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검은 장정들은 길을 고르지 않고 주저했다.
그들이 지금 원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그러나 어느 길로 가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지 몰라서, 섣불리 길을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붉은 달빛과 형형색색의 눈, 렉바의 담배 연기와 교차로의 어둠이 뒤섞여 괴이한 색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검은 장정들은 조심스럽게 발을 떼더니, 주춤주춤 길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길을 선택하여 걷자,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움직였다.
렉바는 길을 선택하여 걷는 사람들의 수를 지팡이로 하나하나 헤아리다가 말했다. 교차로에 초대된 47명의 검은 장정 중, 46명이 왼쪽 길을 선택하여 걸었다.
단 한 사람만이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교차로의 중앙에 주저앉아 있었다. 맨 처음 로아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가 거품을 물었던 남자, 검은 장정들의 대장이었다.
그는 여전히 눈알을 파내려고 눈구멍에 손을 집어넣는 중이었다. 그의 얼굴은 온통 눈물과 콧물, 게거품으로 덮여 있었다. 렉바가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래, 그게 네 선택인가?]렉바가 입에 머금고 있던 연기를 그의 얼굴에 뱉었다. 연기가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뒷목에 그려져 있던 염소 문양이 연기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그러나 문양은 그저 빛을 낼 뿐, 교차로에서는 아무런 효력조차 발휘하지 못했다.
[이따금 육안을 잃고 심안을 얻는 자가 있지.]찰랑.
렉바의 말과 함께,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 * *
찰랑.
“…….”
나는 눈을 떴다. 그러자 교차로의 풍경이 사라지고, 다시 박물관의 풍경이 나타났다. 박물관은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고요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담 발라가 내게 지팡이를 건네주었던 때처럼.
교차로에서의 시간은 찰나와 같았고, 어쩌면 영원과 같았다. 그래서인지 박물관으로 돌아온 뒤에도 시간 감각이 흐릿했다. 박물관을 휘감은 정적조차 찰나인지 영원인지 알 수 없었다.
또각.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는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차츰 많아졌다. 우리를 둘러싼 채 포위하고 있던 검은 장정들의 발소리였다.
그들은 기폭 장치 위에 올려 두었던 손에서 힘을 뺐다. 그러고는 어깨를 쭉 늘어뜨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들어올 때보다 훨씬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줄을 서서 박물관을 나갔다. 몇몇은 쓰고 있던 복면을 벗어 던졌고, 몇몇은 입고 있던 폭탄 조끼를 벗어 바닥에 살포시 두었다.
수많은 검은 장정들이 박물관을 나갔다. 그리고 박물관에 남아 있는 검은 장정은 단 한 명이었다.
“아, 극, 으극, 크륵……!”
검은 장정을 이끌던 대장. 뒷목에 염소 문양이 그려져 있던 그 놈이었다.
그는 기괴한 신음을 토하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알을 파내고 있었다. 핏물이 팔을 타고 흘러 팔꿈치에 맺혔다.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경악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김진서도, 여민서도, 강대만도, 한대호도 모두 눈을 끔뻑이며 현실 감각을 되찾는 데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교차로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이다.
뚜벅, 뚜벅.
고요한 박물관에 렉바의 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렉바는 지팡이를 들고 박물관을 가로질러, 우리 앞을 지나고, 엎드려 있던 한수련의 옆을 지났다. 그러면서 한수련의 머리를 지팡이로 장난스럽게 툭 쳤다.
한수련은 자신이 무엇에 맞은지도 모른 채 그저 엎드려 있었다.
[조금 이따 다시 찾아가마.]렉바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 목소리는 나에게만 들리는 것 같았다.
[축하한다. 지팡이를 손에 넣었구나.]렉바가 말했다.
사삭.
어디선가 담 발라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의 자취를 눈으로 따라가 보았지만, 끝내 그녀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손에 낯선 감촉이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낯익은 감촉이었다. 딱딱하게 굳은 거친 나뭇가지.
역행의 지팡이, ‘포토미탕(poteau mitan)’.
그것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나는 지팡이를 얻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내가 잃어버린 것은 없는 걸까, 정녕.
지팡이를 얻은 대가로 바친 것이 분명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내가 바친 것이 무엇인지까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벌컥!
그때, 박물관 문을 열고 성직자들이 몰려왔다. 한대호의 지원 요청을 듣고 온 자들이었다. 렉바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성직자들의 곁을 유유히 지나쳐서, 마침내 박물관을 완전히 나갔다.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 * *
한대호는 찰나의 시간 동안 자신의 눈앞에 펼쳐졌던 광경을 도저히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충격적인 장면이 어둠 속에서 떠올라 아른거렸다.
어둠으로 빚어진 땅과 그것을 비추는 음산하고 불길한 붉은 달. 그 중앙에 있는 지팡이를 든 노인. 두 갈래의 길.
교차로.
‘부두교에는 교차로라는 게 있어요. 선택과 자유를 중시하는 그들의 어떤, 대표적인 상징 같은 겁니다.’
로마니카교보다 다른 종교를 더 잘 알고 있는, 종교 척척박사 오희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처음부터 이상하기는 했다. 이곳은 비가 올 수는 있어도 이렇게 요란한 폭풍우가 칠 수는 없는 곳이다. 지형적으로 그렇다.
그런데 천둥이 치고, 번개가 치고, 비가 왔다. 부두교의 선지자는 날씨를 조종한다고 들었다. 부두교가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면, 방금 일어난 모든 기현상도 납득이 된다.
뚜벅, 뚜벅.
한대호는 박물관을 가로질러 걷는 노인의 모습을 보았다. 어둠 탓에 실루엣만 겨우 보일 뿐이었지만, 그 노인이 교차로에서 보았던 그 자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컥!
“서울북부성기사단 파견단 A조다! 한대호, 동부성기사단장 한대호 어디 있나!”
뒤늦게 들어온 성직자들이 고래고래 외쳤다. 그러나 한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처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방금 박물관을 나간 노인을 가리켰다.
“저, 저거……!”
지팡이를 든 노인.
저 자가 부두교의 교주이거나, 선지자일 것이라고. 혹은 교주이자 선지자일 것이라고. 적어도 부두교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존재일 것이라고. 저 자를 지금 잡아야만 한다고, 말해야 했다.
그러나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저 사라지는 노인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두려웠다.
일전에 한대호는 부두교와 사탄교가 전투를 벌인 것으로 보이는 현장을 탐색한 적이 있다. 현장의 흔적만 보아도 전투가 치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도 한대호는 제법 두려움을 느꼈다. 사탄교와 부두교, 그리고 로마니카교. 이 세 종교 간의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윽, 크으……! 크, 끄아아악─!”
“웁……. 뭐야, 이놈은! 한대호, 상황 브리핑 바란다!”
“…….”
“인마, 한대호!”
그러나, 지금 한대호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때는 단지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전쟁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설령 승리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희생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지금 느끼는 두려움은 달랐다. 그는 지금 부두교의 힘을 직접적으로 느꼈다. 아니, 어쩌면 이것조차 간접적으로 느낀 것일지도 몰랐다. 부두교의 저력은 그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크고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부두교…….”
로마니카교, 부두교, 사탄교. 세 종교가 충돌하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사탄교다. 그다음, 로마니카교와 부두교 둘만 남아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면… 그땐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승리를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이거 왜 이래? 야, 한대호! 너까지 이러면 어떡하냐. 지금 학생들 상태도─!”
“알고 있다.”
한대호는 서부성기사단장의 말을 매몰차게 끊어내며 말을 이었다.
“전후 상황 보고할 테니 수습에 도움 부탁한다.”
한대호는 그렇게 말하며, 서부성기사단장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뒷수습을 했다.
일단 성직자들을 시켜 학생들을 호위하게 했다. 그렇게 충격을 받은 학생들을 먼저 호텔로 돌려보낸 후, 박물관에 있던 관람객들을 대피시켰다.
검은 장정들이 두고 간 폭탄이나 총기, 단검 등을 전부 회수했다. 그리고 박물관에 혼자 남겨진 검은 장정들의 대장을 포획했다.
“다, 단장님. 이 앞에…….”
한대호는 수습 도중, 부하의 보고를 통해 박물관을 나갔던 검은 장정들의 소식을 들었다. 그들 모두 박물관과 제일 가까운 우물에서 일제히 죽어 있었다.
증언에 따르면, 검은 옷을 입은 46명의 남자가 일제히 우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한대호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비가 어느덧 그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