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26
제226화
하수영은 성하연과 대치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도망칠까 생각했지만, 도망치는 게 오히려 이상해 보일 것 같아서 그만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수영의 머릿속에 여러가지 방법이 떠올랐지만, 무엇 하나 시도해보기는 무서웠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그 무시무시한 성유다의 외동딸인 성하연이었다.
성유다, 그는 성전에서 교황군을 이끌고 부두교도를 죽이는 데 앞장섰던 놈이었다. 그토록 유능했던 2대 교주와 선지자조차 성유다의 계략에 빠져 죽고 말았다.
성유다 만큼은 아닐지라도, 성하연도 그와 비슷한 통찰력이나 날카로움은 지니고 있을 것이었다. 섣불리 행동했다가 부두교도라는 사실을 들킬 지도 몰랐다.
“뭐냐고요. 아까부터 계속 쳐다보던데.”
“…….”
그렇게 되면, 도선우에게도 피해가 갈 것이 분명하다. 예배당을 나온 것도 떼를 써서 억지로 나온 거였다. 그런데 성하연에게 정체를 들켜 피해까지 주게 되면…….
그때는 도선우에게 혼난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부두교도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었다.
“……서, 성유다 님 따님 되시는 분 아니세요?”
“네? 아, 맞기는 한데…… 어떻게?”
“팬이라서! 팬이라서요. 저도 피렌체에 들어가고 싶어서 조사를, 좀……. 내년에 피렌체 시험을 보기로 했거든요!”
그나마 생각한 변명이 이것이었다.
하수영은 나중에 도선우가 왔을 때까지 생각해두고 있었다. 명분상 도선우는 하수영을 ‘사촌동생’이나, ‘아는 동생’정도로 소개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수영은 자신을 ‘피렌체 재학생인 도선우를 동경하여 지방에서 올라온 동생’이라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부두교도라는 의심을 받지는 않을 터.
성하연을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도선우에게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피렌체를 지망하는 학생이면서, 열렬한 로마니카교 신자라면 성유다와 성하연을 알고 있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팬이요?”
“네, 그러니까…….”
하수영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지금 딱 도선우가 여기 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기대와 달리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수영은 다음 변명을 생각했다. 팬이라고 했으니까 사인이라도 해달라고 할까? 아니, 그랬다가 자칫 미친 사람처럼 보일 염려가 있다. 이미 충분히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것 같기는 한데…….
“뭐야, 어디 갔나 했더니……. 어?”
그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수영은 화색이 돈 얼굴로 도선우 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성하연과 하수영을 번갈아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왜 두 사람이 같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하수영은 도선우를 향해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며 신호를 줬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아, 교, 아니! 오빠. 한참 기다렸네!”
하수영이 도선우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오빠라는 호칭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성하연은 아직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듯 눈을 깜빡이며 도선우와 하수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상황파악이 덜 된 것은 도선우도 마찬가지였다.
“……아하.”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하수영과 팔짱을 끼고 있는 성하연을 보던 도선우가 뒤늦게 판단을 마치고 중얼거렸다. 그가 성하연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둘이 왜 같이 있나 했네. 우연히 마주친 거야?”
“네, 뭐……. 그쪽이랑 아는 사이인 줄은 몰랐네요.”
“아, 그! 내가 먼저 말 걸었어. 예전에 오빠가 말한 적 있잖아? 성유다 님 따님 되시는 분이 피렌체, 같이 다녀서 종종 마주친다고.”
하수영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주절주절 변명부터 했다.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에 안 해도 될 말까지 입밖으로 튀어나갔다.
“아예 저, 같이 커피 마시면서 얘기나 할까? 그…… 성하연 님? 괜찮으시면?”
“저는 상관없어요.”
“나도……. 아니, 아니다.”
도선우는 별 생각없이 대답하려다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뭔가 생각하는 듯한 얼굴로 하수영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표정이 무섭게 굳어 있었다.
하수영은 그가 자신에게 화가 난 줄 알고 고개를 푹 숙였다.
화가 날 만도 했다. 생떼를 부려서 예배당을 나와서는, 무심코 성하연을 쳐다보았다가 이 사단을 냈으니. 그가 무슨 말을 해도 하수영은 곱게 들을 생각이었다.
도선우는 하수영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잠깐 나가서 기다리고 있을래? 둘이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아? 응……. 그럴까?”
하수영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화를 내지 않아서 놀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말투가 평소와 같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말을 걸거나 부탁을 하면 항상 삐딱한 표정과 말투로 ‘싫어’, ‘꺼져’ 등의 말만 하던 그였다. 그녀는 저렇게 친절한 말투를 구사하는 도선우를 본 적이 없었다. 당황스럽고 낯선 것을 넘어 기괴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응, 그럼 잠깐 나가 있어. 잠깐 얘기만 하고 금방 나갈 테니까……. 계속 기다리게 하는 것 같네. 미안.”
“아니……. 아니야! 괜찮아. 어차피 잠깐이니까. 나오면 전화해.”
하수영은 손사래를 치며 말하고는, 얼른 카페를 나왔다. 유리창 너머로 성하연과 도선우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하.”
하수영은 카페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에 갔다. 벤치에 앉아 한숨을 토했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매우 친절하고 착해 보이던 도선우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마도 그건 로마니카교도이자 피렌체의 학생을 연기하는 도선우의 모습일 것이다.
피렌체에는 성하연과 같은 고위 성직자의 자녀가 많이 재학하고 있으며, 성직자와 만나게 되는 일도 많다.
그런 환경에서 부두교의 교주인 도선우가 살아남으려면, 저런 연기를 매순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새삼스레 도선우가 대단해 보였다. 성하연을 앞에 둔 것만으로 당황하여 말을 더듬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니 더욱 그랬다.
예배당에서는 까칠한 모습만을 보이던 도선우가 이제야 이해가 됐다. 저런 식의 연기를 매일, 매순간 하려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니, 성직자들 사이에서 느낄 긴장감과 공포감까지 생각하면……. 이제껏 미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우웅─!
벤치에 앉아 시간을 때우다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를 무렵 진동음이 울렸다. 도선우에게 전화가 오고 있었다.
─어디야?
“아, 나……. 근처 공원인데, 내가 그쪽으로 갈게.”
─그래? 그럼 빨리 와.
뚝.
“…….”
도선우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수영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카페 쪽으로 갔다. 카페 앞에서 도선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수영은 쭈뼛쭈뼛 그에게 다가갔다.
아까 성하연이 앞에 있을 때 그는 친절한 모습을 연기했지만, 지금은 성하연이 근처에 없다.
즉, 굳이 연기를 할 필요가 없는 상황. 지금이야말로 도선우가 화를 낼 지도 모르는 때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선우에게 다가가기가 두려웠다.
그렇다면 선수를 친다.
“미, 미안해.”
하수영은 가자마자 도선우에게 사과했다. 도선우는 대답하지 않고 하수영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하수영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었다.
“성하연, 저 사람은 나도 알아서, 무심코 쳐다보다가 상황이 그렇게……. 미안, 귀찮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냥…….”
해야 할 말이 많은데, 막상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말문이 막히는 게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지 몰랐다.
하수영은 하려던 말을 끝까지 다 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도선우의 표정을 살폈다.
의외로 표정이 굳어 있지 않아서 놀랐다. 오히려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마저 감돌고 있었다.
“괜찮아, 어차피 쟤랑 해야 할 얘기도 있었으니까.”
“…….”
“오히려 잘 됐어.”
괜찮을 리가 없었다. 하수영에게 성하연은 부두교의 숙적인 성유다의 딸, 그뿐.
성유다가 나쁜 놈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사적으로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도선우에게 성유다는 아버지의 직접적인 원수였다.
도선우는 방금 그 원수의 딸을 만나서, 친한 척 웃으며 비위를 맞추고 대화를 나눴다. 기분이 나쁜 정도가 아니라, 역겨웠을 것이다.
“배 안 고프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럼에도 도선우는 하수영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뭘 먹고 싶냐고 묻고 있었다. 미안해하지 말라고 일부러 화제를 돌리는 것 같았다.
피렌체에서 성직자와 성직자의 자녀, 즉 부두교의 입장에서는 적일 수밖에 없는 자들과 섞여 살면서 도선우는 하수영이 느꼈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긴장과 역겨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피렌체에 위장 입학을 한 것은 모두 부두교를 위한 일이었다.
그건 교황청 지하 감옥에 접근하여 하수영의 친오빠를 구하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도움을 주어도 모자랄 망정, 나는…….
“……별로 배 안 고파.”
“그래? 그럼 아무거나 보이는 데 들어가서 먹자.”
하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
카페를 나온 성하연은 양산을 펼치고 발길이 닿는대로 걸었다. 그러면서 도선우와의 대화를 차분히 곱씹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안 그래도 도선우에 대해서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했는데, 한 차례 대화를 하고 나니 더욱 머리가 복잡해진 것 같았다.
‘아는 동생’이라던 그 여자아이를 카페 밖으로 내보내고, 성하연과 도선우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그리고 한참 정적이 흘렀다. 도선우도, 성하연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애초에 할 얘기가 있다고 한 것은 도선우였다. 성하연이 먼저 입을 열 이유가 없었다.
도선우는 성하연을 쳐다보거나, 카페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흘겨보거나,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는 등의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 요즘 나 피하는 것 같더라.”
“…….”
정적을 깬 말이 너무나 정곡이어서 성하연은 놀랐다. 그녀는 도선우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았다.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실제로 성하연은 요 근래 도선우를 피하고 있었다. 성유다에게 ‘도선우를 가까이하지 마라’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하연은 고개를 저었다.
“피한 적 없어요.”
“피했잖아.”
“……아니, 그쪽만의 착각이겠죠. 그리고 설령 피했다고 해도 문제될 게 있나요?”
“성유다 님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셨길래?”
“…….”
도선우의 말에 강하게 대답하기로 마음먹은 성하연조차 마지막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성하연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쪽이 알 필요 없잖아요?”
“알 필요는 없지. 근데 알고 싶어.”
“왜 그걸 알고 싶어 해요? 가정사예요. 궁금해하는 것부터 실례 아닌가요?”
“네가 성유다 님 말만 듣고 나를 피하고 있으니까. 내 말도 들어줄 수는 있잖아.”
도선우가 말했다. 역시 매우 진지한 얼굴이었다. 성하연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따지고 보면 도선우는 맞는 말만 하고 있었다.
성하연이 성유다에게 들은 말은 ‘도선우를 가까이하지 마라’. 정확히 도선우를 멀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듣지 못했다. 성하연은 그저 아버지의 말을 충실히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성하연 나름대로 그 이유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리를 해보기는 했지만,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도선우가 사탄교나 부두교의 측근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도 해보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도선우는 사탄교의 공격으로부터 몇 차례나 학생들을 구한 전력이 있으니까.
성하연도 세 번이나 그의 도움을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사교도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네, 들어줄 수는 있죠. 한 번 말해봐요.”
성하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쩌면 도선우의 말을 듣는 것을 통해, 그를 멀리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될 지도 몰랐다. 도선우는 성하연의 말을 듣고 한숨을 푹 내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불안한 듯이 다리를 떨었고, 식은땀을 흘렸다.
잠깐의 정적 이후, 그가 눈을 떴다. 눈동자에는 강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그는 그토록 심지가 굳은 눈빛으로 성하연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날 도와줘.”
“……네?”
성하연은 너무 놀라서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예상 외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도선우의 입에서 도와달라는 말이 나온 것부터 어색하고 낯설었다.
도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냅킨을 가져오더니,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아까 너도 성기사단에 다녀왔지? 박물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하라고 그러지 않았어?”
“네……. 그랬죠.”
“그때, 문요셉이라는 분이 나에 대해서 질문한 적은 없어?”
성하연은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있었다.
성하연은 ‘박물관의 불이 꺼졌을 때, 도선우가 와서 정화의 축복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문요셉은 ‘그 이후 도선우의 동선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다면 말해줄 수 있나?’라고 질문했다.
성하연은 그것까지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 외에도 문요셉은 도선우에 대한 질문을 여러 차례 던져왔다.
“……있어요.”
“역시.”
도선우는 예상이 맞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나를 이용해서 정화의 일족에 대해 조사하는 중이야.”
성하연이 놀랄 틈도 없이, 도선우가 설명을 이었다.
문요셉은 예전부터 정화의 일족에 대해서 조사했다. 그들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화의 일족을 조사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그래서 문요셉은 도선우를 통해 정화의 일족에 대해서 조사하는 방법을 택했다.
도선우가 그나마 성하연과 가장 친해 보였기 때문에. 정확히는, 일반적인 친구 관계가 아닌 ‘특별한 관계’처럼 보였기 때문에.
“내가 갑자기 너희 아버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한 것도……. 전부 문요셉의 지시였어.”
“…….”
“그때 너희 아버님에게 몰래 도움을 요청해봤지만……. 결과가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네.”
도선우는 자신을 이용해서 정화의 일족을 조사하려는 문요셉이 싫었다. 동시에 성하연을 속여야 한다는 사실도 싫었으며, 문요셉의 도구로써 일거수일투족을 그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것도 죽을 만큼 싫었다.
그래서 성유다에게 남몰래 신호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성유다는 도선우를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성하연에게 ‘도선우를 가까이하지 마라’라고 말한 이유도 이것이다.
“나만 멀리 하면, 정화의 일족은 안전할 수 있으니까.”
“…….”
“나는 계속 문요셉의 도구로 살아야 하겠지만.”
도선우가 헛웃음을 토하며 말했다. 체념과 절망이 흠씬 묻어나오는 슬픈 웃음이었다.
도선우의 말을 다 듣고 난 성하연은, 도선우의 말을 온전히 믿지 않고 먼저 의심부터 했다. 앞뒤가 안 맞거나,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은 없는지 검토했다.
그러나 없었다. 도선우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갑자기 성유다가 도선우를 멀리하라고 말했던 것도 설명이 됐다.
도선우의 말을 듣다 보면 묘한 불쾌감과 위화감이 들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 죄책감일 것이다. 일족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도선우를 돕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간접적인 죄책감.
“……생각해보니까 네가 날 도와줄 이유가 없겠네. 날 멀리해야 너도, 너희 가족도 안전해질 테니까.”
“아니, 도와줄 수 있어요.”
성하연은 도선우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성하연은 지금까지 도선우에게 도움만 받았다.
성직자들이 흑마법에 취해 서로를 공격했던 날, 도선우는 기적을 재현하여 그들을 제압했다.
머리, 상반신, 하반신이 나뉜 박제가 성하연을 둘러쌌을 때, 도선우는 창문을 깨고 나타나 박제를 처치하여 성하연을 구했다.
이번에 박물관에 검은 장정들이 들이닥쳤을 때도, 도선우가 없었다면 성하연은 인질이 되었거나 단검에 목을 베여 죽었을 것이다.
지금이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선우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를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일족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도선우를 내치려고 한 아버지에게 실망스러웠다.
무엇보다, 성하연은 박물관에서 도선우가 나타났을 때 느꼈던 그 안도감을 기억하고 있었다.
“직접적인 도움은 아니더라도……. 내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해요. 도와줄 수 있는 일이면 얼마든지 도와줄 테니까.”
성하연이 말했다.
그녀는 언제나 누가 시키는 일은 하기 싫고, 누가 하지 말라는 일은 하고 싶었다. 도선우와 친해지라는 아버지의 말을 들었을 때는 도선우가 죽도록 싫었다.
그러나 지금, 도선우를 멀리하라는 아버지의 말을 들었을 때는…….
“고마워.”
도선우가 말했다. 한순간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간 환한 미소를 성하연은 보지 못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