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18
제218화
마유현은 숙소로 돌아왔다. 원래는 오늘도 여자애들을 불러서 같이 놀려고 했지만, 오늘은 불러도 오지 않을 것이었고, 애초에 부를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는 박물관에서의 일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박물관에 들이닥친 검은 장정, 갑자기 내린 비와 벼락, 한대호와 흑마법, 정화의 축복.
교차로.
그는 기억력이 좋았다. 그는 한 번 본 것을 사진을 찍듯이 기억하는 재능이 있었다. 시험에서 우습게 1등을 했던 것도, ‘일반인’들을 모르는 정보를 모두 머리에 담고 있는 것도 전부 그 재능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교차로에서의 풍경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현실이 아닌 꿈에서 겪은 일인 것처럼 흐릿했다.
“마유현.”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같이 들어온 강대만이 그를 불렀다. 마유현은 날카로운 눈동자로 강대만을 괜히 노려보았다. 생각이 깊어진 탓에 신경이 예민했다. 그는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고는, 뒤늦게 표정을 풀었다.
“……어, 왜.”
“지하 1층에 체육관이 있던데, 운동이나 가는 게 어떤가.”
“이 와중에 운동이 하고 싶냐?”
“당연하다.”
강대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여전히 나약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강대만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했지만, 반면 눈동자는 떨렸다. 마유현은 그 눈을 보고 강대만의 심경을 짐작했다.
강대만은 아직 박물관에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충격과 두려움에서 도망치기 위해 운동이라는 도피처를 택한 것이었다.
“……나는 좀 쉬련다. 너 혼자 가라.”
“마유현, 요즘 운동도 많이 안 하는 것 같던데. 그러다 기껏 만든 몸이 망가질 거다.”
“알아서 할게. 근데 너는 운동 좀 그만해도 되지 않냐? 이 새끼는 몸이 점점 커져.”
마유현은 장난스럽게 말하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강대만은 캐리어를 뒤져 스트랩과 벨트를 챙겨 들고 숙소를 나갔다. 그가 나가고 한참 뒤, 마유현은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근 뒤 침대에 몸을 던졌다. 피곤했다.
근래 이 정도로 깊은 피로감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이틀 동안 밤을 새우면서 놀았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
박물관에서 있었던 일은 로마니카교의 전력만으로도 해결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흑마법을 사용하는 자가 있었던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그조차 성하연이 정화의 축복을 쓰면 해결이 가능했을 것이다.
한대호와 김진서의 전투력을 생각하면 그 정도 수의 적을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들이 폭탄 조끼를 입고 온 것은 변수였다. 그러나 ‘창’을 꺼냈다면, 혹은 아예 ‘창’의 주인을 불러냈다면 그 상황도 어찌어찌 넘길 수는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다소의 희생은 감수해야만 했겠지. ‘창’을 꺼내는 데에는 시간이 제법 걸리니까.
허나 부두교의 등장으로, 정확히는 도선우의 능력으로 모든 상황이 정리됐다. 아무 희생도 없이.
그가 만일 정체가 발각될 것을 염려하지 않고 마음껏 능력을 썼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가 방어가 아닌 공격을 위해 능력을 쓴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통제 불가능한 위험.”
마유현은 언젠가 조부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네가 통제할 수 있는 위험은 이용해라.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통제 불가능한 위험일 수 있으니까. 사람들은 통제 불가능한 위험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너조차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 있다. 그런 위험을 만나면, 너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밑으로 들어가거나, 제거하거나.
‘그러나 너는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서는 안 되지. 그러니 제거하거라. 혹은 위험을 통제할 힘을 갖추거나.’
부두교는 통제 불가능한 위험이었다. 선택해야 했다. 그들의 밑으로 들어가거나, 제거하거나, 부두교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추거나.
밑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부두교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출 수 있을까?
‘후보자’들을 모두 꺾어 굴복시킨 다음, 그들의 힘을 갖고, 교황으로 즉위하더라도 부두교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여태는 부두교를 과소평가해 왔다. 왜냐면 그들의 주술이, 그리고 ‘로아’라는 것들의 권능이 아무리 강해봤자 결국 성전의 승자는 로마니카교 아니었던가.
그러나 교차로를 경험하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 성전에서 로마니카교가 부두교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교주와 선지자가 뜻이 달랐기 때문에. 내분으로 인한 ‘도망자’와 ‘추방자’가 생겼기 때문에. 성유다를 적절히 이용한 덕분에.
그 모든 요소가 운 좋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로마니카교는 이겼고 부두교는 졌다. 그러나 같은 조건에서 힘 싸움을 한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우직.
그때, 갑자기 잠갔던 문이 열렸다.
달그락.
부러진 문고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마유현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침대에서 미처 일어나지도 못한 채, 온몸이 결박되었다.
차갑고 미끄러운 비늘의 감촉이 살갗을 기분 나쁘게 어루만졌다. 끝이 갈라진 혀가 마유현의 귓가를 끈적하게 핥았다.
[꼬마야.]뱀이었다. 어둠 속에서, 신성력으로 그린 동그란 원 너머로 세상을 보았을 때. 도선우의 뒤를 밟던 검은 장정을 집어삼킨 거대한 뱀.
박물관에 있을 때보다는 크기가 조금 작아졌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크기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마유현은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뱀의 꼬리가 그의 목을 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톱을 세워 비늘을 긁어 보았지만 비늘은 돌처럼 단단했다. 그의 손톱이 들려서 피가 흘렀다.
[남들보다 많은 걸 볼 수 있다고 오만해지지는 말렴.]“……커, 헉……!”
[네가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우리가 정녕 모를 것 같니?]꼬리가 목을 더욱 강하게 조여왔다. 목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 뱀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목소리는 황홀할 정도로 달콤하고 매력적이어서, 듣는 것만으로 웃음이 나왔다.
시뻘겋게 달아오르던 마유현의 얼굴이 이내 창백하게 질렸다.
죽음이 코앞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파리한 입술은 미소를 띠었다. 저항해야 했지만 저항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황홀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욕망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우리가 선지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그게 서로를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란다.]“…….”
[너희는 우리 손바닥 위에 있단다. 교차로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사삭.
뱀은 그 말을 남긴 뒤, 마유현의 목을 조르던 꼬리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방을 나가 모습을 감췄다.
“……읍, 하……! 콜록, 욱……!”
숨이 트였다. 피가 흐르지 않던 머리에 비로소 피가 돌았다. 앞이 까맣게 어두워졌다가 하얗게 밝아졌다. 언뜻 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마유현은 침대 위에서 한참 거친 숨을 토하고 마른기침을 했다. 쉽사리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콜록……. 후.”
몇 분을 더 기침을 하고 나서야 마유현은 비로소 숨을 골랐다. 통제 불가능한 위험. 밑으로 들어가거나, 제거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거나.
밑으로 들어갈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면 제거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제거조차 할 수 없는 위험도 있었다.
“이런 개씨발.”
이제야 알겠다. 조부께서 왜 그리 부두교를 없애고 싶어 하셨는지.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굳이 빌미 삼아 성전을 일으켰는지.
슬슬 다른 ‘후보자’들을 만나야 할 때였다. 만나고 싶지 않아도 만나야만 했다.
* * *
다음 날, 우리는 지하 1층 강당으로 갔다. 한대호가 우리를 그곳으로 집합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우리에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충격적이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숨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또한 숨길 수도 없는 일이라고 한대호는 덧붙였다.
“그때 박물관을 습격했던 자들은 이슬람 극단 조직의 일원일 것으로 판단된다. 정확한 신원은 파악 중에 있고…….”
한대호가 고개를 숙였다.
“……당시 우리를 습격했던 47명 중, 46명이 죽었고 단 1명만을 생포할 수 있었다.”
이어진 한대호의 설명을 통해 나도 모르는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46명의 사망 원인은 표면상 자살인 것으로 나타났으나, 꺼림칙한 부분이 있어 아직 조사 중에 있다.
생포한 1명이 극도의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것, 그리고 그건 갑작스러운 기상 이변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한대호는 말했다.
나는 그들의 죽음이 렉바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선택권을 주었을 뿐이다. 선택은 그들의 몫이었지.]렉바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하여, 오늘 남은 일정은 진행하지 않는다. 교황청에서 복귀 명령을 내렸다. 이곳에 입국해 있는 다른 성직자들까지, 모두.”
이후 한대호는 짐을 정리해서, 다시 강당에서 모이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선교 활동으로 이곳에 온 성직자들과 함께, 안전하게 공항으로 가서 귀국하게 될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짐을 챙겼다. 어젯밤 숙소로 들어오자마자 숨겨두었던 지팡이를 꺼내려고 침대 밑에 손을 넣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려는 찰나, 담 발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단다, 꼬마야.]그와 동시에 손에 지팡이가 잡혔다. 지팡이는 어쩐지 처음 손에 쥐었을 때보다 말랑말랑했다. 뱀의 비늘처럼 까끌까끌한 감촉도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나는 역행의 지팡이와 담 발라가 합쳐졌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지팡이를 꺼내 들자, 예상대로 나무에 뱀의 비늘과 같은 무늬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 무늬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무늬가 차츰 진해지면서 정말 뱀의 비늘이 되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팡이는 마침내 담 발라, 뱀의 모습으로 변했다.
[잃어버린 보금자리를 되찾은 기분이란다. 훨씬 편하고 낫구나.]담 발라가 내 팔을 휘감아 타고 오르며 말했다.
이런 게 가능한 이유는, 포토미탕(poteau mitan)이 렉바가 교차로에 사람들을 초대할 때 쓰는 의식의 지팡이이면서, 동시에 담 발라와 아이다 웨도(Ayida-Weddo)라는 로아의 상징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상징이라고 하기보다, 담 발라와 아이다 웨도가 결합한 것이 곧 포토미탕 그 자체였다.
[아아……. 피곤하구나. 나는 안식을 취하고 싶단다, 꼬마야.]“네, 그러세요.”
고개를 끄덕이자 담 발라는 지팡이의 형태로 돌아갔다. 나는 지팡이를 캐리어에 집어넣고, 나머지 잡다한 짐을 정리한 뒤 숙소에서 나왔다.
지팡이가 있으면 역주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역주술은 정인아의 동생인 정윤아를 낫게 할 유일한 수단이었다. 동시에 다른 주술과 로아의 권능을 보다 자유롭게 활용할 수도 있었다.
때에 따라서 뱀의 형태로 움직이게 만들 수도 있고, 지팡이의 형태로 내 손에 쥐고 사용할 수도 있었으니, 다방면에 활용이 가능했다.
지팡이를 얻은 것만 해도 이번 선교여행에서 얻은 수확은 어마어마했다. 그럼에도 어딘지 꺼림칙하고 불길했다.
어제의 일을 설명하던 한대호가 부두교에 대한 언급을 일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들 고생 많았다. 학교는 월요일까지 쉴 수 있도록 말해두마.”
아이들을 차에 태워서 보내는 한대호의 표정과 말투를, 나는 유심히 관찰했다. 말투와 표정에서 묘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엿보였다.
그가 경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전부였다. 나와 마유현, 한수련, 그밖에 학생들과 동승한 성직자들 모두를 그는 경계하고 있었다.
우리 중 사탄교도, 또는 부두교도의 첩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젯밤 김진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공항에 도착하여 마침내 비행기에 올랐다. 이륙하는 순간까지, 우리 중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다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거나,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눈을 붙일 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