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28
제228화
“소도진, 이번 임무 봤어?”
탁!
거구의 남자가 소도진의 등을 거칠게 두드리며 말했다. 턱에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 있고, 한껏 풀어헤친 셔츠 안으로 고동색 피부가 부담스러울 만큼 많이 드러나 있었다.
그는 트리니타스 성전사단의 저격수인 존으로, 소도진과는 동료였다. 소도진은 그의 두꺼운 팔을 밀어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히 봤지.”
“그래? 그럼 마지막 전달 사항도 봤겠군. 기분이 어때?”
“어떻고 말고 할 게 있나, 그냥…….”
소도진은 이번 임무 내용을 떠올렸다.
용병단 진압. 교황청 직속 부대도 아닌 트리니타스 성전사단이 맡을 만한 임무는 아니었다.
트리니타스 성전사단은 보통 악마종 퇴치, 마수 퇴치, 인명 구조처럼 화려한 임무를 줄곧 맡아왔다. 정확히는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임무’만 했다.
트리니타스 성전사단은 이름처럼 단원이 세 명밖에 없다. 머릿수가 적은 만큼 맡을 수 있는 임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트리니타스 성전사단은 실질적인 임무 수행보다, 성전사단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된 터라 용병단 진압과 같은 과격한 임무는 맡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더럽지. 존나 더러워, 아주.”
소도진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번 ‘용병단 진압’ 임무는 평소와 달리, 트리니타스 성전사단만 투입되는 것이 아니다. 교황청 직속 성전사단 부대까지 투입되는 대규모 임무다.
게다가 임무 내용을 전달하는 문자 말미에, ‘용병단이 폭도로 변질될 가능성이 다분하므로, 필요 시 사살을 허가한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소도진이 이번 임무로 마음이 착잡한 것도 그 부분 때문이었다.
“혹시 모르니 실탄도 챙길 생각이지만……. 쓸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아무리 그래도 같은 사람인데.”
“존.”
소도진이 존의 말을 끊었다. 그의 표정은 무섭도록 굳어 있었다. 존은 소도진의 굳은 얼굴과 그의 허리춤에 채워진 검을 번갈아 쳐다보며 주춤 뒷걸음을 쳤다. 소도진이 마른세수를 하며 말을 이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같은 사람’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 게 좋아. 괜히 트집을 잡힐 수도 있으니까.”
“아하……. 명심하지. 그건 그렇고 기분이 아주 안 좋아 보이는데? 너도 사살을 허가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건가?”
“그것보다, 문득 교황청이 우리를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불순한 생각이 들어서.”
“그거 정말 불순한 생각이군. 하지만 나도 동의해.”
존이 소도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원래 트리니타스 성전사단만 투입하기로 결정된 임무에, 갑자기 교황청 직속 성전사단 부대를 추가 투입하기로 계획이 변경된 것. 그리고 필요 시 사살을 허가한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교황청이 트리니타스 성전사단의 이미지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용병단이 저항을 시도하면 교황청 직속 성전사단을 통해 사살하고, 잔인하다는 대중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트리니타스 성전사단을 앞세울 심산.
자칫 잘못하면 용병단을 사살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전부 트리니타스 성전사단에게 몰릴 수도 있었다.
“이제 와서 임무를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 소도진.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군. 교황청 직속 성전사단들이 용병단을 사살하기 전에, 우리가 단장을 생포하면 돼.”
소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무의 이름은 ‘용병단 진압’. 진압의 최종 목표는 뻔하다. 단장을 생포하는 것. 재빨리 용병단장을 생포하기만 한다면, 부득이한 희생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었다.
소도진은 곧 대치하게 될 용병단장의 이름을 떠올렸다. 평소 다른 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소도진이었지만, 이번에 만나게 될 용병단장의 이름은 독특해서 기억이 났다.
“단장 이름이……. 육은형이었나.”
“그래, 들어보니 용병단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은 것 같던데. 잘 협상해 보고, 안 되면 힘으로 데려오자고. 평화롭게.”
존이 말했다. 소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읍……!”
입을 막아서 흘러나오려는 피를 막았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미처 막지 못한 피가 흘러서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피는 이제 붉은색보다 검은색에 가까웠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 각혈이더라. 6번째였나, 7번째였나? 잘 모르겠다.
달그락.
나는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건조한 소리가 났다. 미리 준비해 둔 수건으로 흐른 피를 닦고, 물로 입을 헹궜다.
“후…….”
그리고 한숨을 쉬며, 내 앞에 있는 정윤아를 응시했다.
배정환에게 문요셉의 감청 장치를 돌려받았다. 배정환이 말하길, 장치의 용도는 단순히 문자, 전화를 감청하는 것뿐이며, 위치 추적이나 상시 도청 등의 기능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나는 장치를 받은 뒤, 그것을 휴대폰에 부착했다. 당연하지만 피렌체의 학생으로서 사용하는 휴대폰이었다.
성하연과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아이들에게서 오는 연락은 전부 무시했다. 사실 무시한 게 아니라, 답장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담임에게 몇 주간 학교를 쉬겠다고 말했다. 선교여행에서 괴한의 공격을 받은 것에 대한 트라우마, 그리고 사탄교에 대한 공포를 핑계로 댔다.
담임은 체험 학습이나 질병 결석 등의 적당한 빌미로 내가 학교를 쉬게 해주었다. 시험 기간에는 되도록이면 등교하라는 말과 함께.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 나는 가끔 기숙사에 들러 키우던 꽃에 물을 주었고, 그 외에는 예배당에 틀어박혀 지팡이를 다루는 연습에 전념했다.
역주술을 다루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종종 지팡이의 변덕으로 내 의도와 달리 엉뚱한 주술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경우도 많지 않았다.
역주술을 익힌 다음에는, 정윤아에게 역주술을 썼다. 좀비화에 필요한 주술을 하나하나 역으로 써 보기도 하고, 아예 융합 역주술을 써보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러기를 벌써 며칠.
“햐아아악─!”
“조용히 해.”
“햐아악…….”
나는 실패했다.
정윤아의 상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강지아가 예배당을 비운 탓에 정윤아를 씻기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그래서인지 정윤아는 평소보다 점점 예민해지고 있었다.
밥을 꾸준히 먹인 덕분인지, 보기에는 예전보다 상태가 많이 나아지기는 했다. 피부가 너무 창백해서 푸른 정맥이 도드라져 보이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나름 혈색이 돌았다.
그러나 그뿐. 가장 중요한 언어 능력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걸음걸이도 영락없는 좀비다. 혈색 말고는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었다. 결국 내가 역주술로 이뤄낸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었다.
“…….”
솔직히 막막했다. 정윤아는 주술만으로 좀비가 된 게 아니었다. 약물과 폭력 등의 야만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좀비였다. 그런 정윤아를 역주술만으로 낫게 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지팡이는 변덕이 심해서, 내가 원하는 종류의 주술만 사용하게 두지 않았다. 이따금 내가 쓰려고 했던 것과 정반대의 주술이 사용되기도 했다.
이대로는 영영 정윤아가 낫지 않을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역주술 탓에 오히려 상태가 악화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아악…….”
착잡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윤아는 목이 쉰 비명만을 힘없이 내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입에서는 피비린내가 났고, 시야는 까맣게 어두워졌다가 하얗게 밝아지며 점멸했다.
[쉬거라.]그때, 내가 지팡이를 들고 역주술을 연습할 때는 결코 입을 열지 않던 렉바가 말을 걸었다. 목소리에 나를 걱정하는 기색은 없었다. 대신 나를 꾸짖는 투였다.
“웬일이지? 제가 역주술로 뭐 하고 있을 때는 늘 조용히 계시더니.”
[어지간하면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말한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아서.]“제가 말을 좀 안 듣기는 하죠.”
[그러나 지금은 말할 수밖에 없구나.]렉바가 엄숙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 것 같네요.”
나는 입가에 묻은 피를 마저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주술을 한 번만 더 쓰면 너는 아마 쓰러질 거다. 그러니 쉬도록 해. 지금 쓰러지면 사흘 밤낮은 누워서 지내야 할 거다.]“그래요, 어차피 쉴 생각이었어요.”
나는 지팡이를 짚고 내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정윤아가 머물고 있는 방을 나오면서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정윤아가 얌전히 자리에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마치 주술에 취하기라도 한 듯이, 그녀의 갈색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선교여행에 가지 말라며 나를 붙잡던 정인아의 눈빛과, 지금 정윤아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겹쳐 보였다.
방으로 돌아가려던 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정윤아 앞에 섰다.
“……마지막.”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자칫 쓰러지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 번만 더 시도해 보고 싶었다.
[……결국 내 말을 듣지 않는구나.]나는 렉바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지팡이를 들었다. 그리고 부두 마력을 사출했다. 부두 마력을 머금은 지팡이가 보랏빛 광채를 토했다. 지팡이를 움직여 주술진을 그렸다.
환혹, 도취 주술.
좀비화 주술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주술이자, 내가 평소에 가장 많이 썼던 주술. 주술진은 강한 빛과 함께 안개를 토했고, 안개는 정윤아를 휘감았다.
정윤아는 저항 없이 안개를 받아들였다. 나는 안개 너머로 정윤아의 눈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눈동자에 잠깐 빛이 돌았다가, 사라졌다.
“…….”
그러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기대와 달리. 아니, 예상했던 대로였다. 이제는 실망스럽지도 않았다.
어쩌면 눈동자에 빛이 돌았다고 생각한 것도 내 착각 아닐까.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고 있을 힘이 없었다.
“망할.”
웃음이 나왔다.
“조용히 해.”
“……어?”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정윤아를 보았다. 정윤아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분명 ‘조용히 해’라고, 누가 말했던 것 같은데.
상태를 보아 하니 정윤아가 말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뭐지? 환청? 역주술을 너무 많이 사용한 것에 대한 부작용인가?
“조용히, 해.”
그 순간, 정윤아의 입이 움직였다. 그녀가 말을 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정윤아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빛이 돌아온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조용히 해!”
“그래, 알겠어. 조용히, 조용히 할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지팡이를 꽉 쥐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귀가 먹먹했고, 가슴이 부글부글 끓는 듯 뜨거웠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한참 정윤아를 쳐다보았다. 그녀도 나를 보았다.
성공이었다.
아직까지는 ‘조용히 해’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아까 그녀에게 조용히 하라고 핀잔을 주었던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드디어 나타난 성과였다. 고생한 것에 비하면 미미한 성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언어 능력을 온전히 되찾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괜찮았다. 성과가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실제로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보잘것없는 저 한 마디. 저 한 마디의 짧은 말, 목소리를 듣는 데 며칠이나 걸렸는지 생각했다. 오늘이 사흘째였나? 아니, 나흘? 일주일? 아니다. 오늘이, 그러니까…….
“오늘이 며칠째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나가서 햇빛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